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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 / 폴리테이아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전반적인 공감 뒤에 남는 몇 가지 의문점들은 어떻게 해소할까, 내게 남은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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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4-0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부제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제가 갑자기, 미친 바람이 불어,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아보겠다는 의지가 불끈불끈 솟아요! 이런 의지는 중학교때 맥가이버아저씨를 만나러 가겠다고 몰래 짐을 꾸리려고 했던 그때의 에너지와 매우 비슷하지요~!

갑자기 왜 이런 미친 생각을 했냐면요, 다 000국회의원 덕분이에요. 이분이 한국의 주택문제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러니까 주택을 무슨 기호품이라 착각하고 있는 정치인을 앞에 두고, 총기가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저분에게 주택은 기호품이 아니라 생필품이다,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반드시 정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겠구나 싶었어요. 기필코 혼내주리라고 다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책을 읽어야겠어요 ;)

치니 2011-04-01 14:15   좋아요 0 | URL
네, 지금의 진보 정당 소속인/진보 연하는 사람들/정치는 어디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에는 불만 투성이인 사람들/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저 - 까지, 모두 한번쯤 읽어보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에요.
한 마디로 시의적절한데, 짧고 작은 책의 겉모양 만큼 속이 깊지는 않다는 게 제 느낌.
강연과 자신의 칼럼을 모은 형식이라 한 권의 책을 오래 다듬어 낸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살짝 아쉽긴 했습니다만, 많이 읽혀서 생산적인 논의가 활발해졌음 싶어요.

ㅋㅋ 근데 중학교 때 맥가이버아저씨는 왜 만나러 가려고 하셨어요? 한 수 배우려고? 아니믄 그분이 너무 멋져서?

굿바이 2011-04-01 16:27   좋아요 0 | URL
흐흐흐, 그러니까 제자가 되려고 했어요~ 그것도 수제자!!!!!

hanicare 2011-04-02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에 관심이 없어요~라고 심드렁하게 말할 여유가 없다는 것.
일개 소시민인 제 귀에도 째깍째깍 지구 수명을 말하는 시계의 초침이 숨넘어가는 듯한 환청이 들린다는 것.

어느 시대나 위기였겠지만 지금은 그 급이 다르군요.임금이 누군들 뭔 상관~이라며 격앙가를 부르던 시절은 정말 전설시대였나봅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요.

치니 2011-04-02 22:05   좋아요 0 | URL
hanicare 님, 토요일에도 이렇게나 일찍 일어나시다니! ㅎㅎ 시간에 놀랍니다.

네, 이렇게 전국민을 긴장시키는 정부도 드물어요. 기껏 데모나 하다가 학교 졸업하면 어물쩡 취직이라도 잘 되던 우리 때보다 훨씬 더 한 위기감이 하루가 다르게 엄습하니 말예요.

네오 2011-04-0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어요? 라는 '원초적인' 질문부터 하고 싶네요ㅋㅋ
부제가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강의인데 아직도 그러한 희망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 많나보네요?^^ 그냥 투표나 열심히 할래요~

안티크라이스트 4월14일 개봉한다고 그러는데 개봉관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저는 이미 이 영화를 봤지만 개봉하는 순간 초스피드로 물불안가리고 달려가서 표를 끊고 영화를보고 싶은 마음뿐이네요~ 왜냐라고 물으신다면(궁금하지도 않겠지만요ㅎㅎ) 제 개인적으로는 정말'최고'의 영화이기때문이죠~ 또 왜냐고 물으신다면 멋지게 편지형식으로 써드릴께요~

그런데 이 영화, 여성분이 보시기에는 정말 짜증스러운 스토리이죠~
어떻게보면 아이를 잃은 여인의 슬픔을 최대치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하고 싶지만 라스 폰 트리에가 그렇게 낭만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튼 그냥 올해의 영화를 선정해볼때 2008년 베스트 파라노이드 파크, 2009년 베스트 안티크라이스트, 2010 베스트 블랙스완 이렇게네요^^

치니 2011-04-03 15:14   좋아요 0 | URL
저는 원초적으로 재미있어야 책은 그 가치를 최고치로 올릴 수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이 그렇진 않아요.
부제에 충실하면서 읽자면 어느 정도는 얻는 것이 있고요. 엄밀히 말하면 소위 진보파에 속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개선 사항들을 일일히 지적하는 수준이라고 할까요, 크나큰 대안이 확 나올 리야 없습니다. 답답한 심정에 집어들게 되는 책인데요, 읽다보니 저는 딱히 어느 파는 아니지만 평소 생활상에서 찔리는 부분은 많더라고요. ^-^;

