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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0살,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 100년간의 삶을 통해 얻은 지혜의 메시지
엠마뉘엘 수녀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엊그제 누군가와 나누던 대화에서 '좋은 책이란, 결국 대상이 되는 독자층이 따로 없는, 즉 어떤 사람도 어떤 상황에서도 좋아할 만한 책이겠죠'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었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책 읽기를 오랫동안 사랑해 온 나로써는 소위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의 정의가 결국 저 말처럼 되어야 하지 않나 라고 생각하기에.
오늘, 그런 책을 만났다. 한 줄 읽기 시작하면 마음에 빛이 돌기 시작하고 두 줄 읽으면 빠져들고 세 줄 읽으면 고민하고 그러다 손에서 놓지 못하고 결국 작가 김연수씨와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을.(참고로, 김연수씨가 이 책에 대해 블로그에 쓴 제목은, 과장을 금기시 할 만한 작가가 올릴만한 제목 같지 않을 정도: 나의 소원은 이 분처럼 오래 살고, 또 솔직하게 사는 것,나의 소원은 이 분처럼 오래 살고, 또 농담하며 사는 것)
나에게는 종교가 없다. 그렇다고 무신론자인가 자문하자면 쉽사리 예스나 노우를 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이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 지를 잘 알고 있는데, 그런 인간이 이 정도나마 생을 꾸려가고 있다면 인간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겠나 하는 단순한 논리로 신이 어딘가에 있기는 있지 않을까 하기 때문이다. 대신에,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는 사람들은 무신론자보다 경멸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아무리 선한 의도로 강요하고 있다 하더라도, 내 생각에는 어떤 신도 그걸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들의 무지에 분개한다. 그런 사람들의 수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면 나도 종교인이 되었을 지도 모르니, 강요하는 종교인들이 역설적으로 비종교인을 양성하는 셈이다.
우선, 예의 김연수 작가가 소원까지 빌게 만드는 분(유명작가가 좋아하는 책이란 이유만으로 나 같은 독자들은 그 책에 훅 끌리는 게 사실)이고, 제목이 멋지기에(국내출판사에서 임의로 지은 제목이 아니고 불어로 된 원제를 직역한 것, 이걸 직역하지 않고 다르게 지었다면 꽤 억울했을 것 같다) 이미 관심을 두었던 책이지만, 위에 적은 평소의 생각 때문에 첫 장을 펼치기 전까지는 종교적인 색채가 짙다면 금세 지루해지리라, 회개하고 반성하고 인내하라며 설교하는 책은 질색인데, 라는 심정도 가지고 있었으나, 다행스럽게도 그런 의혹은 처음부터 바로 씻겨졌다. 이런 글귀가 곧 나타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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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끔찍합니다. 나는 고통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 번도 고통을 가치 있는 것으로, 하느님이 주신 선물 같은 것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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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이런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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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해서는 안 됩니다. (중략) 탄탄하고 오래 지속되는 참된 사랑은 자기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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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만사가 괜찮다'거나 '행복은 지속가능한 것'이라고 누군가 말할 때, 우리들 중 누가 그 말을 쉽게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책의 100세 소녀(소녀라는 호칭은 내멋대로 붙인다, 아이 같은 마음을 지닌 수녀님을 표현하고 싶어서)가 그것을 말하면, 신기하게 믿긴다. 아니 믿고 싶어진다. 그리고, 행동까지도, 감히, 할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