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 '인도'라는 이름의 거울
이옥순 지음 / 푸른역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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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도'라는 이름의 거울"이란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외국 여행을 꿈꿀 때, 그것도 한 달 이상 흘러다니는 생활을 하고 싶을 때, 90년대 초반에는 유럽 여행이 그 꿈의 대상이었고, 그 후반에는 인도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유행처럼 그렇게 되었습니다.

유럽 여행을 꿈꿀 때는 그리스 로마의 찬란한 고대 문명과 함께 세계의 명화들이 가득한 미술관과 박물관을 떠올리겠지요. 그리고 숙박 시설이 청결하고 안락하리란 것을 의심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인도를 생각하면? 고대 문명의 찬란한 유적을 기대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뭔가 신비로운 정신적인 상태를 기대하고, 도시 문명에 지친 심신을 위로받은 끝에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가난한 성자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겠지요.

인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서양인들이 동양에 대해 가지는 환상, 바로 그것이라고 이 책은 말합니다.

우리와 같이 생동하는 사람이 사는 곳, 남루한 생존에 허덕이고, 그러나 수천년 외부 세계와 교통하면서 변화 발전해 온 곳이란 생각은 하지 못한다고,

여행이란 낯선 곳을 만나고 받아들이는 것인데, 19세기 초 그곳을 여행한 서양의 제국주의자들이나 20세기 말 21세기 초 그곳을 여행하는 한국 사람들이나 인도의 과거만을 찾고 자기 속에서 만들어진 환상만을 찾다가 실망해서 그곳을 떠나온다고 합니다. 게다가 열대의 기후는 비교적 북방에 있는 한국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거의 더위지옥이겠지요. 비교적 북방에 있는 영국의 사람들에게 그러했듯이.

우리(내)가 인도(그리고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를 인식하는 방식은 바로 서양제국주의가 인도, 아시아를 바라보는 태도, 그것이다, 서양제국주의의 박제 오리엔탈리즘을 복제한 오리엔탈리즘이다, 하고 이 책은 지적합니다.

박제 오리엔탈리즘과 복제 오리엔탈리즘은 모두 인도에게 두 가지 덫을 씌우는데, 하나는 "인도는 미개한 야만의 땅, 우리보다 후진적인 곳"이란 것이고(그래서 교화의 대상이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나 "인도는 신비로운 정신의 땅, 따라서 선진적인 우리를 모방하고 기술적으로 개발된 인도(서양화한 인도)는 진짜 인도가 아니"라는 것(그래서 서구식 교육을 받고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인 이들은 진짜 인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많이 찔렸고, 그러니 읽는 이에게 어떤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미주까지 합해 231쪽밖에 안 되는 이 책의 문장이란 게 거의 인용문의 동어 반복이라니.
비판을 위해 영국 소설과 우리 작가들의 소설, 기행문, 신문 보도를 인용한 것은 원래 이 책의 서술 방식이지만, 그 외에 지은이의 논리를 전개하는 문장도 거의 선학들의 책에서 따온 것이라고 일일이 미주를 달아놓았습니다. 남의 생각을 슬쩍 갖다 쓰면서 자기 것인 양 시치미 떼는 것보다야 이렇게 인용 출처를 일일이 밝히는 것이 훨씬 훌륭한 태도이지만, 지은이는 이렇게 인용에 인용을 거듭하고, 게다가 앞에서 한 말 뒤에서 또 하는 식으로밖에 글을 쓸 수 없단 말인가?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생각까지 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국 땅에 가면, 예를 들어 한국 사람이 일본에 가든 미국에 가든 인도에 가든, 일단 낯선 땅에 간 사람은 낯선 환경에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그 반응은 일단, 그곳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주관적인 반응일 겝니다. 물론 책이나 신문 기사를 발표하는 데는 사회적인 책임이 따릅니다. 갑남을녀가 무책임하게 소견을 던지는 것과는 달라야 합니다. 공공연한 영향을, 그것도 크게 미칠 수 있는 글에다가 겉핥기 여행 끝에 얻은 자기주관만을 나열하는 건 정말 무책임한 일이지요. 그래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엄격하게 자신을 성찰해야겠지요.
하지만 작가나 기자 역시 처음 경험하는 것에는 서투르고, 그 경험을 거듭하면서 변화 발전할 겁니다. 그런데 그 첫 반응을 일일이 문제 삼고, 더욱이 이 책에서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문제 제기 수준인 책이니까 그 정도에서 의의를 둔다고도 할 수 있겠죠. 이후에 지은이의 대안적인 글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끝으로 한 가지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3장 "상상의 '동양'을 넘어서" 부분 211쪽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물론, 서양이 날조한 '사이비 동양'이나 영국이 조작한 '사이비 인도'를 모두 '사실'로 교정할 순 없을 것이다. 주술사가 악마를 쫓아내듯이 우리 안에서 서양을 완전히 쫓아내기란 불가능하다. 난디의 판단대로 '서양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우리 자아의 일부를 부정하는' 것이고, 아마드의 표현을 돌려서 말하면, 그것은 일제시대에 건설되었다고 철도의 이용을 거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저는, "서양이 날조한 '사이비 동양'이나 영국이 조작한 '사이비 인도'를 모두 '사실'로 교정할 순 없을 것이다"란 말이 어떻게 "일제시대에 건설되었다고 철도의 이용을 거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로 연결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허상을 벗겨내려는 노력이 어떻게 일제가 지은 철도를 타지 않겠다는 아집과 같지요? 원래 의도는, "서양적인 것 역시 우리(인도)가 지금까지 오면서 받아들이고 융화해낸, 인도의 일부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문장의 전개가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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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송어낚시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효형출판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리처드 브라우티건Richard Brautigan 지음, 김성곤 옮김/해설, 효형출판, 2002


