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도시의 인문학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15
김석철 지음 / 돌베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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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채움

건축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집’이 거주의 목적을 넘어서는 데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르 코르뷔지에나 안도 다다오는 사적인 생활 영역인 ‘집’에서부터 그들의 건축이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 조건이며 거주의 목적으로 지어진 ‘집’에서 출발한 건축은 다양한 목적으로 고유의 기능과 아름다움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상상력을 실현가능한 현실로 바꾸었으며 건축도 예외가 아니다. 유리로 된 반짝이는 건물은 물론이고 둥글고 세모난 모양도 가능하다. 다양한 건축재와 시공법의 발달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건물들은 점점 더 크고 화려해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건축은 실용적 유용성과 미적 기능이 충돌한다. 순수 음악이나 그림, 조각의 경우는 극단적이고 추상적인 데까지 나아갈 수 있으나 건축은 ‘기능’ 측면에서 다른 예술과 구별된다. 비움으로써 가득 차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 바로 건축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닐까.

그릇과 마찬가지로 실용적 측면만 살펴보자면 우리는 비어있는 공간만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건축에 관해서는 세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기능이다. 얼마나 적절하게 공간을 분할하고 동선을 고려하고 있으며 실용적인가. 둘째는 예술성이다. 유사한 기능과 효용을 갖추고도 심미적인 측면에서 손색이 없어야 한다. 마지막은 주변 상황과의 어울림이다. 도시 한복판의 좁은 공간 빌딩과 빌딩 사이의 공간인지 아니면 자연과 어우러진 곳에 지어질 것인지에 따라 목적과 기능이 달라진다. 그밖에 건축재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수많은 고려 사항이 더해진다.

하지만 결국 건축의 중심에는 ‘사람’이 놓여야 한다. 자산 가치나 기능적 측면만 고려한 건축은 끔찍한 재앙이다. 대한민국만의 특이하고 기형적인 주거문화인 ‘아파트’를 생각해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과 해석이 나와 있으니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다. 다만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위대한 건축에는 인간 중심의 사고가 선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근대 이전의 역사적 건축물들이 신과 왕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인간을 그 중심에 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문학과 건축

그래서 건축에도 인문학이 필요하다. 건축이 예술로 인정받는 이유는 인간의 꿈과 철학, 미적 본능과 창조적 상상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닌가. 어떤 분야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모든 건축의 바탕에는 인간의 삶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아내야 한다. 건축가는 인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인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며 그들의 철학과 삶을 이해해야 한다.

김석철의 『건축과 도시의 인문학』은 한 눈에 독자를 사로잡는다. 인간과 인문학을 이해하고 있는 건축가의 이야기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가이며 석학 인문 강좌의 강의 내용을 엮은 책이라서 알기 쉽게 건축과 인문학의 관계와 자신의 건축에 담긴 인문 정신을 잘 담아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김석철이 건축과 도시 계획에 대한 이력을 반복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나 그가 담아내려고 했던 각 개별 도시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과 목적은 인문학과 구체적인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건축가가 설계할 도시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도시’를 설계하는 거시적인 안목을 제시하고 있는 부분은 충분히 공감 할 만하지만 도시가 인간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이유와 지역과 목적에 따른 규모와 적정성에 대한 철학적 깊이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는 미디 운하같이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수로가 없어서 도시는 현대화를 쉽게 이루었지만 농촌은 무너진 것입니다. 농촌이 살아 있지 않은 나라는 부강한 나라가 아닙니다. 이탈리아는 물론 일본, 프랑스, 영국 등 부강한 나라들은 모두 농촌이 강합니다. 우리나라는 농촌을 구제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촌을 살리는 일이 4대강 사업이 되어야 합니다. - 73쪽

문맥을 보면 운하가 없어서 농촌이 없다는 주장이며 농촌을 살리기 일이 4대강 사업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운하 중심의 4대강 사업이 농촌을 살릴 수 있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그러나 책의 뒷부분에서 4대강 전체를 하나의 뱃길로 오르내릴 수 있는 운하를 만드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4대강 사업이 운하 중심인가 아닌가, 4대강 사업이 농촌을 살리는 일에 얼만큼 영향을 미치는가, 농촌과 운하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한 정치한 논의는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못해 아쉽다.

