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학자의 변명 - 수학을 너무도 사랑한 한 고독한 수학자 이야기
고드프레이 해럴드 하디 지음, 정회성 옮김 / 세시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은 수학처럼 답이 없다. 1+1=2.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자명한 진실일까. 인간의 경험과 이성, 판단력과 비판적 안목은 주관적 아집의 결과일 때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확실하고 정확한 사실과 분명한 진실을 요구한다. 수학은 우리에게 적어도 혼란스럽지 않은 답을 요구한다.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는 상황 논리를 들이대지도 않고 개인적 판단에 근거하지도 않는다. 수학은 언제나 인간 이성의 바탕이 되었다.

인문학은 인간을 중심에 놓는 학문이다. 인간이 걸어온 길과 생각한 것들, 만들어 온 제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흔희 문사철(文史哲)로 일컬어지는 것은 폭넓은 지적 탐구의 시작이며 모든 학문의 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자연과학은 정확하고 논리적인 이성을 바탕으로 자연을 중심에 놓고 있다. 왜 그러한가에 대한 질문과 호기심으로 출발해서 그 해답을 구하는 과정이 자연과학이다. 그 중에서도 수학은 가장 기초적인 학문이다. 대부분 명석한 철학자들은 대부분 수학자였거나 수학에 조예가 깊었다.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해석하고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인간은 철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비단 수학자만의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가져야할 태도지만 일상생활에서 수학에 관심을 갖기는 쉽지 않다. 다만 순수 학문 영역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기초학문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없다면 응용학문도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저자는 수학적 영감, 명민한 이론을 배출할 수 있는 나이는 적어도 40대 이전이라고 말한다. 나이 들어서는 더 이상 창조적 수학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말년의 수학자가 느끼는 회한은 모든 사람이 오랫동안 해왔던 일에 대한 감회와 다르지 않으리라. 수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아름다움과 수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한평생 담아왔던 지혜를 반듯하고 정결한 문장으로 담아내고 있어 독자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책이다.

고드프레이 해럴드 하디는 저명한 영국의 수학자이다. 인생 말년에 자신의 수학적 창조력이 쇠퇴함을 고백하는 회고록 형식의 에세이 『어느 수학자의 변명』은 평생 한 우물을 판 학자의 이야기이다. 29개의 짤막한 글로 이루어진 이 책은 한 권의 책이 되기에도 부족하다. 하지만 여느 에세이보다 덜하지 않는 감동과 생각의 여유를 전해준다.

수학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다. 자문자답하듯 수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아름다움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응용수학에 비해 순수수학이야말로 진짜 수학이라고 믿는 수학자의 이야기는 학문적 관점이 아니라 자신의 일과 직업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깊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누구나 한 생을 살아내고 노년을 맞게 된다. 나이 들어서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때를 기억할 것이고 평생 자신이 해왔던 일에 대해 돌아볼 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나름의 생각과 회한이 몰려올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지나간 인생에 대한 아쉬움과 너무 빨리 지나간 버린 시간에 대한 허망함 때문은 아니다. 어떤 일에 대한 자신만의 깊은 성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수학이 지닌 패턴과 아름다움은 예술에 버금간다는 저자의 생각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보여주는 깊은 맛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사람들은 수학의 엄정함을 통해 정밀함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어느 수학자의 짧은 인생이야기이며 수학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회한을 담고 있는 에세이다. 1부터 29까지 번호가 붙어 있는 이 책의 의미를 어떻게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을까. 독자들은 수학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고 그것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1과 1을 더하라는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1에 자신의 생각과 주관적 판단을 덧붙이고 그것도 모자라 엉뚱한 답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라면 어느 수학자의 정밀한 문장과 수학의 단정함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일이다.


