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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 워치 - 상 밀리언셀러 클럽 55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지음, 이수연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데이 워치>를 받아들었을 때 내심 걱정을 했다. 첫 번째 시리즈인 <나이트 워치>를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데이 워치> 자체만으로 이야기가 가능해 읽기엔 별 무리가 없었지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어떻게든 구해서 읽어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중간 중간에 <나이트 워치>의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이트 워치>를 읽었더라면 이 작품을 훨씬 풍요롭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세르게이 루키야넨코가 창조한 세계에 따르면 세상엔 사람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다른 존재들이 있다. 태고부터 빛과 어둠으로 나뉘어졌던 존재들. 대협약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들은 비밀스런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 전쟁을 감당하고 있는 이들이 빛의 세력인 야간경비대와 어둠의 세력인 주간경비대이다. 책 속에서 정보를 얻기 전까진 다소 의아했다. 주간경비대와 야간경비대라는 명칭이 잘못 붙여진 게 아닌가 싶었다. 빛의 세력이 주간경비대이고, 어둠의 세력이 야간경비대여야 하는 게 아닌가 했는데, 상대편이 주로 활동하는 시간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빛은 야간경비대, 어둠은 주간경비대라 칭해진다나. <나이트 워치>에는 어디쯤에 정보를 배치했는지 모르겠지만, <데이 워치>에서 정보를 얻는 시점은 뒤로 쳐졌다는 느낌이다. 작가가 그다지 친절하지 않군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이 책에선 세 가지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마녀 알리사와 빛의 기사 이고르의 만남을 다룬 ‘외부인 출입허가’, 거울 비탈리 로고자의 이야기를 다룬 ‘다른 존재들의 이방인’, 프라하 재판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또 다른 힘’이 그것이다. 세 이야기 모두 나름대로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게 와 닿았다. 처음 책 분량을 보고 읽어나갈 일을 고민했던 거에 비해 비교적 빨리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건 알리사가 보여주는 독특한 매력 때문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인물들의 심리상태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삽입한 노래들이 오히려 작품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체스에 대해 지식이 그다지 없는 개인적인 한계 때문에 비교적 흥미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기기가 꽤 힘들었다. 대신 ‘니벨룽겐의 반지’를 독특하게 해석한 ‘파프니르’ 이야기는 재미있게 읽었다.

책은, 전체적으로 색다른 해석들이 많아서 신선했다. 유럽의 옛이야기나 동화, 전설 등에서 볼 수 있었던 늑대인간이나 흡혈귀, 변신하는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도 색달랐고, 그들이 딛고 있는 땅이 다른 세계가 아닌 현대의 도시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또한 빛과 어둠으로 나누기는 했지만 빛의 세력에 속한 사람이 한없이 선량한 것도 아니고, 어둠의 세력에 속한 사람이 한없이 악한 것도 아님을 보여주는 작가의 시선에도 한 표를 주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력적인 게 있으니 바로 어스름이다. 인간은 알아보지 못하는 다른 존재들만의 공간 어스름을 작가가 참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이 시리즈를 영화로 만들었다는데 도대체 어스름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하다. 어스름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했다면 한낱 괴기스런 영화에 불과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덕분에 읽어야 될 목록이 더 늘었다. 야간경비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 <나이트워치>가 궁금해지기 시작한 탓이다. ‘운명의 분필’이라니. 그건 또 무슨 이야기인가. 짐작이야 가지만, 실제로 읽는 것하고 같을 수나 있을까. 2008년에 출판될 <더스크 워치>도 궁금하다. 아마도 어스름이 주인공이 되지 싶은데, 그 이야기는 또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하다. <나이트 워치>를 읽고 <데이 워치>를 기다린 독자들이 많다는데, <더스크 워치>도 그렇지 않을까. 그 대열에 나도 들어서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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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1 조반니노 과레스끼 선집 2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이승수 옮김 / 서교출판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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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읽은 게 고등학생 무렵이니 벌써 20년이 넘었다. 학교 도서실에서 이 책을 빌려 읽은 뒤 한 권 두 권 사모으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땐 5권까지 번역이 되어 나왔는데, 툭하면 책을 잡고 앉아 킬킬거렸던 것 같다. 동생들에게도 아주 사랑받던 책이었는데 지금은 행방이 묘연하다. 몇번 이사를 하면서 없어진 것인지, 누군가 꼬불쳐 가서 숨겨놓았는지...

