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 창비시선 343
문태준 지음 / 창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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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마음의 갈피를 접어둔다. 소리를 내지 않는 생각은 산꼭대기에 올라 바다를 굽어본다. 사람의 마음 밭에 살고 있는 천사 혹은 악마들은 오늘도 식탁에 마주 앉아 거짓 웃음을 흘리고 있다. 서로 다른 생각들 -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욕망, 타인에 대한 뒷담화, 들키고 싶지 않은 불안 그리고 버리지 못하는 습관 때문에 빈집에 갇혀 울고 있다. 시는 그 모든 내면의 어린아이를 호출한다. 눈물은 이내 증오로 불타오르기도 하지만 나그네로 살아가는 우리 생의 이면을 맑게 투영하기도 한다.

 

문태준의 시는 명징하게 사물의 본질을 드러낸다.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구차하게 변명하지도 않는다. 언어의 이면은 생각보다 때묻지 않은 맑은 얼굴로 빛난다. 의미를 덧칠하고 생각을 왜곡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세치 혀에 불과하다. 순교적인 자세로 언어를 숭배하자는 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간파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반성적 태도가 시를 시답게 한다.

 

세상에 대한 깊이, 정서에 대한 호들갑스럽지 않은 반응, 사물에 대한 진지한 자세가 읽을 만한 시를 낳고 그 시는 늘 먼 곳을 응시한다. 그 먼 곳에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모든 소멸하는 것은 아름답다. 일회적인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줄 아는 시인의 시를 우리는 여전히 경건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빈 집

 

주인도

내객(內客)도 없다

겨울 아침

오늘의 첫 햇살이

흘러오는

찬 마루

쪽창 낸 듯

볕 드는 한쪽

몸을 둥글게 말아

웅크린

들고양이

여객(旅客)처럼

지나가고

지나가는

 

망인에 대한 두려움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우리를 더욱 애닯게 한다. 기억 속에 사라지는 인간은 진짜 죽음을 맞이한다는 낭만적인 잠언은 우리를 슬프게 할 뿐이다.

 

망인(亡人)

 

관을 들어 그를 산속으로 옮긴 후 돌아와 집에 가만히 있었다

 

또 하나의 객지(客地)가 저문다

 

흰 종이에 떨구고 간 눈물자국 같은 흐릿한 빛이 사그라진다

 

인생이든 여행이든 한 번 떠나면 돌아올 수 없는 길이다. 사람들은 이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낭만적으로 전망하지만 이별의 말은 오늘도 공중을 떠돈다. 그것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그리고 글로 쓰지 않아도 시간이 빚어내는 바람의 물결 같은 것이다. 보이지 않아 다행인 것도 있지만 볼 수 없어 안타까운 것들이 더 많을 때도 있다. 있는 그대로만 볼 수 있는 것도 때로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힘이 된다.

 

먼 곳

 

오늘은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나는 이별의 말을 한움큼, 한움큼, 호흡한다

먼 곳이 생겨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면 먼 곳이 생겨난다

새로 돋은 첫 잎과 그 입술과 부끄러워하는 붉은 뺨과 눈웃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대기는 살얼음판 같은 가슴을 세워들고 내 앞을 지나간다

나목은 다 벗고 다 벗고 바위는 돌 그림자의 먹빛을 거느리고

갈 데 없는 벤치는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으로 한곳에 앉아 있다

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혔다

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

 

그래서 많은 시인들은 을 노래한다. 절대 고독의 경지에 오른 섬은 그 고독조차 사치라고 말한다. 사랑할수록 외로워지는 사람들의 아이러니는 오늘도 건재한 신화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조용하여라

저 가슴

꽃 그림자는 물속에 내렸다

누구도 캐내지 않는 바위처럼

누구든

외로워라

매양

사랑이라 불리는

저 섬은

 

사물보다 사람 냄새나는 시를 쓰는 시인도 있다. 박성우 시인은 인간의 향기를 맡을 줄 알고 그것을 보여주는 재주가 있다. 모든 빛깔과 향기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시인에게는 얼마나 중요한가. 게다가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들을 모아 놓은 시집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편안한 순간들을 마치 풍경화처럼 떼어내고 정물화처럼 시간을 멈추게 하는 힘이 박성우의 시에서는 느껴진다.

