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이 가는대로, 내 눈이 가는대로 셔터를 눌렀다.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지나고 보면 흐름이라는게 있다.
아무 생각없이 찍은 장면이라 느낄지라도 펼쳐놓고 보면 생각지 못한 흐름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인화지에 현상된 한장한장의 사진 속 사람들에게서 나는 나를 본다.
쫒아다닌 흔적, 순간을 위한 기다림, 우연한 마주침, 그리고 이 생각 저 생각.
나도 모르게, 어쩔 수 없이 오랜 시간에 틀 잡힌 나의 모습일 것이다.
1년이 훌쩍 지난 축축한 어느날 꺼내 본 무덥던 늦여름 Berlin에서 나는 사람을 보았다.
물론 흥겹지도 멋있지도 않은 그녀의 연주에 몇 유로를 놓았다. 카메라를 외면하지 않았으니까.
불과 몇 십 년 전. 여기 브란덴부르크 문 앞은 폐허가 된 전쟁, 분단의 상징이었다. 맑게 떠들고 웃는 저 친구들의 표정이 세월을 잊게 한다.
때로 기다림은 지루하다. 손님을 태우고 신나게 달리며 장사할 생각을 뜨거운 햇살 탓에 잊어버렸는지도. 한 장 찍어보리라 기다리던 나도 지루해졌다.
Berlin Hauptbahnhof 광장.
일행을 기다리는 우리네 할머니의 모습과 만사가 지루한 우리네 아이들과 다를 것 없었다. 멀리서 카메라를 들이대니 째려 보았다.
차분한 머리칼과 얌전한 차림새에 어울리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주변에 갖춰진 모든 게 편안해 보였다. 창을 통해 비친 햇살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