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 소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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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중고등학생들도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시대라 그들은 세상에서 태어날 때부터 핸드폰이라는게 존재했던 것으로 알고 지낸다. 삐삐도 없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 불과 10여년 전이었건만 10년만에 정말 강산도 세태도 문화도 바뀌어 버린게 사실이다. 문명의 利器가 없던 그 시절, 정성스레 쓴 편지를 고이접어 우체통에 집어넣고나면 며칠이고 문앞 우체통에서 답장을 기대하던 설레임을 그들은 알 수 있을까? 집으로 행하던 길에서 문득 말을 건네고 싶은 이가 있어 공중전화에 길게 줄을 늘어서서 순서를 기다리던 애틋함을 그들은 알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약속이라는 것이 즉흥적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엔 언제, 어디서라는 약속의 기본조건은 명확하였다. 그리고는 오직 사람에 대한 신뢰만으로 어디선가 약속한 이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들이 흔했지만, 지금은 통화버튼 한번이면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으니 자연히 약속이라는 것을 지키는데 신뢰하고 인내하기보다는 쉽게 약속하고 쉽게 약속을 어기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은 우편도 없고, 전화도 없던 그 시절에 서로의 학문에 대해, 서로의 안녕에 대해, 삶에 대해  몇 달씩 걸리는 인편을 통한 서신으로 진솔한 얘기들을 나눈다. 더우기 놀라운 사실은 고봉이 과거에 나서던 때에 이미 퇴계는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을만큼 나이와 경륜에서 너무나 큰 차이를 가진 높은 학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들사이의 오간 서신은 서로에 대한 존경과 애틋함으로 가득하다.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라는 책은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한문편지를 정감있고 옛스럽게, 그리고 아주 매끄럽게 한글로 옮겨두어 누구든 쉽게 퇴계와 고봉 사이에 나누었던 애틋하고 때로는 치열한 학문적 논쟁의 서신을 이해하는데 좋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었다. 이것이 이 책의 첫번째 매력이었던 것 같다. 두번째는 그들의 서신내용을 통해 사단칠정론을 비롯한 퇴계와 고봉의 학문적 집념과 사상을 가볍게 접근하는데 더할 나위없이 좋은 책이었다는 점이다. 퇴계가 위대한 유학자임을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정작 퇴계의 사상과 이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인 독자들에게도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본다. 그러나 이런 매력보다도 더한 이 책을 읽는 재미는 오늘날처럼 쉽고 빠르게 전달되는 갖가지 글에서 느껴지지 못하는 진솔한 서신에서 나오는 글의 진중함과 서신 속에서 느껴지는 깊은 禮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편지 하나하나마다 편안함이 느껴지는 이유가 서로에 대한 禮에 있다고 생각된다.

“병든 몸이라 문 밖을 나가지 못하다가, 덕분에 어제는 마침내 뵙고 싶었던 바람을 이룰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감사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아울러 깊어져, 비할 데가 없습니다. (중략) 덕을 높이고 생각을 깊게 하여 학업을 추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덕을 높이고 생각을 깊게’ 중)

퇴계가 고봉에게 보낸 이 정중한 편지를 시작으로, 퇴계가 세상을 뜰 때까지 13년간 지속된 "영혼의 교류"는 서로에 대한 한 치의 흐트럼 없이 계속 되었다. 

시대가 흐른 지금 편하고 즉흥적인 세태에, 위대한 두 학자의 가볍지 않은 글이 주는 묵직함이 온전히 우리말로 되살아 난 것은 너무도 기쁜 일인 것 같다. 더운 여름날 계곡물에 발 담그고 탁족을 즐기며 그들의 편지 삼매경에 빠져보는 것도 좋은 피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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