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이불을 빨아 널고 책을 읽다가 베란다 순시를 갔다. 날씨가 계속 눅눅하던 차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언니한테 얻은 제습기 덕인가, 몇 시간 만에 이불들이 마... 말랐어!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 창밖을 보니 술보다 안주보다 귀한 햇볕이 짱짱하다! 창을 열어 보니 심지어 바람이 살랑 들어온다. 온집안의 창문이란 창문을 활짝 열어 실컷 햇볕과 바람을 받았다. (빛의 속도로 빨래도 한판 더 돌렸다.) 쨍하지 않아도 햇볕이 반갑다. 모처럼 청량한 바람에 마음까지 시원하다. 이런 날 빨래를 두 번 하다니. 역시 노니까 좋구나.

 

*

 

 

<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즈의 장광설(네꼬남은 허장성세라 표현했다)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정신 못 차리고 푹 빠져서 읽었다. 인상적인 구절이 많아 포스트잇을 여러 군데 붙였는데, 나중에 보니 요즘에 적용해도 이상하지 않은 구절들(못돼 처먹은 귀족들에 대한 묘사)이 대부분이다. -_- 뻔한 말이지만 고전은 그래서 죽지 않는 거였다. 그나저나 결국 사랑 이야기였잖아! 이야기 끝에 가서야 표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는, 내가 가졌던 선입견에 혼자 놀랐다. '숭고하다.' 그의 선택에 평소에 쓰지 않던 이 말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곰브리치 세계사>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 입문서. 어렸을 때 "이야기 한국사"를 무척 좋아했던 생각이 나서 (물론 나중에 생각해보니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지만) 어디 믿을 만한 이야기 역사책 없나 하던 차에 이 책을 발견했다. 예술사조차 밑줄을 그어가며, 메모를 해가며, 낄낄대며 읽게 하는 곰브리치 할아버지이니 오죽하겠냐, 하는 기대로 샀는데 알고 보니 이건 그의 첫 책이고, 수십 년 지나 인생의 마지막 작업으로 직접 영역본을 준비했다 한다. 어쨌든 그 "말빨"은 젊을 때도 그랬나 보다. 읽다가 쉬는 시간을 정하기 어려울 만큼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역사 이야기 아닌가. 구도는 복잡하고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쉬지 않고 등장하며 극단적일 만큼 드라마틱한데 바로 오늘 우리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마지막엔 가슴이 아프기까지 하다.)

 

 

<할아버지의 천사>

 

내가 학교 가는 걸을 때, 장난으로 위험에 처했을 때, 어른이 되어 장난 치지 않았는데도 위험과 고통 속에 놓였을 때, 인생의 고비를 지날 때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했단다." 인생에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분명히 너를 지켜주고 있다. (그 누군가는 우정이기도 사랑이기도 가족이기도 신념이기도 하겠지.) 간결한 그림과 더 간결한 글이 웃음과 눈물을 함께 주는 책이다. 

 

 

 

<어기야 디야, 펭귄 탐험대>

 

사이토 히로시는 내가 엄청 좋아하는 책 <교양 있는 고양이 많이있어와 루돌프>의 작가. 혹시 모르니까 기대하지 말자고 마음 단단히 먹고 읽었는데 또 반해버렸다. *_*  구령에 맞춰 걸으며 시종일관 진지하게 섬을 탐험하는 오십 마리 펭귄들이라니 일단 상상만 해도 귀엽잖아. 그러나 이 펭귄들을 지켜보던 맹수들은 결국...

 

 

 

<엘리엇의 특별한 요리책>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마음에 들어서 샀다. (이 유명한 책을 이제야..) 이야기 + 지식 + 실용성이 골고루 어우러진 좋은 지식 그림책이다. 물론 달걀프라이 만들기, 감자 삶기 등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지금 따라할 만한 것은 많지 않지만 적어도 요리에 호감을 갖게 하고 음식 귀한 줄 알게 하고 배고프게 한다(?). 스웨덴에서 초판이 출간된 게 30년 전. 생각해보면 지식 그림책에 더 바랄 게 무엇이 있을까. 특이한 발상이나 요란한 구성으로 치장한 요즘 책들이랑 비교하게 된다. (어린이가 아닌 요리사 네꼬남에게는 매우 유용한 책이었습니다.)

 

 

<글짓기 시간>

 

군부독재로 시민들이 긴장한 채 살고 있는 칠레. 독재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눈앞에서 아이 앞에서 부모가 잡혀가는 날들이 이어지지만, 주인공 페드로의 엄마 아빠도 다른 어른들처럼 밤이면 소리 죽여 라디오를 들으며 남몰래 세상의 소식을 접한다. 어느날 학교에 찾아온 군인은 아이들에게 '우리집에서 저녁에 하는 일'을 주제로 글짓기를 하게 한다. 페드로는 어떤 글을 썼을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

 

빈둥대다가 몸이 더 똥그래질까 봐 억지로 운동을 가듯, 노는 데 맛들려서 바보가 될까 봐 숙제를 받으려고 신간평가단 신청을 했는데 알라딘님이 뽑아주셨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읽고 쓸게요. 좋으면 좋다고 쓸게요!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쓸게요! 이제 후회하셔도 소용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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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07-2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오늘 날씨가 넘 좋았어요 네꼬님
신간평가단 축하드려요 부러워요 님

네꼬 2013-07-25 00:21   좋아요 0 | URL
앗 하늘바람님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좋았죠? (^^)
노니까 좋아요!

