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영미의 값비싼 제안

 

 

소설가나 시인이 인터넷 포털의 검색어 순위에 오르거나 비난 댓글에 시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뭔가 사고를 쳤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최영미가 화제다. 쉰 중반에 이른 그녀는 아직까지 자기 집이 없다. 잦은 이사가 지긋지긋했기에 서울의 한 호텔에 제안을 한다. 방 하나를 1년 동안 주면 어떻겠느냐? 나는 그곳에서 집필을 하고 짬짬이 팬 미팅 비슷한 모임을 가진다. 그러면 저절로 홍보가 되지 않겠는가? 미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답글은 온통 비난 천지다. 게으른 문학인에 대한 모멸찬 언사들이 빗발처럼 차고 넘치고 있다. 언론까지 합세하여 갑질 운운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슬프다. 한 때 이름을 날렸던 대한민국 유명 시인이 집도 없고 수입도 빈곤층에 가까워 정부지원금을 받아야 되는 현실이. 기껏 룸 하나 그것도 1년만 글 쓸 공간으로 내달라는 의견이 욕을 먹어야 되는 이유가. 만약 그녀가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얼굴을 내밀고 유명 연예인처럼 부동산에 투자했다면 이런 모욕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시인이다. 글을 짓고 만드는 본령 외에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것이 죄라면 달게 받아야겠지. 시는 한 글자도 쓰지 않으면서 훈장마냥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소개하며 방송에 나와 살찐 턱을 가누지 못한 채 거들먹거리는 어떤 인간을 부러워해야 하겠지.

 

행여 최영미씨가 이번 일로 의기소침해지고 자기만의 동굴에 다시 갇히게 될까 걱정이다. 그녀로써는 어마어마한 용기를 내어 제안한 것일 텐데 말이다. 그것도 매우 소박한. 참고로 집필실이 따로 필요하다면 문학계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하기를 권한다. 연희문화공간이나 박경리 집필실같은. 작가는 원래 소심하다. 누군가 곁에 있다면 이 일을 대신해주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노무현 정부 시절 작가 이문열의 책을 화형에 처하는 행사가 있었다. 보수 우파의 색채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행태에 대한 진보 진영의 반발이었다. 그 때 가장 크게 화를 낸 이는 박완서였다. 이문열과 그다지 친분이 없어 보였기에 더욱 놀랐다. 그녀는 이념성향의 차이를 떠나 작가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서적을 불에 태우는 것은 모든 소설가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발언을 했을 것이다.

 

시인 최영미씨도 마찬가지다. 딱히 그녀의 시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시인이 집필할 수 있는 공간을 그것도 1년만 내어달라는 제안이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시가 안 팔리면 어디 노동을 하거나 편의점에서 일이라도 해서 벌어먹어야 된다는 말인가? 그러면 시는 언제 쓰나? 시인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이미 붕괴된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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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12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절은 당할 수도 있을 것 같긴하네요.
유명한 작가는 아니니까.
게다가 숙박업 하는 분들이 문학이나 문인들에 대해
애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빈난을 받을 일은 아니죠.
외국은 정말 호텔에서 생활하는 작가들 있잖아요.
정말 애초에 문인을 위한 숙박 프로그램은 알아봤더라면...
그래도 언젠가 누군가는 그 일을 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이문열 분서 사건은 당시 저도 좀 충격이었어요.
아무리 이문열이 정치색이 다르고 죽을 죄를 졌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않나?
작가 자신에겐 얼마나 큰 트라우마겠습니까?
그런데 고 박완서 선생이 분개하셨군요.
필요한 일이었다고 봅니다.

카이지 2017-09-12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성스런 답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