 

옛일

 

한때 나는, 내가 살던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개살구 익는 강가의 아침 안개와

미루나무와 쓸어내린 초저녁 풋별 냄새와

싸락눈이 싸락싸락 치는 차고 긴 밤,

 

넣을 봉투를 구할 재간이 없어 그만둔 적이 있다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을 들여다보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산사

 

배롱나무 그늘 늘어진 절간

요사 마루엔 노스님이 낮잠에 빠져 있다

 

흙벽에 삐딱하게 기댄 호미와 괭이는

흙범벅이 된 몸을 건성건성 말리고 있다

 

코빼기도 없는 고무신이 삐죽

흙 묻은 코빼기를 내미는 절간,

 

연잎에 엎드린 청개구리만

목탁을 두 개나 들고 예불을 드리고 있다

 

노스님 몫까지 하느라고

울음주머니 목탁을 울퉁불퉁 두드리고 있다

 

이제 숨을 고르고 사물과 자연에서 눈을 들어 내면의 상처를 들여다보자. 밤을 새워 고열에 시달리고 멈추지 않는 발작성 기침 때문에 갈비뼈까지 울리는 날도 있는 법이다. 혼자 아프면 서럽다는 일반적인 사실 때문에 사람을 그리워하고 괴롭지는 않아야 한다.

 

허연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드러내려고 언어의 속살을 뒤집고 생각의 발길을 쫓는다. 우리가 시를 통해 확인하고 싶은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이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맥락이다. 상황을 들여다보고 말과 글이 전하는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시를 읽고 시인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만큼이나 헛되고 헛되다.

 

후회에 대해 적다

 

혼자 아프니까 서럽다는 낡은 문자를 받고, 남은 술을 벌컥이다가 덜 자란 개들의 주검이 널려 있는 추적추적한 거리를 걸었다. 위성도시 5일장은 비릿했다.

 

떠올려보면 세월은 더디게 갔다. 지금은 사라진 하숙촌에서 나비 떼 같은 사랑을 했었고, 누군가의 얼굴이 자동차 앞 유리창에 가득할 때도 그게 끝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아득해지지 않았으니 세월은 너무 더디다.

 

이제 어떡해야 하는 거지

 

아득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 스스로 가해자가 되어 문자로 답을 보냈다. 지금에 와서 나를 울린 건 사랑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었을 뿐.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비를 피해 은하열차처럼 환한 전철 속으로 뛰어들었고. 나는 불행했다고 생각하며 바짓단이 다 젖도록 거리에 서 있었다.

 

그래서 지독한 슬픔이 지나간 시간을 위로하고,

 

지독한 슬픔

 

초코바를 빨며 지나가는 비만의 세월을 나는 안다. 그 지독한 슬픔을

 

버섯구름의 완벽한 구도를. 기울어진 채 녹이 슬어가는 버려진 철선의 고혹적인 빛깔을. 죽어가는 쿠르드 전사들이 불렀던 사랑 노래를. 전소된 집터에서 발견된 깨어진 변기를. 신장개업 할인 마트 앞 미친 풍선 인형을. 전나무 숲에 널려 있는 치골이 튀어나온 흰 시신들에서 느껴지던 성욕을.

 

! 이미 아무것도 아니어서 쪼갤 수 없는 것들. 지독해서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을.

