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청소년, 청년,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교양 입문 민주시민 권리장전 1
제임스 렉서 지음, 김영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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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벌써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고 10년이 흘렀다. 1990년대는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와 세기말의 불안이 교차했다. 단지 숫자에 불과하지만 새천년의 출발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했다. 인간들의 인위적인 시간이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는 언제나 그랬듯이 과거의 결과일 뿐 느닷없는 변화도 없었고 새로운 희망은 어디에서도 주어지지 않았다. 삶의 조건은 스스로 만들어갈 뿐이라는 냉혹한 교훈만이 되풀이 되고 있다.

지난 20세기의 가장 큰 변화는 근대적 의미의 정치, 경제적 제도 변화였다. 봉건사회의 붕괴와 상업자본의 발달로 점차 민주주의의 씨앗은 17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자본주의의 확립과 더불어 19세기말부터 본격적인 민주주의가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아직도 입헌군주제가 남아있고 실질적인 정치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도 많지만 이제 민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가장 필수적인 인간들의 삶의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심각한 가장 기본적인, 더 이상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것은 유럽 선진국의 다양한 정치, 사회, 경제적 위기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국민이 주인 되는 세상이라면 대다수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의 행정이 움직이고 그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봉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상적인 민주 국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할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대한민국에 대한 고민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민주시민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교양서이다. 「민주시민 권리장전」시리즈의 첫 책으로 『법치란 무엇인가』와 함께 출간되었다. 이후에 나올 시리즈도 기대된다. 간결하고 쉬운 문장과 알기 쉬운 설명으로 똑똑한(?) 중학생 수준이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길고 지루한, 꼬이고 말린 번역서가 아니라 거시적인 안목으로 전지구적인 민주주의의 한계와 위기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또다시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이 저절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일단,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민주주의는 피와 땀의 결과물이다. 혹독한 시련과 인내와 투쟁의 댓가로 겨우 얻어낸 우리들의 권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우선 왜 ‘다시’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캐나다 학자의 주장이지만 특정 국가의 문제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과거와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는데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읽어낸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충돌이다. 두 체제가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식도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협박하고 인권을 유린할 수 있었던 ‘잘살아 보세’와 ‘재벌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현실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정확하게 짚어낸다.

한국의 민주화는 정치적 민주화의 좁은 틀 안에서만 추진되었기 때문에 사회 · 경제적 민주화는 최근까지도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은 군부독재정권 아래에서 온갖 기득권을 누리던 사회 세력들에 대해 거의 손을 댈 수 없게 만들었다. 즉 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침해하는 개혁은 거의 추진되지 못했는데, 그 기득권 세력의 중심에 바로 ‘재벌’로 상징되는 거대자본이 있다. - 137쪽

이 책에서 저자는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자본주의의 발전과정과 더불어 정확한 맥락을 설명한다. 미국과 프랑스 모두 혁명으로 민주국가의 근간을 이루었다. 끊임없이 진화하지 않으면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생리를 가진 제도가 민주주의이다. 이웃나라 먼나라 그리고 우리나라를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 각자의 선택과 판단은 그 다음이다. 정치인, 재벌기업의 총수가 우리들 삶의 조건을 개선시켜 줄 것이라고 믿지 말아야 한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권리를 인정받고 투표에 참여하게 된 지 100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소수자의 권리와 인간의 기본적인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전체를 위해 혹은 미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논리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비민주적인 의식과 제도는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끝없이 부추기고 조장하고 굳건하게 지켜내고 싶은 기득권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가 한 가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과 상반되는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늘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이것에 관한 결과이다. 20대의 비정규직 사태, 88만원세대, 등록금 문제 등 자신들의 직접이익과 결부된 사회제도나 경제 현실에 대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무 중에 하나가 ‘투표’ 행위로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일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 빈곤층의 투표 현실까지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또 다른 한 권의 책으로 다룰 만한 주제지만 저자는 간단하게 이렇게 정리한다.

