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구판절판


- 청병이 곧 들이닥친다는데, 너는 왜 강가에 있느냐?
- 갈 곳이 없고, 갈 수도 없기로...
- 여기서 부지할 수 있겠느냐?
- 얼음낚시를 오래 해서 얼음길을 잘 아는지라...
- 물고기를 잡아서 겨울을 나려느냐?
- 청병이 오면 얼음 위로 길을 잡아 강을 건네주고 곡식이라도 얻어볼까해서...

...이것이 백성인가. 이것이 백성인가...아침에 대청마루에서 남쪽 선영을 향해 울던 울음보다도 더 깊은 울음이 김상헌의 몸속에서 끓어올랐다. 김상헌은 뜨거운 미숫가루를 넘겨서 울음을 눌렀다. 이것이 백성이로구나. 이것이 백성일 수 있구나. 김상헌은 허리에 찬 환도 쪽으로 가려는 팔을 달래고 말렸다. 김상헌은 울음 대신 물었다.

- 너는 어제 어가를 얼음 위로 인도하지 않았느냐?
- 어가는 강을 건너갔고 소인은 다시 빈 마을로 돌아왔는데, 좁쌀 한 줌 받지 못했소이다.

(중략)

김상헌은 돌어서는 사공을 불러 세웠다. 김상헌이 다시 물었다.
- 나를 따르지 않겠느냐? 궁색해도 너를 거두어주마.
나는 예조판서다... 새어 나오려는 말을 겨우 감추었다. 사공은 다시 대답했다.
- 아니오. 소인은 살던 자리로 돌아가겠소.
- 가야 하겠구나. 그럼 가거라.
- 서문으로 들어가십시오. 그 쪽이 빠릅니다. 그럼...

사공은 돌아서서 얼음 위로 나아갔다. 김상헌은 환도를 뽑아들고 선착장으로 뛰어내렸다. 인기척을 느낀 사공이 뒤를 돌아보았다. 김상헌의 칼이 사공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사공은 얼음 위에 쓰러졌다. 쓰러질 때 사공은 몸은 가볍고 온순했다. 사공은 풀이 시들듯 천천히 쓰러졌다.-43p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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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04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상헌이 사공을 단칼에 내리치던 장면이군요. 가장 서슬 퍼른 묘사였어요.
님, 새로 단장한 서재가 아기자기한 레이스 식탁보처럼 예뻐요.^^

dalpan 2007-06-05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런가요? 전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게 싫어 아직도 구닥다리 서재를 쓰고있어서 말씀하고나서야 식탁보를 봤답니다. 하하하.. 날잡아서 새 서재에 적응해야겠네요. 배혜경님의 노란 봄꽃무더기(빅 피쉬)는 항상 눈에 밟혀 아름답단 말씀을 드리려 했었습니다. 저 장면도 참 무참한 장면이었지요? 퍽퍽! 그래도 씨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