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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식문화박물지
황교익 지음 / 따비 / 2011년 9월
평점 :
뒷표지에 쓰인 대로 이 책은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 먹고 나누는 음식문화에 대한 기록"으로, 그야말로 의미있는 역사 문화 보고서이면서 재미난 생활사다. 한식에 국한하지 않고 부대찌개 탕수육 생선회 등 우리가 생활 속에서 즐겨 먹는 음식들의 근원을 살피고 그 음식이 차지하는 문화적 맥락도 잘 짚어준다(한국전쟁 때문에 주부들이 생활전선에 나서면서 탄생한 '백반'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 그러니 이 책은 나한테는 별 다섯 개를 받아 마땅한데 보시다시피 네 개를 주었으므로 사실상으로는 점수가 썩 좋지 않은 것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별 세 개를 줄까도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저자의 방대한 연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고 담백하게 쓴 문장들, 미식 연구로 인해 생겼을 수도 있는 소화불량(응?) 등을 감안해 별 넷으로 합의를 봤다. 본문의 분위기와 좀 다르지만 <한국음식 세계화를 위한 길>에서 우리 식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은 특별히 좋았으니까.
이렇게 장점은 앞에 다 썼으므로 서운한 점을 말하자면 세 가지다. 첫째, 저자를 제외한 모든 한국인을 일반화하는 것 같다. 둘째, 변형된 입맛이나 화학조미료에 익숙한 입맛을 너무 깔본다. 셋째 대체로는 좋지만 이따금 부조화한 사진들이 마음에 걸렸다.
예를 들어 삼겹살 항목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식당에서 목살이나 앞다릿살이 나와도 삼겹살로 알고 먹는 것을 두고 "한국인에게는 삼겹살이라는 부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삼겹살이라는 그 이름이 중요한 것이다. 차상위 고기, 중산층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고기인 것이다."라고 한다. 맞는 말일 수도 있는데, 가만 듣고 있노라면 이런 언술에 보통 사람들의 입맛을 폄하하는 것 같은 뉘앙스가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름과 살이 겹쳐 고소하고 쫀득한 삼겹살을 좋아하지, "나 오늘 삼겹살 먹는다"만으로 만족하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눈속여 파는 사람들보다 속아서 먹는 사람들을 더 나쁘게 표현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
함흥냉면의 쫄깃한 면발을 좋아하는 것을 두고도 "한국인은 무엇이든 쫄깃하여야 좋은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면서 그 면이 감자인지 고구마인지 관심도 없다고 핀잔을 준다. 면이 쫄깃하단 사실 말고는 비빔국수와 차이가 없다는 주장인데, 내 입맛으로 보자면 바로 그 쫄깃함 때문에 양념이 혀에 감기는 식감이 전혀 달라지므로 쫄깃하고 안 하고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 파는 두부들이 사라지고 슈퍼에서 파는 브랜드 두부만 선택받는 세태에 대한 한탄도 있다. 물론 그 아쉬움은 나 역시 크지만, 보통 사람들이 브랜드 두부를 선택하는 건 저자의 주장대로 "한국인은 두부의 맛보다는 두부의 포장지에 찍힌 브랜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날 식품 유통 구조가 불안하고 믿을 수 없어서 상표라도 믿고 싶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보통의 입맛을 싼 것으로 매도하는 항목이 종종 있다.
그리고 설령 입맛이 싸다고 해서 그게 어디 나쁜가? 화학조미료는 몸에 나쁘지만, 화학조미료 맛을 좋아하는, 어쩌면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길들여진 우리는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다. (나 왜 화 내고 있냐.)
사진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한국 천일염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치적 배려로 특화된 것일 뿐 오히려 음식 맛을 해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 정치성을 꼬집으면서 왜 이어서 열심히 일하는 소금밭 노동자의 사진을 실은 걸까! 새우젓을 담는 데 옹기 대신 플라스틱을 쓰니까 환경 호르몬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왜, 먹음직스러운 새우젓을 플라스틱 통에 옮겨 담는 아주머니 사진을 실은 걸까! 사진 속의 아저씨 아주머니 보기가 사뭇 민망했다.(그렇게 열심히 일구시는 소금이 사실은 맛에 안 좋대요. 새우젓 거기 담으면 환경호르몬 나온대요ㅠㅠ)
역시 별 셋만 주는 게 나을까. 나는 끝까지 고민하면서 책을 만지작거리다가,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다시 읽고 위의 저 불만들이 나의 오해일 수도 있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자기 소개를 이렇게 쓰는 사람이라면 너무 도도하거나 그런 사람은 아닐 거야. (미리 보기로 찾아 보세요!) 일껏 이렇게 길게 써놓고 한마디로 말해보자면, 좋은 책입니다만 유감입니다,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