이 책의 전체 구성은 고대, 중세,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지식산업사회, 한반도 등 크게 다섯 번의 강의 내용을 순서대로 엮고 있다. 예술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초적인 지식과 건축가의 경험이 함께 어우러져 알기 쉽게 설명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흐름이 없어 아쉽고 건축과 인문학에 대한 건축가의 확고한 철학이나 일관된 사유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아 아쉬움이 많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친환경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패러다임이 필요한 이유와 인간의 삶과 건축이 맺고 있는 필연성에 대한 폭넓은 성찰을 담고 있는 책이 읽고 싶어졌다.


20111127-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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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중력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
홍정선.강계숙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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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또 다시 100권이 쌓였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은 1978년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로 출발했다. 1990년 100권 째 기념으로 나온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를 감격스럽게 읽었던 기억이 새로운데 벌써 1997년에 200권 『시야 너 아니냐』에 이어 2005년에 300권 『쨍한 사랑 노래』 그리고 2011년 400권 『내 생의 중력』을 읽었다. 다른 어떤 느낌보다도 켜켜이 세월이 쌓이고 생은 저물어 가고 또 다른 생명이 피어나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어렴풋한 감흥. 신비롭고 기묘한 생의 감각.

시인과 비평가가 걸러낸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지난 6년간의 시간이 그 이전 100권의 단위처럼 엮였다. 불연속적인 시간을 분절적으로 사용하고 돌아보고 성찰하는 인간의 습성.

광휘의 속삭임

저녁 어스름 때
하루가 끝나가는 저
시간의 움직임의
광휘,
없는 게 없어서
쓸씀함도 씨앗들도
따로따로 한 우주인,
(광휘 중의 광휘인)
그 움직임에
시가 끼어들 수 있을까.

아픈 사람의 외로움을
남몰래 이쪽 눈물로 적실 때
그 스며드는 것이 혹시 시일까.
(외로움과 눈물의 광휘여)

그동안의 발자국들의 그림자가
고스란히 스며 있는 이 땅속
거기 어디 시는 가슴을 묻을 수 있을까.
(그림자와 가슴의 광휘!)

그동안의 숨결들
고스란히 퍼지고 바람 부는 하늘가
거기 어디서 시는 숨 쉴 수 있을까.
(숨결과 바람의 광휘여)
- 정현종, 『광휘의 속삭임』(352)에서


대가의 숨결과 노련한 솜씨가 자연과 인간과 시간의 비밀을 벗겨 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들춰내기도 한다. 내 안의 숨은 그림자와 타인과의 관계를 끝없는 기다림으로 표현하기도 하면서.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떠나온 점등인의 별로 돌아가며
이제 떠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고래는 기다리는 사랑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 정일근,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358)에서


무언가 기다릴 것이 있다는 것은 아직 삶의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조금씩, 꼭 그만큼씩 사라져 가는 어제와 오늘이 아니라 멀어진 거리만큼 다가오고야마는 미래의 시간들이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비밀이 아니라 알고 싶지 않는 생의 이면일 수도.

알 수 없어요

내가 멍하니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고

내가 생각에 빠져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왜 그리 멍하니 있느냐고

거미줄처럼 얽힌 복도를 헤매다 보니
바다,
바닷가를 헤매다 보니
내 좁은 방.
- 황인숙, 『리스본行 야간열차』(341)에서

의미와 무의미,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물과 불, 산과 강. 언어의 반대편 혹은 모순을 들여다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을 들여다보라. 거기에 시가 찾는 진실이 숨어 있다. 아니, 인간의 눈과 귀와 입을 막아버리는 검은 그림자가.