원제는 Trout Fishing in America.
리처드 브라우티건이란 사람은 1935년에 태어나 1984년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이 작품집이 발표된 건 1967년이라네요.

전에 천리안 애서가동호회에서 한 회원이 이 작가에 대해 쓴 글을 보고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더랬지요.
1991년에 중앙일보사에서 한번 번역 출간된 적이 있답니다.
그러나 손에 닿질 않아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 하고 있었는데
2002년 효형출판에서 새로 나왔기에 사두었습니다.

책 뒤에 번역가 김성곤 교수(서울대 영문과)의 해설과,
1984년(브라우티건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으로 생각되는데) 작가와
번역가가 대담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걸 보니 김성곤 교수는 아마 미국 현대문학, 그 중에서도
브라우티건의 문학을 연구하는 분인 모양이에요.

그런데,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을 읽었을 때 느꼈듯이,
미국의 현대를 고민하는 미국 남성의 인용하는 상징,
작품의 바탕이 되는 사회 인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겠더군요.
역시 문학을 이해하려면 먼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가 봐요.

문장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 없이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듯한데, 그 하나하나가 읽히질 않더라구요.
그래서 연작 형식으로 구성된 이 소설의 각 단편 끄트머리에
주를 많이 달아놨는데, 그 주란 게 읽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또 마음을 열고 내 느낌 그대로 작품을 보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나중엔 그 주를 보지 않고 단편을 다 읽은 뒤,
주는 슬쩍 훑기만 했습니다.

때로는 정작 주가 필요한데 없는 부분도 있었어요.
<영원의 거리에서의 송어낚시>란 단편에는 첫머리에
"베니토 후아레즈의 출생지인 젤라타오"라는 말이 나오는데,
알고 보니 베니토 후아레스는 멕시코 혁명을 이끈 지도자 중 한 사람입니다.
이런 걸 주로 달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에스파냐어 표기법에서는 "후아레즈"가 아니라 "후아레스"로 써야 합니다.

현대 생태주의 소설의 원조라는 이 책에 전체적으로 공감하진 못했지만,
개중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 단편도 있었습니다.
전체 47편 중 앞부분에 나오는 <나무 두드려보기 2>,
<빨간 입술>과 <쿨 에이드 중독자>, <비탈길에서의 송어낚시>,
뒷부분의 <영원의 거리에서의 송어낚시>,
<타월>, <"빨간 입술"에 대한 각주 장(章)>, <클리블랜드 폐선장>입니다.