110529-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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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작든 크든 누구에게나 서재는 있다. 고등학생의 서재에는 참고서와 문제집만 꽂혀 있겠지만 성인이 되면서 자신이 만들어가는 책꽂이가 바로 자신의 영혼이다. 보르헤스는 천국이 존재한다면 아마 도서관을 닮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서재는 바로 자신이 만든 유토피아의 모습일 게다. 당신은 그리고 나는 어떤 서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궁금해 한다.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타인의 비밀에 대한 호기심은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늘 타인의 서재가 궁금했다. 학창시절에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이 읽고 있는 책이 너무 궁금했다. 아주 가끔 시집을 읽는 여학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은 규정하기 어렵다. 학벌이나 직업으로 평가하기도 어렵고 사르트르식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들어봐도 지식인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그 사람이 가진 지식의 총량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발언의 내용과 실천적 행동의 족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당대의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타인에게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으며 역사 발전의 합리적 원칙을 제시할 수 있어야 지식인이다. 다른 사람에ㅐ게 미래에 대한 전망을 논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의지와 인식의 힘을 가진 사람이 지식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행성:B잎새’의 『지식인의 서재』는 지식인과 서재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지식인의 가장 첫 번째 덕목은 말할 것도 없이 ‘책’이다.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지식을 쌓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 지식인이다. 그러니 서재는 지식인의 가장 근본적인 영혼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열다섯 명의 열혈 독서가들은 『한국의 책쟁이들』의 주인공들과 조금 다른 눈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책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 사람들, 책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들, 서재가 삶의 중심이지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 마디로 행복한 책읽기 종결자들이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만 판단하고 새로운 정보를 거부하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만 지겹도록 반복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화부터 내는 사람, 남에게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 말이다 - 조국의 서재, 19쪽

책을 읽지 않고 늙어가는 수컷 영장류의 비애를 간명하게 전달하는 조국의 서재는 그의 미모만큼 핸섬하다. 규범적 틀을 깨고 나온 그의 생각과 변화의 욕망은 모두 서재에서 출발한다. 세상은 의문으로 가득 찬 사람이 필요하다는 러셀의 말처럼 그의 말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물론 열린 생각과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독서를 만 권 이상 하고 나면, 사실 그렇게 새로운 것들이 많지 않아요. 같은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 게 많지요. 아주 독특하다고 생각되는 책은 10퍼센트나 될까요? 그래서 이제 저는 '아 이것은 정말 새롭다' 하는 것만 골라내어 독서를 하죠" - 이안수의 서재, 81쪽

충격적인 이안수의 말이다. 만권쯤 읽으면 그럴 법도 하다. 나는 태어나서 몇 권이나 읽었나 짐작해 본다. 세상의 모든 책은 고전에 대한 해석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만 만 권의 경지는 아직도 멀고 험한 경지인 것 같이 느껴진다. 양으로 승부할 수는 없으나 질은 양을 담보로 하지 않는가.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조국부터 최재천, 이안수, 김용택, 정병규, 이효재, 배병우, 김진애, 이주헌, 승효상, 박원순, 김성룡, 장진, 조윤범, 진옥섭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화감독부터 건축가, 시인, 북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그 깊이와 넓이가 탄탄한 사람들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이들의 서재는 단순히 책을 꽂아 놓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며 내밀한 영혼의 숙성실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타인의 서재 훔쳐보기 프로젝트이다. 방송작가 한정원의 인터뷰와 전영건의 사진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편안하고 진지한 이야기들이 수없이 오갔을텐데 짧게 정리된 글만 보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세계가 충분히 한 권의 책이 될 만한 사람들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자신의 책읽기 노하우와 서재의 비밀, 책에 대한 관점 등 고수들이 들여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은 단순히 물질적인 형태 너머의 4차원의 세계를 열어준다. 그 비밀의 문을 열어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우리는 15명의 고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읽을 책뿐만 아니라 읽어야 할 사람과 읽어야 할 삶이 너무 많다. 하지만 비균질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한계를 헤아려보면 ‘책’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느끼게 된다. 우리들의 삶은 유한하며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아는 것이 힘이든 모르는 것이 약이든 읽으면서 고민하고 생각할 일이다. 오늘도 읽고 쓰고 그리고 느껴야 할 일들이 우리에겐 너무 많지 않은가. 지식인의 서재는 아니더라도 나만의 서재 하나쯤은 지금 당장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두 칸짜리 작은 책꽂이부터 시작해보자.