 

 

고개를 들어 편지를 쓴다. 부치지 못한 편지는 여전히 낡은 서랍장에서 뒹굴고 있지만 그 세월의 두께만큼 자신의 삶에는 켜켜이 쌓인 먼지만 나풀거린다. 적지 마라, 외로우니까 쓰는 편지는 견딜 수 없을만큼 자신만 초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편지

 

적어 놓은 건

반드시 벌로 돌아온다

 

밤새 쓴 편지를

감히 다시 볼 수 있는 자는 많지 않다

세상에 모든 편지에는 죄가 많아

인간은 밤새 적은 편지에

초라해진다

 

편지를 받은 모두는 십자가에 매달린다

 

적어놓은 것이니

세상에 남는 법

적은 자들은 늘 외롭고

벌을 받는다

적어놓은 죄, 기록한 죄

편지는 오늘도 십자가에 내걸린다.

 

적은 자의 하루는 슬프고

내걸린 편지는 세상의 어느

호리병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남겨진다

편지를 쓴 죄

그리움 같은 것을 적은 죄

 

그리움 같은 것을 적은 죄를 짓지는 말자. 그것은 얼음의 온도를 재고 싶은 욕망 같은 것이다. 불의 온도, 얼음의 온도가 아니라 우리들 마음의 온도를 걱정할 일이다. 수치로 표현된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아니아니 보이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의 갈피들이다.

 

얼음의 온도

 

얼음을 나르는 사람들은 얼음의 온도를 잘 잊고, 대장장이는 불의 온도를 잘 잊는다. 누군가에게 몰입하는 일. 천년을 거듭해도 온도를 잊는 일. 그런 일.

 

 

120530-053~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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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경제의 역사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3
니콜라우스 피퍼 지음, 알요샤 블라우 그림, 유혜자 옮김 / 비룡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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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스타들이 일주일 동안 단 돈 만원으로 생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만원의 행복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단순히 돈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비싼 음식을 먹자면 한 끼조차 해결할 수 없는 만원은 일주일을 버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하지만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기 때문에 적은 돈으로 선택한 즐거움과 만족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많은 돈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경제학자 부크홀츠는 경제학이란 최선의 선택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경제학이란 우리의 삶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돕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겪는 선택의 갈등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장 큰 만족을 얻거나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가장 덜 힘든 것을 선택하려는 이기적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단순히 일정한 금액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물건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만이 아니라 우리는 거의 모든 순간에 본능적으로 경제학적 선택을 하고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경제 문제는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해졌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움직이는 대부분의 원인이 경제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를 단순히 의 문제로만 환원할 수는 없다. 돈이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모든 행위를 경제학적 이론이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더라도 경제학을 단순하게 돈을 많이 버는 방법에 관한 학문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넓은 의미에서 경제학은 인류가 먹고 살아온 과정에 관한 진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류가 걸어온 삶의 과정과 역사를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되기도 하는 것이 경제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는 우리가 몰랐던 경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게 해준다. 이 책은 경제학에 관한 이론서도 개념서도 아니다. 경제의 흐름과 발전과정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인류의 삶은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리오 휴버먼은 자본주의의 탄생 이전과 이후의 사회, 역사적 맥락을 상세히 설명하며 경제사와 경제 사상사의 중간쯤을 더듬고 있다. 당대의 사회적 상황을 통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가 등장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간접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입법부가 고용주와 노동자들 사이의 불화를 조정하려 할 때마다 입법부의 조언자 역할을 맡는 쪽은 언제나 고용주들이다.’는 애덤 스미스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대가 변했어도 그 관계는 지속되고 있으며 우리는 대부분 고용주가 아니라 노동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고용주와 노동자 어느 쪽이 되든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이해하고 그 변화과정과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눈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이보다 조금 쉽고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니콜라우스 피퍼의 청소년을 위한 경제의 역사는 고대와 중세의 경제부터 자본주의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세계 경제의 미래로 나누어져 있다. 본격적으로 경제학을 공부하기 전에 혹은 일반인들 입장에서 품을 수 있는 호기심을 질문형식으로 바꿔 각 장을 삼고 그에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분량이나 난이도면에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철저하게 자본의 노예가 된 것 같은 현대인들의 삶에서 돈의 의미를 다시 묻고 있는 김찬호의 돈의 인문학은 더욱 값지게 읽힌다. 한진수의 17살 경제학 플러스등의 책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유재산권이 보장되므로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며 기업은 좋은 상품을 개발하려 한다.’는 논리가 아니라 인문학은 당장의 상황을 바꾸어주는 데 큰 힘이 되지는 못하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과 거기에 임하는 태도를 바꾸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돈과 인문학이라는 어색한 만남이 왜 필요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인문학적 관점에서는 가격이 아니라 가치가 중요하고 소유가 아니라 관계가 중요하다. 저자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의 주인이 될 것을 주장한다. 아이들의 꿈과 미래, 남녀관계, 일상생활 등 어느 것 하나도 돈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돈의 무한한 욕망으로부터 한발 비껴서 그것을 바라볼 때 우리의 삶은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지금은 그러한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지 돌아보자.  

