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를 듣는 듯한 어휘들로 가득 찬 김소진의 장편소설이지만 마치 단편처럼 읽힌다. 전반부는 [두 장의 사진으로 남은 아버지]를 제외하곤 솔직히 별 재미가 없었다. 이념의 시대를 보낸 이후, 제도화된 내 자신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익숙한 풍경이어서 그랬을까. 리얼리즘을 극대화시킨 줄거리와 질펀한 문장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개인적인 성향도 있었겠지만 격동의 세월을 보낸 비극적인 삶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감정의 애틋함마저도 상투적으로 느껴졌다. 게다 많은 등장인물들의 행동 하나, 하나를 자세하게 서술할 때는 누가 누구인지, 조금 헷갈렸고 내용이 산만해졌다. 이건 모두 무기력한 한 독자의 따분한 변명, 변명일 것이다. 그러나, 뒷부분으로 가면서 눈을 떼지 못하게 흡입력 있는 내용의 소설들이 있었다. 특히 [빵]이 그것인데 꽤 재미있었다. 밀가루 배급을 둘러싼 공권력의 독점과 비리, 부당한 분배, 그리고 폭력. 무엇보다 미아리 하층민들의 생존투쟁이 인상적이었다. 공권력에 매수되었지만 정의를 지키고자 고영만씨가 올라가야만 했던 지붕이 현실의 청와대 앞 크레인타워 비정규직 노동자의 시위와 오버랩 되면서 눈 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여전히 정치적으로 흔들리기만 할 뿐, 이 놈의 삶은 도대체가 나아진 게 별로 없구나. 누군가들은 여전히 죽어나갈 것이고 또 누군가들은 거듭 절망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 걸까. 좀 더 새롭고 나아질 삶에의 기대와 희망이 부질없다, 라는 의미가 아니고 버거워서 정말이지 숨통을 틀어막는 '우리들만의 현실' - '그들만의 현실'이 아닌 - 때문에 그저 멍청하게 앉아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