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그림자 - 멕시코 한 혁명가로부터 온 편지
마르코스 지음, 윤길순 옮김 / 삼인 / 1999년 3월
품절


예를 들면,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쳤어요. 나라 사랑이란
예를 들면,
국기에 대해 경례하는 것,
똑바로 서서 국가를 듣는 것이라고.
국가 대표 축구팀이 지면
맘껏 취하는 것이라고.
국가 대표 축구팀이 이기면
맘껏 취하는 것이라고.
대통령 임기가 바뀌어도 거의 변하지 않는
그 밖의 여러 가지 것들이라고.-227쪽쪽

그리고 예를 들면,
그들은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어요. 나라 사랑이란
예를 들어,
저 멀리 도망치는 어떤 사람처럼
휘파람을 부는 것일 수도 있다고,
그러나
그 언덕 너머에도 역시 우리의 조국이 있고, 거기에선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며,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열고
(지켜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사람들은 으레 마음을 여니까)
그리고 우리는 말한다고
(우리의 조국에게)
예를 들면,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언제나 이렇게 말하기가 더 좋다고,-227쪽쪽

그리고 예를 들어,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쳤어요, 나라 사랑이란
예를 들면,
커다란 솜브레로를 쓰는 것이라고,
차풀테펙의 소년 영웅들(1847년 미군의 공격에 맞서 멕시코시티를 지키고자 목숨 바쳤던, 차풀테펙 성의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이름을 달달 외는 것이라고,
"영원히 멕시코와 함께 살리라!"고 외치는 것이라고,
설사 멕시코가 죽어 땅 밑에 들어가더라도.
대통령 임기가 바뀌어도 거의 변하지 않는
그 밖의 여러 가지 것들이라고.-228쪽쪽

그리고, 예를 들면,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어요,
나라 사랑이란
예를 들면
죽어 있는 사람처럼 침묵에 잠기는 것일 수도 있다고,
그러나 아니,
이 땅 밑에도 역시 조국이 있고
그곳에선 아무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며,
그리고 우리는 마음을 열고
(아무도 듣고 있지 않으면
사람들은 언제나 마음을 여니까)
그리고 말한다고
(우리 조국에게)
조국을 사랑하기 위해
계속 죽어 갔던 사람들의,
나에게 동의하기에 더 이상 여기에 있지 않는 사람들의
어려웠던 짧은 이야기를,-228쪽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노의 그림자 - 멕시코 한 혁명가로부터 온 편지
마르코스 지음, 윤길순 옮김 / 삼인 / 1999년 3월
품절


비정부 조직들에게 :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묵을 장소에서뿐 아니라 우리가 도착하고 떠나는 길에서도, 우리의 생명과 자유를 비정부조직들에게 일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에게서 우리가 열망하는 미래를, 시민 사회가 진정한 정의를 구현하려는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전쟁뿐 아니라 군대까지 필요없게 만드는 미래를, 그리고 어떤 정치적 경향을 가진 정부든 그것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시민 사회의 끊임없는 철저한 감시 아래서 움직이는 미래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197쪽쪽

그래, 우리는 전문가란다. 그러나 우리의 전문은 희망이지. 우리는 어느 화창한 날 군인이 되기로 결심했단다. 언젠가는 군인이 필요없는 날이 오도록 하기 위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목숨을 끊는 직업을 선택한 거지. 왜냐하면 그 직업의 목표는 없어지는 거니까. 언젠가는 아무도 군인이 될 필요가 없도록 하기 위해 군인이 된 군인들이니까. 알겠니?-220쪽쪽

그리고 공교롭게도 우리, 더 이상 군인이 되고 싶지 않은 군인들은 책이나 여러 이야기에서 ‘애국심’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지고 있단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 나라’라고 부르는 것은 책에나 나옴직한 모호한 관념이 아니라, 살과 피를 가진,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을 가진, 그리고 활짝 갠 어느 날엔가는 결국 모든 것이 변할 거라는 희망을 가진 거대한 몸이기 때문이지.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또 우리의 크고 작은 실수들 속에서 태어날 게 틀림없어. 우리 몸이 완전히 지치고 부서지면, 그 안에서 틀림없이 새로운 세상이 나올 거야.-220쪽쪽

그런데 우리가 과연 그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일까? 나는 새로운 세상이 탄생하리라는 걸 아주 확실하게 아는 것만큼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봐.-220-221쪽쪽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과 앞으로 영원히 죽을 사람들을 위해, 오늘 살아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영원히 살 사람들을 위해
-221쪽쪽

더 이상 군인이 필요없기를 바라는 군인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해. 우리 내부에 있는 아주 작은 희망에, 지금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을 갖게 될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가슴속에 맡겨 놓은 희망의 목소리에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돼.-221쪽쪽

우리는 제멋대로 무성하게 자라는 압제자에 대한 증오의 나무를 ‘싸우고 해방하는 사랑’으로 돌봐야 한단다.-222쪽쪽

우리는 붉은 별들이 뜨고 지는 동안 두려워해서는 안 된단다. 항복하는 것, 다른 사람들은 계속해서 가고 있는데 우리 자리에 남아 쉬고 있는 것, 다른 사람들은 싸우고 있는데 잠깐 휴식을 취하는 것, 다른 사람들은 불침번을 서고 있는데 잠을 자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느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단다.-222쪽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노의 그림자 - 멕시코 한 혁명가로부터 온 편지
마르코스 지음, 윤길순 옮김 / 삼인 / 1999년 3월
품절