 

이에 비해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의 괴짜 경제학은 가장 현실적이고 유용한 경제학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선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이 책은 경제학 용어나 개념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경제학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얼마나 밀접한 학문인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책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는 전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미래와 행복을 꿈꾸며 산다. 이런 세상이 모순된 모습으로 비춰진다면 우리가 세상을 경제의 잣대가 아니라 도덕의 잣대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과 저널리스트 스티븐 더브너의 만남은 이런 모순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단순히 경제학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경제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잠자리의 눈처럼 넓고 다양한 관점을 제공한다.

 

신문 경제면을 이해하기 위한 경제지식이나 데이터와 통계에 의존하는 경제학도 존재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의 힘과 그것이 걸어온 과정을 보여줄 수는 역사적 관점이다. 현 경제체제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비판적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갖기 위해서도 경제학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안목을 제공한다 

 

120528-05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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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하는 시민 즐거운 정치 - 청소년을 위한 정치 교과서 책세상 루트 5
이남석 지음 / 책세상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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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서 존경받는 로마 카톨릭 대주교가 피살되고 19살의 소년 용의자 애런 스탬플러(에드워드 노튼)는 현장에서 도망치다 붙잡힌다. 이 사건을 TV로 본 변호사 마틴 베일(리차드 기어)은 교도소로 찾아가 무보수로 변호할 것을 제의한다. 영화 <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 1996>는 수많은 법정 영화 가운데 극적 반전이 압권이다.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가 탁월했던 이 영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진실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자연법과 실정법이 충돌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까.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과 정의를 외치며 산다고 믿는다. 하지만 세상은 권력을 가진 사람과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에 의해 좌우된다. 현실은 우리 생각보다 복잡하며 정치는 외면할 수 없는 내 생활의 출발이다. 자본주의와 함께 성장해 온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는 도대체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정치 제도 안에서 각종 제도와 법률에 따라 사람들은 기본적인 공동체의 규범을 내면화한다. 학교를 예로 들면, 청소년은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가 합의해서 정해 놓은 규정을 지켜야 한다.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생각이 다를 때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질서를 학교 규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정치 제도와 법을 이해하고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상식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는 꿈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의 기본 질서가 되어야 한다. 눈을 가린 채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과 달리 법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 현실을 자세히 살펴보자.  

 

민주주의라는 말은 권력이 시민에게 있다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이다. 당시의 시민은 어느 정도 재산을 소유한 소수의 성인 남성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수 천년동안 인류를 지배해온 최선의 정치 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질되기도 했으나 민주주의는 근대 이후 대부분의 국가 정치 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단순한 정치제도로만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사회 경제적 문제와 연관되어 있으며 경제적 불평등의 확산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되었다.  

