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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 ‘신이 죽은’ 시대의 내로남불
허경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5월
평점 :
인간은 옳은 것만큼이나 잘못된 것을 진실하게, 진심으로, 열렬히 믿을 수 있다. - 182쪽
객관적 ‘사실’에 대한 확신,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진실’이라고 믿음 앞에서 계속 흔들린다. 각자의 기준과 판단으로 선택하고 결론 짓는 일이 반복되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다른 생각 앞에서 당황한다.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인정하겠다는 똘레랑스의 정신을 실제 삶에 적용할 생각은 별로 없다. 옳고 그름, 선과 악, 밝음과 어둠, 좋음과 나쁨의 경계선이 분명하게 보이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진리는 없고, 관점만이 존재한다. 또는 진리는 없고, 해석만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사실은 없고 관점만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니체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복잡, 다변한 세상에서 사실과 진리는 순간에 머문다. 일시적 현상에 불과한 듯 세상은 혼란스럽고 목소리 큰 놈들의 아우성에 귀가 아프다. 허경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신경 쓸 것 없다. 왜 우리가 각자의 내로남불과 편향성을 수정하지 못하는지,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니 어쩔 수 없다는 면죄부가 가능한지, 문명 발달과 이성의 힘으로 합리적인 토론과 공론의 장에서 합의가 불가능한 이유가 무엇인지 쉼없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럴 수 있을까. 승리가 선이고, 성적이 모범이며, 재산이 인격인 사람들의 태도는 바뀔 수 있을까. 사람들의 관점, 편견, 인식틀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마르크스의 말대로 ‘무지는 논증이 아니다.’ 논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믿음이 타당함을 주장하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어떤 사건, 사태에 관한 누군가의 믿음이 얼마나 견실한가의 문제와 그 사람이 믿는 내용이 옳은가의 문제는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근대 이후 과학과 철학 분야에서 사라진 ‘객관적 사실’ 운운하며 자신의 생각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심지어 타인을 설득하고 수용하지 않는 상대를 비난한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을 연인, 가족, 친구, 동료, 이웃과의 대화에서 매일 마주하지만 웃으며 넘어가고 애써 외면하거나 그저 서로 다른 것 뿐이라며 위로한다. 과연 그런가.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와 “너는 맞고 나는 틀리다”는 동어반복에 불과할까. 허경이 풀어내는 <2021년 대한민국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내가 믿는)는 ‘일반적 인식론의 무의식적 대전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려는 의도>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운 건 사람들은 왜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지, ‘신념’에 가득한 채 세상을 살아가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로남불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판단과 남의 행위에 대한 판단에 일관성이 결여된 경우를, 곧 ‘자신의 행동과 타인의 행동을 재는 잣대가 다른 경우’를 도덕적으로 비판하는 담론이다. 내로남불 담론의 한복판에 선 정치권의 주류 세력인 보수와 진보,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날리는 펀치가 허공을 스칠 뿐일 수도 있다. 진영논리에 갇힌 사람들에게 의심하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감정적 선동에 익숙한 사람들, 무비판적 뉴스 소비자들, 팬덤 정치의 수혜자들은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생각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이 좀더 진실에 가깝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싸운다는 도덕적 정당성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윤리적 기준ethical standards, 자유freedom의 평등equality, 공정fairness과 정의justice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그 기준을 정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저자는 이 지점을 톺아보기 위해 칸트의 정언명령, 홉스의 리바이어던, 로크의 통치론,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 J. S. 밀의 자유론을 들고 나왔다. 성인중심주의자, 19세기 백인 유럽중심주의자, 제국주의자, 오리엔탈리스트인 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물론 다른 고전의 한계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쉽지만 시대 상황과 사상가들의 환경을 고려해서 이 부분은 다루지 않는다)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 양상을 고찰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물론 이 이야기는 오히려 개인과 개인사이의 대화 국면, 삶의 목표과 가치에 대한 개인의 선택, 동일한 사건과 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장면에서 더욱 필요해 보인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가 맞을까. 아니,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나인가. 나는 왜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판단하고 선택하며 살아갈까.
흔들림없는 편안함. 어느 침대 회사의 광고 카피다. 인간은 흔들리는 존재의 가지 끝에서 불안을 느낀다. 그 불안은 자유를 위해 마땅히 치러야 하는 세금 같은 것이다. 처음 바닥을 찍을 때 견디지 못하면 그 다음 바닥이 불안하다. 어차피 파도는 밀려온다. 아무리 발버둥 우아한 자유형으로만 헤엄칠 수 없다. 때로는 숨을 참고 수면 아래로 내려가 고요한 잠영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바닥을 발을 딛고 힘차게 떠오르고 싶을 때까지 그대로 있는 순간은 즐길 수는 없을까. 소리가 없는 세상, 침묵과 정적이 주는 편안함이 수면 위의 소란한 세상과 맞닿는 지점의 경계는 분명한가. 너는 맞고 나는 틀릴까.
나는 ‘철학이 건강한 불편함을 지향한다’고 믿는다. - 2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