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맘에 드는 말을 많이 한다. 며칠 전에는, 아마도 작가가 쓴 글인 듯한데, 설령 지키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결심, 좋은 결심을 자꾸 하는 편이 아무 마음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낫다고 그랬다. 그때그때라도 좋은 쪽의 생각을 하게 되니까. 오늘은 배철수 아저씨가 '같은 실수를 두 번 하는 걸 되게 바보같다고들 하는데, 사실 사람이니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하는 말로 내 기분을 좋게 했다. 맞다. 실수라는 게 할 만 하니까 하는 건데 또 어디 그게 안 하려고 한다고 안 하게 되나. 함정은 대체로 비슷하고, 걸리는 동물은 늘 걸리게 마련이지. 그런 뜻에서 부끄럽지만 나도 새해 결심을 한번 적어보았다. 대체로 뻔한 것들이지만 뭐 그래도 1월에는 또 새해 결심을 해주어야 제맛.  

가급적 정해진 시간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자.   

성실하게 일하자.  

건강에 해로운 것들을 멀리 하자.  

일상을 부지런하게 꾸려가자.  

차는 꼭 필요할 때만 이용하자.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열심히 쓰자.  

물건은 필요할 때, 필요한 것만, 필요한 만큼만 사자. 

좋은 것을 듣고 보고 읽고 냄새 맡고 먹고 생각하자.

정리 정돈을 잘하자.  

이름을 가리고 읽으면 누구의 결심인지 알 수도 없는 뻔한 결심들인데, 이걸 종이에 써서 지갑에 넣자니 기분이 썩 괜찮다. 그래, 매일매일 결심을 새롭게 하는 게 아주 포기하는 것보다는 낫지. 그래도 매일은 좀 그렇고, 한 달에 한 번? 음, 격주로? 음, 월요일마다? 음, 월수금? (결국 이런 식.)  

* 

   
 

용에 대해서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사는 곳도 다양하고 그 모습도 각양각색이지. 그리고 성격도 천차만별이다. 도시에 사는 용도 있고, 농촌에 사는 용도 있고, 해변의 발전소에도 있고, 역 앞의 지하상가에도 산다. 학교, 공장, 상점가, 그리고 사람들의 집에 사는 용도 있어.  

하지만 어떤 용이든 사악하다는 점은 다 똑같지. 단순하고 파괴적인 용, 교활한 용, 언뜻 보면 아름다운데 실은 냉혹한 용도 있지. 커다란 용, 조그만 용, 날개 달린 용, 머리가 좋은 용, 모습이 보이지 않는 용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어. 온갖 장소에 온갖 모습을 한 용이 숨어서 똬리를 틀고 있어." - 오카다 준,『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는 법』 35-36면

 
   

계란 프라이에 뿌릴 후추를 사러 가게에 가는 일상적인 일을 무시무시한 용과의 전투로 연결짓다니, 참 대단한 작가다. 특히 연극배우이자 '용을 물리치는 기사'인 제럴드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용과 혈투를 벌일 때 제럴드의 동작을 묘사하는 것만으로 용의 크기며 움직임을 상상하게 하는, 그로써 독자가 거기에 용이 있다고 믿게 하는 능력은 어느순간 소름이 오싹 돋게 한다.  이 서재 친구들 중에 어린이는 없는 것 같으니까 편하게 얘기하자면 여기서 용은 그 무엇이다. 꿈을 잃게 하는 것, 용기를 못 내게 하는 것, 친구를 미워하는 것, 거짓말 같은 것.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될까? 그 뜻밖의 답은 비밀로 해둔다. 그런데 나의 용은 뭘까? 새해 결심을 적으면서 찾아낸 나의 용은 걱정과 게으름이었다. 올 한해는 이 용과 잘 싸워서 (정 안 되면 타협해서) 잘 보내봐야지. 일단 한 해 독서의 시작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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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1-11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용은 걱정과 게으름이었다." -용용 죽겠지 되는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네꼬 2010-01-11 22:01   좋아요 0 | URL
*_* 어멋! 너무 멋진 댓글!!!

섬사이 2010-01-1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녀석 영문법 책을 하나 사려고 장바구니에 담아두고는 "기왕 주문하는 김에 책 좀 더 살까?"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가 네꼬님의 '물건은 필요할 때, 필요한 것만, 필요한 만큼만 사자.'는 결심을 읽고 아들녀석 책만 빼고 몽땅 다 도로 덜어냈어요.
제가, 드디어, 알라딘 일반회원이 되었거든요. 아차, 하는 순간에 실버, 골드, 플래티넘의 단계를 밟고 올라갈 뻔했지 뭐에요.
제 용은 욕심과 안이함,, 뭐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


네꼬 2010-01-11 22:41   좋아요 0 | URL
섬사이님 일반회원 강등 감축드려요. (저는 언제... ㅠㅠ) 아마도 '필요할 때 필요한 것만' 기준으로만 한다면 전 아마 올해에 책을 살 수 없을 거예요. 흑흑. -차고 넘치는 보관함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네꼬.