11052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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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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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든 크든 누구에게나 서재는 있다. 고등학생의 서재에는 참고서와 문제집만 꽂혀 있겠지만 성인이 되면서 자신이 만들어가는 책꽂이가 바로 자신의 영혼이다. 보르헤스는 천국이 존재한다면 아마 도서관을 닮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서재는 바로 자신이 만든 유토피아의 모습일 게다. 당신은 그리고 나는 어떤 서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궁금해 한다.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타인의 비밀에 대한 호기심은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늘 타인의 서재가 궁금했다. 학창시절에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이 읽고 있는 책이 너무 궁금했다. 아주 가끔 시집을 읽는 여학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은 규정하기 어렵다. 학벌이나 직업으로 평가하기도 어렵고 사르트르식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들어봐도 지식인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그 사람이 가진 지식의 총량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발언의 내용과 실천적 행동의 족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당대의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타인에게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으며 역사 발전의 합리적 원칙을 제시할 수 있어야 지식인이다. 다른 사람에ㅐ게 미래에 대한 전망을 논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의지와 인식의 힘을 가진 사람이 지식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행성:B잎새’의 『지식인의 서재』는 지식인과 서재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지식인의 가장 첫 번째 덕목은 말할 것도 없이 ‘책’이다.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지식을 쌓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 지식인이다. 그러니 서재는 지식인의 가장 근본적인 영혼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열다섯 명의 열혈 독서가들은 『한국의 책쟁이들』의 주인공들과 조금 다른 눈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책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인 사람들, 책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들, 서재가 삶의 중심이지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 마디로 행복한 책읽기 종결자들이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만 판단하고 새로운 정보를 거부하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만 지겹도록 반복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화부터 내는 사람, 남에게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 말이다 - 조국의 서재, 19쪽

책을 읽지 않고 늙어가는 수컷 영장류의 비애를 간명하게 전달하는 조국의 서재는 그의 미모만큼 핸섬하다. 규범적 틀을 깨고 나온 그의 생각과 변화의 욕망은 모두 서재에서 출발한다. 세상은 의문으로 가득 찬 사람이 필요하다는 러셀의 말처럼 그의 말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물론 열린 생각과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독서를 만 권 이상 하고 나면, 사실 그렇게 새로운 것들이 많지 않아요. 같은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 게 많지요. 아주 독특하다고 생각되는 책은 10퍼센트나 될까요? 그래서 이제 저는 '아 이것은 정말 새롭다' 하는 것만 골라내어 독서를 하죠" - 이안수의 서재, 81쪽

충격적인 이안수의 말이다. 만권쯤 읽으면 그럴 법도 하다. 나는 태어나서 몇 권이나 읽었나 짐작해 본다. 세상의 모든 책은 고전에 대한 해석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만 만 권의 경지는 아직도 멀고 험한 경지인 것 같이 느껴진다. 양으로 승부할 수는 없으나 질은 양을 담보로 하지 않는가.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조국부터 최재천, 이안수, 김용택, 정병규, 이효재, 배병우, 김진애, 이주헌, 승효상, 박원순, 김성룡, 장진, 조윤범, 진옥섭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화감독부터 건축가, 시인, 북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그 깊이와 넓이가 탄탄한 사람들의 서재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이들의 서재는 단순히 책을 꽂아 놓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며 내밀한 영혼의 숙성실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타인의 서재 훔쳐보기 프로젝트이다. 방송작가 한정원의 인터뷰와 전영건의 사진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편안하고 진지한 이야기들이 수없이 오갔을텐데 짧게 정리된 글만 보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세계가 충분히 한 권의 책이 될 만한 사람들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자신의 책읽기 노하우와 서재의 비밀, 책에 대한 관점 등 고수들이 들여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은 단순히 물질적인 형태 너머의 4차원의 세계를 열어준다. 그 비밀의 문을 열어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우리는 15명의 고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읽을 책뿐만 아니라 읽어야 할 사람과 읽어야 할 삶이 너무 많다. 하지만 비균질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한계를 헤아려보면 ‘책’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느끼게 된다. 우리들의 삶은 유한하며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아는 것이 힘이든 모르는 것이 약이든 읽으면서 고민하고 생각할 일이다. 오늘도 읽고 쓰고 그리고 느껴야 할 일들이 우리에겐 너무 많지 않은가. 지식인의 서재는 아니더라도 나만의 서재 하나쯤은 지금 당장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두 칸짜리 작은 책꽂이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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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홈
황시운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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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무엇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걸까
난 지금 어디로 쉬지않고 흘러가는가

난 내 삶의 끝을 본적이 있어
내 가슴속은 갑갑해졌어
내 삶을 막은 것은
나의 내일에 대한 두려움
반복됐던 기나긴 날 속에
버려진 내 자신을 본 후~
나는 없었어 그리도 또
내일 조차 없었어
내게 점점 더 크게 더해갔던
이 사회를 탓하던 분노가
마침내 증오가 됐어
진실들은 사라졌어 혀 끝에서~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거칠은 인생속에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나를 완성하겠어
다시 하나의 생명이 태어났고
또 다시 부모의 제압은 시작됐지
내겐 사랑이 전혀 없는 걸
내 힘겨운 눈물이 말라버렸지
무모한 거품은 날리고 흠~

