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김태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서 간디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 즉 간디만의 [유토피아]를 만날 수 있었다. 간디의 유토피아는 국가주권 폐지를 통한 단일 세계 정부의 구성(p.8), 국가가 없는 민주주의(p.12), 산업화에 반대하고 소박한 삶과 고매한 사상의 추구(p.40~41), 마을 스와라지(p.61), 생계를 위한 노동 및 공정한 분배(p.66), 비폭력과 탈중심화(p.70), 보호무역(p.94), 전인교육(p.113) 등으로 대표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이런 삶이 [이상적인 삶]인지 부터 의문점이 생기고 또한 과연 [실현 가능한]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일단 간디도 자신의 꿈꾸는 사회가 실현되기를 기대하지는 않은 것 같다.(p.108) 분명히 고백하건데 아직 젊은 나로서는 간디처럼 <이상주의>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본인도 전세계 사람 모두가 평등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지만 이럴 때 대부분 알고 있는 체게바라의 명언이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그래서 나는 과연 간디의 꿈꾸는 삶이 [불가능한 꿈]인지 하나 하나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먼저 국가주권 폐지를 통한 단일 세계 정부의 구성에 대해 생각해보면 궁극적으로 단일 세계 정부 수립이 최선이 될 것이라는데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단일 세계 정부 구성의 시초가 될지도 모르는 UN을 보면 현실 정치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1학년 시절에 현재는 호주대사로 임명된 정치외교학과 김우상 교수의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께서는 UN도 미국의 단일패권을 위한 도구일 뿐이며 만약 UN(united nations)이 속된 말로 말을 잘 듣지 않을 경우 UC(united country)라도 만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결국 개인적으로는 국가주권 폐지를 통한 단일 세계 정부의 구성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어서 국가가 없는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보면 간디도 이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p.13) 그래서 대안으로 “국가를 분산시키는” 마을 스와라지를 제시하였는데 솔직히 말해서 “국가를 분산시킨” [마을 스와라지]가 바로 또 다른 [국가]가 아닌지 궁금하였다. 대체 두 개의 차이가 무엇이란 말인가? [마을 스와라지]라 함은 단순히 이름만 바꾼 [국가] 자체가 아닐까? 그냥 단순히 권력만 분산시킨다고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룩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마치 [마을 스와라지]에 대해 간디의 글을 읽고 있으면 과거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오버랩 되는 것은 나만 그럴까?



또한 산업화에 반대하고 소박한 삶과 고매한 사상의 추구에 대해 생각해보면 간디는 굉장히 기계와 산업화를 반대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특히 사악함은 산업주의에 내재하는 것이어서 산업을 아무리 사회화해도 그 사악함을 제거할 수 없다(p.42)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초창기 [천민 자본주의]로 인해 많은 사악함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과거의 [천민 자본주의]는 많은 도전을 받으면서 점진적으로나마 사악함을 제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간디가 다시 살아난다면 산업화를 통해 인간의 수명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특히 생계를 위한 노동 및 공정한 분배에 대해서는 생각할 것이 많은데 개인의 지적 능력은 오직 인류에 봉사하는데 쓰여져야 한다(p.66)는 간디의 견해에 동감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간디도 너무 앞서 나가게 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간디로 아래 글을 쓰고 나서 아차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간디는 우리의 시간의 대부분은 육채노동에 바쳐져야 하고, 오직 조금만이 독서에 주어져야 한다(p.67) 라고 주장하는데 뭐 이건 반론할 가치도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부자들의 재산 신탁(p.69)을 주장하는데 이 부분의 논리도 빈약하다고 생각한다. 간디는 평등한 분배가 이상이므로 공평한 분배를 차선으로 추구하는데(p.68) 과연 부자들의 재산 신탁과 공평한 분배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리고 부자들의 재산 신탁이라 함은 평등한 분배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재산 신탁한 것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사회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인가? 나중에 사용하고 돌려줄 것인가? 절대 그럴 일을 없을 것이니 한마디로 그냥 재산을 몰수하겠다는 말의 유화된 표현 아닐까?



이어서 비폭력과 탈중심화에 대해 생각해보면 비폭력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농업적으로 조직된 인도는 육해공군을 잘 갖춘 도시화된 인도보다 외국의 침입을 받을 위험이 적다(p.70)라고 주장하는데 이건 무슨 근거로 이런 주장을 펴는지 궁금하다. 과연 인도는 과거에 농업적으로 조직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그리고 우리나라는 도시화되었기 때문에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것인가? 그리고 인도가 왜 현재 다른 나라의 무시를 받지 않는가? 그것은 [핵]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간디가 주장하는 보호무역(p.94)은 개인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원래 경제학과 경영학에 대해 경험이 미천한 관계로 보호무역과 자유무역에 대해 생각할 능력이 되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에 장하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책을 통해 영국이나 미국이 IMF, 세계은행, WTO 3인방을 통해 각 국에 강요하는 자유무역의 허구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지금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나라들도 자신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경쟁력을 키울 때까지는 보호무역을 하였으며 세계적인 산업 경쟁력을 갖추고 나서는 자유무역을 다른 나라에 강요함으로써 올라올 때 사용한 사다리를 치워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이탈림, 혹은 전인교육(p.113)으로 대표되는 간디의 교육관에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간디는 지력의 올바른 교육은 오직 손, 발, 눈, 귀, 코 등 신체기관의 적절한 운동과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p.113)고 말하고 있다. 즉 적절한 지능 발달에는 몸과 마음의 교육과 함께만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추구한 교육 목표인 전인교육(全人敎育)과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교육과정에서 영어를 빼자고 주장(p.117)하고 있는데 만약 우리나라 사람들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라고 할 것이다. 대통령이 영어몰입교육을 주장하는 판에 이런 주장을 했다가는 미친 사람 소리 듣기에 딱 좋을 것이다. 본인은 현재 영어가 일종의 학벌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영어가 이른바 상류층으로 편입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고 있으며 영어를 통해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되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어를 배우지 말자는 것은 너무 앞서간 생각이다. 영어는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나오는 논문의 대부분은 영어로 작성되고 있으며 영어에 능통하지 않으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입장에서 영어라 함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일본어와 같이 인도의 문화를 왜곡할 수 있으며 당시 [친영파]의 주요 출세 수단이었던 만큼 이를 배척한 간디의 생각은 이해되지만 현제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개인적인 생각으로 간디가 주장한 이상적인 삶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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