무스탕 2010-01-11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을 잡으시거등 꼭 그 비법을 전수해 주세요!!

네꼬 2010-01-12 09:11   좋아요 0 | URL
네, 그럼요. 근데 전 타협을 할지도 몰라서.... 협상 조건이라도 알게 되면 꼭 알려드릴게요. 히히.

무해한모리군 2010-01-12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용이 사악하지 동양용은 안그래요~
또 본문과 상관없는 댓글.. ㅎ
좋은 한 주 네꼬님~

네꼬 2010-01-12 09:12   좋아요 0 | URL
그러쳐. 근데 저 작품 속에서의 용은 서양 용이었어요. (날개 달려 있고 불 뿜고.. 동양 용도 불은 뿜나?) 본문과 상괸없는 댓글에 대한 진지한 댓글. 휘모리님도 고고씽!

L.SHIN 2010-01-12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이 문구를 되내입니다.

"못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포기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다"

네꼬 2010-01-12 09:12   좋아요 0 | URL
이런 강렬한 다짐을 보았나. 엘신님하고 어울리는데요! 한 주 강렬하게, 잘 보내시와요~

다락방 2010-01-12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은....네꼬님은......네꼬님은.............아 정말 멋진 여성이에요! 어떻게 이런 글을 써요? 역시 사람은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배워야 하는건가봐요!! 네꼬님은 정말 글 최고로 잘써요. 감동감동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네꼬 2010-01-12 09:29   좋아요 0 | URL
네에에에? 어머, 이 언니 좀 봐. *_* 대체 지금 누구 글을 읽은 거예요? (어리둥절.... 근데 일단 다락님은 좋아라. 히히.)

2010-01-12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2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10-01-1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퇴근길에 막히는 길에서 듣기에 단연 최고. 들을 때마다 이 정도면 장수 프로로 손색이 없다 느껴요. 그 중의 백미는 중간 쯤에 작가가 작정하고 쓰는 한 3분 되는 꼭지인데, 가끔 교조적이다 싶을 때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 한번쯤 사색에 빠지게 해줄만한 좋은 주제들을 건드려주는 지라 즐겨 들었어요.
게다가 우리의 철수 아저씨, 촌철살인 멘트가 진짜 매력적이죠. :)

네꼬 2010-01-14 09:4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떤 때는 내가 좋아하는 곡이 나와서 주차를 아주 천천히 할 때도 있어요. (^^) 저도 그 "철수는 오늘~" 하는 3분 꼭지 듣다가 이런저런 생각할 때 많아요. 약간 간지러운 듯한 말들도 라디오니까 괜찮은 듯. 배철수 아저씨는 "놀기 삼아 하는 디제이"와 "진짜 제대로 디제이"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아주 잘 잡고 계신 듯해요.

마늘빵 2010-01-12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옹씨 바쁜거 끝나면 우리 그때 그 튀김 먹으러 가쟈. 냠냠냠냠. 뜬금없는 댓글이라니.

네꼬 2010-01-14 09:43   좋아요 0 | URL
좋아요, 칠리 차차. 멤버를 모아봅시다. (많이 먹기.)

레와 2010-01-12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퇴근길이나 저녁 지을때 배철수의 음.캠.을 들으면
'아.. 오늘도 살아 남았다. 이제 쉴 수 있어.' 하는 안도감이 들어요.
멘트에 피시식 웃기도 하고.. 저도 참 좋아하는 프로그램!^^


이렇게 훌륭한 페이퍼에 추천이 없다니, 제가 한방 크게 눌렸어요!!

다락방 2010-01-12 12:53   좋아요 0 | URL
내가 미처 추천을 누르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줘서 고마워요, 레와님. 나도 지금 막 눌렀어요. 아주 크~~~으게. 하핫

네꼬 2010-01-14 09:46   좋아요 0 | URL
레와님.
전 보통 퇴근하고 차에 타서 듣기 시작하니까, 오프닝을 잘 못 들어요. 그래도 이따금 흥얼거려보면 기분이 꽤 괜찮지요. 음, 여기저기서 하루 바쁘게 지낸 사람들이 옹기종기 라디오 앞에 모여 앉는 기분이랄까요?

어머 근데 무슨 페이퍼를 보시고 추천하시는 거예요? 저 네꼬예요. 여기 다른 서잰 줄 아시는 거 아녜요? *_*


다락님.
<추노> 보고 있어요? 다락님이 진짜로 좋아할 드라마던데! 꼭 봐야 되는데!!

다락방 2010-01-14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노]에 누가 나오는지도 모르고 무슨 방송에서 하는지도 모르는데 어째요 ㅎㅎ

네꼬 2010-01-19 11:07   좋아요 0 | URL
<추노>에는 장혁과 오지호, 김지석 등이 나와요. "근육의 향연"이에요. 마초 드라마예요. (꺅!) KBS2에서 수-목요일 10시에 해요. 다락님 꼭 봐요!

2010-01-14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9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5 0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9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