서니데이 2013-07-25 0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서재에 오면, 전엔 몰랐던 그림책과 동화책을 많이 볼 수 있어 좋아요.^^
신간평가단 되신 거 저도 축하드려요. 자주 놀러와서 댓글 달게요.
오늘은 비 그쳐서 더울 거같은데요.^^

네꼬 2013-07-25 08:30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해요. 오늘 꽤 더울 것 같은데.. 벌써 해가 나네요. 눅눅할 때도 어차피 더웠으니까, 해 나는 게 반가운걸요! 어서어서 '서니데이'가 와야 될 텐데요! ㅎㅎㅎㅎㅎ

아무개 2013-07-25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도시 이야기> 읽으면서 저도 처음엔 찰스 아저씨 참 수다스럽다 싶었네요 ㅎㅎ
그러다 확 빠져들어 읽고 나니....사랑 이야기더군요.
'당신의 그 사람을 위해'...이 문장을 쓰면서 또 소름이 쫙 돋았어요.

네꼬 2013-07-26 15:29   좋아요 0 | URL
수다 ㅋㅋㅋ 맞아요 맞아요! 저랑 남편이랑은 사실 술 먹으면서 '디킨즈 식 대화' 놀이도 했어요.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허락하신다면 그간 온 마음으로 아껴온 맥주를 기쁘고 벅차는 마음으로 한 잔 따라 드리고 싶습니다." 같은 거. ㅋㅋㅋㅋㅋㅋㅋㅋ (죄송해요...)

치니 2013-07-25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곰브리치 세계사, 저거 내가 읽어야 하는 책인데. 전 어릴 때부터 역사에 도통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냥 지금 일어나는 일이나 알면 그만이지 과거 일을 알아서 뭐해, 이런 건방진 생각이나 하고. ㅋㅋ

제주에 서울 비를 반만 옮겨다 주었으면 모두가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하늘에서 주관하는 일을 감히 이러쿵 저러쿵 못하죠. 힝, 여기는 가뭄이에요.

네꼬 님 같은 분을 신간평가단으로 얻은 알라딘 님에게 축하를! :)

다락방 2013-07-25 15:12   좋아요 0 | URL
ㅎㅎ 치니님. 저도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도통 관심이 없었고 지금도 없어요. 관심이 없다는 핑계로 잘하지도 못하고 잘 알지도 못하죠. ㅎㅎ

네꼬 2013-07-26 15:30   좋아요 0 | URL
언니들, 그러니까 이 책 읽으시면 좋아요. 저도 읽은 역사책이라곤 한국사 이야기가 전부였거든요 ㅎㅎㅎㅎㅎ 우앙, 근데 읽고 나면 한동안 머리 멍해요. 없던 지식이 너무 한꺼번에 들어와서.... ㅠㅠㅠㅠ 아냐, 웃자. ㅋㅋㅋㅋ

네꼬 2013-07-26 15:31   좋아요 0 | URL
참 치니님, 비! 파주 비 조금 갖다 드리고 싶네요. ㅠㅠ 여긴 책장이 다 흐물흐물해질 만큼 (<-과장 아님) 비와 눅눅한 날이 계속 되었어요.

잘잘라 2013-07-25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평가단, 연속 탈락이 몇번째인지 꼽기도 민망하여 살짝 알라딘님에게 삐짐 모드였다가 네꼬님을 뽑으시느라 그랬다면 할 수 없다는 심정이 되어버렸습니다요. 이젠 네꼬님 뽑은 알라딘님에게 감사 모드!!! ^^

네꼬 2013-07-26 15:32   좋아요 0 | URL
아니 말도 안 돼요. 메리포핀스님을 안 뽑은 건 무슨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말하다 보니 알겠어요.... 아니구나.... 메리포핀스님은 안 그래도 성실하니까 안 뽑아도 되지만... 저는 안 그러니까... 그런 거구나 알라딘..... ㅠㅠ

다락방 2013-07-25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자주 보니까 쫌 좋네요? 히히

곰브리치 세계사 나도 사야겠어요.

네꼬 2013-07-26 15:32   좋아요 0 | URL
나 나 나 또 썼어요. 나 잘했어요? 응? 응?

사시오!

moonnight 2013-07-25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네꼬님 신간평가단 되셨구나!!! 축하드려요. 그리고 왠지 저도 막 축하받아야 할 거 같아요. 네꼬님의 신간평가라니. 정말 미덥거든요!!! 헤헤^^

그나저나, 오늘도 막 담아가요. 저는 특히 엘리엇의 특별한 요리책에 막 땡기네요. >.<

네꼬 2013-07-26 15:33   좋아요 0 | URL
응 문나잇님, 근데 저 너무 솔직히 쓸 거예요. (응?) 알라딘님이 중간에 자를 수도.... 몰라몰라.

엘리엇 책 혹시 사셨어요? 문나잇님 읽고 어땠는지 말해주세요. 궁금해요.

paviana 2013-07-26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에이전시 다닐때 유타 바우어의 저책 보고 너무 좋아서 계약하려고 출판사들마다 메일 쓰고 했는데...막상 계약하려고 하자 판권이 이미 팔렸다고 했지요.저 책보니 십년전이 떠오르네요...

네꼬 2013-07-26 15:34   좋아요 0 | URL
파아비이니이이이임! (<-완전 큰 소리로 불러 보았습니다.) 제가 강아지였다면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을 거예요. 파비님 댓글을 유도했으니 이 페이퍼 쓰길 잘했네요!

순남이 2013-07-30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딘 신간평가단 되신 것은 우리가 축하받을 일 ㅎㅎ 싱난다.

네꼬 2013-08-05 14:14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까? ㅎㅎ 기대에 부응해보겠습니다. 흐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