자신의 이익과 상반된 투표를 하는 이유

많은 노동자들이 보수적인 정당을 지지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민족, 인종, 종교, 국가, 지역 등과 관련된 적대감 때문인데 이는 노동자 계급을 끊임없이 분열시켜왔다. 둘째, 실업자에 대한 적대적인 취업자와 복지혜택의 수혜자가 느끼는 분노, 그리고 고용안정이 보장된 공무원에 대한 민간 부문 노동자의 시기심 때문이다. 셋째, 노동조합으로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혜택을 불공평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존 사회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국민 다수를 설득하기 때문이다. 다소 적더라도 기존 체제 내에서 누리는 그들의 몫이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투쟁을 통해 얻게 될 몫보다 훨씬 낫다고 말이다. - 187쪽

소련과 동유럽은 현실 공산주의 국가로 20세기에 가장 극적인 혁명을 이루었다가 사라진 나라들이다. 그들의 민주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가 결국은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과 시스템 그리고 관심과 참여의 문제라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최근에 남미의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에서 불고 있는 신선한 바람을 지켜보자. 넬슨 만델라로 대표되는 아프리카의 민주화, 밑으로부터 열망이 살아있는 아시아의 민주주의 등 전세계는 여전히 민주주의 투쟁의 한복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가진 문제의식은 결국 막대한 자본과 민주주의의 싸움, 정치동맹을 이루고 있는 유럽연합의 탄생 등 당대 현실에 대한 고민으로 모아진다. 민주주의의 과거와 현실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현실적인 과제를 확인하고 나면 이제 남은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민주주의는 전진하거나 퇴보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옹호자들은 그들의 입장이나 명분을 주장하는 것을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 189쪽

저자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완성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끊임없이 전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퇴보한다. 그 민주주의의 원동력은 아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가진 자, 똑똑한 자, 힘이 센 자들이 민주주의를 개발했거나 다수의 국민을 위해 시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그것이 이 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이렇게 마무리 한다.

늘 그래왔듯이 민주주의는 희망에서 출발한다. - 199쪽


11020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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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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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나 할 듯한 고민을 나이 들어가면서 문득문득 떠올리는 것은 왜일까. 수많은 책을 접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일이 많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 장삼이사의 일화, 세상을 뒤흔들만한 역사적 사건 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올 때가 있다. 사회적 존재가 아니라 한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가 했던 내밀한 고민과 일상적인 삶에서 오는 갈등이 느껴질 때 ‘나는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무얼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는지 말이다.

20세기 초반 세계사의 급격한 변화를 온몸으로 겪은 작가의 글들은 많은 울림을 준다. 작가 조지오웰은 영국의 명문 사립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유일하게 식민지 경찰에 자원한다. 5년간의 인도 경찰 생활 후 귀국해서 부랑자 생활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는 작가를 다시 돌아본다. 권력과 부를 거머쥘 수도 있는 상황의 반전과 그가 남긴 작품들 사이의 거리를 돌이켜 생각해 보게 하는 『나는 왜 쓰는가』를 읽는 내내 책에 빠져들었다.

『동물농장』, 『1984』로만 기억되는 조지 오웰은 다양한 글과 소설들을 남겼다. 이한중은 그의 에세이 중에서 가려 뽑아 번역한 책을 묶어 그의 대표적인 에세이를 책 제목으로 삼았다. 선택한 글들이 읽을 만 했고 번역도 어색하지 않아 작가의 내면을 읽어내는데 손색이 없었다. 두툼한 분량임에도 막힘없이 읽힌 것은 당대 현실에 대한 조지 오웰의 솔직한 내면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국주의와 파시즘이 판치던 시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와 영국, 러시아 혁명과 스페인 내전까지 소용돌이치는 세계사의 흐름에 대한 작가의 대응방식이 흥미롭다.

