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맘에 드는 말을 많이 한다. 며칠 전에는, 아마도 작가가 쓴 글인 듯한데, 설령 지키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결심, 좋은 결심을 자꾸 하는 편이 아무 마음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낫다고 그랬다. 그때그때라도 좋은 쪽의 생각을 하게 되니까. 오늘은 배철수 아저씨가 '같은 실수를 두 번 하는 걸 되게 바보같다고들 하는데, 사실 사람이니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하는 말로 내 기분을 좋게 했다. 맞다. 실수라는 게 할 만 하니까 하는 건데 또 어디 그게 안 하려고 한다고 안 하게 되나. 함정은 대체로 비슷하고, 걸리는 동물은 늘 걸리게 마련이지. 그런 뜻에서 부끄럽지만 나도 새해 결심을 한번 적어보았다. 대체로 뻔한 것들이지만 뭐 그래도 1월에는 또 새해 결심을 해주어야 제맛.
가급적 정해진 시간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자.
성실하게 일하자.
건강에 해로운 것들을 멀리 하자.
일상을 부지런하게 꾸려가자.
차는 꼭 필요할 때만 이용하자.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열심히 쓰자.
물건은 필요할 때, 필요한 것만, 필요한 만큼만 사자.
좋은 것을 듣고 보고 읽고 냄새 맡고 먹고 생각하자.
정리 정돈을 잘하자.
이름을 가리고 읽으면 누구의 결심인지 알 수도 없는 뻔한 결심들인데, 이걸 종이에 써서 지갑에 넣자니 기분이 썩 괜찮다. 그래, 매일매일 결심을 새롭게 하는 게 아주 포기하는 것보다는 낫지. 그래도 매일은 좀 그렇고, 한 달에 한 번? 음, 격주로? 음, 월요일마다? 음, 월수금? (결국 이런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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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에 대해서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사는 곳도 다양하고 그 모습도 각양각색이지. 그리고 성격도 천차만별이다. 도시에 사는 용도 있고, 농촌에 사는 용도 있고, 해변의 발전소에도 있고, 역 앞의 지하상가에도 산다. 학교, 공장, 상점가, 그리고 사람들의 집에 사는 용도 있어.
하지만 어떤 용이든 사악하다는 점은 다 똑같지. 단순하고 파괴적인 용, 교활한 용, 언뜻 보면 아름다운데 실은 냉혹한 용도 있지. 커다란 용, 조그만 용, 날개 달린 용, 머리가 좋은 용, 모습이 보이지 않는 용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어. 온갖 장소에 온갖 모습을 한 용이 숨어서 똬리를 틀고 있어." - 오카다 준,『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는 법』 35-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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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프라이에 뿌릴 후추를 사러 가게에 가는 일상적인 일을 무시무시한 용과의 전투로 연결짓다니, 참 대단한 작가다. 특히 연극배우이자 '용을 물리치는 기사'인 제럴드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용과 혈투를 벌일 때 제럴드의 동작을 묘사하는 것만으로 용의 크기며 움직임을 상상하게 하는, 그로써 독자가 거기에 용이 있다고 믿게 하는 능력은 어느순간 소름이 오싹 돋게 한다. 이 서재 친구들 중에 어린이는 없는 것 같으니까 편하게 얘기하자면 여기서 용은 그 무엇이다. 꿈을 잃게 하는 것, 용기를 못 내게 하는 것, 친구를 미워하는 것, 거짓말 같은 것.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될까? 그 뜻밖의 답은 비밀로 해둔다. 그런데 나의 용은 뭘까? 새해 결심을 적으면서 찾아낸 나의 용은 걱정과 게으름이었다. 올 한해는 이 용과 잘 싸워서 (정 안 되면 타협해서) 잘 보내봐야지. 일단 한 해 독서의 시작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