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힘 -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조건
이창용 외 지음 / 황금물고기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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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 동영상 그리고 종이책

EBS의 지식채널은 짧은 동영상만으로도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 못지 않은 감동과 정서적 충격, 지적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적어도 광우병관련 영상 때문에 경영진으로부터 보복 인사 조치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기륭전자3년’을 마지막으로 지식채널을 떠난 김진혁PD가 곧 지식채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시대를 비판하고 각성을 촉구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남은 자들은 낮은 자세로 복지부동하거나 심한 자기 검열에 시달린다. 세월이 하 수상하니 누구를 탓하랴, 다만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될 뿐.

책으로도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EBS의 프로그램들은 자주 책으로도 독자들과 만나게 된다. 방송 시간을 놓친 시청자들이라면 다시 보기 동영상을 통해 보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 아닌가. 왜 종이로 된 책으로 내용을 살펴보고 싶은 것일까. 그것은 방송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깊이와 구체적인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닐까. 다큐 프라임 ‘이야기의 힘’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책은 책 나름의 원칙과 방법으로 독자와 만난다.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표지 디자인으로 책과 첫 대면을 하지만 기획에서 편집, 교정, 교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숨어 있다. 이것은 물론 책의 ‘꼴’에 대한 부분이다. 책의 ‘속’은 작가가 책임지지만 책의 꼴은 편집자의 몫이다. 그에 앞서 ‘출판기획’이 선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모든 과정을 생각하지 않고 마지막 결과물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 결과물에는 가끔 ‘옥의티’가 있을 수 있다. 사극의 배경 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가면 분위기가 확 깨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이 반복될 때 그 책의 속(내용)은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꼴(형식) 때문에 완전히 실망하게 될 때가 있다. 다음 몇 문장을 살펴보자.

◆ 경복궁은 말이야, 원래 1939년에 태조 이성계가 만들었어요. 1939년, 참 까마득…… 하지? - 35쪽
◆ 최고의 로맨스로 이야기되어지는 이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깊이 각인되는 기억을 선물해주었다. - 57쪽
◆ 백호 :(난처해하며) 아니, 그게 아니라…… 범인을 놓쳐가지고…….
남자 : (화를 내며) 됐어요! (아이를 안고 돌아서며) 자, 가자. 많이 놀랐지? - 76쪽
◆ 인간은 자신의 삶을 방향을 찾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 106쪽


1392년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한양으로 천도하여 1395년에 경복궁을 창건했다. 1939년?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치명적인 실수다. 두 번째 문장에서 ‘이야기가되어지는 이 이야기’가 무슨 말인가. ‘최고의 로맨스로 인정받은’, ‘최고의 로맨스로 평가받는’ 정도면 어색하지 않은 문장이 되었을 것이다. 세 번째, 대화 상황의 ‘백호’는 범인이다. 이 대사는 분명히 경찰인 ‘대찬’이다. 마지막 문장은 ‘인간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로 고쳐도 어색하지만 ‘삶을 방향을’을 그대로 둘 수도 없다. 꼬인 문장을 풀어야 한다.

가독성을 해치고 책의 질을 완벽하게 떨어뜨리는 몇 개의 문장에 표시하며 책을 읽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쓰고 만들어 본 경험 때문이 아니라 ‘펴낸이’와 ‘기획’은 있으되 ‘편집’은 없는 이 책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는 2011년 11월 청소년권장도서로 선정했다. 입맛이 쓰다. 좋은 책의 절반은 편집자가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좋은 작가만큼 출판사도 꼼꼼하게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야기, 소설 그리고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시간은 인관관계를 공간은 상황과 조건을 만든다. 여기에 사건이 결합되는 전통적 서사구조를 이야기라고 한다. 이야기는 문학이고 역사이며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뒷담화를 쫓아다니는 사람이나 입만 열면 무수한 소문에 상상력을 보태 전하는 사람처럼 미성숙한 인간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최근에 다양한 매체의 발달과 더불어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다 보니 전통적인 서사와 소설 그리고 스토리텔링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졌을 뿐이다.