모순 1

삶의 갈래
그 갈래 속의 수렁
무수하다

손과 발은 열 길을 달려가고
정수리로 치솟은 검은 덤불은
수만 길로 뻗는다
끝까지 갔다가 돌아 나오지 못한 진창에서는
바글바글 애벌레가 기어오른다

봄꽃들 탈골한 길로
단풍 길 쏟아진다

손가락마다 지문을 새겨 살아도
내 몫이 아닌 흙이여
- 조 은, 『생의 빛살』(374)에서


목소리 높여 옳고 그름을 외치고 적당한 거리와 시선이 만들어낸 착각을 믿으며 달콤한 합리화로 밀어붙이는 힘! 파리는 늘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죽을 놈과 살 놈을 구별하지도 못한 채.

파리

꿈은 늘 제자리에서 맴돈다
적당한 거리와 시선이 만들어낸 착각에
세상은 떠 있다
밥상머리에 달라붙은 파리들은
한시도 가만 있지 않는다
자유로운 어둠을 뚫고 생겨난 생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파리채를 들고 가까이 가자
죽을 놈과 살 놈이 구별되지 않았다
- 조인선, 『노래』(378)에서

그리하여 머나먼 지구별로의 여행자들은 ‘당신’에게 고백한다. ‘사랑하는 당신께’. ‘당신의 텍스트는 나의 텍스트’라고, ‘나의 텍스트는 당신의 텍스트’라고. 내가 당신의 텍스트가 아니라 당신이 나의 텍스트가 아니라 이렇게 네모난 시 안에서 당신과 나와 텍스트가 뒤섞이듯이 혼란스럽게 컨텍스트를 외면한 채 끝없이 나와 당신과 텍스트가 꼬리를 물고 텍스트는 텍스트라고.

당신의 텍스트 1
- 사랑하는 당신께

당신의 텍스트는 나의 텍스트
나의 텍스트는 당신의 텍스트
당신의 텍스트는 텍스트의 나
나의 당신의 텍스트는 텍스트
나의 텍스트는 텍스트의 당신
텍스트의 당신은 텍스트의 나
당신의 나는 텍스트의 텍스트
텍스트의 나는 텍스트의 당신
당신의 나의 텍스트는 텍스트
나의 당신은 텍스트의 텍스트
- 성기완, 『당신의 텍스트』(349)에서



201111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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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1-11-26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300권째 나온 쨍한 사랑 노래를 산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책꽂이 한켠에 놓여있겠군요.

sceptic 2011-11-26 20:58   좋아요 0 | URL
시 읽는 즐거움 오래오래 함께 하세요.
 
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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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와 제목은 독자에게 많은 말을 건넨다. 이미 알고 있는 작가가 아닌 경우 표지 디자인과 제목, 편집과 분량은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책의 목적과 방향을 적절하게 드러내거나 내용을 적절하게 압축한 제목은 책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은 진리는 아니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로 깊은 인상을 남긴 김이설의 장편소설 『환영』의 표지를 본 순간 소설의 제목과 내용과 표지를 한동안 음미했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풀어낼 것인가. ‘오는 사람을 기쁜 마음으로 반갑게 맞는다는 의미의 환영(歡迎)인가 아니면 신기루 같은 환영(幻影)을 의미하는 걸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200페이지가 안 되는 분량의 하드커버의 포장이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으나 허다한 일본 소설류에 손이 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한 그릇에 담겨 있어 마땅찮다.

소설이라는 갈래 자체가 인간의 삶에 대한 비루한 일상을 바탕으로 한다고 전제하면 얼마나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대상인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남루함, 드러내고 싶지 않은 슬픔, 포기하고 싶지 않은 희망,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들이 길게 나열되는 소설을 대할 때마다 독자들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주 오래된, 국어시간에 한번쯤 들어보았을 감정이입이나 카타르시스는 문학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어떤 형태로든 소설은 그 한없이 재생산되는 이야기의 이야기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삶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되는 것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김이설의 소설이 또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없고, 또 어떤 이야기들을 더 담아낼지 모르겠으나 칙릿(Chick Lit)과 거리가 먼 진정성을 담아내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가 나름의 독특한 문체와 개성을 갖춰 나간다는 것은 자신만의 나름의 영역을 구축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김이설의 개성 혹은 색깔은 어떤 것일까.

