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7. 25. 표현을 조금 손보았다.)

<붉은 돼지>를 처음 본 건 몇 년 전. 선배가 빌려준 비디오를 통해서다.

처음 봤을 땐 재미없었다.
비디오로 두 번째 봤을 땐 나름대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 극장에서 보니까... 
미야자키 하야오, 그의 작품 앞에선 무릎 꿇고 싶어진다.
그의 작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와 <원령공주>이지만,
(<원령공주>는 "좋아한다"는 말만으로는 모자라다!)
<붉은 돼지> 역시 <붉은 돼지>만의 매력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에서 가장 독특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건 여성들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른바 "나쁜 여자"는
다른 만화나 드라마와 달리
성격이 비뚤어지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악인이 아니라,
합리적인 이성을 갖춘 인물이다.
합리적인 이성을 갖추었기에 그 나름대로
인간을 위해 좋은 방법을 찾고,
나중에 그 방법이 틀렸음을 알게 되면
역시 이성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붉은 돼지>는 다른 작품과 달리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여자가 결투의 경품으로 등장하지 않나.
그러나 그것은 비행기조종사들의 남성 중심적 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도 역시 열심히 살아가는,
그래서 "너를 보면 인간도 괜찮구나" 싶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백미는
엔딩크레딧 화면 왼쪽에 계속 나타나던
이 작품의 원작 만화 그림들이다.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원작 만화 그림인 것으로
짐작된다. 이 작품의 원작은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이
<월간 그래픽스>란 잡지에
<비행정의 시대>란 제목으로 연재했던 만화라 하니까.)

거기서 보이는 건 돼지들이 전쟁을 치르는 모습들이다.
포르코 하나뿐이 아니라,
매우 많은 돼지가 전쟁을 견디는 모습들이다.
그 중에서 많은 돼지 비행사들이 단체 사진이라도
찍는 듯 모여 선 장면에서는 울컥 치솟아오르는 것이...

"파시스트 인간보다는 돼지가 낫다."
그렇게 인간이기를 거부한 돼지들이 모여
파시스트 전쟁을 견뎌낸 모양이구나... 싶으니까.
포르코 혼자 외로이 버틴 것이 아니리... 싶으니까.

만화영화다 보니 극장엔 아이들이 많았는데,
아이들이 과연 이 만화를 이해할지,
아니 적어도 재미있게 보기라도 했을지 잘 모르겠다.
뒷부분에 포르코와 커티스가 육탄전 벌이며
마구 망가지는 얼굴이 나오니 그때는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웃으며 좋아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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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살림에 매달 거금 6000원이나 내면서 캐치온(유료 영화 채널)을 보고 있다. 예전에 시청료 6개월 무료 행사할 때 옆지기가 코넷을 해지하고 냉큼 신청해버렸다. 당시엔 인터넷은 다 직장에서 하니까 집에 통신선 연결할 돈으로 영화 보자, 뭐 이런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집에서 일하게 되어 예전의 코넷보다 훨씬 비싼 하나로통신을 깔고도 계~속 캐치온을 본다. 시간 없을 땐 한 달 가도록 제대로 영화 한 편 보지 못해, 그 돈이면 차라리 필요할 때 비디오를 빌려다 보는 게 이익이다 싶으면서도, 웬만한 개봉 영화는 6개월이나 1년쯤 뒤에 거반 틀어주고, 때로는 소식 둔한 내가 듣도 보도 못했지만 우연히 보고 나니 본전 뽑은 것 같은 작품을 보여주어, 그 맛에 끊지 못한다.