안티크라이스트, 호오, 말씀을 들으니 더욱 기대가 되네요. 라스 폰 트리에는 애증의 감독이어요, 제게는. 아유, 아직도 어둠 속의 댄서 때 하필 맨 앞자리에 앉아서 멀미가 너무 심해 고생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도 낭만적인 사람이 못 되는데 멀미는 싫어하기 때문에;;; 약간 두렵네요. ㅎ

네오 2011-04-06 18:32   좋아요 0 | URL
안티크라이스트 이동진이 '걸작'이라고 칭하더군요^^(사실 저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에 김혜리는 어둠속의 댄서를 봤을때의 치니님처럼 멀미로 고생했데요~

남성과 여성의 평가가 분명히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이 있는데 사실 저도 이부분 좋아하지 않아요(왜 하필이면 이렇게까지라며 분노했죠^^)

그런데 이번의 개봉판이 미국상영판이던데 거기서 몇초가 삭제된답니다

그런데 그 몇초 삭제장면 정말 충격이죠(미루어 짐작컨테)아마도 그 장면을 삭제했을꺼예요~

궁금하죠? 그 장면ㅋㅋ 아~제가 남성의입으로 말하는 것은 진심으로 민망해서요^^

대신에 프롤로그는 어떠한 영화들보다 굉장히 좋았습니다~레알 so cool

아~ 혹시 궁금한건데 주위친구분들중의 라스폰트리에를 좋아하는 사람있나요? 내 주위여성분들에게 그에 대한 내용을 알려주면 거의 분개해서요^^

치니 2011-04-06 19:0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보지 않고는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겠어요. ^-^;
제 주변에서 라스폰트리에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려보니 젊은 남성이 있고, 여성 중에는 그닥 없는 것 같아요. 흐음.

아무튼 일단 함 보겠습니다! :)

네오 2011-04-09 13:49   좋아요 0 | URL
정치의 발견 굉장히 얇은 책이네요~ 아 그런데 이책 한나라당 국회의원중의 홈피의 이주의 책하면서 추천하는 바람에 김팍 새버렸어요^^

치니 2011-04-09 14:33   좋아요 0 | URL
얇고 강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게 장점이자 단점인 듯. 약간은 겉핥기 식 대안을 보여주는 듯해요.
한나라당이 저도 밉긴 하지만, 이런 책을 굳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만 않는다면야, 그분들도 읽어보면 좋죠 ~ ㅎ
 
세상의 모든 계절 - Another Yea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마침 이런 글을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는데, 

   
 

 그러면 결국 부러움이란 게 무엇이겠는가? 일단 아우구스티누스가 묘사했던, 자기 어머니의 젖을 빠는 동생을 부러워하는 아기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여기서 주체가 부러워하는 것은 타자가 소중한 대상을 소유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아니라, 타자가 대상을 즐길 수 있는 방식이다. 따라서 그 대상을 훔쳐서 제 소유로 삼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가 가진 진정한 목적은 타자가 대상을 즐기는 능력/역량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부러움, 검약, 우울이라는 삼항 관계 속에 배치될 필요가 있다. 이 세 가지 형태의 감정은 대상을 직접 향유할 수 없는 상태에 있지만, 바로 그 불가능한 상태가 비친 거울상을 향유하는 상태에 있기도 하다. 부러움의 감정을 가진 주체는 타자가 소유하고 있고/있거나 타자가 주이상스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부러워하는데, 이와 대조적으로 구두쇠는 대상을 소유하긴 하지만, 그것을 향유/소비할 줄 모른다. 구두쇠는 단지 대상을 소유하는 데에서,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도 소비되어서는 안 될 신성한 실체, 손댈 수 없는/금지된 실체로 격상시키는 데에서 만족을 느낀다.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고독한 구두쇠의 전형적인 모습은 집에 돌아와 조심스레 문을 다 걸어 잠그고 궤짝을 열어 제 소중한 대상을 몰래 훔쳐보며 경탄하는 장면이다. 그가 대상을 소비하지 못하도록 막는 사실 덕분에 그 대상은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지위가 보장된다. 한편 우울한 주체의 경우는 구두쇠처럼 대상을 소유하긴 하지만, 왜 그것을 욕망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잃어버린다. 따라서 우울한 주체는 셋 가운데 가장 비극적이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지만, 거기서 어떤 만족도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 <폭력이란 무엇인가> (슬라보예 지젝 저) 중에서. 