우리 시대에는 '정치와 거리를 두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모든 문제가 정치 문제이며, 정치란 본래 거짓과 얼버무리기, 어리석음, 반목, 정신분열증의 집합체인 것이다. 그러니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을 경우 언어는 수난을 당하게 된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71쪽

이런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 시대의 한복판에서 가장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그것을 해석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형상화하는 일이 작가의 의무가 아닌가. 조지오웰은 신랄한 풍자와 뛰어난 상상력으로 소설을 썼다. 명성을 얻기 전까지 20여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글을 쓸 때 주의할 점이나 헌책방에서의 경험, 부랑자 생활, 간디에 대한 생각 등을 발표했다. 그의 글들은 재치 있고 발랄한 풍자가 돋보인다. 비극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조롱과 비꼬는 솜씨가 일품이다.

어느 시대를 살았던 작가든 마찬가지겠지만 그 시기의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갖기란 쉽지 않다. 조지오웰은 백인 영국인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부랑자를 바라보고, 인도에서의 경찰 생활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부족한 점, 간디에 대한 평가에서 엿볼 수 있는 작가의 태도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작가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든 작가가 그 시대에 어떻게 반응하든 ‘글’은 오래 기억되고 읽히고 해석되고 영향을 미친다. 독자들은 작가의 글을 통해 시대를 들여다보고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고 작품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조지오웰과 그의 소설들을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97쪽

가령 이런 고백들은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 좋은 문장이다. 그것이 소설로 어떻게 실현되었고 독자들의 평가가 어떠하든 작가의 솔직한 고백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의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을 통해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조지오웰이라는 작가의 내면 풍경과 그가 살아냈던 시대를 그의 눈을 통해서 바라본다는 점이다. 표현론적 측면에서 작가의 생애와 사상을 통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좋지 않은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풍부한 배경지식과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시공간적 무대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고 작품에 대한 해석을 보다 다양하게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지금 여기에 적용될 수 있는, 현재적 유용성 측면에서 우리의 현실을 성찰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다. 진지하고 엄숙한 시대 비판이 아니라 비틀고 냉소하는 태도는 당대 현실을 넘어 현실을 성찰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의 소설들이, 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이렇게 다양한 사회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시선을 제공한다. 케케묵은 이념의 시대를 지나왔지만, 우리 사회의 거시적인 방향성과 미래를 고민하는 데도 그의 글들은 여전히 재미있게 읽힌다. 이렇게,

좌파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지지자들을 실망시킨다. 왜냐하면 그들이 약속했던 번영이 달성 가능한 것이라 해도, 국민에게 진작에 말해준 적이 거의 없는 불편한 이행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442쪽

이 책을 통틀어 가장 통렬하게 다가온 글은 ‘어느 서평자의 고백’이다. 책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재미있는 글이다. 더구나 대가없이 미친 듯 읽고 써대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러하다. 공짜 책은 없다! ‘서평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공짜책 서평이벤트와 서평 관련 잡지들과 기자들 그의 표현대로 ‘꾼’들에게 날리는 카운터 펀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상적인 문장 몇 개를 옮겨둔다.

아무리 지겨워한다 해도 서평자는 책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사람이며, 매년 수천 권씩 쏟아지는 책 중에 쉰 권이나 백 권쯤에 댛서는 기꺼이 서평을 쓰고 싶어 한다. 업게 최고 수준인 사람이라면 열 권에서 스무 권 정도를 택할 것이며, 두 세권만 꼽을 수도 있다. 그 나머지 일은 아무리 양심적으로 칭찬을 하든 욕을 하든, 본질적으로 사기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86쪽

모든 책이 서평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당연시하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되기 어렵다.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서평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책에 대해 과찬하지 않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책과 일종의 직업적인 관계를 맺고 보면 대부분의 책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 객관적이고 참된 비평은 열에 아홉은 '이 책은 쓸모없다'일 것이며, 서평자의 본심은 '나는 이 책에 아무 흥미도 못 느끼기에 돈 때문이 아니면 이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일 것이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87쪽

내가 보기에 최선의 방법은 대부분의 책은 그냥 무시해버리고 중요해 보이는 소수의 책에 아주 긴(최소한 1000단어는 되게) 서평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87쪽


110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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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 - 잘못된 과학 정보를 바로 가려내는 20가지 방법
셰리 시세일러 지음, 이충호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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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에 아주 조심해야 한다. 한번 들어간 것은 다시 꺼낼 수 없을 테니까. - 토머서 울지(Thomas Wolsey, 1471~1530)