오늘 본 영화도 아마 캐치온이 아니었으면 보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스웨덴 영화인데, Invisible로 번역된 원제는 Den Osynlige라고 한다. osynlige라는 말이 아마 invisible이란 뜻인가 보다. "스웨덴판 식스센스"라고 광고하던데, 미국식 미스터리(혹은 스릴러) 영화와는 분위기가 아주 다르다. 식스센스는 보지 않았지만 막판에 그 인간이 귀신이더라 하는 반전이 있는 건 아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식스센스와 같은 건 아니다)...보다는, 곧 세상을 떠날 영혼이 자신을 해친 이를 이해하게 되고, 해친 이는 그 영혼을 돕게 되는 감동이 있다. 그 과정을 보여주는 두 아이가 예뻐져서 그만 울고 말았다.

해친 아이, 아넬리는 털모자를 쓰고 목깃을 세워 눈만 내놓은 차림으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을 꽁꽁 숨기고서(하필이면 이 더운 날 그런 차림을 보자니 아주 갑갑했다. ^^;), 도대체 쟤는 뭐야, 왜 저래? 싶은 행동을 한다. 다친 아이, 니클라스는 그런 아넬리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가 아넬리를 조금씩 보여주다가, 아넬리가 비로소 모자를 벗고 머리를 늘어뜨리는 순간, 니클라스는 아넬리를 "미운 행동 덩어리"가 아니라 "감정과 생각이 있는 한 여자 아이"로 보게 된다.

영혼에 대한 예의...라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 민속신앙에서도 사람이 죽은 뒤 49일 동안엔 집을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49재를 올리는 거란다. 실제로 넋이 있든지 없든지, 산 사람이 실컷 슬퍼할 시간을 주고, 또 슬픔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풍속일 텐데, 만약 신체에서 분리되는 영혼이 있다면 그 시간에 죽은 넋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미련을 털어버릴 것이다. 그동안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해 내가 예의를 갖추었는지 돌아본다. 제대로 한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아프다.

 니클라스와 아넬리

보면서 이런 것도 생각했다. 스웨덴에도 작가가 되고 싶은 자식의 꿈을 가로막고 돈 잘 버는 직업을 위해 진학을 강요하는 어머니가 있구나, 친자식만 사랑하는 계모와 마음의 눈이 먼 아버지 때문에 버려지는(집에서 쫓겨난다는 게 아니라 정서적으로) 아이가 있구나, 학교에서 삥뜯는 불량청소년, 교사가 포기하는 학생이 있구나.

2002년 작품이고,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던 모양이다. DVD로도 나오고. 감독은 두 사람, Simon Sandquist(시몬 산드퀴스트?)와 Joel Bergvall(요엘 베리발? 외래어표기법에 따르면 이렇게 쓰는 게 맞는 것 같은데. --;). 니클라스 연기를 한 배우는 Gustaf Skarsgard(구스타프 스카르스게르드, 이름 끝 gard의 a에 움라우트가 붙은 것 같았다. 그러면 스웨덴어는 "에"로 쓴다), 아넬리 연기를 한 배우는 Tuva Novotny(투바 노보트뉘). "매츠 월스"라는 사람이 쓴 소설이 원작인데, 소설과는 분위기나 전개 방향이 많이 다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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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07-24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포일러가 될 만한 건 하나도 남기시지 않아서 감동을 주리란 기대만 하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전 방금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를 하나 빌려다 봤는데 너무도 실망스러워서 리뷰도 쓰기 싫으네요. 안소니 홉킨스도 주연으로 나왔는데 배우의 연기 외엔 처음부터 욕심만 잔뜩 잡고서 정작 메시지는 잃어버린 영화란 생각이 드네요... 시간 아까워라~ ^^

내가없는 이 안 2004-07-24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해 예의를 갖추었는지... 살아계신 이에게도 예의를 잃고 사는 제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군요. ㅠㅠ

숨은아이 2004-07-24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고 너무 기대하면서 보진 마세요. 기대가 크면 실망이 따르더라구요. ^^; 근데 니콜 키드먼하고 안소니 홉킨스가 나온 영화라면 <휴먼스테인> 말씀이신가요? 전 아직 안 봤는데, 그렇게 실망스러워요?