서른셋의 서윤영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남편과 고시원에서 만나 아이를 갖고 옥탑방에서 함께 살기로 한다.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의 경계를 넘어 물가의 백숙집에서 일을 하게 된다. 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무능했던 아버지와 가난한 어머니 동생 민영과 준영 모두 윤영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고 기대는 존재들이다. 마치 불행 종합선물세트를 완벽하게 갖춘 것 같은 주인공은 ‘여성’이다. 딸이고 언니이며 누나이고 아내이고 며느리이며 엄마인 윤영이 위태롭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을 때마다 삶은 신산스럽게 부서진다.

왕사장과 아들 태민 그리고 함께 일하는 이모님과 언니를 둘러싼 일상은 결코 만만치 않다. 독자들 입장에서 삶을 왜 고해(苦海)라고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면 간접 경험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특별한 소설이 될 수 있겠다. 공감의 끄덕임, 동정의 눈물, 안도의 한숨 – 그것이 무엇이든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투명한 바닥을 들여다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누구나 알 수 없는 생의 비밀을 궁금해 한다. 누가 말해 줄 수 있는지 모르지만 교회와 절로 때로는 무당을 찾아 답답함을 풀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과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다. 생을 대하는 태도와 열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불가해함. 그 비밀의 문을 열고 싶은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닐까. 삶에 지쳐 문득,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거나 빗방울이 후드득 소리를 내는 순간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것은 아닐까.

김이설의 『환영』은 현실을 바라보는 겹눈처럼 다양하게 읽힌다. 경계를 넘을 때마다 우리를 반기는 ‘어서오세요’처럼 읽힐 때도 있고, 현실은 결국 환영(幻影)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다. 다만 그 조건과 상황 그리고 태도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지 않는다. 이 소설의 시작과 끝이 순환 구조인 것 같은 구성은 뫼비우스처럼 우리의 생이 반복되기 때문이 아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한 우울한 샹송 같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삶의 허무주의가 아닌 아주 작은 ‘시작’과 ‘희망’의 불씨를 조금 아주 조금씩만 보여주는 소설을 기다려 볼 참이다.


2011112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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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도종환 지음, 이철수 그림 / 한겨레출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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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평론가 김상욱 교수가 함량 미달이라고 했다는 <흔들리며 피는 꽃>은 시적 긴장감이나 문학적 완성도를 떠나 <담쟁이>와 더불어 도종환 시인과 동시에 떠오르는 시다. 『접시꽃 당신』으로 8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도종환 시인. 이제 25년이 지나 시인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물론 그가 쓴 시와 더불어.

8월에 홍대앞 상상마당에서 고은, 도종환 두 시인의 ‘북콘서트’가 있었다. 2차까지 함께 할 기회가 있어 맥주 한 잔과 더불어 시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에 담겨 있다. 밝은 표정과 웃음을 잃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웠던 시인의 삶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일평생 교육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은 시인의 삶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역사와 민주화운동, 문화운동의 한 부분을 오롯이 보여준다. 그때마다 힘이 되어준 시인에게 시는 어떤 의미였으며 그때마다 어떤 시들이 탄생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이 책은 기쁨보다 슬픔이 웃음보다 눈물이 가득하다.