이야기란 ‘어느 순간 삶의 균형을 잃은 주인공이 그 균형을 회복하고자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어렵다.’를 다루는 것이다. 멜로, 액션, 스릴러 등 모든 장르의 영화와 아야기의 뼈대는 바로 이것이었다. - 5쪽

로버트 맥기는 “이야기란 어떤 사건에 의해 삶의 균형이 무너진 주인공이 그 균형을 회복하고자 여러 적대적인 것들과 맞서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고 한다. 이제 그의 책을 읽을 차례가 된 것 같다. 드라마와 영화를 기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의 기본 골격을 떠올려 보자. 균형을 잃어버리고 적들과 맞서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이라면 그것은 ‘이야기’의 기본 골격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인생에 열광하는 것일까. 한정된 범위에서 조금씩 움직이고 오로지 안정과 편리를 추구하는 현실 욕망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모든 인간의 욕망은 아닌가.

탄탄한 구조, 개성 있는 등장인물, 반전의 묘미, 비극을 이용한 공감대, 아이러니의 활용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갖추어야 할 요건들은 만화든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마찬가지다. 이 책은 이러한 이야기의 기본 조건을 알기 쉽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단계와 방법을 제시한다. 스토리텔링 시대를 분석하고 성공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마케팅과 비즈니스에 이르기까지 점차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PD와 작가가 한 팀이 되어 아이디어를 내고 전체 구성과 구체적인 내용을 재미있게 제시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과정이 짐작된다. 시청자들을 위해 알기 쉽게 구성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다만 매체를 뛰어넘어 시청자가 아닌 독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충분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야기 혹은 스토리텔링? 어디에 초점을 맞춘 것인지, 그것이 우리들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지 조금 더 명쾌하고 깊이 있게 전달할 준비가 되었다면 ‘왕과 왕비’ 예문같은 진부한 소설의 이론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리라. 
 

20111116-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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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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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무엇이냐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다. - 25쪽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아주 먼 옛날, 300만 년에서 500만 년 사이에 원숭이들이 두 발로 서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자유로워진 두 손은 이제 무언가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방향감각이 더 예민해졌으며 더 넓은 시야가 확보되었다. 약 20만 년 전, 원숭이들은 뇌의 용량이 커졌고 드디어 현생 인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다.

아프리카 대륙은 5억 5000만 년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가장 오래된 대륙이고 가장 많은 지하자원을 품은 대륙이다. 인간은 여기서 처음으로 곧게 서서 걷는 법을 배운 것이다. 약 10만 년 전에 이들은 대륙을 떠나 중동으로 진출했고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던 베링을 통해 아시아에서 북아메리카로 이동했다. 유전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프리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빈곤과 기아, 각종 질병과 AIDS, 종교 분쟁과 정치적 혼란 등으로만 기억하는 대륙 아프리카.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을 떠올려보자. 아프리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갖게 된 편견은 아닐까. 인간이 다른 인간과 사물에 대해 갖게 되는 잘못된 판단과 심리적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 이성의 힘은 아닌가.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너무 멀기 때문에 생활에 불편이 없기 때문에 이해와 관심이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다른 많은 편견처럼 아프리카는 그저 무관심한, 불필요한, 의미 없는, 보기싫은, 열등한 대륙인가. 우리 인류의 기원이 되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관심은 아닌가.

검은 대륙 아프리카, 그 고통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의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알지도 못하면서 갖게 된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한방에 날려주는 책은 아니다. 다만 편견과 의심 없이 아프리카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들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한 사람이 살아온 발자취를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 유럽에 대한 역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아프리카의 과거를 알게 된다면 우리가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사라지지 않을까.

