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병이 곧 들이닥친다는데, 너는 왜 강가에 있느냐?
- 갈 곳이 없고, 갈 수도 없기로...
- 여기서 부지할 수 있겠느냐?
- 얼음낚시를 오래 해서 얼음길을 잘 아는지라...
- 물고기를 잡아서 겨울을 나려느냐?
- 청병이 오면 얼음 위로 길을 잡아 강을 건네주고 곡식이라도 얻어볼까해서...
...이것이 백성인가. 이것이 백성인가...아침에 대청마루에서 남쪽 선영을 향해 울던 울음보다도 더 깊은 울음이 김상헌의 몸속에서 끓어올랐다. 김상헌은 뜨거운 미숫가루를 넘겨서 울음을 눌렀다. 이것이 백성이로구나. 이것이 백성일 수 있구나. 김상헌은 허리에 찬 환도 쪽으로 가려는 팔을 달래고 말렸다. 김상헌은 울음 대신 물었다.
- 너는 어제 어가를 얼음 위로 인도하지 않았느냐?
- 어가는 강을 건너갔고 소인은 다시 빈 마을로 돌아왔는데, 좁쌀 한 줌 받지 못했소이다.
(중략)
김상헌은 돌어서는 사공을 불러 세웠다. 김상헌이 다시 물었다.
- 나를 따르지 않겠느냐? 궁색해도 너를 거두어주마.
나는 예조판서다... 새어 나오려는 말을 겨우 감추었다. 사공은 다시 대답했다.
- 아니오. 소인은 살던 자리로 돌아가겠소.
- 가야 하겠구나. 그럼 가거라.
- 서문으로 들어가십시오. 그 쪽이 빠릅니다. 그럼...
사공은 돌아서서 얼음 위로 나아갔다. 김상헌은 환도를 뽑아들고 선착장으로 뛰어내렸다. 인기척을 느낀 사공이 뒤를 돌아보았다. 김상헌의 칼이 사공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사공은 얼음 위에 쓰러졌다. 쓰러질 때 사공은 몸은 가볍고 온순했다. 사공은 풀이 시들듯 천천히 쓰러졌다.-43p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