그 중 <빨간 입술>과 <"빨간 입술"에 대한 각주 장>은
정말 의미심장한데요. 인간의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먹는 것, 애착(애정의 손길?), 그리고 배설이죠.
배설에는 우리 몸에서 나오는 것도 있고, 우리 삶의 방식에서
나오는 것도 있습니다. 요즘엔 유기농 두부 한 모만 사도
그 포장재를 따로 버려야 하잖아요?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살던 시대에는
배설도 곧 흙의 양분을 더해주는, 상생과 조화의 일부였죠.
그러나 현대의 배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쓰레기로 에너지를 만든다던데...)

읽다가 궁금했던 점이 몇 개 있습니다.
 우선 <칼리가리 박사의 캐비닛>에 "북서태평양"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미국 서부 해안이면 북동태평양 아닌가요? 태평양의 북서부는
아시아 쪽 아닌가요? 미국인들은 자기네 서부 해안이니까
그렇게 표현하나?

<내가 마지막으로 본 미국의 송어낚시> 편에서는
"그레이트 폭포"가 거듭 나오는데, Great Falls(그레이트폴스)는
미주리 강 연안에 있는 도시 이름이기도 합니다.
아마 폭포 이름에서 도시 이름이 나왔겠죠?

끝부분의 <마요네즈 장(章) 서곡>에는
애쉴리 몬태그라는 사람이 썼다는
"에스키모들은 평생 얼음 속에서 살지만 그들의 말에는 '얼음'이라는
말이 없다"는 글이 나옵니다.
그런데 에스키모들의 말에는 "눈"을 표현하는 말이 매우 많다고 합니다.
영어에서 눈은 그냥 snow일 뿐인데,
에스키모들은 살짝 언 눈, 진눈깨비, 펑펑 쏟아지는 눈 등
눈의 다양한 형태에 따라 다 다르게 부른다는 거예요.
(이 말을 어디서 들었더라... 가물가물...)
그러니 얼음이라는 말이 없다 해도 그러한 상태를 뜻하는 다른 말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작가가 이 글을 무슨 의미에서
인용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참, 그리고 <테디 루즈벨트 칭가더>란 단편도 있는데, 제목 중
"칭가더"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 부디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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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 2004-06-1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눈에 대한 다양한 이름을 들어볼 수 있죠.

숨은아이 2004-06-1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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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에서 2001년 12월 나옴.


이미 널리 알려지고, 좋은 평을 많이 받은 책에 대해 쓰는 건,
뒷북 치는 것 같아 좀 쑥스럽네요.
하지만 제가 지금 읽은 걸 어떡해요. --;
이 책을 산 건 2002년 1월이네요. 1월 17일에 제 손에 들어왔다고
면지에 적혀 있어요. 이것저것 욕심 내서 사놓고는
(사실 그것도 사고 싶은 것의 1/3 정도밖에 못 사는 거예요)
쌓아뒀다가 한 2년쯤 지난 뒤에야 읽곤 합니다.

알라딘을 통해 산 이 책은
표지 제목 글자를 검은 박으로 입히고(전문 용어로 '먹박' ^^),
글자를 안으로 새기듯 눌렀는데(전문 용어로 '형압'이라 합니다),
제작 공정에 실수가 있었는지 먹박 형압이 두 겹 겹쳐져서 나왔어요.
바꿔달라면 바꿔주겠지만, 제목이 두 겹일 뿐 다른 건 문제가 없어서
그냥 가지고 있기로 했습니다.
결함이 있어 반품된 책은 폐지공장으로 팔리는 수밖에 없는데,
표지를 볼 때 눈이 잠깐 어지러울 뿐 독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책을
폐지로 만드는 건 가슴 아픈 일이잖아요. 이 책에 담긴 내용,
지은이와 편집자의 노력, 아름다운 그림,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
이 책의 가치가 순식간에 폐지 몇십 원으로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바라던,
비전문가를 위한 역사책, 교양서는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5, 6년 사이 "그림 읽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지만,
모두 그림 감상자의 눈으로 안내할 뿐
이 그림의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게 해주진 않았습니다.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긴 하지만 그 시대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이끌어주진 못합니다. 그 그림이 그 시대에 왜 의미가 있는지,
머리로 "그렇겠구나" 생각은 하게 되지만 정말로 공감하진 못합니다.