주위를 둘러봐 널 기다리고 있어
그래 이제 그만 됐어 나는 하늘을 날고싶었어
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자 이제 그 차가운 눈물을 닦고 COME BACK HOME~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지금 어디로
쉬지않고 흘러가는가  

-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홈'
 


상표를 떼지 않은 옷을 입고 쓰러질 듯 무대를 휘젓는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의 모습은 등장부터 충격적이었다. 폭발적인 반응과 주목을 받으며 대한민국 가요계를 평정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세기말의 문화 코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노래와 몸짓과 이미지는 기존의 가요계의 문법을 뒤흔들었고 그야말로 ‘아이들’의 잠재된 충동과 욕망을 폭발시켰다. 질서와 규범의 파괴는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에 충격을 주었다. 서태지는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교실 이데아’와 ‘컴백홈’의 가사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더구나 그 때는 어떠했겠는가.

황시운의 장편소설 『컴백홈』은 멈칫거리지 않고 땀 흘린 후에 마시는 이온음료처럼 흡수해버렸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중의 하나가 ‘재미’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일단 재미있다. 쉼 없이 막힘없이 책장이 넘어가게 만드는 능력은 작가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이다. 서태지 키드라면 아련한 추억에 젖을지 모르지만 소설의 내용은 서태지와 무관하다.

슈퍼울트라 개량돼지라 불리는 박유미는 130kg에 달하는 거구의 왕따 여고생이다. 극단적인 외모를 가진 주인공 유미의 생각과 행동은 출구 없는 현실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초등학교 절친 지은은 고등학생이 되어 일진이 되고 직접 유미를 구타하고 돈을 갈취하면서 우정을 유지하는 기괴한 형태의 친구가 된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히 불량 청소년들의 일탈 행위를 보여주고 그 원인을 사회적 현실로 돌리는 식상한 청소년 소설의 문법에 기대지 않는다. 서태지를 축으로 그의 노래와 환상적 이미지는 유미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된다.

다이어트, 안나수이, 프링글스, 다이어트 등 소설에 등장하는 감각적인 소재와 10대 소녀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소설은 절망과 불안에 대한 보고서로 읽힌다. 서태지는 90년대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희망’은 그저 현실을 견뎌내는 마취제가 될 수 없다. 작가는 어줍잖은 희망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유미가 꿈꾸는 달의 이면을 생각해 보게 한다. 도달할 수 없는, 단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달의 뒷모습은 어떨까. 우리는 어른이 되고 나면 하늘도 달도 별도 쳐다보지 않는다. 코앞에 놓인 현실만 생각한다. 팍팍한 생활 탓이라고 하기엔 슬프지 않은가. 아무리 삶의 무게가 우리의 어깨를 짓누른다 하더라도 말이다.

사람들은 툭하면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들 했다. 그런데 어떤 순간이 적당한 때인지를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다보면 누구나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걸 알게 되는 삶의 순간이 저마다 정해져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이에 걸맞는 행동과 삶의 패턴이 있다. 그러나 철들지 않겠다는 꿈을 꾸는 것이 유치한 생각일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를 알고 그 때에 맞춰 공부를 하고 직업을 선택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노후를 준비하면 행복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일까. 과연 인생에서 우리가 찾아야 하는 값진 비밀은 무엇일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유미처럼 달에 가고 싶은 마음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서태지와 함께 달에 가려는 유미의 꿈은 이루어질까.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이라는 장석남의 시가 생각난다. 무언가 그리운 것이 있다는 것은 삶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증거다. 유미는 늘 서태지를 그리워하고 지은이를 그리워한다. 가족과 친구로부터 멀어진 유미가 서태지를 그리워하고 달에 가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생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유일한 방편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유미와 미혼모가 될 지은이를 통해 삶의 비극과 희극이 어떻게 다른지 묻고 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양상은 거리에 있지 않고 내가 걷는 길과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올해 마흔이 된 서태지는 최근 이지아와의 결혼과 이혼 문제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실 속의 서태지도 유미만큼 괴롭고 힘겨운 시간들을 견뎌낸 것은 아닐까? 유미는 서태지와 함께 달에 가서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아니, 유미는 서태지를 진짜 좋아하긴 한 걸까.

