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이불을 빨아 널고 책을 읽다가 베란다 순시를 갔다. 날씨가 계속 눅눅하던 차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언니한테 얻은 제습기 덕인가, 몇 시간 만에 이불들이 마... 말랐어!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 창밖을 보니 술보다 안주보다 귀한 햇볕이 짱짱하다! 창을 열어 보니 심지어 바람이 살랑 들어온다. 온집안의 창문이란 창문을 활짝 열어 실컷 햇볕과 바람을 받았다. (빛의 속도로 빨래도 한판 더 돌렸다.) 쨍하지 않아도 햇볕이 반갑다. 모처럼 청량한 바람에 마음까지 시원하다. 이런 날 빨래를 두 번 하다니. 역시 노니까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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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즈의 장광설(네꼬남은 허장성세라 표현했다)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정신 못 차리고 푹 빠져서 읽었다. 인상적인 구절이 많아 포스트잇을 여러 군데 붙였는데, 나중에 보니 요즘에 적용해도 이상하지 않은 구절들(못돼 처먹은 귀족들에 대한 묘사)이 대부분이다. -_- 뻔한 말이지만 고전은 그래서 죽지 않는 거였다. 그나저나 결국 사랑 이야기였잖아! 이야기 끝에 가서야 표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는, 내가 가졌던 선입견에 혼자 놀랐다. '숭고하다.' 그의 선택에 평소에 쓰지 않던 이 말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곰브리치 세계사>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 입문서. 어렸을 때 "이야기 한국사"를 무척 좋아했던 생각이 나서 (물론 나중에 생각해보니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지만) 어디 믿을 만한 이야기 역사책 없나 하던 차에 이 책을 발견했다. 예술사조차 밑줄을 그어가며, 메모를 해가며, 낄낄대며 읽게 하는 곰브리치 할아버지이니 오죽하겠냐, 하는 기대로 샀는데 알고 보니 이건 그의 첫 책이고, 수십 년 지나 인생의 마지막 작업으로 직접 영역본을 준비했다 한다. 어쨌든 그 "말빨"은 젊을 때도 그랬나 보다. 읽다가 쉬는 시간을 정하기 어려울 만큼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역사 이야기 아닌가. 구도는 복잡하고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쉬지 않고 등장하며 극단적일 만큼 드라마틱한데 바로 오늘 우리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마지막엔 가슴이 아프기까지 하다.)
<할아버지의 천사>
내가 학교 가는 걸을 때, 장난으로 위험에 처했을 때, 어른이 되어 장난 치지 않았는데도 위험과 고통 속에 놓였을 때, 인생의 고비를 지날 때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했단다." 인생에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분명히 너를 지켜주고 있다. (그 누군가는 우정이기도 사랑이기도 가족이기도 신념이기도 하겠지.) 간결한 그림과 더 간결한 글이 웃음과 눈물을 함께 주는 책이다.
<어기야 디야, 펭귄 탐험대>
사이토 히로시는 내가 엄청 좋아하는 책 <교양 있는 고양이 많이있어와 루돌프>의 작가. 혹시 모르니까 기대하지 말자고 마음 단단히 먹고 읽었는데 또 반해버렸다. *_* 구령에 맞춰 걸으며 시종일관 진지하게 섬을 탐험하는 오십 마리 펭귄들이라니 일단 상상만 해도 귀엽잖아. 그러나 이 펭귄들을 지켜보던 맹수들은 결국...
<엘리엇의 특별한 요리책>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마음에 들어서 샀다. (이 유명한 책을 이제야..) 이야기 + 지식 + 실용성이 골고루 어우러진 좋은 지식 그림책이다. 물론 달걀프라이 만들기, 감자 삶기 등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지금 따라할 만한 것은 많지 않지만 적어도 요리에 호감을 갖게 하고 음식 귀한 줄 알게 하고 배고프게 한다(?). 스웨덴에서 초판이 출간된 게 30년 전. 생각해보면 지식 그림책에 더 바랄 게 무엇이 있을까. 특이한 발상이나 요란한 구성으로 치장한 요즘 책들이랑 비교하게 된다. (어린이가 아닌 요리사 네꼬남에게는 매우 유용한 책이었습니다.)
<글짓기 시간>
군부독재로 시민들이 긴장한 채 살고 있는 칠레. 독재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눈앞에서 아이 앞에서 부모가 잡혀가는 날들이 이어지지만, 주인공 페드로의 엄마 아빠도 다른 어른들처럼 밤이면 소리 죽여 라디오를 들으며 남몰래 세상의 소식을 접한다. 어느날 학교에 찾아온 군인은 아이들에게 '우리집에서 저녁에 하는 일'을 주제로 글짓기를 하게 한다. 페드로는 어떤 글을 썼을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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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대다가 몸이 더 똥그래질까 봐 억지로 운동을 가듯, 노는 데 맛들려서 바보가 될까 봐 숙제를 받으려고 신간평가단 신청을 했는데 알라딘님이 뽑아주셨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읽고 쓸게요. 좋으면 좋다고 쓸게요!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쓸게요! 이제 후회하셔도 소용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