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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 세 모금 ㅣ 창비아동문고 226
최진영 지음, 김용철 그림 / 창비 / 2006년 7월
평점 :
엄마가 최근에 재미있는 책 한 권 읽었는데, 너희도 읽어볼래? 이 책이야, 최진영이 쓴 <샘물 세 모금>. 준우라는 아이가 도깨비 돌쇠와 왕할머니에게 줄 샘물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란다. 응? 또 도깨비 이야기라구?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이상하게 마음에 와 닿는 게 많더라니, 도깨비 이야기라서 그랬나 보다.
왜 도깨비 이야기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딱히 대답해 줄 말은 없어. 그냥 어려서부터 도깨비 이야기 듣는 걸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할 뿐이란다. 도깨비 이야기를 다룬 책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것도 아마 그래서일거야. 좋아하는 걸 무엇으로 말리겠니 ^^ 김열규라는 할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어쩌면 엄마 마음 속 깊은 곳에 도깨비가 터를 잡고 살아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먼 옛날부터 한국인의 마음 속에 터잡고 살아온 도깨비가 엄마 마음 속도 터를 잡아 나 좀 바라봐 하고 옆구리 찌르고 있는 건지도 몰라.
사실 너희들도 도깨비 이야기 듣는 거 좋아하잖아. 우리가 상상 속에서든 책 속에서든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존재들 중에 도깨비만큼 무궁무진한 이야기거리를 가지고 있는 존재도 드물거든. 뚝딱 두드리기만 해도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다른 이야기도 많이 알려져 있단다. 밤새도록 씨름하는 도깨비 이야기나 쓰기만 하면 모습이 사라지는 도깨비 감투 이야기는 두말할 것도 없고, 하룻밤새에 다리를 놓는 놀랄 만한 능력을 보이는가 하면, 땅을 떼어가겠다며 밤새 말뚝에 달아놓은 밧줄을 잡아당기는 어수룩함을 보이는 것도 도깨비란다. 신이한 재주를 보이는가 하면 사람 혼을 쏙 빼놓는 장난을 일삼기도 하는 도깨비들, 도깨비가 보여주는 그 다양성이 엄마를 사로잡는 건지도 몰라.
그런데 요즘은 도깨비 모습이 점점 고정되어 가는 느낌이야. 우리 옛이야기나 전설 속에서 보이는 도깨비들은 딱히 이런 모습이다 라고 고정된 모습이 없었어. 그저 도깨비를 보는 사람 시선에 따라 구척장신이 되기도 했고 땅강아지처럼 작은 모습이 되기도 했단다. 기껏해야 노린내가 나거나 피부가 까칠하거나 패랭이를 쓰고 있거나 그런 정도였지.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도깨비들은 방망이를 들고 있고 머리에 뿔이 나 있는 모습으로 바뀌었지. 일본 도깨비 오니의 영향을 받아서라고 해. 딱히 모습이 정해지지 않은 우리들의 도깨비가 내심 그리웠는데, 이 책을 만난거야. 뿔 달리지도 않고 방망이를 들고 다니지도 않는 도깨비. 와, 오니의 모습을 하지 않은 도깨비가 나왔구나. 정말 반갑다.
도깨비에 대한 색다른 해석도 마음에 들었어. 사람이 오래 사용하던 물건에 정이 깃들어 도깨비가 나타나는 게 아니고, 사람이 오래 사용하던 물건을 좋아해 도깨비가 그 속에 깃들여 사는 거라는 해석. 아주 오래전부터 도깨비와 사람이 함께 살아왔으니 이 정도 색다른 해석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어. 돌쇠가 활동하는 시간대가 낮이라는 점이야. 도깨비는 어스름이 질 무렵 나타나 어스름이 사라져갈 무렵 사라지는 존재거든. 어떻게 보면 도깨비는 경계에 선 존재라고 볼 수 있어. 낮과 밤, 이성과 감성, 빛과 어둠, 양과 음 등등. 이 경계에 서서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혼란을 주기도 하고, 심판을 내리기도 하는 존재가 도깨비란다. 엄마는 도깨비가 서 있는 그 자리가 어쩌면 도깨비의 정체성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그래서 경계가 드러나지 않는 돌쇠가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래도 이만한 도깨비를 만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황선미의 <샘마을 몽당깨비> 이후 처음인 것도 같으니 정말 오랜만이지? 엄마 말이 너무 길었네. 이 책엔 도깨비만 나오는 게 아냐. 구미호도 나오고 이무기도 나와. 어때? 재미있을 것 같지? 여기 둘테니까 한번 읽어봐. 돌쇠가 웃는 웃음소리가 어떤 소리와 비슷할지 찾아보기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