이 책은 케이프타운에서 거주하는 네덜란드계 독일인에 의해 씌어졌다. 저자는 잘못된 아프리카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거창한 의도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기쁨을 드러내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검정은 많은 색깔들을 갖는다.
우리가 찾는 빛깔은 검정,
검정은 아주 다채롭고
검정은 장님한테만 어둡게 보인다…….


함부르크 대학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던 소년이 부르던 노래처럼 ‘검정’이라는 색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이야기에 불과한 책이다. 그 오랜 시간 아프리카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일들과 대륙에서 살아온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기에 이 한 권의 책은 너무 작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와 검정색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차별이 아닌 차이를 경험해야 한다. 인간의 탐욕과 폭력이 빚어낸 비참한 아프리카의 역사를 바로 보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이 갖는 아주 작은 의미이다.

기원전 5억 5000만 년 전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는 긴 시간을 개괄하며 검은 대륙 아프리카가 걸어온 길을 설명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저자 루츠 판 다이크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기원과 다양한 문명을 소개하는 데 절반을 할애했고 나머지 절반은 유럽 열강들의 침략과 아프리카의 해방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살육과 일방적인 폭력, 짐승처럼 팔려간 노예들의 역사는 어떤 비극적인 표현도 부족해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에 이르는 험난한 여정 또한 신산스럽다. 아직도 빈곤과 기아, 에이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검은 대륙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그 원인을 알고 역사를 바로 보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세계사’를 단순히 승자의 역사로만 기억할 수는 없다. 수많은 패자의 눈물과 짐승처럼 죽어간 사람들의 피를 잊지 않는 것이 현재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아닌가 싶다. 그들이 잃어버린 혹은 우리가 빼앗은 것이 무엇일까. 무지는 죄악이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하는 책이다.

“마침내 이곳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시오!”(1895년 서아프리카 모시의 왕) - 140쪽


2011111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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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을 위한 세계사 - 산업혁명부터 지구화까지 25개 테마로 세계를 읽는다, 개정판
김윤태 지음 / 책과함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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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없고 미래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457쪽

하나의 세상, 두 개의 눈

저녁 무렵 우연히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한 후 누군가를 만나 사고 소식을 전한다. 그러나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사고를 전달하게 된다. 뉴스에나 신문기사에 나오는 내용 또한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늘상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다. 하나의 세상을, 동일한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두 개다. 왼쪽과 오른쪽 눈의 시선이 겹쳐 입체감을 형성하고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안의 두 개의 눈이 다른데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가로지르는 역사서술이란 무엇인가. 연대기 순으로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는 단선적인 방법에 익숙한 우리는 왕조중심의 한국사, 유럽중심의 세계사에 너무나 익숙하다.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인류의 역사를 성찰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넘나들며 상황을 파악하고 원인과 결과를 통해 그 의미를 읽어내는 일은 역사가들만의 몫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살펴볼 수 있는 눈은 타인의 그것을 빌릴 수가 없다. 그래서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없고 미래 또한 존재 하지 않을 것’이라는 김윤태의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의 마지막 문장은 당연하지만 의미심장하다.

세계사는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역사이다. 인종과 국가, 종교와 문화, 언어와 민족을 넘어 시간의 두께와 공간의 흐름을 읽어내는 세계사는 숱한 역사가들의 지적대로 두 가지 전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는 ‘선택’의 문제이다. 어떤 사건과 인물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세계사는 다르게 서술될 수 있다. 신문의 편집처럼 선택 자체가 주관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관점’의 문제이다. 왼쪽에서 볼 것인가 오른쪽에서 볼 것인가 위에서 볼 것인가 아래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 역사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벌써 짐작했겠지만 ‘산업혁명부터 지구화까지 25개의 테마’로 읽는 이 세계사는 차례를 통해 저자의 관점과 책 전체의 흐름을 우선 음미할 필요가 있다. 맹자의 말대로 한 권의 책을 읽고 작가의 생각에 무조건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을 필요조차 없지 않겠는가. 진보적 관점에서 세계사의 주요 장면들을 해석한 이 책은 익숙한 인물과 사건들이 펼쳐져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의 문제가 관심의 초점이다.