서점에서 서가에 꽂혀 있는 이 책을 보는 순간 마음이 참 묘했다. 아주 오랜만에 지기를 만난 듯한 기분도 들고, 학생이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잊고 있었던 소중한 기억이 되살아난 기분도 들고. 어쨌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책을 구입했다. 나도 읽고, 큰애에게도 읽어보라 할 생각으로.

오랜만에 읽는 돈 까밀로와 빼뽀네는 여전했다. 전혀 신부님 같지 않은 신부님 돈 까밀로와 단순무식한 사회주의자 빼뽀네, 여전히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가끔은 돈 까밀로의 폭력(?)을 눈감아주기도 하는 예수님, 카톨릭 신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뒤섞인 마을 사람들. 뽀 강 주변의 자그마한 마을에서 이들이 벌이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맺혀진다. 194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삼기는 했지만, 이야기의 밑바닥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깔려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한걸음 뒤로 물러설 줄 아는 이들의 이야기.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게 즐거운지도 모르겠다.

한 권을 금방 다 읽었다. 10권을 다 구입해서 한번에 읽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조금 아껴둘 생각이다. 한 권씩 구입해서 조금 감질나게 읽어나가야지. 여운이 좀더 오래 남아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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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모으는 소녀
믹 잭슨 지음, 문은실 옮김, 데이비드 로버츠 그림 / 생각의나무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한 시간정도 고속버스를 타고 시외로 나갈 일이 생겼다. 버스 속에서 읽을 만한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이 책을 봤다. 아이들 학교에 넣을 책을 찾으러 알라딘에 드나들 때 오른쪽 한켠에 소개되어 있던 책. 알라딘에서 봤다는 그 친근감에 책에 대한 아무 지식없이 대출을 받았다. 버스 타고 오갈 때 읽어볼 만큼은 되겠지 생각하면서. 

그런데, 이 책, 물건이다. 독특하고 탄탄한 단편들은 첫눈에 날 사로잡았다. 책을 덮고 버스에서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근래 들어 이만큼 흠뻑 빠져서 책을 본 기억이 있었던가. 책에 대한 호평은 어쩌면 책에 대한 기대가 없어서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본콜렉터'를 연상시키는 제목도 제목이지만 음울하고 심드렁한 표정의 표지 속 사람들은 쉽게 사람 손을 끌어당기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특하고 기괴하고 어딘가 냉소적인 이 이야기들을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쉽게 떼어내질 못하게 된다. 야 이 사람, 정말 독특하게 글을 쓰네, 이렇게 이야기를 끌어갈 수도 있구나, 감탄을 하게 된다고 할까.

믹 잭슨은 왜 제목을 'Ten Sorry Tales'라고 지었을까? 삶이란 게 몽환적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유쾌하지만은 않아서 그랬을까? 사실 어린 소녀에서부터 삶의 황혼을 앞두고 있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유쾌하고 행복하게 끝나는 이야기가 없다. 책을 읽는 내내 한편으론 안쓰러운 마음을 느낄 만큼 작중인물들은 다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에 감탄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독특하고 기괴한 이야기들을 즐길 수 있어서.  

데이비드 로버츠의 그림이 정말 독특하다. 각 이야기들의 특징을 단번에 잡아내 그려낸 그림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이 책에 몰입할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그의 그림이 주는 느낌도 강렬하다. 독특한 이야기와 독특한 그림이 잘 어울려 만들어낸 수작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레피닥터'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 친정아버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지하실의 보트'나 우리 아이들이 생각나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도 나름 괜찮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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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 세계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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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일제 식민지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있다.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일제의 망령들은 식민지를 경험하지 못한 후세들에게도 일본에 대한 곱지 않은 감정들을 안겨준다. 그들의 물건을 사용하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말이다. 피해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가해자였던 일본인들에게 그 시대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시대를 이끌어갔던 사람들보다는 시대에 휩쓸려 지나왔던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식민지 사람들과 그들이 받은 수모와 고난에 대해 일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끔 궁금했다.

