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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예술을 읽다
철학아카데미 지음 / 동녘 / 2006년 9월
평점 :
철학과 예술의 관계는 철학과 다른 어떤 분야와도 관계가 깊다.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 책을 읽어도 충분히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만나게 된다. 철학아카데미에서 나온 <철학, 예술을 읽다>는 예술에 대한 철학적 관점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한 사람의 주장과 분석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특정 분야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프리즘으로 햇빛을 들여다보듯 다양한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풍성한 식탁에 차려진 철학과 예술의 성찬을 즐길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에서 예술을 ‘읽다’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다. 읽는 행위는 감상의 차원과 조금 거리를 둔 듯하다.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고 미적 성취를 이룬 예술에 대해 평가하는 것과는 다르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작품의 대상과 표현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도 다르다. 관점은 하나, 철학이다. 철학의 관점에서 예술이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과 아름다움을 분석한다. 철학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객관화할 수는 없겠지만 정형화된 예술에 대한 이해를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 된다. 예술을 바라보는 기존의 통념에 대해 좀 더 신선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태도가 이 책이 갖는 의미이다.
‘예술, 철학과 마주보다’라는 소제목의 1부에서는 예술 전반에 관한 논의들이 이루어진다. 고답적인 철학 안에서 이루어지는 답답한 문제들이 아니라 다른 학문과 예술 전반에 관한 폭넓은 이해와 분석들은 ‘철학아카데미’의 성격과 자유로운 가로지르기를 보여주는 것같아 강의를 듣고 싶은 욕망이 스멀거리게 한다.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가끔 타당해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조광제를 비롯한 저자들(강사들)의 이야기는 알기 쉽고 친근하면서도 고정된 틀이 아니라 열린 토론의 장으로서 역할을 한다.
작은 주제들 뒤에 붙어있는 ‘더 생각볼 문제’와 ‘더 읽어볼 책’은 아주 유용하다. 단순히 읽고 그치기 쉬운 시민들을 위한 철학학교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특히 ‘더 읽어볼 책’을 통해 미뤄뒀던 책이나 새롭게 알게 된 책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는게 다 ‘공부’하는 것이고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종류의 책은 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1부가 총론에 해당한다면, 2부 ‘철학, 예술 사이로 걷다’는 각론에 해당한다. 미술과 음악, 무용, 문학, 연극, 건축, 사진,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재미를 더한다. 각 분야를 두루 읽는다는 것은 깊이 읽을 수 없다는 한계도 지니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시선을 갖게 된다. 한 권의 책을 통해 깊이와 넓이를 모두 얻을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면 이 책은 깊이보다 넓이에 해당한다. 철학이 예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간 경계를 허무는 일에 인색하고 높고 견고한 담을 허물지 않으면 동종교배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특히 모든 학문의 정점에 서 있는 철학의 경우 보다 활발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타 학문과의 교류에 힘써야 한다. 인문, 사회, 과학, 예술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사유와 통합은 어떤 분야를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본다.
보다 쉽고 친근하게, 그리고 새롭고 예리한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들을 제시하는 책들을 독자들은 즐겁게 맞이할 것이다. 동양의 예술에 소홀한 점이 아쉬움이 남지만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협소했거나 중심 추를 바로잡지 못했다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된다. 더 읽어볼 책이 늘어만 간다. 행복한 비명일까? 아는 건 없고 궁금한 건 점점 많아진다. 인식의 힘은 쉽게 길러지지 않으며 산책과 사유의 길은 멀기만 해 보인다.
오늘은 첫 눈이 내렸다.
061106-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