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에 대해서 어제 대법원이 유죄 판결을 했다(1인은 소수의견).
먼저 분명히 할 것은, 지금까지의 병역 거부자들은 단순히 군대가기 싫다 차원에서 총 들기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양심의 자유가 다른 권리 또는 다른 의무와 충돌하게 된다면 그것이 최소한으로 제한받을 수 있도록 국가와 입법자가 대안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제 대법원의 다수의견을 보면, 형벌 외에 다른 수단(즉, 대체복무제와 같은)을 두지 않은 것은 입법자의 재량이라고 했고 그것이 기본권의 제한을 위한 헌법적 원칙에 반한 것은 아니라고, 따라서 유죄라고 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양심의 자유가 병역의무와 충돌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은 인종, 심지어는 자기 나라 국민에게 총칼을 겨눌 수도 있고 또 겨누어야만 한다고 가르치고 배우는 군대에 갈 수 없고, 가게 되더라도 그러한 가르침에 따르지 않을 것이 너무나 명백한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국가는 그들에게 적당한 대안을 마련해 주어야만 한다.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무가 충돌하는 경우, 이를 법적으로는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을까 ? 그에 대해서는 이번 판결의 소수의견을 참고해 보자.
1.병역법 88조 1항을 해석함에 있어 상위규범인 헌법의 가치와 방향, 특히 기본권의 국가권력에 대한 기속력을 주목하고 그것의 헌법적 의미와 내용이 최대한 실현되고 관철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상·하 규범 사이에서의 실질적이고 내용적인 합치가 확보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더 나아가 상호충돌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라고 하는 헌법적 가치와 법익이 동시에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는 조화점을 찾아내어야 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2.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종교적 양심의 결정에 따라 병역의무를 거부한 피고인에게 국가의 가장 강력한 제재수단인 형벌을 가하게 된다면 그것은 피고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될 것이고 형벌부과의 주요근거인 행위자의 책임과의 균형적인 비례관계를 과도하게 일탈한 과잉조치가 될 것이며, 형벌의 본래적인 목적 역시 충족될 수 없을 것이고, 특히 피고인에게는 실정 병역법에 합치하는 행위를 할 가능성을 기대하기 매우 어려워 보이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국가의 형벌권이 한 발 양보함으로써 개인이 양심의 자유가 보다 더 존중되고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여야 하고 그에 대하여 관용을 베풀어야 하며 비례의 원칙에 반하는 형벌권의 행사를 삼가야 할 헌법적 의무를 부담할 뿐 아니라 특히 이 사건에 있어서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의 양심상의 결정을 실현하기 위하여는 형벌집행의 수인 이외에 다른 대체수단을 갖지 못하고 있음에 반하여, 국가는 야심의 자유와 병역의 의무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헌법적 의무와 아울러 그러한 권한과 가능성까지 가지고 있으므로 국가가 그러한 의무나 권한행사를 다하지 않은 경우의 불이익은 국가가 스스로 부담하여야 하는 것이지 이를 피고인에게 귀책시켜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이 역시 소수의견을 참고해 보자.
3. 헌법상의 국방의 의무를 구체화하여 국가의 존립과 안전보장 그리고 공평한 병역의무의 부담 등과 같은 헌법적 법익을 실현함과 동시에 개인의 양심의 자유 등도 같이 보장될 수 있는 방안과 방법에 관하여는 입법자들에게 광범위한 입법재량권이 부여돼 있는 것이므로, 입법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은 무엇인지, 그리고 소위 대체복무제를 도입한다고 한다면 그 시기와 기준 및 대상, 절차와 방법 등 관련되는 모든 문제를 검토하고 논의를 하여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보인다. 이러한 대체수단의 도입을 대다수 사회구성원과는 생각과 가치관을 달리하는 소수의 국민에 대하야 국가의 동화적 통합을 위한 관용의 원칙을 실현하는 것이고 이로써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적 정당성과 우월성은 더욱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북간의 대치 상황 운운하는 것은 대법원이 가지는 견해를 그럴 듯하게 보이게 하기 위한 옹색한 변명거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가보안법도 그렇고 아무튼 수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번 똑같은 말을 판결문에 적어 대는 법관들이라니...지금쯤이면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 그리고, 대치상황이라고 형사처벌만이 정한 법이 헌법에 적합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
우리보다 더한 대치상황(중국은 틈나는 대로 대만을 무력 침공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는 대만도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며 징병제를 도입하고 있는 모든 나라는 예외없이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고 있다. 부디 이번 판결을 계기로 대체복무제 도입에 관한 논의가 활성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