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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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 작가의 문장력은 진짜 뛰어나다. 그래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게 된다.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기간은 2017년부터 2021년 사이 발표한 것들이다.

8편 중 가장 인상적인 단편 순으로 써내려가겠다.


1. 상자 속의 남자(창비 2021 두 번재 엔딩)

-놀랍게도 <아몬드>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 나는 형이 선행으로 병상에 6년 넘게 눕게 되자, 절대 다른 사람에게 고마운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결국 그 결심은 깨지게 된다. 한 소년과 소녀를 만나면서.


2. 아리아드네 정원 (2020 다산북스, 나의 할머니에게)

SF다. 미래의 노인들. 저출생으로 결국 이민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한국. 하지만 여전히 그 안에 계급갈등, 외국인 혐오, 노인혐오, 세대갈등 등이 있다. 이런 어려운 주제를 자연스럽게 녹아내는 작가가 대단하다.


3. 문학이란 무엇인가(2018 악스트)

표절. 정말 심각한 문제다. 젊은 세대와 원로 작가가 쓰는 결말이 흥미롭다. 과연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 


4. 열리지 않은 책방 (2018 서점들)

가장 독특한 문체다. 손님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귀신? 아침 햇살? 한 편의 뮤직 비디오를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5. 타인의 집 (2021 창작과비평)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해서, 가장 기대했던 작품이다. 역시 집 문제가 대세구나. 

세입자의 세입자. 셰어하우스. 20대는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외국에 나갔을 때 셰어 하우스 산적이 있어서 공감갔다.

한국으로 배경이 옮겨오면 더 착잡해지지만.


6. 괴물들 (2020 몬스터: 한낮의 그림자)

개인이 생각하는 '표준'에 맞춰사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일일까? 남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대로 사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7. zip(2018 자음과모음)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늘 집을 탈출하기를 원하는 여자. 과연 아파트 공사 현장의 인공호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8. 4월의 눈 (2017 창작과비평)

에어비앤비라는 최신 소재를 통해 부부의 갈등과 멈춤을 보여준다. 사랑하지만 결코 헤어질 때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구나.



여자가 남편에게 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날부터 둘의 관계에 본격적인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여자는 집착에 가까운 오기로매일매일 남편을 설득했다.

하필 첫 연애라 견줄 경험도, 감정도 없던 게 영화는 원통해 견딜 수가 없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날로 돌아가 주둥이를 맞대고 있는 자신의 머리를 번쩍 낚아채고야 말 것을.
기한은 영화에게 꽉 짜인 울타리와 지붕을 제공했다. 견고하되 구멍이 많고 드나들 수 있지만 도망칠 수 없는 울타리와 지붕이었다. 바람은 슝슝 불어들었고 비가 사방에서 새어들어왔으며 파도가 철썩철썩 몰아치고 태풍이 모든 것을엉망으로 뒤흔들었다.

잔인한 운명에 무릎을 꿇을 때마다 영화는 이를 아드득 빠드득 갈며 작은애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 기다리자고 탈출의 시점을 유예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석연찮은 동지애를 나누며 꽤 오랜 시간을 한 공간에서 살아 오늘날에 이르렀고, 그러는 동안 영화도 기한도 서로를 처음 알게 된 날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 P75

소설가는 얼핏 보라와 눈이 마주쳤으나 그 시선은 보라가 들고 있는 책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하지만 그 눈빛에 담긴 하찮음이, 자신을 포함한 이 자리의 모든 것을 외부화시켜버리는 폐쇄적인 표정이 보라의 용기를 꺾었다. - P211

소설 곳곳에 깔린 저출생, 고령화, 1인 가구에 대한 차별, 성차별, 외국인 혐오, 불안정 노동, 세대 갈등, 청년세대의 박탈감, 노년세대에 대한 혐오 등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소설이 그려내는 ‘미래‘란 지금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사실은 모두 알고 있는 한국사회의 면면들이 증폭되어 반영된 공간이자, 사회 구성원인 우리들의 내면에서 진동하고 있는 혐오의 주파수가 극대화된 공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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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02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몬드, 를 부산원북원 도서로 몇 년 전 낭독녹음을 해서 음성도서로 배포되었던 적이 있어 그때 처음 본 작가예요. 무감각이 얼마나 무서운지 느껴졌던 작품인데 단편소설집의 상자속의남자에 아몬드 이야기가 나오나 보네요. 가장 인상적인 단편으로 꼽으셔서 읽어 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