책은 우리에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 확인시켜 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과 새로운 호기심, 끊임없는 질문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셰리 시세일러의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은 최소한 객관적 지식이라고 믿으며 살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흔히 밥을 먹거나 술자리에서 어떤 대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와 달리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모두가 동의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믿었던 것들 예를 들면 ‘폭력 범죄 발생 건수 증가 추세’나 ‘교통사고 사망 건수 감소’ 등의 뉴스는 일시적인 통계 수치일 수 있지만 그것이 의미 있는 변화인지 확인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과학’에 속지 말라고 경고한다.

‘과학 논문 ⇨ 보도 자료 ⇨ 신문 기사 ⇨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 ⇨ 라디오 청취자나 텔레비전 시청자’ 과학이나 건강에 관한 정보는 이렇게 다양한 경로를 거치게 된다. 원래 정보의 출처는 사라지고 가공되거나 왜곡되거나 일부만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우리는 들은 것을 부정확하게 추측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객관적 사실은 존재하고 과학적 지식과 이론들이 새롭게 발견되거나 만들어진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태도와 자세가 문제라고 본다. 저자는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열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1. 과학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하며, 왜 과학자들의 의견이 가끔 엇갈리는지 이해한다.
2. 어떤 쟁점에 이해가 걸린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의 입장은 어떤 것인지 알아본다.
3. 어떤 결정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모두 자세히 파헤쳐 본다.
4. 트레이드오프를 평가하기 위해 적절한 맥락에 대안을 대입해 본다.
5. 인과관계와 우연의 일치를 구분한다.
6. 어떤 연구에서 얻은 결론을 얼마나 넓게 적용할 수 있는지 파악한다.
7. 숫자의 마술을 꿰뚫어본다.
8. 과학과 정책 사이의 관계를 구분한다.
9. 논리를 비켜 가기 위해 만든 계략들을 돌파한다.
10.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 위해 정보를 찾고 분석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전문 서적이 아닌 경우 통상적으로 몇 가지 단계나 원칙들을 소개하는 책들이 많다. 이 책도 유사한 방법을 제시하지만 뻔한 자기계발서 종류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례 중심으로 우리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를 지적하고 그것이 왜 잘못된 판단인가를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심리학과 결합된 이야기도 종종 등장한다. 예를 들면,

확증 편향은 아주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즉,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정보에는 큰 관심을 보이는 반면, 어긋나는 증거는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확증 편향은 완고한 것과는 다르며, 사람들이 확고한 의견을 갖고 있는 문제에만 국한해 나타나지도 않는다. - P. 17

『거짓말의 진화』라는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를 이 책에서 다시 만나다. 결국 과학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새빨간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과학적 진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자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과학을 이용해서 거짓말을 하든 우리 스스로가 자기 최면에 걸리듯 확증 편향을 갖고 잘못된 과학 상식을 길러가든 그것은 모두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열 가지 방법으로 모든 거짓말이 밝혀지거나 오해하고 잘못 해석된 사실들이 바로잡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일상생활에서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비판적 안목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그것은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마찬가지다. 맹목적인 믿음이나 일방적인 관점으로는 다양한 사유 방식으로 신선하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관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과 발상의 전환을 위한 사유 방식의 훈련을 위해서도 저자의 이야기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실증적인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만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잘못된 상식과 새빨간 거짓말에 속으며 하루를 보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일이 그러할 수 있을까? 사람 혹은 사건?


11013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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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8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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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달인을 보면 가히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는 동안 생긴 노하우와 속도가 평범한 사람들을 질리게 할 정도다. 마치 기계처럼 능숙하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확하고 민첩하게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우물을 판 결과일 뿐 특별한 비법 같은 건 없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비슷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다보면 말콤 글래드웰의 말대로 1만 시간의 법칙이 작동되면 누구나 한 분야의 ‘아웃라이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일이 어떤 일이냐의 문제가 남겠지만.