사실 책이나 화면에서 유럽의 명화라는 것을 보면,
저게 어째서 그렇게 훌륭하다는 건지 궁금증이 다 풀리질 않습니다.
서양 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꼭 나오는 <아르놀피니의 약혼>이란 그림도
저게 왜 그렇게 유명한지 모르겠습니다.
원화를 못 본 탓도 있겠지요(복제화로 수십 번 본 그림도
정작 원화 앞에 가면 그 감동이 다르다고 하더라구요).

혜원 신윤복(1758-?), 하면 국사 시간에 조선 후기의 3대 화가라고
외웠던 기억이 있지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치지 않고,
그의 그림이 과연 어떤지 보여주지도 않고
그냥 3대 화가라고 이름만 무작정 외우게 하다니,
정말 무식한 교육이었어요.

이 책은 미술책이 아니라 혜원의 그림을 통해
당대의 생활사를 알리는 책입니다.
혜원의 풍속화 30장을 엮은 <혜원전신첩>이란 화첩의 그림
한 장 한 장을 보면서, 그 그림 속 인물이 입은 옷, 머리에 쓴 것 등등을
통해 이들이 어떤 인물일지 알게 해줍니다. 어떤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나온 그림일지 짐작하게 해줍니다.
그림만으로 정확한 모양새를 파악하기 어려운 옷차림은
실존하는 유물 사진이나 알기 쉽게 새로 그린 그림으로 다시 보여줍니다.

이 과정을 통해 혜원의 그림을 다시 찬찬히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그림을, 혜원은 왜, 무슨 마음으로 그렸을까,
혜원, 그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조선시대 양반의 풍류, 기생의 풍류에 대해
좀 낭만적으로 생각하곤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기생은 아무리 미화해도 남성중심주의 계급사회의
피지배계급 여성이죠. 양반의 풍류는 우리 선조의 멋이긴 하지만
그들이 풍류를 누리는 방식은 자신들이 천하게 여기는
기생과 광대를 불러 춤추고 노래하게 하고,
여자 주무르는 것이었어요. 목숨보다 지조를 중시해야 한다면서
여자에게만 수절을 강요하는 게 그들의 윤리학이었지요.
해학과 에로티시즘 속에 이런 걸 보여준 혜원,
그는 정말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교정에 단점이 있다면 그림 설명 부분에서 간간이
그림의 왼쪽 오른쪽을 헷갈리게 한 경우가 있고,
편집디자인에 대해 말하자면
한 작품의 일부만을 따서 보여줄 때는 정말 그 부분만 따로 보여줄
분명한 이유(해당 부분에 특별히 주목해야 할 이유.
특정 인물상의 옷차림이나 표정 따위를 따로 이야기할 때라거나)가
있어야 하는데, 물론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장식적인 목적으로 그냥 그림의 인물상 하나를 따서 앉힌 경우도 꽤 되네요. 
그림은 전체로서 이해돼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일부만 발췌하는 건
훼손에 해당한다고 들었습니다. 일단 전체 그림를 보여준 다음에
그림의 일부를 따서 보여주는 거니까 괜찮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다, 장식이 과하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었어요.

국보 135호인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은 혜원이 그린 그림 30장을 화첩으로
엮은 것인데, 처음에 누가 엮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다만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유출되었던 것을 위창 오세창 선생이
다시 사들여서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답니다.
오세창 선생은 일제시대에 사재를 털어, 국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모은 분으로 유명하지요. 그분이 모은 유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간송미술관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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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06-08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 책을 읽다 보면 사극에서 무심코 보고 넘어간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도 있는데요. 드라마 <대장금>에서 대전별감이 기방을 운영하는 게 나오잖아요? 대전별감이 무슨 기방? 했는데, 이 책을 보고 그게 어쩐 일인지 알았어요. 또 의녀들이 머리에 쓰는 "가리마"라고 하더군요. 혜원의 그림에 그게 나와요. 드라마에 나온 모양과는 조금 다르데요. 드라마에선 좀더 세련되게 디자인한 듯.

호랑녀 2004-11-13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책꽂이엔 읽고 싶어 충동구매해놓은 책들이 쌓여 있는데, 또 보관함에 넣는 이 의미는 무엇일꼬...

학교도 관둬서 당장 문화생활비가 구멍났는데...