상식과 교양 그리고 세계사

아주 먼 옛날 고등학교 영어시간에 ‘common sense’와 ‘good sense’의 차이를 설명하시던 영어 선생님이 떠올랐다. 상식과 양식 혹은 상식과 교양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갖춘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삶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제목처럼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가 아니라 ‘교양인’이 되기 위한 세계사이다. 잡다한 상식과 역사적 사건, 과거의 인물에 대한 정보를 나열한 책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과 풍부한 독서와 관련 분야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통해 각각의 테마에 집중하고 있다. 시기로 말하자면 근현대 세계사에 해당한다. 아주 먼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우리들 삶의 조건을 형성하게 된 세계사를 짚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과거의 책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설명과 나열이 아니라 정확한 분석과 해석이다. 각각의 개념들을 짧은 분량으로 설명하는 것은 깊이도 없고 내용도 빈약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나름의 관점으로 명확하고 조리 있게 정리하고 그 의미를 분석한다. 어렵지 않게 읽히는 문장과 밀도 있는 해석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만큼 개성 있고 독특한 교양서로 손색이 없음을 증명한다. 각 장 끝에 ‘더 읽을 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코너이다. 책을 읽을 때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잘 만들었는지, 저자는 또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볼 때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는 양서들이 소개되어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연표와 색인목록은 책의 꼴을 제대로 갖춘 마무리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책과 논문, 칼럼, 학술회의와 토론회의 내용이 일부 담겨 있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어색하거나 이질적인 느낌은 없다. 각각의 주제에 집중하면서도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과 인물을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다. 성인과 청소년들에게 두루 맞춤한 책으로 추천할 만하다. 어떤 역사도 완전한 객관성을 확보할 수는 없다. 다만 다양한 관점을 가진 책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역사란 어느 한 면만 보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과거란 모조리 부정하거나, 무조건 수긍할 수 없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시각을 갖고 있는 한 과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합의에 도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369쪽


1111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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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나선 - 생명에 대한 호기심으로 DNA를 발견한 이야기 궁리하는 과학 1
제임스 D. 왓슨 지음, 최돈찬 옮김 / 궁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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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의 전환점이 된 수많은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다. 곰팡이에서 우연히 발견된 페니실린부터 유럽의 근대사를 뒤바꾼 드레퓌스 사건에 이르기까지 지금 우리들 삶의 조건은 숙명을 가장한 우연이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나비효과처럼 결과를 알 수 없는 원인과 결과가 반복되는 원인은 거슬러 또 다른 원인의 결과였을 것이고 결과는 또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과학적 발견이거나 철학적 성찰이거나 마찬가지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끝없는 열정,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는 집요한 탐구, 전혀 다른 방식의 창조적 상상력, 타인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세,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독창성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건들이 지금 이 순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숱한 씨줄과 날줄이 모여 현재를 만들고 미래의 토대를 마련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인간은 무엇인가. 과학은 철학에서 출발한다. 모든 것의 기원을 찾고 사물을 바탕을 찾으려는 욕망이 과학자의 자세이다. ‘왜’라는 의문부호를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이 과학자의 운명은 아닌지 모르겠다. 군대를 가지 않아 인생에서 가장 명민한 시절을 학문에 몰입할 수도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불과 23세의 나이로 코펜하겐을 거쳐 캠브리지에서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제임스 왓슨 선택받은 조건을 갖춘 과학자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일반인들 머릿속에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밝혀 크릭과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은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과학적 성취에 대한 실명 소설처럼 읽힌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1953년 4월 25일 <네이처>에 DNA 구조를 밝힌 짧은 논문을 발표하며 생명과학 분야에 놀라운 발자취를 남겼다. 제임스 왓슨은 이 과정을 다룬 『이중나선』은 딱딱한 과학 이론서가 아니다. 과학자들의 연구 과정과 개인적인 일상사가 그대로 드러난 이 책은 흥미진진한 과학사로 읽어도 무방하고 1950년대 캠브리지를 중심으로 한 과학자적 성과로 읽어도 좋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연구 분야에도 불구하고 DNA 구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끊임없는 토론 과정은 학문을 대하는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만하다. 마지막 부분에서 미국의 폴링과 경쟁하는 장면은 흥미진진한 소설을 보는 재미도 있다. 과학 용어와 상식이 부족하지만 간단한 이론적 설명이나 그림이 삽입되어 있고 지루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아 읽는데 큰 지장은 없다.