그렇다면 ‘돈’은 어떤가. 우리는 누구나 ‘돈’의 달인이 되고 싶어한다. 바꾸어 말하면 ‘돈’을 잘 벌고 많이 벌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돈에 대한 욕망만큼 소비의 욕망도 크다. 버는 돈과 쓰는 돈이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많이 벌고 적게 써도 문제고 적게 벌고 많이 써도 문제다. 이때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와 향락을 위한 이기적인 욕망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단순히 돈이면 다 된다는 믿음이나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부의 축적 자체가 행복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왜 일하는지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세상 사람들에게 외치는 공허한 울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훈과 감동을 세트로 안겨야 한다. 공감할 수 없다면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이 책이다. 지식은 내 삶을 바꾸고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가꿀 줄 아는 데 필요한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나아진다고 희망을 주는 책이 좋은 책이 아닌가.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돈에 대한 고전 평론가의 사유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고미숙은 근대성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현실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제공해 왔다. 그린비에서 펴낸 인생역전프로젝트 시리즈의 여덟 번째 책으로 ‘돈’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의 흐름을 잇고 있다. 공부와 사랑 그리고 마지막으로 돈을 살펴보자.

먼저 돈에 대한 환상과 집착을 깨뜨려야 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끔찍한 사건, 사고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린 현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천륜을 거스르는 사건의 중심에는 돈이 놓여있고, 돈 때문에 죽고, 돈 때문에 살기도 한다. 왜 돈을 벌어야 하며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결과 자신의 일과 직업을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제대로 벌고 잘 쓸 수 있는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세상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저자는 먼저 돈의 천태만상을 통해 현실의 모습을 비틀고 풍자한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의 핵심은 돈을 잘 벌고 잘 쓰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학교에 다니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들어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오직 타인을 지배하거나 누르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공부를 하면 그 지식을 돈으로 교환하지 않고서는 살아가기가 힘들다. 그 교환의 궤도를 벗어난 공부, 그것이 곧 삶의 지혜다. 공부가 지혜로 변주되는 곳에선 늘 밥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공부와 밥은 ‘하나’다! - P. 185

밥과 공부가 하나라는 말을 다르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보다 높은 학벌과 돈 잘 버는 직업을 연계시킬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공동체’를 제안한다. <수유+너머>에서 밥과 공부와 친구를 해결하며 공동체 안에서 삶을 꾸려가는 저자에게는 당연한 주장이다. 돌고 돌아야 하는 것이 돈이 버는 것보다 쓰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돈이라는 주장은 명품에 찌들고 아파트 평수에 목숨거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하지만 그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비껴날 수가 없다. 가족을 이루고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을 얻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에 대한 개념을 바꾸고 삶을 가꾸는 방법을 새롭게 고민하기 위한 노력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저자는 시원하고 자신 있게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삶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해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고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돈이 아니다! 소유로부터 벗어나건 소유의 현장으로 들어가건,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자유다! - 소유에서 자유로! 존재의 무게중심을 이렇게 옮겨 놓을 수 있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순수증여라는 ‘비밀지’에 도전할 수 있다. - P. 194

시혜적 관점의 기부가 아니라 나눔과 배려를 선물과 증여의 개념으로 치환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부록으로 ‘44만원 세대 보고서’, ‘정규직 3년차의 20대를 위한 변명’, ‘청년 백수의 촤충우돌 보리기금 운영기’를 통해 현실에서 벗어난 젊음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재미도 크다. 모두가 똑같은 삶을 지향하는 사회는 얼마나 지루한가. 이러한 사회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가꾸어가되 어울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다. 비노바 바베의 말은 그래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진정한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의 곁에서 스스로 배우고 자라게 할 뿐!

비노바 바베의 입을 빌려 말하면, “진정한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그의 곁에서 스스로 배울 뿐이다. 태양은 누구에게도 자기 빛을 주지 않는다. 다만 만물이 그의 빛을 받아 스스로 자라갈 뿐”(『버리고, 행복하라』, 31쪽)인 것처럼. 지식과 정보 역시 그래야 마땅하다. - P. 216


110107-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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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5:37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을 쓰는 내내 우울했다.