숨은아이님 댁이 어디세요? 아무래도 가서 빌려읽어야겠어요...ㅠㅠ

숨은아이 2004-11-13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한참 전에 쓴 글을... ^^ 기꺼이 빌려드리지요! 참, 그런데 전에 저도 호랑녀님 리뷰 보고 이미 절판된 [조선의 왕비]를 속절없이 보관함에 넣어놓고 있는데, 그거 빌려주실래요? 딜? ^^
 
남자이야기
김성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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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고, 새삼 깨달은 점도 많습니다. 역시 남자는 여자에게 수수께끼이고, 여자는 남자에게 수수께끼인 모양이에요. 그런데 남자든 여자든, 인간은 영원한 수수께끼 아닌가요. 나 자신도 수수께끼인데. 서른두어 살 즈음엔 세상을 좀 알 것 같다, 남자를 알 것 같다고 생각했지요. 자신감도 생겼어요. 하지만 2, 3년 더 살아보니 다시 "모르겠다"로 돌아갔지요.

이 책은 저보다 조금 더 날카로운 사람의 시각, 조금 더 지혜로워진 느낌?

하지만 전 TV나 책에서 "여자는 이렇잖아요," 하고 규정해버린 명제에 스스로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난 청바지 한 벌 사려고 서너 시간씩 돌아다니는 거 질색이에요. 여동생 옷 사는데 한번 같이 갔다가 짜증나 미치는 줄 알았답니다. 내가 아는 누군가 "여자는 보석을 좋아하잖아"라고 말하면 난 안 그런데, 합니다. 예뻐 보이긴 하지만 그냥 빛나는 돌멩이일 뿐인데 저기다 왜 수만 원, 수십 만 원을 들이는지 이해 안 됩니다. 1000원 정도 한다면 사서 갖고 다녀주겠어요.

일반화는 그래서 위험하죠. 난 안 그런데, 왜 자기가 그런 걸 가지고 모든 여자가 그렇다고 일반화하지? 남자도 그렇겠죠. 하지만 많은 사람을 관찰한 결과 보편적으로 도출되는 행동 유형, 누구나 반복하는 어리석은 실수는 있겠죠. 그런 걸 되돌아보게 해주는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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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 2004-06-11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종류의 책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역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겠지요.
그 책을 나름대로 감명깊게 읽고는 누군가(!)에게 술김에 선물(!)해 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왠지 그 책을 줘야만 하는, 나보다는 그 사람이 읽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답니다.
그 책에서 건질건 사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자."였습니다.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르게 느낄 지 모르지만, 어쨌든 다르다는 겁니다. 이것만 잊지 않고 살렵니다. :)

서른두어 살 즈음에 세상을 알 것 같다고 느꼈다니, 대단하십니다. 난 여전히 세상도 사람도 모르겠습니다.

숨은아이 2004-06-12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어떤 전문가의 연구 성과는 아님. 지은이는 방송작가. 눈썰미와 관찰에서 나온 글일 뿐. 그리고 서른두어 살 즈음에 세상을 알 것 같았다가, 지금은 다시 모른다니까!

