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 블리셋, <Q>, 새물결 2006

p.651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건 이겁니다. 아시겠어요? 멈춰 설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건 옳은 일이 아니예요.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되지요. 그러려면 우리는 아주 오래전에 다른 선택을 했어야만 해요. 지금은 너무 늦었어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인생이 어떻게 끝날지를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 그 오만하고 변덕스러운 호기심 때문이지요. 문제는 그것,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그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돈만이 아니지요. 희망이나 전쟁... 혹은 여자들만은 아니예요. 다른 무엇인가가 있어요. 당신도 저도 제대로 묘사할 수는 없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지금도, 세상의 일들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마음 속 어느 곳엔가 결말을 알고자 하는 바람이 똬리를 틀고 있어요. 다시 한 번,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은 바람이지요. 이미 모든 것을 다 잃고 난 뒤라면 더이상 잃을 건 아무것도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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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실천문학사 1999


p.321

책읽기는 우울한 나의 침묵에 잘 어울렸다. 나는 말을 잘 안 하는 대신에 그 침묵을 책읽기로 채웠다. 책을 읽고 나면, 좋은 말상대를 만난 한참 다변스럽게 얘기를 주고받은 것 같으 흐뭇함이 느껴졌다. 책들은 나에게 까닭 없는 슬픔, 이른바 ‘고독’이란 걸 가르쳐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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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항해지도>, 시공사 2003

p.575
한 여자를 항해할 수 있는 해도는 그 누구도 절대 그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탕헤르를 결코 소유하지 못한 채 그녀는 그의 삶에서 빠져나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p.617-618
갑자기 언젠가는 마지막 순간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그녀가 날 버리든지 우리가 죽든지 내가 늙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녀가 내 삶에서 떠나든지 내가 그녀의 삶에서 떠날 것이다. 언젠가는 나는 추억할 이미지밖에서 지니지 않게 될 것이고, 그러고는 그 이미지를 되살릴 삶조차 지니지 않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지워질 것이다. 그 순간은 바로 오늘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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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리시아 하이스미스, <태양은 가득히>, 동서문화사 2003

p.369-370
[작가후기] 나는 생각만 나면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타입은 아니야.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리서치를 충분히 한 뒤에, 반년 가까이 시간을 들여서 구성을 짜지. 플롯이 모두 완성되면 그제서야 쓰기 시작해. 그렇지만 쓰다보면 도중에 줄거리가 변하기도 하지. 그것은 내 기분에 충실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그 다음에는 노트에 정리한 것을 타이프로 치지. 그리고 손을 보는 거야. 적어도 두세번은 고치게 되더군.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본을 넣어서 타이프를 치고, 복사본을 출판사에 보내지. 만년필을 사용하는 것은 노트에 적을 때와 사인할 때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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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문학과 지성사 1984

p.114
구보씨는 문득 자기가 문화깡패 같은, 문화상이군인 같은, 문화문둥이 같다고 생각했다.

p.131
이렇게 사람이 모인 장소에 올 때마다 어김없는, 더도 덜도 없는 얼굴을 꾸미는 데 여간 애을 먹는 것이다. 나는 나고 당신들은 당신들이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의 적인 것은 아니다. 서로 존중하기로 하자-이런 내용의 의사를 온 몸으로 풍겨야 한다.

p.224
해방 이후 한국 사람들은 야간통행 제한 밑에서 살아왔는데 크리스마스가 한국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효과를 가지는 것인 이 통행제한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 날만은 야간 통행 제한이 걷힌다. 한해동안 하루만은 밤시간에 나다닐 수 있다는 것은 큰 해방감은 준다. 그래서 이 날은 실상은 서양풍속으로 치면 카니발이 된다. 크리스마스란 이름의 카니발이다. 이 날에는 한국 사회의 모든 심층사회심리가 한 덩어리가 되어 소용돌이친다. 막연한 해방감-이것이 정치적 아나키즘이다. 젊은 사람들의 성적 해방감-이것은 섹스의 아나키즘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의 대목 보려는 마음-이것은 상업적 아니키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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