숨은아이 2004-07-2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다시 생각해보면 <인비저블>에도 좀 걸리는 부분이 있어요. 자식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어머니, 문제아가 된 의붓자식을 소외시키는 계모... 문제의 근원을 "어머니" 에게만 돌린 듯한. 하긴 문제는 배경으로만 나오지만요. 글구 이 영화의 중심 인물 중에 유색인종이라고는 딱 한 명 있는데, 그 아이를 의지박약으로 그린 것도 좀...

내가없는 이 안 2004-07-2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휴먼스테인 맞아요. 저한테는 그렇게 실망스럽더이다... ^^ 그러니까 흑인의 피를 받았으면서도 운좋게(아니, 운 나쁘게일수도 있겠죠) 백인의 흰 피부를 갖추고 태어났으니 단 한번 백인이라고 서류상 체크한 것이 평생을 거짓으로 살게 하지요. 그걸 반전이란 장치랍시고 가진 셈인데 영화 흐름상 무척 약한 충격요법이랄 수 있었지요. 그것말고도 여러가지 약한 고리가 많아요... 영화 제대로 만들기란 참 어려운가 보다, 뻔한 생각을 하게 하는... ^^

숨은아이 2004-10-23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보니 캐치온 시청료는 7800원이다. 옆지기 통장에서 자동이체된다구 그것도 헷갈리다니, 나도 참... ^^
 
어떤 나무들은 - 아이오와 일기
최승자 지음 / 세계사 / 1995년 4월
평점 :
절판


1998년  3월 25일에 쓴 독후감이니, 오래돼도 너무 오래됐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아직도 검색되는 게 신기해서 옮겨봅니다. 폴 오스터라는 이름을 처음 가르쳐준 책이에요.

***

어떤 나무들은 - 아이오와 일기
최승자, 세계사(1995)
값 : 6000원

이 책은 시인 최승자가 1994년 8월말부터 1995년 1월 중순까지 미국에 머물렀을 때의 일기다.  아이오와시티의 아이오와대학에서 주최하는 International Writing Program에 참가하기 위해 우리 나라를 떠나던 날부터 그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동안, 또 나중에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달을 머무르는 동안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적은 글이다.

남의 일기를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독자를 예상하고 쓴 글이 아니기에, 쓴 사람만 아는 깊은 뜻이 행간 곳곳에 숨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글을 쓴 사람이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감각으로 이해한 대로만 (객관적인 시각을 가장하지 않고) 하는 이야기라서, 읽는 사람은 글 속의 '나'를 잘 알지 못하면서도 글을 읽는 동안은 '나'의 눈과 귀로만 글 속의 세계를 보고 들어야 한다. 그런데 글 속의 세계는 바로 읽는 이가 사는 세계와 같은 실제 세상이기에, 읽는 이는 글쓴이가 아닌 바로 자신의 시각을 아예 놓쳐 버릴 수도 없다. 그래서 남의 일기를 읽는 일이란 두 사람의 시각을 경유하는 일이다.

두서가 없는 점도 일기의 특징이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편하게 쓰는 글인 데다, 특별한 사건이 있다 해도 똑 부러지게 결말이 나지 않은 채 다음날로 넘어가 버릴 수도 있다. 그런 글을 앞에 두고 동시에 두 사람(글쓴이와 글 읽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런데도 남의 일기를 읽는 일은 참 매력 있다. 남의 속내를 들여다보기...
나 아닌 사람은 누구나 타인이고 나는 나조차 잘 모르기 때문일까.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고, 그 사고방식을 아주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건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일까 아니면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욕망에서 나오는 습성일까.(아니면 그저 엿보기의 쾌감? - 2004. 7. 22에 덧붙임.) 어쨌든 이 책 자체가 최승자라는 시인이 자기 정체성을 새로이 매기는 과정을 보여 주는 건 사실이다. 글쓴이는 책의 들머리,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아마도 이 책으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다름아닌 나 자신일 것이다. 내가 몹시도 지치고 피곤해질 때, 작으나마 내가 새로 배운 것들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이 일기에 나오는, 필경은 아마도 내 눈에만 보일, 꿈틀거리며 새로 태어나려 애쓰는 내 자신의 모습이 내게 힘을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글쓴이가 새로 배운 것은 아마 이 책 266쪽에 나오는 이 대목이리라.

