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청소년, 청년,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교양 입문 민주시민 권리장전 1
제임스 렉서 지음, 김영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11년. 벌써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고 10년이 흘렀다. 1990년대는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와 세기말의 불안이 교차했다. 단지 숫자에 불과하지만 새천년의 출발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했다. 인간들의 인위적인 시간이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는 언제나 그랬듯이 과거의 결과일 뿐 느닷없는 변화도 없었고 새로운 희망은 어디에서도 주어지지 않았다. 삶의 조건은 스스로 만들어갈 뿐이라는 냉혹한 교훈만이 되풀이 되고 있다.

지난 20세기의 가장 큰 변화는 근대적 의미의 정치, 경제적 제도 변화였다. 봉건사회의 붕괴와 상업자본의 발달로 점차 민주주의의 씨앗은 17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자본주의의 확립과 더불어 19세기말부터 본격적인 민주주의가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아직도 입헌군주제가 남아있고 실질적인 정치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도 많지만 이제 민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가장 필수적인 인간들의 삶의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심각한 가장 기본적인, 더 이상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것은 유럽 선진국의 다양한 정치, 사회, 경제적 위기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국민이 주인 되는 세상이라면 대다수 국민의 뜻에 따라 국가의 행정이 움직이고 그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봉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상적인 민주 국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할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대한민국에 대한 고민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민주시민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교양서이다. 「민주시민 권리장전」시리즈의 첫 책으로 『법치란 무엇인가』와 함께 출간되었다. 이후에 나올 시리즈도 기대된다. 간결하고 쉬운 문장과 알기 쉬운 설명으로 똑똑한(?) 중학생 수준이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길고 지루한, 꼬이고 말린 번역서가 아니라 거시적인 안목으로 전지구적인 민주주의의 한계와 위기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또다시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이 저절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일단,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민주주의는 피와 땀의 결과물이다. 혹독한 시련과 인내와 투쟁의 댓가로 겨우 얻어낸 우리들의 권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우선 왜 ‘다시’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캐나다 학자의 주장이지만 특정 국가의 문제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과거와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는데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읽어낸 민주주의의 위기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의 충돌이다. 두 체제가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의식도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협박하고 인권을 유린할 수 있었던 ‘잘살아 보세’와 ‘재벌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현실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정확하게 짚어낸다.

한국의 민주화는 정치적 민주화의 좁은 틀 안에서만 추진되었기 때문에 사회 · 경제적 민주화는 최근까지도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은 군부독재정권 아래에서 온갖 기득권을 누리던 사회 세력들에 대해 거의 손을 댈 수 없게 만들었다. 즉 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침해하는 개혁은 거의 추진되지 못했는데, 그 기득권 세력의 중심에 바로 ‘재벌’로 상징되는 거대자본이 있다. - 137쪽

이 책에서 저자는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자본주의의 발전과정과 더불어 정확한 맥락을 설명한다. 미국과 프랑스 모두 혁명으로 민주국가의 근간을 이루었다. 끊임없이 진화하지 않으면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생리를 가진 제도가 민주주의이다. 이웃나라 먼나라 그리고 우리나라를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 각자의 선택과 판단은 그 다음이다. 정치인, 재벌기업의 총수가 우리들 삶의 조건을 개선시켜 줄 것이라고 믿지 말아야 한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권리를 인정받고 투표에 참여하게 된 지 100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소수자의 권리와 인간의 기본적인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전체를 위해 혹은 미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논리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비민주적인 의식과 제도는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끝없이 부추기고 조장하고 굳건하게 지켜내고 싶은 기득권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가 한 가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과 상반되는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늘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이것에 관한 결과이다. 20대의 비정규직 사태, 88만원세대, 등록금 문제 등 자신들의 직접이익과 결부된 사회제도나 경제 현실에 대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무 중에 하나가 ‘투표’ 행위로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일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 빈곤층의 투표 현실까지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또 다른 한 권의 책으로 다룰 만한 주제지만 저자는 간단하게 이렇게 정리한다.

자신의 이익과 상반된 투표를 하는 이유

많은 노동자들이 보수적인 정당을 지지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민족, 인종, 종교, 국가, 지역 등과 관련된 적대감 때문인데 이는 노동자 계급을 끊임없이 분열시켜왔다. 둘째, 실업자에 대한 적대적인 취업자와 복지혜택의 수혜자가 느끼는 분노, 그리고 고용안정이 보장된 공무원에 대한 민간 부문 노동자의 시기심 때문이다. 셋째, 노동조합으로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혜택을 불공평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존 사회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국민 다수를 설득하기 때문이다. 다소 적더라도 기존 체제 내에서 누리는 그들의 몫이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투쟁을 통해 얻게 될 몫보다 훨씬 낫다고 말이다. - 187쪽

소련과 동유럽은 현실 공산주의 국가로 20세기에 가장 극적인 혁명을 이루었다가 사라진 나라들이다. 그들의 민주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가 결국은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과 시스템 그리고 관심과 참여의 문제라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최근에 남미의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에서 불고 있는 신선한 바람을 지켜보자. 넬슨 만델라로 대표되는 아프리카의 민주화, 밑으로부터 열망이 살아있는 아시아의 민주주의 등 전세계는 여전히 민주주의 투쟁의 한복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가진 문제의식은 결국 막대한 자본과 민주주의의 싸움, 정치동맹을 이루고 있는 유럽연합의 탄생 등 당대 현실에 대한 고민으로 모아진다. 민주주의의 과거와 현실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현실적인 과제를 확인하고 나면 이제 남은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민주주의는 전진하거나 퇴보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옹호자들은 그들의 입장이나 명분을 주장하는 것을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 189쪽

저자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완성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끊임없이 전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퇴보한다. 그 민주주의의 원동력은 아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가진 자, 똑똑한 자, 힘이 센 자들이 민주주의를 개발했거나 다수의 국민을 위해 시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그것이 이 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이렇게 마무리 한다.

늘 그래왔듯이 민주주의는 희망에서 출발한다. - 199쪽


11020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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