 

제임스 랙서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서 민주주의의 근본에 대한 질문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는 인간 삶의 일반적인 경향, 즉 개선과 진보 때문에 등장한 것이 아니며 자연의 기본 법칙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강변하는 저자의 말은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속성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경제적 민주주의가 무너지면 정치적 민주주의도 버티기 힘들게 된다.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민주적인 질서가 유지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이것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이유는 경제적 불평등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진화하며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인권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제임스 랙서는 이 과정들을 알기 쉽고 편안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 자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연관된 핵심적인 문제를 짚어내며 대안을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경제제도인 자본주의의 발달은 정치제도인 민주주의에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세계화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선 신자유주의가 소수 특권층의 부와 권력을 위해 유지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동력이 아래부터 시작된다는 사실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발전과 변화 과정 그리고 경제 상황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면 눈을 우리 현실로 돌려보자. 이남석은 참여하는 시민 즐거운 정치라는 청소년을 위한 정치 교과서를 통해 정치는 뉴스에만 나오는 정치인들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주인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집단으로서의 국민이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시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잘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위해서는 경제적 의미에서 그리고 정치적 의미에서 참여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행간에 숨겨 두고 있다. 권리와 의무 그리고 표현의 자유 등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덕목에 대해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또한 자본주의의 그림자를 통해 민주주의에서 참여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역설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뺨을 맞아도 훈수를 둬야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 비유는 간섭하고 개입하는 시민 키비처Kibitzer’를 통해 민주 시민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정치, 경제적 삶의 테두리는 법이 규정하고 있다. 금태섭의 디케의 눈은 정의의 여신이 하는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법의 공정함과 평등함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법의 역할과 의미를 먼저 살펴야 한다. 이 책의 시작부분에서 저자는 진실을 찾는 것은 맨손으로 물을 움켜쥐려는 것처럼 어렵고 때로는 불가능하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진실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의 문제부터 사회적 정의(正義)가 무엇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서는 법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법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법을 감시하고 법집행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이다.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무관심은 부작위적(不作爲的) 죄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정된 틀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유기체와 같다. 내가 참여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내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시작된다. 행복한 삶을 꿈꾸며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제도와 규칙에 대해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와 법은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우리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꿔 놓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관심을 갖고 손 내밀어야 하지 않겠는가.  

 

120521-04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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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사회학 에세이 - 구정화 교수가 들려주는 교실 밖 세상 이야기 해냄 청소년 에세이 시리즈
구정화 지음 / 해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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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애벌레는 사방으로부터 밀리고 채이고 밟히고 했습니다. 밟고 올라서느냐 밟혀 짓눌리느냐입니다. 그는 밟고 올라섰습니다.’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의 한 구절이다. ‘는 도대체 누구일까. 혹시 우리의 미래라고 하는 청소년들이 아닐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서 타인과의 관계를 생각해보고 좀 더 확장된 개념인 우리에 대해 고민하는 단계가 바로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는 때라고 할 수 있다. 가족과 학교 담장 밖에 호기심이 생길 무렵, 청소년들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해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호기심은커녕 집과 학교 사이만을 오가며 그림속의 애벌레처럼 밀리고 채이면서 밟고 올라서는 법만 가르치는 것이 현실은 아닌가 생각해 보자.

 

자연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학문과 달리 사회과학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인 사회 현상을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해 연구하는 학문 분야를 말한다. 말하자면 나는 왜 학원에 다니는가?’, ‘우리는 왜 아이돌에 열광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개인적인 답변이 아니라 그러한 사회현상이 벌어지게 된 원인을 생각해보고 대안을 고민해 보는 과정이 사회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사회라는 커다란 조직과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나와 너를 넘어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오랜 시간 개미를 객관적으로 관찰한 뒤에 흥미진진한 소설 개미를 썼다.