"나는 프로그램화된 사회에서 살아왔다. ... 나는 이 프로그래밍에 더 이상 적응하지 않겠다. 나는 더 이상 프로그램화되지 않겠다."

글쓴이가 미국이란 나라에서, 아이오와시티라는 작은 대학 도시에서 뭐 대단히 좋은 점을 보고 그 동안의 자기 인생을 부정하거나 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니는 서른몇 해 동안 자신을 규정해 온 사회를 벗어나 다른 사회에서 온, 전 세계에서 온 작가들을 만났고 그 가운데서 고독하게 일기를 썼다. 만남. 다른 세상을 만나는 일.

그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바라티라는 작가의 집에 묵다가 바라티의 친구라는 사람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한참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썼다.

"미국에서는 친구 만들기가 아주 쉽다. 한국에서였다면 이런 유의 대화라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었을 거다. 안면도 없는 사람들끼리, 그것도 얼굴도 모르면서, 전화로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는 건. 한국에서라면 주책맞은 여자, 아니 정신나간 여자 축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아마 전화를 끊고서, 아니 내가 왜 그렇게 씨알머리없는 짓을 했을까 하는 자기 반성의 과정을 거쳐야 했겠지? 그런데 그게 실은 자기가 하는 반성이 아니라는 것, 그건 어떤 권위, 혹은 어떤 파워를 독점하기 위해, 자기가 독점하려 한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 이게 더 큰 문제다. 그걸 의식조차 못 하고 있다는 게 - 어떤 프로그래머들이 설치해 놓은 소프트웨어에 의해서 내가 그렇게 반성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 그러니까 내가 반성하는 게 아니라 반성당하는 것이라는 사실, 끔찍한 사실."(269쪽)

그니는 가만히 앉아서 이런 결론을 내린 게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나 자신으로 꽉 차 있어서 나 외부의 것에는 흥미를 느낄 여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를 꽉 채우고 있는 그 나 자신은 죽음처럼 송장처럼 내 내부에 누워 있기만 한다. 이 내 내부의 송장을 어서 치워 버리지 않으면 나는 언제나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야 할 것이다. 일어나 문을 열고 나로부
터 나가 다오."(236쪽)

나 자신에게 "나로부터 나가 다오" 하고 말할 수 있을까? 정말 어느 노래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다.' 그런데도 아직 꽉 차진 못해서 허기를 느낀다. 하지만 그러다가는 평소 밥 먹을 때처럼, 과식하는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먹어 대다 나중에 배불러 죽겠다 소리를 하게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 책의 129쪽에 인용된 글을 옮긴다. 글쓴이가 '식상할 만큼 너무도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라고 한 글인데, 무식한 나는 처음 봤다. ^_^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들은 우리에게 하나의 misfortune처럼 작용하는,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이의 죽음처럼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마치 자살 직전에 있는 것처럼 혹은 사람이 사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어느 숲에서 길 잃은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그런 책이다. 책이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 위한 도끼 구실을 해야 한다."  - 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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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4-07-23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오스터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건가요?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한국 작가를 한 분 아는데, 굉장히 유익한 프로그램이라고 감탄하더군요. 한 대학에서 세계적인 작가들을 대상으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니, 참 대단해요.

책이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 위한 도끼 구실을 해야 한다!!!

무식한 저는 첨 봤습니다. 그런데 가슴에 새기고 싶군요 ^^

숨은아이 2004-07-23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오스터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건 아니고요, 최승자 시인이 이때 폴 오스터의 책을 읽고 끌린다고 이 책에 썼어요. 이후 최승자 시인은 폴 오스터의 <굶기의 예술>을 번역하기도 했어요. 문학동네에서 나왔던 <굶기의 예술>은 지금 절판된 듯.

