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반딧불,, >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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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치마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적 엄마는 제사 때마다 꼬막을 꼭 올리시곤 했다.
요새는 소설 속의 표현처럼 칫솔로 꼼꼼하게 닦아낸다고 하는데,
엄마는 그 많은 식구들 밥 하느라 엄청 큰(아마 시장에서 제일 큰 사이즈였을게다) 쌀대야의 올록볼록한
면이 닳아지도록 고무장갑을 끼고 열심히 벅벅 씻곤 했었다.
언제나 녹두를 담그실 때면, 또 식혜용 엿기름을 달글 때면..명절이, 제사가 다가오는가 보다 했었다.
참 자주도 있었었지.
그게 얼마나 힘든 노릇인 줄은 결혼을 하고 알았다.
작은 화분에 콩나물 하나, 숙주나물 하나 길러먹기가 그리 힘든 줄 결혼하고 알았다.
환청으로 들릴 정도로 덜그럭 덜그럭 쌀대야의 꼬막은 넘치도록 큰 소리를 내곤 했었지.
쌀대야에서 나온 꼬막은 그 검은 빛이 언제 있었냐싶게 뽀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시제엔 그렇게 뽀얀 빛의 꼬막은 없었다. 엄마의 것만 그렇게 뽀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꼬막을 씻으면 원래 그렇게 뽀얀 것인 줄 알았는데 나 먹어 간 식당에는 왜 그리도 까만 꼬막을
아무렇지도 않게 올려놓았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결혼하고 첫 집들이를 준비하면서 꼬막을 씻다가 알았다.
고무장갑을 꼈어도, 손에는 퍽이나 많은 상처가 남았었다.
텔레비젼의 소리가 안들릴 정도의 덜그럭거림이 어쩌면 아버지에게 대한 시위였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또한 결혼하고 알았다.
바쁘고 또 바쁜 시골의 큰 살림을 살면서 그 여러번인 젯상을 차리기 위해 얼마나 동분서주 했음을
이제는 안다. 너무나 늦게사 알게 되었다.
처녀치마를 읽으면서 그가 요리를 즐기는 사람 혹은 최소한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놓치기 쉬운 그리고 미묘한 후각과 청각과 미각의 자극을 유난하게 잘 연결시키고 있었다.
꾸준히 등장하는 아버지라는 존재, 혹은 남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결혼을 상처로 표현하는
소설 속의 여인들을 보면서 , 통념상의 어긋난 사랑이 등장하는 글 속의 방들을 걸어들어가서 옆방에
조그만 구멍이라도 뚫고 보는 듯한 미묘하게 관음을 자극하는 글들은 내게 묘한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그녀들에게 그들에게 피해자라는 의식을 주고 있는 것은 바로 모든 사람. 곧 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곤혹스러움을 면하기가 어려웠다.
끝까지 지켜보았고, 그렇게 지나갔지만,
지금도 생은 계속 되어가고....그 속을 조용히 지나가는 것은 나다.
오롯이 혼자 가는 길에 그녀는 동행을 하나 붙였다.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