짧은 분량의 이 책은 추천사를 쓴 최재천의 말대로 과학자에게 왜 글쓰기가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축적된 연구 성과와 역할로 볼 때 프랜시스 클릭이나 노벨상 공동수상자인 윌킨스에 비해 제임스 왓슨이 더 명성을 떨치게 된 이유는 대중을 상대로 한 쉽고 재미있는 글쓰기 능력 덕분이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연구 성과를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사회적 관심과 연구 지원 등 다양한 혜택으로 돌아왔고 그것은 또 다시 과학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순환고리의 역할을 해냈다. 과장된 포장이 아니라 1968년에 출간된 이 책이 고전으로 자리잡은 이유를 헤아리며 읽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전달되는 유전정보를 담은 분자들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들의 화학적 특징은 무엇일까. 이러한 생명의 비밀과 신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어 DNA 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릭의 이야기는 어떤 SF소설보다도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생존 인물들이 보여주는 과학과 과학자들의 세계 그리고 1950년대 영국과 유럽의 일상까지 읽어낼 수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에 과한 몇 권의 책에서 시작된 책읽기가 종횡무진 계속되겠지만 왓슨의 호기심을 불꽃처럼 타오르게 했다는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로 이끌어준다. 형이상학적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질문들만큼이나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어느 한 분야도 인간의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분야가 없고 인류의 생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연구하고 노력해야 하는 분야가 많겠지만 생명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과학을 넘어 철학적 관점으로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과학은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줄 수도 없고, 죽은 사람을 살려 낼 수도 없다. 하지만 무지한 인간에게 아주 작은 앎의 기쁨을 느끼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질문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너와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중나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111108-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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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운동 비타 악티바 : 개념사 12
이성재 지음 / 책세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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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채널 1968(68혁명) 1부 - 주동자가 없는 시위(http://home.ebs.co.kr/servlet/wizard.servlet.admin.program.vodaodListServlet?client_id=jisike&command=vodplayer&charge=E&program_id=BP0PAPB0000000009&step_no=0001&seq=1178012&type=A&vodseq=241620)

세계화의 물결은 시간과 공간을 개념을 확장시켜 놓았을 뿐 아니라 획일적이고 몰개성적인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구촌이라는 이름으로 이웃나라를 넘다들고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화폐 통합이 이루어지는 세상은 유럽공동체의 이상과 꿈이 아니라 자본의 폭력과 브레이크 없는 무한 경쟁의 시나리오라고 볼 수 있다. 부자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는 하루 이틀의 문제도 아니지만 구조적인 모순이 콘크리트처럼 굳어지고 그들만 행복한 세상이 지속될 거라는 가당찮은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역사는 인류에게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가르침을 주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다.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것이 인간이고 사회는 유기체처럼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순간 ‘혁명’은 불가피한 것이 되고 만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국가를 점령했던 박정희의 군사 구테타를 혁명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폭적이고 평화로운 혁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구 곳곳에서 혁명은 언제나 그렇게 조용히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1968년 5월은 유럽에서 혁명이라 부를 만한 역사적 변곡점을 맞이했지만 띠동갑인 1980년 5월 대한민국에서는 혁명이 되지 못한 채 군인들에 의해 시민들이 잔혹하게 학살당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 대한 대응방식은 각 국가와 민족의 정치와 역사적 전통 그리고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그리고 또다시 18년이 흘러 2008년에 불붙기 시작한 ‘촛불’은 드디어 시위가 놀이로 치환되고 물대포에 웃음으로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세대의 또 다른 열망으로 드러났다. 배후를 언급한 구세대의 음모론 그들의 프레임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스타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중학생부터 유모차까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변화의 요구와 과거로의 회귀를 거부하는 욕망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월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1대99 거부 운동은 어떤가.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위 0.1%의 생활수준과 병역기피,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등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의 기본 조건에 사람들은 분노하기 시작했고 ‘저들’은 침묵하는 다수의 심중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사람들에게 표를 준 대한민국 국민들 스스로의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 오로지 ‘경제’와 ‘돈’이 신앙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불행한 이유를, 희망과 웃음의 의미를 이제라도 조금씩 생각해 보아야 할 때는 아닌가.