이렇게 외부자의 시선으로 한 사회를 관찰하는 것과 다르게 우리 자신이 속한 사회를 살펴보는 일은 만만치 않다.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면 한 줄로 서서 앞으로 나란히를 배운다. 한 줄로 서서 학교라는 사회 안에서 지켜야 할 질서와 규칙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통제와 규율에 익숙해지면서 하지 말아야할 것부터 배우는 곳이 학교다. 하지만 의무보다 앞서는 것이 권리가 아닐까. 시민교육센터 공동대표이자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은 변호사 이한이 쓴 너의 의무를 묻는다는 역설적으로 권리가 아니라 의무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주어지는 투표권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앞서 정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보편적인 의무는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고민해 보자는 책이다. 자신의 이익과 무관하게 인간의 존엄성에서부터 시작되는 진짜 의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이익 추구나 강제성 때문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의무에 대해 설명한다. 사람은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는 당연한 주장에서 시작해서 정의에 대한 이론과 시민 불복종에 대한 기준 등 공동체 안에서 구현되어야 하는 마땅한 의무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한다. 전체 7장에 걸쳐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낸 이 책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사회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시험을 치르기 위한 사회과목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태도에 대해 묻고 있다.

 

구정화 교수의 청소년을 위한 사회학 에세이는 잘 정리된 사회학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게 사회학에 대한 개념과 이론들을 알기 쉽게 풀어 놓은 책이다. 각 장 뒤에 사회학 개념들을 정리해 놓고 있어 교과 공부에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딱딱하게 이론 중심으로 설명해 놓은 교과서의 한계를 벗어나서 실제 사회현상이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생활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쉽고 재미있게 사회학에 대해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사회학에 대한 이론과 개념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학적 상상력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선택을 할 때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 취향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현상의 하나로 의미를 갖게 된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힘이 바로 사회학적 상상력이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고 우리의 선택과 행위는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의 원인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회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와 너의 관계를 넘어 사회 구조와 사회 현상에 대한 깊은 성찰이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거나 대학에 간다고 해서 저절로 사회를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신문과 방송에서 전하는 내용이 세상의 진실로 착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를 읽는 눈이 필요하다. 김윤태의 캠퍼스 밖으로 나온 사회과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회과학적 태도를 길러준다. ‘사회과학은 언제나 당대의 현실을 분석하고 인간 행동의 원인과 유형을 탐구하려고 시도해 왔다. 나아가 더 나은 사회를 모색하려는 열정과 용기를 가진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바로 여기의 문제를 탐구하기 위한 도구로써 사회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학을 학문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없는 일반인들은 거시적인 안목과 사회 현상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심각한 사회 현상이 벌어지게 된 원인을 살피고 대안을 고민하며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민주 시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회과학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할 지식이며 우리 삶의 현실을 읽는 눈이기 때문에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이다. 우리는 언제나 사회적 존재이며 사회구성원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담장 밖의 일들이 바로 나의 현실이 된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곳이며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을 시작할 때다. 나와 너에 대한 관심을 넘어 우리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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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글쓰기 - 발설하라, 꿈틀대는 내면을, 가감 없이
박미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내면의 상처를 회복하고, 한층 더 성숙한 의식을 갖기 위해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치유하는 글쓰기이다. - 치유하는 글쓰기, 5

 

글을 쓴다는 것은 알몸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나르찌스의 시선이다. 또한 영혼의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숨길 수 없는 가장 정치(精緻)한 고백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경험한 것, 아는 것, 생각한 것 이상을 쓸 수 없다는 자명한 논리 앞에 모든 허위와 주장은 무화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글을 쓰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두렵기 때문이 말이다.

 

박미라는 치유하는 글쓰기를 통해 글쓰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말하고 있다. 내면적 상처를 회복하기 위한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물을 필요가 없다. 치유하는 글쓰기는 쓰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의식이며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글이 사람을 치료할 수는 없지만 그 상처를 치유(healing)할 수는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에 주목하고 있다.