짧은 독서탓에 그때의 이야기를 담은 일본 문학작품을 읽지는 못했다. 일본 작가의 이야기는 읽지 못했지만 일본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던 독일 작가가 쓴 소설을 읽었다. '나치'라는 시대적 급류에 휩쓸려 그 당시를 지나온 독일인들은 '나치'와 그 시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베른하르트 술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우린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독일인들을 만날 수 있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궁극적으로는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이다. 열 다섯 살 소년 미하엘이 서른 여섯 살 여인 한나를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는 1부, 이제는 법대생이 된 소년이 나치 전범을 다루는 재판정에서 헤어진 옛 여인을 만나게 되는 2부, 교도소 출소를 앞두고 이제는 할머니가 된 옛 여인과 중년의 신사가 된 소년이 만나는 3부의 이야기로 구성된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스무살이 넘는 두 사람의 나이차가 아니다.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건 한나가 끝까지 숨기고 싶어했던 '문맹'과 그녀가 젊은 시절 몸담았던 '나치'의 전적, 바로 그것이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문맹'이라는 개인적 한계가 한 여인에게 개인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차분하게 그려냄으로써 역시 시대적 '문맹'이었던 독일인들이 범했던 사회적, 역사적 한계들을 고찰하고 있다. 문맹을 숨기기 위해 '나치'를 선택했던 한나는 그녀가 사랑했던 소년에게 그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아 나치 전범으로서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다.

한나가 개인적 한계로 택했던 시대에 대한 책임을 교도소 생활로 갚고 있었다면, 미하엘은 그녀에게 책을 읽어보내는 일로 그 시대에 대한 책임을 갚는다. 그의 일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만큼 사랑했던 여인이 나치였음을 알았을 때 미하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시대적 급류에 휩쓸려 '나치'로 살아갔지만 그 급류에서 헤어나와 실상을 파악한 독일인들의 심정이 미하엘과 같지 않았을까. 독일인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는 '나치'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 미하엘은 그녀를 외면하고 그녀 앞에 나서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책을 읽은 테이프를 그녀에게 보낼 뿐. 책을 테이프에 녹음하고 그녀에게 보냄으로써 미하엘은 어쩔 수없이 나치가 되었던 여인을 그 나름의 방식으로 보듬어 안는다.

한나와 미하엘의 이야기를 통해 비록 그들이 선택했지만 역시 시대의 피해자가 되고 만 독일인들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었다. 가해자 신분으로서 그들에게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고 보상을 하지만, 시대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대다수의 독일인들 역시 그 시대의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렇게나마 그때의 그들을 보듬어 안을 수밖에 없음을.

책을 덮고도 한참동안 미하엘과 한나의 사랑에 안타까워했다. 그들 사이에 끼어든 역사로 인해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표현할 수도 없었던 많은 시간들이 가슴아팠고, 한나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미하엘이 홀로 남게 된 사실이 마음에 걸리기도 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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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폴 -상
로버트 실버버그 외 지음 / 작가정신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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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아시모프를 처음 만난 건 <신화 속으로 떠나는 언어여행>을 통해서였다. 과학자라는 전혀 이질적인 분야의 전문가이면서도 신화와 언어의 상관성을 파헤쳐가는 그의 저술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기회가 되면 국내에 소개된 그의 책들을 찾아 읽어보리라던 다짐이 유야무야될 무렵 이 책 <나이트 폴>이 눈에 띄었다. 아이작 아시모프라는 이름은 보고 있던 책도 내팽개칠 만큼 유혹적이었다.

이 책은 아이작 아시모프가 1941년에 발표된 단편을 로버트 실버버그와 함께 장편으로 재집필한 것이라고 한다. 지구와 달리 6개의 태양이 번갈아 떠오르기 때문에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 행성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통해 아이작 아시모프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익숙한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한 천문학자가 행성의 궤도가 만유인력 법칙과 다른 궤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동시에 한 고고학자는 한 유적지에서 약 2천년의 주기로 한 문명이 소멸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천문학자와 고고학자의 노력으로 약 2천년의 주기로 행성에 일식이 찾아오고 일식이 진행되는 시간 동안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하지만 세상엔 이미 '불의 사도'라는 종교단체에 의해 어둠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니 회개하고 신의 품에 안겨야 된다는 메세지가 나돌고 있다. 때문에 과학자들의 주장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질 않는다.

소설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됐다. 2천년에 한번 일어나는 일식을 제외하곤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 행성의 사람들은 어둠이 다가오자 절망에 빠진다. '빛'을 찾아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 밤하늘에 가득찬 '별'을 보면서 자기들의 행성만이 유일한 우주가 아니라는 것에 절망한다. 인간들의 찬란한 문명은 하루 밤 사이에 무너져 내리고 만다. 익숙한 것에서만 존재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의 도래에 그만 무릎꿇고 마는 것이다.

과학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이다. 종교가 보여주는 집단적 광기, 법규가 사라졌을 때 인간에게 나타나는 난폭함, 아픔을 딛고 치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인간의 사랑...

책을 덮으면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다른 작품들뿐 아니라 다른 소설가의 과학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짜여진 과학 소설이 보여주는 재미를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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