로드무비 2004-07-30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별로 잘 쓴 건 아니지만 최승자 시인과의 만남에 대한 짧은글 하나 썼으니 시간 날 때
잠시 들러봐 주세요.^^
가끔 님의 방에 들어와 하나씩 꺼내어 읽을까 합니다.

panda78 2004-08-27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 아이님 리뷰 읽고, 타스타님 이벤트 참가상으로 신청해서 읽었답니다.
최승자씨가 번역한 문학동네판 굶기의 예술은..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 책은 술술 잘 읽었습니다. 서점에 가서 그 다리자르고 팔 자르고 머리 떼놓는다는 시가 과연 어떤 건지 찾아보기까지.. ^^;;

숨은아이 2004-08-27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썼던 것인데, 좀 부끄럽네요. ^^; 그런데 그 시는 찾으셨나요? 찾으셨음 저도 가르쳐주시지...
 

케이블 TV에서 우연히 <쫑아는 사춘기>란 만화영화를 봤다. 흔히 보는 일본만화와는 좀 다른, 더 친근하게 느껴지면서도 아주 귀여운 그림체에 어느 나라 만화인가 했더니 역시 일본만화였다. 원제는 <아즈키짱>쯤 되나 보다. 초등학교 5, 6학년쯤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쫑아를 중심으로, 여자 친구 셋과 남자 친구 셋, 철없는 남동생과 얄미운 부잣집 딸아이(캔디의 이라이저 같은. --;)가 등장해 알콩달콩 이어나가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알아보니 꽤 유명해 대만, 홍콩과 에스파냐에서도 보는 모양이다. 오후나 초저녁에 방송되기 땜에 자주 보지 못해 아쉬워하던 차였다.

(그림 출처 : azukichans.wo.to.)

그런데 어느 날인가  마침 시간이 맞아 <쫑아는 사춘기>가 방영되는 걸 볼 수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 이야기여서인지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하는 것이 중요한 줄거리를 이룬다. 어쨌거나 쫑아와 세 여자 아이(나리, 한나, 보라), 그리고 남자 아이 셋(영웅이, 짱구, 멀대)은 매우 친하게 지내는데, 이 아이들이 생일에 자기들끼리 잔치를 하자고  누군가의 집에 모인다. 그러고 나서, 그 다음 장면을 보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쫑아  

글쎄, 여자 아이들이 부엌에서 먹을 것을 준비해가지고는 거실로 가는데, 거실에선 남자 아이 세 명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여자 아이들이 부엌에서 잔치 준비를 하는 동안 남자 아이들은 카드놀이를 한다...  이런 장면이 아이들 보는 인기 만화에 버젓이 표현된 것이 매우 놀라웠다.


여기 나오는 아이들은 다 귀엽고 착하다. 쫑아는 콧대 높은 부잣집 아이 장미를 샘내고 미워하기도 하고, 남동생과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부모님 심부름도 잘하고, 친구들을 위해줄 줄도 안다. 개구쟁이 남자 아이들도 그럴 법하고, 선머슴 같은 보라도, 모범생 한나도... 장미만 "부잣집 아이가 이렇게 굴면 정말 미울 거야" 싶을 만한 특성을 잔뜩 갖다 붙여 좀 이상한 아이로 만들어놓았다.

대단한 철학이 있는 만화도 아니니까 그 정도 악녀 설정은 무시하고 넘어갔는데, 아까 그 장면을 보고 나니, 이 만화를 만든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21세기 일본에서도 그런 게 당연하단 말인가? 

 

 

 

 

보라 나리 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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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4-07-22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 외로 아동물에 이런 게 많이 나옵니다. 아마 이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나 봐요. 의식적으로라도 반대의 경우가 나왔음 좋겠는데...

