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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여행 - 나무를 찾아가는 여행 52 ㅣ 주말이 기다려지는 여행
고규홍 글.사진 / 터치아트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도의적으로 사야 할 것 같은 책이 있다. 꼭 읽을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이런 책은 사줘야지, 싶은 책. 자연에 관한 책, 또는 누군가 공들여 만든 책 들이 그런 경우인데 처음에 이 책이 그랬다. 전국의 오래된 나무에 대한 책이면서, 저자가 9년간 기록한 내용을 담은 책이라고 하니 어쩐지 사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들고 앉아 읽진 않겠지만 뭐 어쩌면 여행 다닐 때 한두 그루 쯤 설명을 들을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책을 샀다가 나의 교만함이 완전 부끄러워졌다. 그러고 보니 나무는 땅과 하늘 사이에서 사람보다 우위에 있는 신령한 생명체라고 학교 때 배우지 않았던가.
저자가 소개하는 나무 여행지는 모두 52곳. 9년 동안 다닌 여행지치고는 별로 많지 않잖아? 했는데 웬걸! 말이 52곳이지 각 여행지마다 대표적인 나무 한 그루, 그 근방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나무 네 그루를 소개한다. 실제로는 260곳인 셈인데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분명히 걸어서 얻었을 상세한 정보는 가슴이 뭉클할 정도다. 이건 무슨 나무 저건 무슨 나무 하는 도감이나 안내서가 아니라, 예천 어디 주막 뒤의 나무, 경주 어느 서원의 향나무, 삼월삼짓날 전후로 막걸리를 마시는 절집 소나무 등 풍상과 풍류를 모두 아는 노거수(老巨樹)를 찾아 나선 여행이다 보니 곳곳에 사연이 있어 소설책 읽듯이 꼼짝없이 앉아 읽게 된다. 처음엔 우리 집 가까이에 있는 나무부터 보러 가려고 포스트잇을 붙였고, 그다음엔 생김새나 사연이 아름다운 나무를 보러 가려고 포스트잇을 붙였는데 그러다 보니 결국 거의 모든 장에 포스트잇을 붙이게 됐다. 어디서부터 찾아갈지, 이제 색깔로 구별해야 할 지경이다.
본문의 모양새가 얼핏 봐서는 백과사전처럼 빼곡하게 정보를 나열한 것 같지만 읽어보면 전혀 다르다.
남원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교룡산성의 숲길을 올라야 선국사로 갈 수 있다. 이 길 곳곳은 우리의 옛 음악인 ‘창(唱)’을 생음악으로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백제 때 쌓은 산성인 교룡산성을 따라 오르다보면 창을 연습하는 예인들이 기거하는 작은 집들이 숲 사이 곳곳에 있는데, 사시사철 그들의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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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국사에는 여름에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가 있다. 나무는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큰북이 걸린 대웅전 왼쪽 앞에 서 있는데, 그 앞에 7층 석탑과 어우러졌다. 대략 5백 살쯤 되어 보인다. 마치 석탑을 휘감아 돌 듯 비틀리며 솟구쳐 올랐는데, 결코 교만하지 않으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았다. (242면)
이런 글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저기 실려 있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빨리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니 제목 참 잘 지었다.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여행”
대표 나무 외의 네 그루 나무들은 사진이 작아서 아쉬운데, 단점이란 뜻이라기보다 내가 궁금해 애가 탄단 뜻이다. 작은 틀 안에서도 나무마다 다른 자태와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건 이 나무를 멀리서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들여다본 사람이, 이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실히 알고 찍은 사진들이다. 그래서 특별한 기교 없이 찍은 사진들인데도 충분히 아름답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나무들 또한 그렇다는 당연한 사실에 새삼 감동했다.
더운 게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 포스트잇이 이미 무색해졌지만 한 그루씩 어서 만나보고 싶다. 소개하는 곳들이 모두 서울경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당황했지만, 하긴 그만큼 나무를 밀어내고 세운 도시에 사는 처지이니 오히려 미안해하며 다녀야 할 것이다. 아니 근데 이렇게 사람 마음에 불을 질러 놓고, 별책 부록으로 지도라도 끼워줘야 하는 거 아냐? 아니, 아니다. 저자가 9년 동안 모은 정보에 변동이 있을까, 일일이 다시 답사하며 업데이트해준 ‘나무 찾아가는 길’ 꼭지만 해도 고맙다. “여기서 좌회전하고 곧바로 나눠지는 감애삼거리에서 왼쪽길로 진입한다. 이 길을 따라가면 오른편으로 펼쳐진 논밭 가장자리에 우람한 나무가 보인다”거나 “향교 앞까지 자동차가 접근할 수는 있지만, 급한 경사를 곤두박질하듯 내려가야하니 조심하자” 이런 안내를 하는 저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책날개의 저자 사진을 보니 그 참, 참-, 나무처럼 생긴 아저씨 한 분이 등산복에 배낭을 메고 착하게 웃고 계시다. (그리고 지적인 얼굴이시다. ♡) 저자를 포함해 책의 평점을 매기자면, 별 다섯 개가 박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