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연주회가 끝날 때까지 손가락들은 계속 움직일 것이며, 거기 있는 누구도 무엇 하나 알아채지 못할 테지만, 말하자면 그는 연결점을 상실한 것이었다. 우선 그들과의 연결점을. 조는 이들,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저녁 식사를 벌써부터 기대하는 이들, 아니면 다음날, 이곳에 있었다는 말을 하기위해 거기 와 있는 이들………… 이 청중들의 수를 헤아려 본 다음, 그는 연주장에 와 있는 사람들 가운데 음악이 가슴까지 파고 들어간 이들이 얼마나 적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열의 없이 음악에 순응하는 이들, 꿈꾸고 계산하면서 음악을 듣는 동안 불편을 느끼지 않는 이들보다 그는 차라리 음악이 들리면 내빼는 이들을 선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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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윌리엄!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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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들어 처음으로, 다른 일을 하다가도 또는 아무리 피곤해도 빨리 읽고 싶어서 안달나는 책을 만났다. 아유 재미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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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2-18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서 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소설 이었어요.

치니 2022-12-19 15:17   좋아요 0 | URL
그쵸! 많은 분들이 찬사를 보낸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근데 읽으면서 계속, 혹시 엘리자베스 본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건가, 너무 본인 이야기처럼 쓰셨다 생각했어요. 다른 책보다 이번 책이 특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흠흠.

다락방 2022-12-19 15:36   좋아요 0 | URL
전 이거 읽고나서 원서로 읽고 있어요. 그런데 원서가 예상외로 어려워서 번역본하고 나란히 놓고 보고 있어요. 모르는 단어는 다른 원서들에 비해 적은데도 불구하고 해석이 잘 안되고 어렵더라고요. ㅠㅠ

치니 2022-12-19 16:05   좋아요 0 | URL
저도 원서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생각(만) 해요. 어려워도 도전하는 다락방 님, 존경합니다!
 

원하는 전부

그가 쇼팽의 에튀드 C#단조를 연주하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이게 내가 원하는 전부야. 심지어 내가 그 생각을 하기는 했는지조차 모르겠다. 그저 그의 연주를 듣는 것 말고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다른 것은 없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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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잖아.

한번은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마다. 나는 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뭔지를 바라봐." 그리고 그해에 내가 하고 있던 일은, 아직 실제로 떠나지는 않았음에도,
떠나는 것이었다.
이제 내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러면 당신도 비열한 말을하겠다고 선택한 게 아닌 거네, 윌리엄."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가 대답했다.
내가 말했다. "나도 그건 알아!" 그리고 덧붙였다. "내 머릿속은 정말로 비열해서, 당신은 내가 얼마나 비열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믿지 못할걸."
윌리엄이 한 손을 들고 말했다. "루시, 누구든 머릿속은 다 비열해. 맙소사."
"그래?" 내가 물었다.
그러자 윌리엄이 어정쩡하게 웃었는데, 그렇지만 기분좋은 웃음이었다. "그래, 루시, 다들 머릿속은 비열해. 혼자 하는 생각말이야. 그런 건 흔히 비열한 생각이야. 당신은 아는 줄 알았는데, 작가잖아. 오 맙소사, 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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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명령에 따르기는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영혼까지 소유할 수는 없다는 인상을 주었다.’

‘천년이 지나도 그가 나를 비웃을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결코. 어떤 일로도.’

‘친밀함은 그렇게 지긋지긋한 것이 되었다.’

아……이런 문단들이 너무 좋다. 🥹

나는 작문을 가르칠 때 - 그 일을 오래 했다―권위에 대해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글을 쓸 때 권위를 가지는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헬름 게르하르트의 사진을 봤을 때 나는 생각했다. 오, 권위가 느껴지는데, 나는 캐서린이 왜 그와 사랑에 빠졌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단지 그의 외모 때문이 아니라, 그의 외모가 풍기는 인상, 보이는 방식 때문이었다. 그는 명령에 따르기는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영혼까지 소유할 수는없다는 인상을 주었다. 나는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그리고 문밖으로 걸어나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이것을 깨달았다. 이 권위가 바로 내가 윌리엄을사랑하게 된 이유임을. 우리는 권위를 갈망한다. 진실로 그렇다.
누가 뭐라고 말하건 우리는 권위라는 감각을 갈망한다. 혹은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고 믿는다.

매일 아침 데이비드는 아침 설거지를 마치면 창가에 놓인 흰색 카우치로 가서 앉은 다음 자기 옆자리를 톡톡 치곤 했다. 내가 옆에 가서 앉으면 그는 늘 내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그는 매일 아침 이렇게 말했다. "루시 B, 루시 B,
우리가 어떻게 만났을까? 우리가 우리인 것에 하느님께 감사해."
천년이 지나도 그가 나를 비웃을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결코, 어떤 일로도.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문득 윌리엄과 함께 살던 시절에 결혼이라는 것이 내게 종종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지 생생히 떠올랐다. 방안 가득 익숙함이 짙어지고, 상대에 대해 알게 된 사실들로 목구멍이 거의 꽉 막혀 실제로 콧구멍까지 밀고 올라온 것.
같은 느낌 - 상대의 생각이 내뿜는 냄새, 입 밖으로 나온 한마디한 마디에서 느껴지는 자의식, 한쪽 눈썹이 살짝 올라가면서 약간 씰룩이는 모습, 거의 알아차릴 수 없게 살짝 기울어지는 턱,
상대 말고는 아무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들, 그런 걸 느끼고 살면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영원히 그럴 수는 없다.
친밀함은 그렇게 지긋지긋한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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