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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조네 사람들 김소진 문학전집 1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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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읽고 김소진을 알았고, 크게 한번 카드를 그은 여파가 잠잠해질 무렵 문학동네에서 나온 전집의 나머지를 주문했다. <장석조네 사람들>은 그러니까 내가 읽은 두 번째 책인데, 이렇게 말하는 게 성급하긴 하겠지만 이 책이 그의 전집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 같다. 뭐랄까, 간만에 살아 숨쉬는, 유식한 말로 생동감이 느껴지는 소설을 읽은 듯하다. 전집 중 유일한 장편소설이지만, 말이 장편이지 장석조네 집에 세들어 사는 인간 군상들의 삶을 하나하나 묘사한, 단편에 가까운 소설이다.


똥을 아무데나 싸대는 오리는 그 집안의 애물단지, 다들 오리를 없애라고 아우성을 친다. 하지만 그 오리가 금반지를 삼키는 걸 누군가가 봤다는 소문이 나돌자 상황이 급변한다. “(오리는) 한갓 미욱한 짐승이 아니라 뭔가 알 수 없는 위엄까지 갖춘 생명체로 보였다”  모두들 오리의 소유권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이 집 뜰이 누구네 집 안짝인 게야?”

“오리똥 냄새 때문에 코 싸매쥐고 살아온 우리는 우떻고?”

‘오리통이 바로 내 방 앞에 놓여 있어가지고 우리가 얼메나 고생을 했다구요?“

순박한 듯 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에는 목소리를 높이는 그들, 난 이 대목을 읽다가 슬며시 웃었지만, 그들은 어쩌면 나 자신의 모습이리라. 갖가지 기구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소개하는 와중에도 김소진의 눈은 언제나 따뜻하다. 인간에 대한 사랑,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런 게 느껴져 마음이 푸근해진다.


난 이 책의 감칠맛 나는 대사에 반했다. 몇 개만 예를 들어보자.

“너같은 녀석이 데모를 할 땐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새벽 좆처럼 벌떡벌떡 서는 거 있지?”

“진씨한테도 솔개 까치집 뺏듯 후리는 구석이 다 있었구만”

“짠 바닷바람 쐰 것 같다”(외국서 밀수해왔다는 뜻)

“젓가락 바뀐 줄은 알아도 마누라 바뀐 줄은 모르는 헛똑똑이가 다 있다더니”

“우째 사람 대하는 얼굴상이 저녁 굶긴 시어머니 상호모양 그리 떨떠름한겨”

비유들이 정말 기가 막히지 않는가? 옛 사람들은 필경 이런 멋진 비유들을 쓰고 자랐으리라.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맨날 “너무 좋아” “진짜 그래”같은 단어들만 쓰면서 하루하루를 살지 않는가. 하루에 50단어 이하를 쓰고 사는 사람이 50%를 넘는다는 통계는 자못 충격적이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 조상들이 쓰던 생생한 단어들은 어쩌면 역사의 유물로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책의 사진을 보니 김소진은 진짜로 장석조네 집에 세들어 살았다고 한다. 책의 에피소드들이 다 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릴 적 경험을 이렇게 아름다운 소설로 승화시킨 김소진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한가지 아쉬운 점, 책 표지에 "2004 한국 출판인회의 선정 청소년 교양도서“라는 스티커가 눈에 잘 띄게 붙어있다. 그걸 보니 청소년 교양도서를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읽고 있다는 게 부끄러웠다. 괜한 느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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