나는 자꾸만 영화 속 톰과 제리보다 매리에게 온통 신경이 쏠렸다. 눈빛 하나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가히 전 지구에서 가장 평화로운 일상을 연출하고 있는 톰과 제리는 부부, 제리의 직장 동료인 20년 지기 친구인 매리는 그들 부부에 대한 부러움 속에 영화의 마지막까지 '우울한' 주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이 담담한 영화가 왠지 으슬으슬한 미스테리 영화처럼 보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지젝은 책에서 저런 이유로 폭력이 발생한다고 진단한다. 즉, 누군가의 욕망을 제거하고 자신이 이겨야 끝나는 제로섬 법칙 때문에 폭력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란다. 가령, '너에게 하나를 주고 남이 두 개를 가져도 좋으냐 아니면 너에게 하나를 빼앗고 남에게 두 개를 빼앗는 것이 좋으냐' 라고 물으면 사람이란 후자를 택한단다. 내가 이기느니 차라리 남이 지는 것이 나은, 평등을 희구하는, 원천적 부러움이라는 감정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 이유없이 테러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뉴올리언즈의 흑인들은 백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 때문에 폭동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소유한 것을 자신들과 똑같이 소유하지 않아야만 하기에, 종교로 인한 폭동 역시 다른 종교가 향유하는 것을 자신들과 똑같이 향유하지 못하게 해야 하기에.......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매리는 지젝 식 논리의 틀 안에 끼워맞추기 좋은 인물이다. 그녀는 제리를 참 좋아하고 제리의 집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Peaceful 하다며 경탄하지만, 톰 제리 부부의 아들이 여자친구를 얻자 스스로도 이해불가한 질투의 화신이 되어 모든 관계를 망쳐버리고 부부에게 위기의식과 실망감을 남겨주고 마는 - 평화를 깰 위험이 있는 폭력의 주체가 된다.  

하지만, 시선을 거꾸로 뒤집으면, 그러니까 매리의 시각에서 보자면, 톰 제리 부부는 그 자신들만의 안온한 생활 속에서 폭력을 전혀 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혹은 그들이 폭력을 유발한 건 아닐까. 철저한 이기주의 - 자기애가 이기주의의 동의어라 친다면 - 로 매리가 조금이라도 성역을 침범하면 '네가 이해해야 해, 여기는 우리 가정이야, 우리는 가정을 지켜야 하고' (극 중 제리의 말이다) 라면서 넌지시 밀어내는 일을 반복적으로 했던 것을 폭력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하아 - 아무래도 영화를 너무나 내 시각에만 좁게 가두고 본 모양이다. 실은 이런 이야기가 아닌데. 그저 제목처럼 '인생의 모든 계절'을 살아가는 우리네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린 것일 뿐일 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뭐, 영화란, 아니 모든 예술작품이란, 관객의 반응이 아무리 제멋대로여도 불평할 수 없는 숙명을 타고났으니 어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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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8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8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오 2011-03-18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톰과 제리여? 왜 저는 만회가 퍼뜩 떠오르는지~ 지젝의 책의 텍스트가 마이클리의 세상의 모든 계절의 이미지속으로 빨려들러갔군요~ ㅎㅎ

치니 2011-03-19 13:01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유명한 만화 속 톰과 제리를 영화에서도 언급해요. 그 앙숙 커플이 실제로는 잉꼬라면서. ㅎㅎ
요새 이것저것 짬뽕으로 읽고 보니, 막 섞이나봐요. ㅎ

프레이야 2011-03-25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굿모닝^^
이런 영화가 있군요.
어디서 보셨어요? 아주 보고 싶어지는 영화에요.
제목부터 시적인 게 끌려요.

치니 2011-03-25 13:45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 굿 애프터눈 ~ :)

저는 아트선재 시네마에서 봤는데, 그 당시엔 개봉 직전 시사회였고요,
아마 어제부터가 본격 개봉일인 걸로 알고 있어요.
프레이야 님 계신 데도 아마 찾아보면 하는 데 있을 거에요. 감독이 마이크 리, 나름 유명한지라 챙겨 보는 분들 있더라고요.
영화 보시면 제 리뷰가 얼마나 억측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 ㅋ

2011-04-11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12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블랙 장르의 재발견 1
오스카 와일드 지음, 서민아 옮김 / 예담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예술이 진정으로 반영하는 것은 관객이지 삶이 아니다. ......쓸모없는 것을 만드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사람들이 그것에 열렬히 감탄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전혀 쓸모없다.
 