가난했던 유년의 기억부터 위암으로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접시꽃 당신』의 성공, 그리고 최근의 시집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이르는 과정은 시인의 삶과 시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전적 해설에 해당하는 이 책은 시인의 삶과 시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왔던 시대와 우리 사회의 면면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를 성찰하는 것은 문학적 진실을 반추하는 기회이며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문학이 한 시대를 증거한다고 볼 수 있을까. 도종환의 시는 현실과 서정 사이에 멈칫거리는 부분이 있다. 정호승의 시 회색이라고 비판을 받았던 것과 달리 도종환의 시는 『접시꽃 당신』에 대한 최두석의 비판부터 끊임없이 논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시인은 문지에서는 지난 25년 동안 단 한 번도 원고 청탁을 하지 않았다는 서운함을 통해 자신의 문학적 성과에 대한 회의를 드러낸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도종환의 시가 과연 함량 미달로 느껴질까. 그것의 판단 기준은 비평가의 몫일까. 여전히 자신의 삶과 시에 열정을 잃지 않은 시인의 작품세계를 평가하는 것은 조금 더 뒤로 미뤄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시인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을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그의 삶을 통해 작품 세계까지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도종환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고 아직 그의 시를 읽어보지 않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의 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삶과 문학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적인 약점과 한계를 물어뜯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시인의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다. 타인의 불행과 삶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보다 그 상처를 잘 견뎌낸 그의 시가 아름답다.

시인의 말대로 가슴으로 쓴 시는 독자에게 가슴으로 전해지고 울면서 쓰면서 쓴 시는 눈물까지 전달된다.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써야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들부터 군데군데 묻어나는 한숨과 눈물은 그의 시만큼 가슴을 적신다. 한 편의 시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편의 소설만큼.

손잡고 함께 걷는 일은 어렵다. 사람마다 다른 생각, 다른 관점, 내부적 갈등…….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할 수 없고, 시인 같은 심성만 가진 사람들로 가득하지도 않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담쟁이>는 도종환의 삶과 시를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시가 아닐까 싶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201111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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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1-11-26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랫만에 와보네요.
여전히 좋은 글 쓰고 계시네요.

sceptic 2011-11-26 21:00   좋아요 0 | URL
책에 코를 박고 잉크냄새를 킁킁거리고 싶은 유혹을 버릴 수는 없죠. 감사합니다.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리라이팅 클래식 15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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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주체이며 생존의 수단이기도 한 몸. 원시사회에서 몸과 현대 사회의 몸은 전혀 다르게 인식된다. 몸에 대한 미적 기준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 능력에 대한 중요성도 달라졌다. 근대 이후 질병에 대한 관점은 그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다. 병원이라는 분리 공간이 생기면서 감시와 관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통해 정신 질환에 대한 서구 사회의 편견을 드러낸다. 이성 중심의 서구 사회가 포용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격리, 배척했던 역사를 통해 질병에 대한 음험한 시선을 유추할 수 있다.

17세기는 진실의 상실에서 광기를 발견했다. 즉, 자연이 아니라 자유에 속하는 인간에게서 각성과 주의력의 역량만이 문제시되는 온통 부정적인 가능성을 발견했다. 18세기 말은 광기의 가능성을 환경의 구성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즉, 광기는 잃어버린 자연이고 빗나간 감성, 욕망의 일탈, 척도를 박탈당한 시간이며 매개의 무한 속에서 상실된 직접성이다. - 미셀 푸코, 광기의 역사, 586

이성 중심의 서구 사회는 몸에 생긴 모든 질병을 분리와 치료의 대상으로 보았으며 서양의학은 세포단위로 환원하여 끝없이 세분화하여 처방한다. 해부학의 발달로 우리의 몸은 개인적인 특성과 분리되어 표준화 일반화된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고 매뉴얼에 따라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된다. 다양한 의료기기의 발달과 의술의 발전은 새로운 질병을 끊임없이 발명해 내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어떤 사람도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보면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넓은 범위의 ‘환자’로 살아간다. 임신되는 순간부터 산부인과의 도움은 시작되며 의사의 사망선고로 공식적인 생을 마감한다. 우리는 몸의 주인인가, 아닌가. 어떻게 하면 내 몸의 주체적 주인이 될 수 있으며 어떤 관점으로 몸과 병의 관계를 살펴야 할 것인가.