다섯 살짜리 우리 늦둥이도, 자기는 공주놀이 할 거라며 하는 짓이 성에 갇혀서 왕자님 기다리는 겁니다. 경악~ 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좀 흥분해서 오버했더니, 위로 큰아이들, '우리 엄마 또 시작했다' 뭐 이런 수준으로 받아들입니다...ㅠㅠ

숨은아이 2004-07-22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적인 공주 왕자 이야기도 아니고, 현재 시점에서 사실감 있게 그린 만화라 충격이 더 컸어요. 그건 그렇고 호랑녀님 막내따님... 하하... 좀 놀랍긴 해도... 머릿속엔 아주 앙증맞은 장면이 떠오르는걸요. ^^ 자라면서 엄마 생각을 다 이해할 거예요.
 

지하철노조 파업을 지지한다.... 2004/07/20 18:26

내일 새벽 4시부터 전국지하철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간다. 정부는 벌써 불법파업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나는 수긍하기 어렵다.

 

1. 노동조합 요구에 대한 생각

 

2004년 7월 1일부터 주 40시간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우선은 공공부문 및 1000인이상 사업장이 적용된다. 주 40시간이 되면 줄어든 4시간분의 일을 해야할 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만약 인력을 늘이지 않고 그 제도를 도입한다면, 그 제도 도입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따라서, 이번 파업의 핵심적 요구 사항인 인력을 늘이라는 노조의 요구는 지극히 정당한 요구라 하겠다.

 

그런데, 사용자(공사)는 인력을 늘일 수 없다고만 한다. 인력을 늘이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언뜻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인력을 늘리면 예산이 더 필요하고 요금 인상이 뒤따르므로 그럴 수 없다고 하지만, 대중교통은 애초에 이윤을 목적으로 또는 흑자를 목적으로 운영되어서는 안된다. 시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우선하여 정책을 잡아가야 하는 것이 대중교통 정책이다. 그러려면, 특히 정한 인원을 적정하게 운용하여 시민들의 안전과 편의가 보장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인원은 과연 적정한가 ? 내가 알아본 바로는(참고로 난 어느 지하철노조의 자문을 맡고 있다) 그렇지 않다. 주 44시간 제도인 현재도 공사가 자체적으로 책정한 정원에도 못미치는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 그것은 곧 적정한 인력보다 부족한 인력이 그 부족한 인력의 일을 나누어 부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될 수 있을까 ? 시민들 다수가 이용하는 지하철의 경우 시민들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적정하다고 판단한 인력이 그 적정한 일을 해야 함에도 적정한 인력보다 부족한 인력이 일을 하고 있으므로, 과중한 업무로 인해 안전 사고가 발생할 여지는 더 많아진다. 또한,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는 데다가 인력마저 부족하게 될 경우, 작년 대구지하철 참사와 같은 대형 사고가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

 

한편, 서울지하철의 경우 적정한 인원보다 부족한 인원, 즉 신규 인력이 규모를 약 3000명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곧 고용 창출을 의미한다. 주 40시간 제도 도입 목적 중 하나가 바로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한 고용 창출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신규 인력의 채용을 통한 주 40시간 제도의 도입 주장은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정당한 요구가 된다.

 

위와 같은 여러 이유들을 보면, 나는 지하철노조의 요구 특히 신규 인력 충원이라는 요구에 대해 지지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2. 불법파업에 대한 생각

 

현행법상 쟁의행위(파업 등)가 정당하다고 판단되려면, 목적, 방법, 수단, 절차 등이 정당해야 한다고 하는데, 목적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정당하고 수단과 방법에서도 현재까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다.

 

다만, 노동위원회가 이른바 직권중재 결정(즉, 노동위원회가 노사 의견을 수렴하여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중재재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에 들어감을 확인하는 결정)을 하였고, 현행법상 그 결정 후 15일 동안 쟁의행위는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만약 내일부터 노조가 파업을 하면 현행법상 절차를 위반한 것이니 불법파업이라는 것이다.