   
   
  생각하면 서글픈 일이긴 하지만, 천재성이 아름다움보다 오래 지속된다는 건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거든. 우리 모두가 교육을 받기 위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몹시도 애를 쓴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존재를 향한 거친 투쟁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싶어하는데, 그러다 보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어리석은 희망 속에서 쓰레기와 사실들을 정신에 가득 채워넣는거지. 지식으로 완벽하게 똘똘 뭉친 사람 - 이것이야말로 현대의 이상이야. 한데 지식으로 완벽하게 똘똘 뭉친 사람의 정신은 얼마나 끔찍하겠나. 그건 마치 온갖 잡동사니와 먼지로 가득 찬 데다, 모든 물건에 적정한 가치 이상의 가격이 매겨진 골동품 상점과 같아.  
   

위대한 작가일수록, 단 한 줄의 문장, 단 한 권의 책으로 독자에게 수많은, 끊이지 않는, 답이 없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선 저 위 두 가지 인용문을 보라. 어떤 생각이 드는가.

첫 번째는 7페이지, 서문에서부터 나오는 문장, 두 번째 역시 27페이지 초반부터 나오는 문장이다. 서문은 오스카 와일드 자신의 말이고, 초반에 나오는 저 대사는 냉소적인 지식인으로 분한 책 속의 헨리 경이 읊은 말이다.
초반에 나는, 당연히 헨리 경의 저 대사에 저자인 와일드의 주장이 녹아 있으려니 믿고 다음을 읽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헷갈리기 시작했다.
헨리 경의 경구 식 대사는 가끔 치명적인 오독을 불러 일으키고자 일부러 써버린 듯한, 그러니까 반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강하게 질문을 제시하는 느낌을 주었으며, 헨리 경에게 줄곧 반론을 펼치는 인물인 도덕적인 지식인 바질 경의 대사를 읽고 있자니, 냉소하는 헨리와 훈계하는 바질 중 어느 쪽이 오스카 와일드의 본심인지 구분이 되지 않기 시작했다.
옮긴이의 해석을 보면 이 책이 나오던 19세기 당시 와일드는 탐미주의 혹은 유미주의라고 불리는 기조의 선두에 섰던 인물이고, 그의 예술에 대한 주장은 지식이나 이성 보다는 아름다움과 감각 쪽으로 완전히 편향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나는 줄곧 헷갈렸다.
어쩌면 작가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도발하는, 바로 그 질문들 자체가 내게는 버거운 것들이라 혼돈스러운 상태에서 - 그러니까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로 - 읽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반면 이 모든 혼돈 속에 아름다움의 상징으로써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도리언 그레이' 경은, 내게는 아름다움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악의 상징, 보들레르 식으로 말하자면 악의 꽃 같았다.
와일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 결국 악이라는 - 그리고 이 악은 이성 따위로는 애초부터 통제되지 않으며 오로지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때만 우리들을 해 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아니면 도리언 그레이 같은 천부적인 미를 소유한 사람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의 극치이므로 변치않는 아름다움이라는 목표를 충족하고자 인간으로써의 삶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고통받고 자멸하니, 결국 인간이란 예술 - 그 쓸모없는 감각적 쾌락의 끝에 있는 무언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마는 바보같은 존재이고 예술가 역시 이를 조장하는 무리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혼돈은 계속된다. 진정한 아름다움이 뭔지도 이젠 더이상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제 만난 십대 소녀가 이 책을 읽고 싶어했을 때 내가 말렸다는 것. 그러니까 이 책을 어린 영혼이 읽으면 안될 것 같은 두려움이 내 안에 생겼다는 것.
좀 더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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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1-03-1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용으로 어린시절 이 책을 읽었던 분의 말에 의하면, 청소년용은 이렇대요.

"나쁜짓을 했더니 초상화가 늙었어요" --> 착하게 살자, 뭐 이렇게 결론 내게 하는? ㅋ
오스카와일드가 땅을치겠죠? ㅋㅋㅋㅋㅋ

치니 2011-03-14 22:32   좋아요 0 | URL
앗, 청소년용이 따로 나왔군요? ㅎㅎ 고전이라는 범위 안에서 그런 기획이 있었나부네요.
어떤 식으로 가지를 쳤는지 급 궁금해집니다. 전체 내용의 호러성은 둘째 치고, 와일드가 쓴 어떤 문장들은, 실제로 이 작가가 사악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자주 품게 만들던데, 흠흠.

