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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 작은 것들 속에 깃든 신의 목소리
조안 엘리자베스 록 지음, 조응주 옮김 / 민들레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날씨는 더워지고 벌써 여름인가보다. 6월도 중순을 넘어서고 이번 프로젝트 마감은 이틀이 지났고 나는 여전히 바쁘다. T.T 이번 주 중으로는 끝내야지 하면서 사람들은 며칠째 밤을 새고 일을 하고 있다.
큰 빌딩의 건물 냉방이라는 것이 참 곤란하다. 낮에는 심하게 나와서 추울 정도인데, 저녁이 되어서 건물 냉방이 끝나게 되면 무척 더워진다. 그렇다고 벽에다가 구멍을 뚫거나 창문에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할 수도 없다. 덕분에 화장실 옆에 큰 실외기가 하나 있고, 거기서 연결된 에어컨이 3개 있다. 그래도 회사가 컴퓨터로 먹고 사는 회사이다 보니 컴퓨터 댓수도 많고, 밤 늦게 남아 있는 사람 수도 많아서 온도는 끝없이 올라간다. 한 사람당 컴퓨터가 1대씩 있고 일부 사람들은 컴퓨터가 2대에 모니터가 3개씩 있다. 전에 온도계를 사다가 책상위에 놓았더니 온도가 30도를 넘었다. 밤 12시에 말이다.
그래서 밤이 되면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고 우리 층 에어컨 3대를 최강으로 틀고 있는다. 에어컨을 틀고 창문을 여는 것이 바보 짓이지만, 사실 에어컨이 그 주위 일부 사람에게만 시원한 바람을 주기 때문에 별 차이가 없다. 바깥이 더 시원하니까 뭐.
자. 여기서 여름의 불청객 모기를 만나게 된다. 혹시 말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회사는 선릉 옆에 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밤에 창문 열어놓으면 모기가 참 많다. 4년전인가 여름에 무척 바빴던 때가 있었다(언제나 그렇지만 ^^). 그 해 여름에는 A4용지로 작은 박스를 접어서 모기 시체를 모았다. 모기향을 켰기 때문인지 손으로도 모기를 잘 잡았다. 결국 여름 내내 잡은 모기 시체가 그 박스 바닥을 까맣게 만들었는데, 청소 아줌마가 치워 버려서 전적을 세지는 못했다. 그때는 밤새워 일하던 사람 수가 적어서 그랬는지 (내가 느끼는) 모기 수도 참 많았다. 지금은 사람 수가 많아서 그런지 내게 접근하는 모기 숫자는 적다. :)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기 종 이외의 모든 생물을 약탈하고 죽이고 있다. 하기사, 얼마 전에는 단지 자기와 색이 다르다는 이유, 그리고 특이하게 생겼다는 이유, 더 정확히는 자기보다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한 섬의 원주민 전체를 말살 하는 짓도 했던게 인간이다. 자기와 같은 인간을 말이다.
요즘에는 곤충을 보기 힘들어서인지, 주변에 사람들을 보면 곤충이라면 무조건 싫어하는 것 같다. 이상하게 생겼다고 하면서 싫어한다. 주로 여자들이 싫어하지만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던 곳이 좀 시골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어려서부터 곤충과 양서류 종류는 많이 만지면서 자랐다. 그래도 나도 많은 종류를 보거나 한 것은 아니다.
개구리는 많이 봤지만 두꺼비는 보기가 힘들다. 잠자리도 많이 잡았지만, 그 종류가 3-4가지로 한정적이다. 그때도 벌써 아주 흔한 곤충과 동물들이 아니면 보기가 힘들었다. 겨우 한 20년정도가 흘렀지만 벌써 주변에서 곤충을 보기는 너무나 힘든 일이 되었다. 한 여름에 보는 곤충은 모기나 잠자리, 매미, 파리가 다인 것 같다. 그런 것들도 그나마 사람들이 사는 곳에 적응한 종류들이다.
이렇게 실 생활에서 곤충을 보기 어려워서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곤충을 싫어한다. 사실 곤충이 사람들에게 해를 주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 우리가 먹고 남겨서 버리는 음식 쓰레기와 흘리는 모든 쓰레기들, 그리고 자연계에서 저절로 생기는 그 수많은 식물과 동물들의 사체를 해치우는 것들은 대부분 곤충이다. 곤충이 1차로 해치우고, 그 후에 박테리아 같은 작은 것들이 더 적게 분해를 해서 식물에게 쓸모 있는 형태로 바꾸게 된다. 그럼 그 사체는 더이상 쓰레기가 아니라 비료가 되는 것이다.
이 책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를 처음 살 때 기대한 것은, 사람과 곤충의 공생이었다. 책이 의도한 것도 그와 비슷하긴 했다. 하지만 그 보담은 부제가 더 책의 내용에 적합했다. 이 책의 부제는 [작은 것들 속에 깃들 신의 목소리]이다. 벌써 "신"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니까 불안하지 않은가? ^^
이 책 뒤쪽 표지에 추천사로 고려대 교수가 쓴 글이 있는데 거의 극찬이었다. "벌레의 세계를 보다 진실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라고 적었는데, 그 다음 글을 보면 "우리의 지적 성장 뿐만 아니라 영적 성장을 돕는다"라고도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앞의 것은 과장이고 뒤의 것이 핵심이다. "벌레의 세계를 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라고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사람이 곤충과 공존해야 하는 이유나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대부분 영적인 교류이다. 파리나 모기와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예를 들고, 선주민(아마도 원주민이나 인디언 부족 정도를 지칭하는 듯하다)들의 샤먼이 어떻게 곤충들과 대화를 했고, 실 생활에 이용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바퀴벌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바퀴벌레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지능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설명을 해서 우리가 곤충을 친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모기가 무는 것은 어떻게 해결하느냐? 이 책의 주장은, "모기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참아주자"는 거다. 모기는 자기 몸 안에 바이러스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 불쌍한 곤충이고, 자신이 의도적으로 그 바이러스를 사람에게 옮기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 책은 종교를, 카톨릭이나 이슬람 같은 종류는 아닐지라도 인디언의 종교 정도는 되는 샤머니즘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내 맘에 와 닿지는 않았다. 마치 유럽의 모 배우가 인간의 친구인 개고기를 어떻게 먹을 수 있냐면서 동양의 미개한 사람들을 욕하고 압박하는 것처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있다.
개는 개고 곤충은 곤충이다. 지금 인간이 하는 방식으로 곤충을 멸절 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인간과 곤충은 공생을 해야한다. 하지만 이 책처럼 그 방식이 인간이 일방적으로 곤충을 위하는 듯이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은이는 인간과 곤충이 상호교감하고 대화를 한다고 했지만 그런 것은 이해도 안되고 인정도 안된다. 그러다보니 내가 보기에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곤충들에게 잘해주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배고픈 모기에게 피를 적선하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공생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 읽고 있는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이라는 책에 더 잘 나오고 있다. 곤충과 사람은 아니지만 박테리아들의 공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실망한 자연친화적인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