우리는 노인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 많은 노인들의 말을 통해서 우리 주민의 긴 고통의 밤이 권력자들의 손과 입에서 왔다는 것을, 우리의 비참함이 소수에게는 부(富)라는 것을, 권력자들은 우리 선조와 우리 아이들의 뼈와 유해 위에 자신들의 집을 지었다는 것을, 그 집에는 우리의 발이 걸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그 집을 밝게 비추는 빛은 우리들 집의 어둠으로 불을 밝히고 있다는 것을, 그 집의 풍성한 식탁은 우리의 위를 비운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사치는 우리의 비참함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그들의 튼튼한 지붕과 벽은 금방 허물어질 것 같은 우리의 허약한 몸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그들의 건강은 우리의 죽음에서 왔다는 것을, 그들 사이에 살아 있는 지혜는 우리의 무지를 자양분 삼아 컸다는 것을,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평화가 우리에게는 전쟁이라는 것을, 외국에 대한 선호가 우리의 땅과 역사에서 그들을 멀리 떼어놓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185쪽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노의 그림자 - 멕시코 한 혁명가로부터 온 편지
마르코스 지음, 윤길순 옮김 / 삼인 / 1999년 3월
품절


(154-160쪽 "치아파스 주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의 지방 신문 [티엠포]의 가스파르 모르케초 에스카미야 씨에게" 전문을 몽땅 옮기고 싶지만...)

세뇨르 모르케초, 우리는 피와 총탄, 유산탄, 무장 헬리콥터, 로켓탄을 발사할 곳을 찾는 비행기들 속에서 단순한 진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를 정복할 수는 없다는, 우리가 싸움에서 질 수는 없다는...... 우리는 싸움에서 질 자격이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156쪽

그러나 지금 말한 대로, 우리 임무는 다른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그들이 더 좋은 삶, 지금 우리가 뒤에 남기고 온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싸우다 죽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예, 하지만 그것이 당신의 임무는 아닙니다. 제발 당신 자신을 돌보십시오. 파시스트 야수는 잠복해 있다가 가장 무방비한 상대에게 공격을 가하니까요.-156쪽

[티엠포]가 진정 영웅인 것은 프레드 플린트스톤 기술로 신문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콜레토(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의 비인디언 거주자)들만큼이나 부조리한 이 꽉 막힌 문화에서 여러분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지금은 무기를 가지고 있지만)에게 목소리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156쪽

내가 젊고 멋졌을 때는, 지식인들이 각 간행물을 중심으로 끼리끼리 모여 자신들의 입장을 공고히 하면서, 이를 통해 무지한 인간들 세상에 진리를 말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그들을 ‘엘리트 지식인’이라고 불렀는데, 여러 잡지와 이념적 경향들이 유행하였기 때문에 지식인들 가운데는 그런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것들은 이를 출판한 사람들 사이에서 읽히는 간행물이었습니다. 루차는 그것을 ‘편집자들의 자위 행위’라고 말합니다. 순진한 속인인 여러분이 그들의 상아탑을 만지려면 가시밭길을 통과해야 했을 겁니다.
과장하고 선별하고 배제하는 이런 ‘엘리트 저널리즘’과 계속 거리를 취해 왔다고 보이는 신문 하나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엘 피난시에로(El Financiero)]입니다. 이 신문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움직임에 대해 무턱대고 비난하지도 않았고, 다른 매체에 영향을 주고 또 그로부터 영향을 받는 지적인 윤활유로 성급하게 굴지도 않았습니다. 이 신문은 기다리고(전쟁 기술에서 가장 배우기 힘든 미덕), 조사하고, 취재해서, 확고한 기반을 가져야 비로소 지금 자기네 독자들이 즐기고 있는 다각적인 분석을 엮어 내기 시작했습니다.-178-179쪽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노의 그림자 - 멕시코 한 혁명가로부터 온 편지
마르코스 지음, 윤길순 옮김 / 삼인 / 1999년 3월
품절


내가 신문을 보니 안헬이 ‘X’ 논설위원이 쓴 칼럼을 보여 줍니다. 나는 안헬에게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설명해 줍니다. 즉 그는 치아파스에 빈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원주민들이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계획적으로 봉기할 수 있었다니 그건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며, 원주민들은 으레 아무런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들고일어난다는 것, 그렇다면 외국인과 다른 나라가 멕시코와 멕시코의 대통령을 나쁘게 말하기 위해 원주민들의 빈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EZLN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그들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는 걸.
안헬은 갑자기 발을 쿵쿵 구르며 풀쩍풀쩍 뛰어다니기 시작하더니, 너무 화가 나서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게 첼탈 족 방언과 스페인 어가 뒤섞인 말로 마구 더듬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들은 항상 우리가 어린애들 같다고 생각하는 거죠?" ...(중략)... "왜 그들 생각에는 우리가 스스로 생각할 수도 없고, 좋은 계획을 떠올릴 줄도 모르고, 또 싸움을 잘할 수도 없는 거죠?"-135-136쪽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