굿바이 2011-03-15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훠! 인용문에 두들겨 맞는 기분이네요.
실은 제가, 작가는 전혀 모르겠지만, 오스카 와일드를 살살~ 피해다녔거든요. 뭐랄까, 정답은 아니어도 뭔가 발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될 것 만 같은, 노파같은 그런 심정으로다가 --;
그나저나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뭣일까요...참말로....

치니 2011-03-15 13:54   좋아요 0 | URL
ㅎㅎㅎ 피해다녔다는 그 말씀, 노파같은 심정, 완전 이해가요. 그런 게 있어요, 이 양반. 쫌 무섭슴다.
하지만 천재는 천재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같은 범인은 천재가 하는 양만 봐도 재미나기 땜시 읽었습니다만, 굿바이 님은 영 안 내키면 안 읽으셔도 무방할 듯. 뭐허러 피하던 걸 굳이. ㅎㅎ

네오 2011-03-15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이 곧 예술인가" 의 질문의 답이 "진정한 아름다움이 뭔지도 이젠 더이상 모르겠다"라고 정의를 내리신 건가요? :D, 제가 난독증이 걸려서 그런지 글의 정리가 안되네요~ 이번의 태그도 생략하시고~ 이번의 예담에서 새롭게 출판을 했나보져? 전 펭귄클래식판본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리고 혹시 "사랑해 파리"라는 옴니버스 영화보셨나여? 에피소드중의 오스카와일드가 소재인 영화가 있져, 그의 무덤이 파리에 있다는것을 그때 처음 알았어여~ 그리고 그 여주인공 완전 오스카 와일드 팬이던데, 그거때문에 남자가 괴로워하는것을 보고 참나~(여자는 아주 멋지게 오스카 와일드식으로 프로포즈를 원하는데 남자는 그런방식을 싫어허죠) 오스카 와일드같은 감수성을 보통 남자들이 지니기 힘들져 ㅎㅎ 잘 보고 갑니다

치니 2011-03-15 18:40   좋아요 0 | URL
네오 님은 정말 모르는 게 없으셔요! ^-^
그렇습니다, 글이 정리가 안 되더라고요. ㅋㅋ 난독증 때문이 아니라 제 글이 문제입니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토록 유명한 책이었는지도 몰랐어요. 예담이 출판을 했다는 것도, 네오 님이 말씀하셔서 다시 봤고. 아무튼 번역은 꽤 성실한 편이어서 만족스러웠어요.
"사랑해 파리"를 열광하면서 봤죠. 제게는 나름 추억이 서린 도시라;; 그런데 이런, 오스카와일드가 소재인 영화는 아주 어렴풋하게 기억나네요. 그게 와일드였다는 건 까맣게 잊었고 그의 무덤에 찾아가는 장면은 기억을 애써 되살리니 조금씩 조금씩...에고, 이러니 뭘 보고 읽어봐야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차좋아 2011-03-16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도 읽을래요. ㅋㅋㅋㅋㅋ 모임 책이었는데 읽지도 않고 모임도 안 나갔어요. '에잇 안 읽을테다!'(뭐 잘했다고 에잇이냐!) 마음 먹은게 엊그제 같은데 치니님 리뷰를 보니 궁금해서 읽어야겠어요.

치니 2011-03-16 18:44   좋아요 0 | URL
모임 책이었는데 안 읽고 나가는 거 - ㅋㅋ 기시감이 듭니다. 예전에 저도 자주 그랬던 기억이;;; ㅋㅋ
시간이 되신다면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차좋아 님이 어떻게 느끼실까 궁금하거든요. :)
 
여명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송기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어떻게든 객관적으로 읽어보려던 내가 바보스러워졌다. 콜레트에 대한 기분좋은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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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2011-03-1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 가니 문학동네의 신간이 우수수 쏟아져 있더라구여~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참 맘에 들져?

치니 2011-03-15 18:41   좋아요 0 | URL
^-^;; 역시, 문학동네 전집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읽었습니다. 저의 허술함을 매번 들키네요.

stillyours 2011-03-18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읽기 전에 한수철 님과 같은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1에서 2로 갔던 것 같아요.

치니 2011-03-18 18:55   좋아요 0 | URL
그져그져, ^-^ 읽다 보니 2로 가는 거 같더라고요. moon 님 덕분에 몰랐던 콜레트의 세계를 만났어요. 놀라운 세계. :)
 
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나에게는 원래 곰스크가 없었다,기뻐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쯔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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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3-11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치니님, 저에게도 곰스크는 없는 것 같아요.

치니 2011-03-12 14:31   좋아요 0 | URL
아앗, 그래요? 나만 없는 줄 알고 약간 침울해졌었는데. 히히, 왠지 위로가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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