우울한 일탈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은 건강한 웃음과 밝은 모습으로 현실을 그려내지 않는다. 청소년들에게 권하기도 불편하고 성인들이 읽기에도 그리 탐탁하지 않은 면에 대해서 무어라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이물스러움은 소설이 현실과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설에서 보여줄 수 있는 상상력과 문장을 이끌어가는 힘이 문제가 아니라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세계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고루한 독자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세계의 문제다. 작가의 말대로 다음부터 점점 더 쉬워졌으면 좋겠다.

모든 일은 처음이 힘들 뿐, 그다음부터는 점점 더 쉬워지게 마련이다. - 222쪽


11052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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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자본 세계사 가로지르기 3
박홍규 지음 / 다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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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떤 것이든 단 한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어요, 영원히 살고 싶어요, 죽은 우리 엄마를 살려주세요, 세상에서 축구를 제일 잘하고 싶어요, 나보다 예쁜 여자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 말도 안되는 상상이겠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복권 당첨, 부자되기, 부동산 재벌 등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돈’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에 기초한 삶의 방식에서 모든 것은 화폐가치로 환산된다. 우리는 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말이 실감나는 현실을 살아간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돈 혹은 자본이란 말을 잘 알아야 한다. 도대체 돈은 무엇이며 자본의 역사는 어떠했는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우리는 조금 더 자본을 제대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세계사 가로지르기 시리즈로 나온 『세상을 바꾼 자본』은 색다른 경제사다. 청소년을 위한 시리즈의 하나로 ‘자본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이상한 경제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비밀 아닌 비밀들이 많다. 사회에 나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자로 살아가는 데도 대한민국의 사회, 경제 교과서에는 노동자의 권리나 노사관계에 대해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하다. 경제의 주체와 관점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직접적인 생활의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기업가의 입장이나 수박 겉핥기식의 원론만 다루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삶을 위한 사회, 경제 교과서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경제 이야기가 가득하다. 우선 저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자본의 시대는 16세기 서양이 비서양을 침략하고부터 시작되었다. 황금과 화폐로 축적된 자본은 무한한 탐욕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본이 가난을 극복하게 해 준다는 이유에서 환영했다. 그러나 자본은 대부분의 인간에게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대부분 초래했다. 단적으로, 자본의 시대에 사는 한국인은 돈과 행복이 무관하지 않고 충분한 돈이 없어서 대부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인간을 자본인이라 부른다. 이 책은 그런 자본인, 탐횡인으로부터 해방되자는 취지로 쓴다. - 74쪽

이 책의 목적이 뚜렷하다. 자본으로부터의 자유! 그것이 이 책의 목적이 아닐까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이 아니라 돈에 종속된 사람이 아니라 주체적인 인간이 되자는 말이다. 그러나 그 길은 멀고 험난하다. 얄팍한 경제에 관련된 지식만 가지고 그렇게 살 수는 없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면 이야기가 달라지더라도 자본인, 탐횡인으로부터 해방되어야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을 거부하자는 말이 아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말도 아니다. 우리가 발딛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한발 더 나아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고민을 시작하는 말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사랑하지 못한다. 아는 것으로부터 사랑은 시작된다. 사랑한다는 말은 안다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우리의 삶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조건인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가 한 쪽에 치우진 자본주의에 관한 역사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물론 이 책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책은 항상 빛과 어둠을 함께 드리운다. 이 책이 가진 장점을 읽어내는 독자라면 자신의 생각을 조금 더 말랑말랑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자세가 독서의 기본이다.

이 책의 저자 박홍규는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 서적을 읽고 쓰고 번역하는 법학자이다. 게다가 추천사를 쓴 강수돌 교수보다 더 지독한 반자본주의자이다. 이반 일리히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의 번역자 답게 자전거를 타고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괴짜 법학 교수이다. 휴대폰은 물론이고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도 없다. 우리 모두 박홍규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들의 삶의 조건이 어떠한지는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고 생각하고 우리들의 삶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모든 걸 돈이 해결해 준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에게 색다른 경제 개념이 필요하다. 과연 자본은 무엇이며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청소년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와 문장들이 여과없이 사용되어 조금 더 쉽고 친절한 안내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독자의 눈높이를 생각하고 저변을 확대하는 일에 신경 쓴다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성찰적 지식인으로 존경받는 저자의 책이 논쟁의 중심에서 또 다른 책을 재생산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의 책을 기다린다.


110518-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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