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탕카멘왕의 무덤이 발굴되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투탕카멘 왕의 그 화려한 유물들보다 '파라오의 저주'라고 알려진 이야기일 것이다. 누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었단다, 갑자기 교통사고 죽었단다 하는 이야기들은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이야기는 소리소문없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사실 누구보다 파라오의 저주에 걸려 일찍 목숨을 잃어야 했던 하워드 카터가 60이 넘도록 정정했던 걸 보면, 파라오의 저주는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몇번 연속적으로 생기다 보니, 그런 소문이 퍼져나간 것이겠지.

일제시대때 일본 사람들이 한국의 고분을 발굴하면서 저주에 걸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대신 고분 발굴과 관련해 발굴단원들이 무덤 주인의 노여움을 타는구나 하고 생각한 이야기는 있다. 황남대총과 천마총을 발굴할 때 일어났던 일이다.

천마총을 발굴할 때 경주 지역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경주 시내엔 왕의 무덤을 파헤쳐서 그렇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발굴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는 건의도 빗발쳤다나. 그런데, 매장부에서 금관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면서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는 발굴단원들이 금관을 수습해서 상자 속에 넣었을 때 거짓말처럼 뚝 그쳤단다.

황남대총을 발굴할 때 있었던 일. 황남대총에서는 북분에서 금관이 나왔다. 금관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뒤 수습해서 상자에 넣을 때까지 나흘이 걸렸는데,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늘이 붉었다고 한다. 마치 노을지는 저녁 하늘처럼... 마찬가지로 금관을 수습해서 상자에 넣었을 때 평상시의 하늘로 돌아왔다나.

발굴단원들은 이 두 가지 사건을 유택을 훼손당한 영혼이 노여움을 표시한 것이라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파라오의 저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사건이지만, 유택을 훼손당한 노여움을 하늘의 조화로 풀었으니 우리 선조들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황남대총이 어디 있냐고? 천마총 앞에 보면 작은 연못이 하나 있다. 그 연못을 등지고 서서 왼쪽을 바라보면 무덤 두개가 붙어 마치 낙타등처럼 보이는 능선을 지닌 무덤이 있다. 그 무덤이 황남대총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무덤 중 하나로 알고 있다. 높이가 23M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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