 

책 전체는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저자의 글쓰기 체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전하고 있으며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글이 인용되어 직접 그 과정을 증거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다고해서 외면할 수도 없고 보인다고 해서 인정하지도 않는 그것에 대해 우리는 때때로 침묵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오독(誤讀)하더라도 이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치유하는 글쓰기는 그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정면으로 직시해야하기 때문이다. 인정하지 않으면 치유도 없다.

 

사람들은 글을 잘 쓰려면 화려한 미사여구나 매끈한 문장으로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글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타인에게 마음을 열게 하는 글이다. 문장의 형식과 아름다운 수식어는 그 다음 문제다. 박미라의 치유하는 글쓰기와 더불어 읽는 셰퍼드 코마의 치유의 글쓰기를 읽었다. 젊은 시절 편두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50년이나 일기를 써 온 저자의 이야기는 살아있는 체험 그대로의 것이다. 오로지 치유를 목적으로 한 글쓰기는 다른 글쓰기와 어떻게 다른가를 웅변한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향해 외치는 웅변 혹은 잔잔한 떨림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미라와 달리 매우 구체적이고 단계적으로 글쓰는 방법과 예시를 들고 있어 훨씬 실전에 가깝게 느껴진다.

 

글쓰기를 통해 당신 안에 잠자고 있는 예술가를 만난다는 거창한 목표는 필요 없을지 모른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치유를 통한 마음의 평화로, 이미 수많은 경험자들이 효과를 증언하고 있다. 진정으로 치유를 원한다면 펜과 종이, 그리고 글을 쓰겠다는 각오만 있으면 된다. - 97

 

글쓰기가 주는 육체적, 정서적, 정신적, 영적, 통합적 이점을 나열하는 저자의 서문은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내밀한 고백이며 글쓰기를 통해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지점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일기를 쓰듯 서평을 쓰고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미리 유언장을 써보는 행위는 우리들 삶 그 자체이다.

 

산다는 일이 때로 외롭고 힘들겠지만 가끔 푸른 하늘이 주는 위안이 있는 것처럼, 조금 열린 차창 밖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처럼, 백지 앞에 두 손을 가만히 올려놓는 겸손함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도 이와 마찬가지다. 자신을 드러내고 주장하고 외치고 속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진지한 행위가 바로 글쓰기가 아닌가.

 

그러나 이강룡은 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를 통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감에 주목한다. 공감할 수 없는 마음 때문에 치유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람의 화원에서 선생 김홍도가 제자 신윤복에게 했다는 말은 이렇다. ‘그림이란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일이다.’

 

글쓰기도 어쩌면 이 원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구체적 대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정서와 개념을 표현하는 것이 글쓰기의 본질이다. 그래야 글을 통해 본질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실전 글쓰기의 면면을 속속들이 드러낸다. 예를 들어 글을 쓸 때는 구체적으로 쓰라고 조언한다. 구체적으로 쓸수록 보편성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대로 세상을 움직이려 하지 말고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러면 세상도 움직인다. 글을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부분과 전체, 개념 재규정, 예시와 비유 등 실전에서 초보자가 실수하기 쉬운 글쓰기 전략을 수정해 주고 실용적 글쓰기의 실제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은 말하자면 글쓰기의 교과서가 아니라 글쓰기 실전 활용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 권의 책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나만의 글이다. 글은 한 사람의 분신처럼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드러낸다. 모든 사람의 얼굴 생김이 다르듯 같은 내용의 글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한다. 개성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자신만의 문체를 가진 사람을 그래서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수많은 글쓰기 책들 속으로 묻혀 버릴 세 권의 책이 아쉽지 않은 것은 다만 자신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의 글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을 치유(healing)할 수만 있다면 책읽기든 글쓰기든 등산이든 낚시든 음악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삶이다. 그 삶의 과정과 질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속에서 행복을 얻고 삶의 기쁨을 찾지만 마찬가지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고 죽음보다 큰 고통을 맛보기도 한다. 이 삶의 아이러니는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글쓰기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수많은 와 대면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진짜 내 이야기를 써 보자. 

 

 

120516-04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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