전통적 직업개념으로 규정할 수 없으나 가장 자유롭고 진정한 의미의 공부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고미숙이 이번에는 몸에 관심을 가지고 『동의보감』을 이야기한다. 그린비의 리라이팅 열 다섯 번째 시리즈로 나온 이 책은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라는 부제로 요약되어 있다. 의학에 대한 관심과 접근이 아니라 우리의 몸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5편(篇) 106문(門)으로 구성된 허준의 역작을 활용하는 방법과 관점은 다양할 것이다. ‘고전’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방식과 다양한 관점을 갖춘 고미숙의 해설은 동의보감이 주는 새로운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고전은 언제나 현재적 유용성을 가질 때만 의미가 있다. 우리가 잊고 있는 몸의 중요성에 대해 각성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책이 아니라 몸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갖게 하는 책이다. 우리의 몸은 개별적 존재로 살아온 환경, 먹었던 음식 그리고 체질과 생활조건이 다르다. 그렇다면 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도 조금씩 달라야 하지 않을까. 콧물이 흐르고 두통이 있고 몸살 기운이 생겨 병원에 가면 한 번에 한 숟가락쯤 되는 약을 지어준다. 감기는 약을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7일 이라는 말이 있다. 균형과 리듬이 깨진 몸을 돌보라는 신호라는 뜻이다. 심한 경우 합병증이 생기고 심각해 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환절기만 되면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기계적인 방식으로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지켜나갈 수는 없다.

의학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처럼 그들만의 암호가 오고가고 언제부터인가 의사는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되었으며 의료산업에서 책정되는 가격은 아무도 적정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비싼 의료 장비와 수많은 검사와 검사료, 적절성을 상식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수많은 수술요법과 치료약들……. 예를 들어 고미숙은 자궁 적출 수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자궁 근종 등 여성 질환의 경우 질병의 근원 자체를 없애버리는 수술을 시행하는 데 이것은 원천 봉쇄의 오류가 아닌가. 임신여부와 무관하더라도 자궁은 필요 없는 기관인가를 묻고 있다.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한마디이다. 과잉진료, 과다복용은 자연치유보다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우리의 몸은 오늘도 안녕한가.

전체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동의보감』과 허준에 대해 상세히 알아 본 후에 『동의보감』의 구성과 내용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후 여성의 몸을 살피는 것으로 끝난다. 책 뒤에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을 저자가 직접 소개하고 있다. 본문 내용에서 자주 인용했고 『동의보감』과 허준에 대해 보다 상세한 내용이나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 책을 더 참고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소개는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정精•기氣•신 神’으로 구성된 우리 몸의 비밀과 음양오행으로 풀어낸 오장육부의 신비 그리고 병과 약의 관계를 순서대로 재미있게 풀어내는 솜씨는 고미숙의 가장 큰 장점인 즐겁고 유쾌한 글쓰기 방식에서 비롯된다.

한 권의 책에서 깊이와 넓이를 모두 담보하려는 욕심만 버린다면 우리는 한 권의 책을 자신의 관점과 비교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얻고 앎의 세계를 넓히거나 다양한 관점을 얻는다는 추상적인 목적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지금 내 삶의 방법과 관점을 조율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책이다. 고미숙의 책은 ‘근대’에 대한 관심을 넘어 열하일기를 주유하고 공부와 사랑과 공부를 넘어 이제 몸속으로 뛰어들었다. 제한된 틀과 제도권에서 벗어난 고미숙의 삶과 공부에 언제나 부러움을 느낄 뿐이지만 그 결과물인 책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 다행이다. 최근 감이당을 개설하고 ‘수유+너머’와 결별을 선언한 이후에 활동도 주목된다. 고미숙의 책은 언제나 즐거운 여행과 같다. 늘 새로움과 자유로운 세계를 안내 받고 싶은 욕심이다. 『동의보감』에서 시작된 몸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 책은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다.

편작에서 융까지, 치유본능에 충실한 의사들의 전언은 한결같다. “병을 만든 것도, 그 병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도, 그리고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의 의사가 되십시오!” 그리고 그것은 이 기나긴 여정을 이끌어 준 우리들의 멘토인 허준의 전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정기신의 발현이자 존재의 원초적 명령이기 때문이다. - 438쪽


201111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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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금, 보험, 저축을 능가하는 노후대비'책'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2-10-2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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