2004-06-12 0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찰리 챈, 중국 앵무새 세계추리베스트 11
얼 데어 비거스 지음, 한동훈 옮김, 정태원 해설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2003. 6. 16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마니아"는 못 되는 것이, 만화도 그렇지만 꾸준히 신작을 보면서 경향을 파악하진 못하고 (게을러서도 그렇게 못해요), 그저 좋아하는 범위의 책만을 읽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활동하는 작가들은 전혀 모르고, 다만 고전스럽다고 생각되는 책은 모르는 작가의 것이라도 사 봅니다. 국일미디어에서 나온 <찰리 챈, 중국 앵무새>와 <찰리 챈, 열쇠 없는 집>도 그래서 읽게 되었어요. 찰리 챈이라는 하와이 거주 중국계 미국인이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로 등장합니다. 한 작가의 책을 읽을 때는 데뷔작부터 읽고 싶어지지요. 사실은 다른 작품이 눈에 띄어 그 작가를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눈에 띈 작품보다 데뷔작을 먼저 읽고 싶어요. (그래서 데뷔작에 실망해 정말 읽고 싶었던 작품을 안 읽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 데뷔작을 구할 수 없는 경우에는 먼저 발표한 작품부터 읽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같이 전집을 모으는 경우에는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아니면 전집의 번호순으로 읽지만.) 그래서 얼 데어 비거스Earl Derr Biggers(1884-1930)라는 미국 작가의 두 작품 중에서, 국일미디어의 세계추리베스트 시리즈 11인 <중국 앵무새 The Chinese Parrot>와 시리즈 12인 <열쇠 없는 집The House without a Key>을 한꺼번에 사고는 <열쇠 없는 집>을 먼저 읽었습니다. 1913년부터 소설을 발표한 얼 데어 비거스가 하와이의 중국계 형사인 장 아파나Chang Apana와 리 푹Lee Fook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고 만들어낸 인물, 찰리 챈Charley Chan이 등장한 첫 작품이 1925년에 발표된 <열쇠 없는 집>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읽고 나서 국일미디어에서 왜 <열쇠 없는 집>보다 <중국 앵무새>를 앞세웠는지 짐작이 되었습니다. <중국 앵무새>가 훨씬 더 재미있고, 인물을 매력적으로 잘 표현했어요. <열쇠...>에서 기억에 남는 건 "하와이 찬미"와 "샌프란시스코 낭만" 정도. 주인공 찰리 챈의 활약도 두드러지지 않지요. 미국 소설에서 1920년대에 중국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란 매우 조심스러웠으리라는 게 뒤에 해설을 단 정태원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두 권 다 뒤에 정태원 선생이 해설을 썼는데, 작가와 작품의 배경을 잘 소개해서 유익해요. <열쇠...>에선 부록으로 "대표적인 추리작가와 탐정들"을 표로 정리해 놓기도 했고요. 1926년에 발표한 두 번째 찰리 챈 소설 <중국 앵무새>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시선이 따뜻하고, 그들의 대화도 유머가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해설에선 전부 여섯 권인 찰리 챈 소설들의 제목과 그것들이 1930-1940년대에 어떤 과정으로 영화화되었는지 소개하기도 했어요. 해설에서는 이 작품 때문에 미국에서 동양인의 이미지가 매우 좋아졌다고 하는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로도 당시 미국의 백인들이 동양인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찰리 챈은 이른바 "동양의 신비"를 동경하고 또 경계하는 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이지요. 진중하고 육감이 발달했으면서 명석하지만, "품위있는 미국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거든요. 미국 문화를 동경하고 영어를 잘하기 위해 애쓰는. 그리고 고전적인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들이 대개 그렇듯이 상류사회 인사들에게 호의적이에요. 하지만 <중국 앵무새>에 등장하는 폴라 웬델이라는 여성, "세상을 알지만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 때문에 웬만한 건 보아 넘길 수 있네요. 두 책의 번역은... 읽기에 좋은 편입니다. 그러나 난생 처음 만나는 친척끼리, 수인사 나누자마자 여자가 상대방 남자를 "존 오빠"라고 부르며 경어를 쓰고, 남자는 친여동생 대하는 말투를 쓰는 건... 우리 문화 방식으로 너무 심하게 번안한 게 아닐까. 사실 호칭이나 경어는 번역가들에게 골치 아픈 문제일 거예요. 그러나 <중국 앵무새>에서 찰리 챈이 이든에게 "자네"라고 했다가 "선생"이라고 했다가 하고, 그럼에도 말의 종결어미는 한결같이 "...소" "...오"로 처리하는 게 적절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번역소설을 보면 남녀 사이에 대화할 경우, 흔히 남자의 말은 무조건 "...소" "...다오"로 끝나고, 여자의 말은 "...요"로 끝나는데, 번역작가들이 이런 문체를 언제까지 고집할지 궁금합니다. 나는 남녀가 대화하면서 그런 말투를 쓰는 것을, 실생활에서는, 심지어 드라마에서도 전혀 듣지 못했는데. 두 책에는 소설의 배경으로 나오는 자연 환경을 독자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와이나 사막의 나무, 동물 사진을 싣기도 했는데, 어디 인터넷에서 해상도 낮은 사진을 다운받아 썼는지 영 시원찮네요. 소설에 이런 사진이 있는 건 처음이라 우습기도 했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지. 소설의 삽화는 원작의 것을 그대로 사용한 듯. 썩 잘 그린 삽화는 아닌 듯. 중국 복장 묘사도 엉성해요. 결론 삼아 말하면, 돈과 시간이 아까운 책은 아니고, 책을 읽으면서는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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