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물만두 > 헨리 다거 (Henry Darger)를 언급한 작품들

 일찍이 프랑스의 화가 장 뒤뷔페(1901-1985)가 사람들의 ‘광기’에 주목했다. 그는 “광기를 품지 않은 예술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니체의 말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머리 속에서 미친 듯이 춤추는 예술’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면서 똑바로 나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 광기는 확실한 도움이 된다. 원래 광기는 고삐를 끊고 기억을 말소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광기는 외부의 영향과 지배로부터 몸을 지키는 여러 방법을 알려 준다. 이러한 광기의 도가니 속에서 지적 예술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운 강인한 작품이 태어난다”고 했다.
그리하여 뒤뷔페는 전통이나 유행하는 양식에서 자유로우며 모든 사회적 타협을 초월하고 칭찬이나 미술적 교양이 주는 혜택에 무관심한, 정신적 광기와 자폐적인 내적 욕구에서 발생한 예술을 동경했다. 그가 찾던 예술을 우연히 발견한 곳은 스위스의 한 정신 병원이었다. 정신 질환자들의 작품에는 타오르는 듯한 정열의 고양, 끝없는 창의성, 강렬한 도취감, 모든 것들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같은, 인간이 예술에서 바라는 모든 것이 어떤 예술가의 작품에서보다도 넘쳐흘렀다.
이들의 작품은 사회로부터의 금전적인 보상이나 칭찬,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래서 무한히 솔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것이야말로 한 인간의 순수하고 자발적인 내적 충동의 산물이다.
이 책은 이러한 ‘아웃사이더 아트’를 담고 있다.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는 가공되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예술이라는 뜻으로, 즉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이 미술 제도 바깥에서 창작을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아웃사이더 아트는 소위 훌륭한 예술 작품들, 색채와 형태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 다수의 사람들이 ‘멋지다’라고 동의하는 작품들에 익숙해 있는 시각에서는 다소 생소한 작품들이다. 어쩌면 눈살이 찌푸려지고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릴 수도 있지만 강한 열정 속에서 이들의 참신성, 순수함과 솔직함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마다 가슴속 한켠에는 환상의 자리가 있다. 그 ‘환상’이야말로 꽉 막힌 듯 느껴지는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숨은 힘인지도 모른다. 니체에 따르면, 환상은 현존재(자)를 절망과 허무(vide)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다. 환상을 “속임수이자 오류이며 동시에 신비한 작용”이라 특징지으면서도 단순한 착각과 구별하려는 것은, 이처럼 환상이 우리 욕망(desire)의 한 부분(몫)이자 이를 만족시키는 수단이기도 한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환상은 미혹에 사로잡힌 생각이 아닌 허깨비 같은 이미지다. 우리를 환상(幻想)으로 이끄는 데에 환상(幻像)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현실과 교접하는 문화의 이면에 또아리를 튼 환상(幻想)이 허한 글과 휘한 그림으로 토해낸 환상(幻像)의 힘 때문일 것이다. 통상 글과 이미지가 공존할 때 사람들의 시선은 분산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저자는 “상상의 분산, 관념의 확대”라고 해석한다. 일러스트레이션이 가득했던 중세 성경과 불경의 예에서 보듯이, 분산되는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은 천국도 지옥도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와 도상을 통해 독자에게 말을 건다. “자, 이제 당신 마음속의 환상을 펼쳐봐!”라고. 장소도 따로 필요 없고 전기세를 지불할 필요도 청소를 할 필요도 없는 지상(紙上) 박물관. 이곳에서는 총 6개관에 걸쳐 39가지 테마전(展)이 펼쳐진다. 첫번째 관은 ‘상상관’.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잉태되어 현실의 삶에까지 뿌리를 얻게 된 ‘요정’ 이야기부터 깨달음으로 가는 신비한 음료 ‘소마’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상상력이 힘을 발휘한 주제들을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저자의 전방위적 지식과 이에 짝을 이루는 도판들로 풀어낸다. 상상관을 지나 예술관에 이르면, 아돌프 뵐플리를 비롯한 이른바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통해 환상 공간이 펼쳐진다. 20세기 아웃사이더 아트의 최고 걸작이자 어쩌면 인류 미술사와 문학사를 다시 쓰게 할지도 모를 총 1만5145쪽 분량의 헨리 다거의 『비현실의 왕국에서』를 소개하며 저자는 자신의 도상상에 대한 생각도 함께 풀어놓는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지역관, 역사관, 종교관, 문화관에서 다채롭게 펼쳐지는 ‘종로’ ‘풍수’ ‘복권’ ‘다방’ ‘샤머니즘’ ‘프리메이슨’ ‘테러’ ‘엽기’ ‘문신’에 이르는 테마전들을 접하다보면, 독자들은 예로부터 바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화사의 이면에 새겨진 ‘비현실적인 낙원에 대한 동경’의 섬세한 무늬들을 마주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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