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총
경주에 오는 사람들이 꼭 들리는 곳 중 하나가 대능원이다. 천마총이 그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데,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대능원은 하나의 고분공원으로 충분히 들려 볼 만한 곳이다. 잘 깔려진 포석, 잘 자란 잔디, 크고 낮은 고분들...
대능원엔 모두 23기의 무덤이 있다. 예전에는 훨씬 많았을 것이다. 대능원을 만들기 위해 황남동 일대를 정비하던 70년대 100기가 넘는 무덤의 흔적이 발견되어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던가. 그런데도 주인을 알 수 있는 무덤은 하나도 없다. 미추왕릉은 이 무덤이 미추왕릉이 아닐까 짐작한 후손들에 의해 미추왕릉으로 지정된 것이고, 발굴된 천마총이나 황남대총 역시 무덤 주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발굴 중 지석이 발결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노서동 고분군엔 일제시대때 붙여졌다는 번호를 단 비석이라도 세워놓았는데, 대능원엔 그것마저도 없다. 팻말이 붙은 건 미추왕릉과 천마총 뿐이다. 번호를 알더라도 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런데, 대능원에 발굴이 된 고분이 하나 더 있다. '검총'이라고 붙여진 그 무덤은 일제시대 때 발굴이 되었다. 천마총과 황남대총, 호우총을 제외한 신라 고분은 모두 일제시대때 발굴되었다. 그런데 일제 시대때 발굴된 무덤들은 모두 노서동과 노동동에 있다. 황남동에 있는 무덤들이 훨씬 규모가 큰데도 불구하고 황남동의 고분이 발굴되지 않은 건 검총의 역할이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검총은 꽤 큰 규모의 고분인데도 불구하고 발굴 유물은 정말 빈약했다. 철로 만든 검과 창 등이 발굴되었을 뿐이니까. 검총에서 화려하고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더라면, 일본인들은 황남동의 다른 고분들을 더 파헤쳤을 것이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유물들을 빼돌리지 않았을까. 연구를 한다는 목적으로... 그런 의미에서 그때 발굴된 고분이 검총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검총이 어디 있냐고? 대능원 정문에서 천마총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다보면 두 갈래 길이 두 번 나온다. 두 번째 나오는 갈래길 가운데 무덤 자락에 대나무가 자라고 있는 고분이 하나 있는데, 그 고분이 검총이다. 팻말도 없고,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한번씩 갈 때마다 이야기를 해준다. 이 무덤 때문에 황남동 일대에 자리잡은 고분들이 무사했다고... 그래서 70년대 떠들썩했던 천마총과 황남대총 발굴이 있을 수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