 

우선, 직권중재 제도에 대해 보면, 헌법재판소는 최근 2번에 걸쳐 합헌 결정을 하였으나, 위헌이라는 의견 역시 헌법재판관의 반수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단체행동권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대표적인 위헌 조항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직권중재 제도가 생긴 이래, 해당 사업장에는 직권중재 결정이 예외없이 내려졌고(한국통신계약직노조와 보건의료노조만이 예외였다), 그 결과 구속, 해고, 가압류, 재파업 등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더 심각한 것은 사용자들이 직권중재 제도를 믿고 아예 교섭에 나서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위원회는 직권중재 결정을 남발한다. 하여, 해당 사업장 노조는 단체행동권을 행사하여 그들이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박탈되어 버린다.

 

정부마저도(정부가 개입하려 하면 사용자마저도) 노사 문제는 당사자가 풀라고 한다. 그것이 옳다. 그런데 왜 직권중재를 해대는가 ? 노사가 알아서 풀라고 하면 된다. 오로지 노조의 파업으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다고 해서 그들의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제한적 박탈도 아니다. 원천적으로 사전적으로 사후 구제수단마저도 마땅치 않으며 대신할 만한 적정한 방법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할 수 있단 말인가 ?

 

나아가 지하철이 멈춘다고 무슨 큰일이 난다는 것인가 ? 전국에 차량은 1000만대를 넘어선지 오래되었고, 버스 등 다른 대체 교통수단도 많다. 실제 지하철 파업이 그 동안 있었어도 무슨 큰일이 난 적도 없다. 그리고, 그 정도의 불편도 서로 용인하지 못하는 사회와 그것을 불법으로 몰아대며 적대시하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 할 수 있겠는가 ?

 

직권중재 후 불법파업이라는 주장은 위와 같은 이유로 난 수긍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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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중재 제도도 없어져야겠지만, 아무 생각없이 직권중재나 남발해대는 노동위원회, 그리고, 그런 절차를 어겼다고 해서 더군다나 노조이 주장에 공익을 위한 주장이 함께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징역을 때리고 수백 수천의 벌금을 내려대는 사법부도 그렇고, 집단행동 자체를 병적으로 혐오하는 것같은 사회 분위기와 몇몇 정신나간 언론과 그에 놀아나는 공권력도 다 함께 찌그러졌으면 한다.

 

다시는 정부와 언론이 시민의 불편, 교통대란 운운하면서 모씨(시민)의 인터뷰를 내보내는 끔찍한 일을 보고 싶지 않다. 정부나 언론 등이 그런 짓을 하더라도 자랑스런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 국민과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그런 인터뷰 요청에 판에 박힌 말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마주보며말하기 2004/07/20
내가 어떤 노조를 자문하고 있다고 해서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라는 점을 노파심에서 밝힌다. 특히 노동법은 노사간 힘의 역관계가 그래도 반영되는 것이 특징이므로, 노동법을 공부한 사람이 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고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면, 힘있고 돈있는 자에게 빌붙어 살아갈 가능성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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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07-2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이 법 이야기를 많이 쓰니까 혹시 변호사로 짐작하시는 분이 있을까 봐 밝힙니다. 이 사람은 공인노무사입니다. 노무사는 노동법에 관련된 일을 대행하고, 노조에 법률 자문을 해주는 사람입니다. 가난한 직업이죠. ^^

조선인 2004-07-2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하철 파업을 지지합니다.
비록 출근길은 지옥같았지만, 대구지하철 참사 재발보다야 훨 낫겠죠 ^^

숨은아이 2004-07-21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처럼 먼 길을 출퇴근하시는 분은 정말 힘들겠어요. T_T 파업 때 대체인력으로 투입되는 사람들은 또 적은 수로 그 시간을 메우느라 혹사당한다던데... 이러나저러나 고용 창출이 열쇠입니다. / 따우님께선 노무사를 아시네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데... 반가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