조정래의 『허수아비 춤』은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의 말’을 앞세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우울했다. 조정래의 2007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 비자금’ 사건은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촉발되었다. 삼성공화국 권력의 심장부에 있던 그의 발언은 차라리 동화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이야기였다.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 사람들은 ‘설마’라고 생각하며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우리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었다. 2010년 2월에 출간되면서 또다시 세상을 뜨겁게 달군 책이 바로 『삼성을 생각한다』이다. 『허수아비 춤』은 『삼성을 생각한다』의 소설판으로 읽혔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잊었고 삼성그룹과 이건희 일가를 동일시하는 법의 정서는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었으며 상속문제는 말끔하게 해결됐고 이건희는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한민국은 고요하기만하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일들이 벌어졌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국민들은 법의 심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같은 이야기가 진짜 소설이 되어 나타났다.

피의 대가를 치러 얻은 민주주의는 ‘자본’앞에 무기력하다. 정치적인 민주주의와 달리 경제민주화는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다. 정치는 멀지만 경제는 가깝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한다. 그리고 부자를 부러워하면서도 존경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돈이 권력이고 힘이며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천박한 자본주의의 실상이 바로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되어버렸다. 새해 인사로 ‘부자 되세요’보다 좋은 덕담은 없는 듯하다. 어느 카드 회사의 광고 문구가 이제는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덕담이 되어버렸으며, 그보다 더 명쾌하고 적확한 욕망을 표현한 문장을 만나기 힘들게 되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사건 중심도 아니고 세태 비판 소설로 보기도 어렵다. 현실은 언제나 문학에 무한한 상상력과 자양분을 제공한다. 단순한 허구의 세계의 아니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삶을 들추고 세계의 본질을 해석하는 것이 소설의 의무라면 이 소설은 그에 값하는 의미를 지닌다. 자본주의의 이면과 한국형 재벌가의 모순을 파헤치면서 그것이 과연 우리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짚어보는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경제제도를 창출하기 전까지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운영하는 방법과 인간들의 태도가 문제이다. 삶의 지향점과 가치가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어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것에 도달하는 방법이 다양하지만 누구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인간의 모든 욕망이 돈으로 환산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는 대다수 사회구성원들과 더불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보다 나은 삶과 인간다운 가치를 창출하기 힘들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대한민국의 로얄 패밀리와 골든 패밀리의 삶을 조망한다. 모든 사람이 그들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그들과 똑같은 욕망을 추구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냉혹하게 돈에 휘둘린다. 그런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는 자라는 아이들에게 있다. 그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다. 직업을 선택하고 자신의 꿈을 가꾸는 과정에서 최대의 가치가 돈이 된다면 결코 행복한 삶을 꿈꾸기 어렵다. 현실을 외면하자는 말이 아니라 최소한 정상적인 사회에서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법과 질서, 나눔과 배려 같은 정의로운 삶을 가르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닐까?

소설의 의미를 따져 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문학’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도 많이 남는 작품이다. 알지 못하는 추악한 현실을 폭로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비판적 성찰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는 측면에서는 조정래의 이 소설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문학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모방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상들이 초래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한숨까지도 담아내야 한다. 일명 재벌 총수를 위시한 골든 패밀리들의 혐오스런 작태를 폭로하는 데 그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민이 아쉽다.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가꾸어가는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심정 그리고 그곳이 일터인 사람들의 태도까지 살펴볼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섬세하고 탄탄한 문장으로 조금 더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을 묘사했다면 보다 폭넓은 방식으로 이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미뤄두었던 소설로 시작하는 한 해가 불편하다. 앞으로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생리를 몸에 익히고 자본을 욕망하며 타인과의 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다. 다만, 그것이 공정하고 건전한 경쟁이어야 하며, 그 결과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유한한 인생, 지속가능한 사회 그리고 여전히 세상의 모든 진실들을 고민하는 소설들이 읽혀지기를 희망해 본다.


110106-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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