책세상의 열두 번째 개념사 시리즈 『68운동』은 유럽문화의 또 다른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던 1968년 전후를 조망하고 있다. 우리와 무관한 시공간에서 벌어진 사회적 변혁운동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독자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모순과 당시 유럽의 상황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진 변화 양상을 살펴가며 읽는다면 왜 현재진행형으로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변화의 열망은 단순히 ‘친북좌파’와 ‘보수꼴통’의 싸움이 아니다. 건강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친북좌파식 공산주의적 발상’이라고 매도했던 부유세, 일명 ‘버핏세’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입장 변화는 그들도 친북좌파식 공산주의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다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접근의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

정치는 사람들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노무현은 권력은 이미 자본의 손에 넘어갔다고 했지만 가장 큰 도둑에게 가장 관대한 우리들의 의식이 더 큰 문제는 아닌가. 각종 편법과 불법으로 상속된 재산으로 기업을 지배하고 그 돈은 세상을 지배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무소불위의 기업으로 성장 중인 대학의 부패,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진학률과 등록금, 세대간의 갈등과 기성정치에 대한 환멸,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 등 나열하기도 힘든 수많은 사회 문제들이 단 하나의 처방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지금 다시 왜 1968년을 돌아보아야 하는지의 문제는 우리의 현실 속에 답이 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촉발된 68운동 돌아보고 독일과 이탈리아, 미국과 영국의 전개 양상을 살펴본다. 이후에 68운동은 무엇을 남겼을까. 교육, 노동, 정치, 여성,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전근대적 요소를 바꾼 계기가 된 이 운동은 점진적인 변화 요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이기도 하다. 가만히 앉아 손가락을 빨고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법이다. 『88만원 세대』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라고 요구했던 저자들의 목소리는 이런 맥락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68 운동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아직도 레드컴플렉스에 사로잡혀 선거용 카드로 사용하는 대한민국에서 모든 사회 변혁 운동은 ‘불온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대학거부 선언이 이어지고 고용 없는 기업의 성장, 보편적 복지 대책 없는 고령화 사회, 사회안전망이 허술한 미래, SNS까지 검열과 심의의 욕망을 드러내는 정권 등 우리 사회에서 지금 이 시기에 68운동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모든 역사는 현재적 유용성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학문적 지식과 이론적 틀을 연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역사는 언제나 우리들의 삶을 성찰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살펴야 할 대한민국의 진지한 표정이어야 한다. 가볍게 개념을 확인하고 보다 깊고 다양한 책들을 만나기 위한 징검다리로 삼아도 좋겠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여기’의 좌표를 읽어내려는 작은 노력의 시작으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지식채널 1968(68혁명) 2부 - 실패한 혁명(http://home.ebs.co.kr/servlet/wizard.servlet.admin.program.vodaodListServlet?client_id=jisike&command=vodplayer&charge=A&program_id=BP0PAPB0000000009&step_no=0001&seq=1178017&type=A&vodseq=24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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