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동료가 건네준 청첩장을 열었더니

흔한 인사말 대신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구두가 가는 곳과

손길이 닿는 곳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시작입니다


 


나는 그만 주책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청첩장 글이 이렇게 뭉클할 수도 있구나, 하고.

 

나의 동료는 예쁘고 날씬하며 경쾌한 아가씨이고,

그의 신랑은 수줍음을 타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건강한 청년이다.

아니 이들이 나 모르는 사이에 이런 시적 감수성을 키웠단 말인가

한 대 맞은 기분이었는데

물어보니 이 글은 그가 그녀에게 쓴 연애편지에 인용되었던 것이란다.

(어쩐지 정말로 한 대 맞은 기분. 그렇지, 세상엔 연애편지라는 게 있지. 털썩.)

시가 좋아서 전문을 찾아보았다.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성미정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숨겨진 발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리도 발 못지않게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당신의 머리까지 그 머리를 감싼 곱슬머리까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어디부터 시작했나요

삐딱하게 눌러쓴 모자였나요

약간 휘어진 새끼손가락이었나요

지금 당신은 저의 어디까지 사랑하나요

몇번째 발가락에 이르렀나요

혹시 아직 제 가슴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요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그러했듯 당신도 언젠가 저의 모든 걸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구두에서 머리카락까지 모두 사랑한다면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아니냐고요

이젠 끝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구두가 가는 곳과 손길이 닿는 곳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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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2007-06-04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모르게 네꼬님의 청첩장도 무지 뭉클할 것 같아요 ;ㅅ;
[서..설마.. 안 보내 주시는 건 아니겠;;;;;]

2007-06-04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뻐요~ 요즘들어 왜이리 부쩍 예쁜 커플들이 많이 보이는지.
사랑, 참 할만해요? ^^

네꼬 2007-06-04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님 / 제 청첩장이라니, 생각만 해도 뭉클합니다. (농담..... 아님. -_-) [설마... 보냈는데 안 오시는 건 아니겠;;;;;;;;;;;;;]

션님 / 어마, 반가워요! (그동안 어디 가셨던 겝니까!) 사랑, 네, 할 만..하죠. : )

홍수맘 2007-06-04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멋진 글이네요.
사랑은 참 대단하다는, 아니 그런 사랑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Mephistopheles 2007-06-04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 잡으셨나요..?? (마음대로 추측하는 중)
운동화 즐겨 신으면 대략 낭패...

다락방 2007-06-04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퇴근하기전에 이 아름다운 시라니요!!

갈비를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웬지 갈비를 먹어서는 안될것 같은, 그런 시잖아요. 에잇. 소주도 함께 마셔야 겠어요. 흑.

프레이야 2007-06-04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첩장의 상투적인 인삿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감동입니다.
정말 멋진 커플이네요. 행복하게 잘 사실 거라 믿습니다.^^
전해주세요, 네꼬님.

마노아 2007-06-04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너무 근사해요. 이런 청첩장은 아직 못 받아보았어요. 네꼬님의 훗날 청첩장도 기대됩니다^^

마늘빵 2007-06-04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이쁘다. 두 사람의 사랑이 내 가슴을 꿍딱 거리게 만듭니다.

비로그인 2007-06-0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쳇!

네꼬 2007-06-05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 그러게요. 사랑의 힘이 참 대단한....가 봐요. ㅠ_ㅠ

메피님 / 날을 잡기 전에 남자부터 잡아야 할 입장입니다. -_- 상대만 정일우과라면 운동화가 아니라 슬리퍼라도 예뻐 보일걸요.

다락님 / 응? 갈비 누구랑 먹었어요? 나랑도 먹으러 가요!

혜경님 / (아마도 염장 때문인 듯) 속이 쓰리지만, 전해 드릴게요. ^^

마노아님 / 저도 제 청첩장이 기대 되어요. 누가 적혀 있을까요?

아프님 / 꿍딱거리는 가슴으로 어여 연애 시작하세요. : )

체셔님 / 혼자만 당할 수 없어서 다같이 괴롭자는 심정으로 올렸어요. 하하핫. (아우, 사진 제대로다!)



비로그인 2007-06-05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 체셔님이 올리신 사진.....혹시, 치킨집 그 박사자앙~~~??!!! ㅡ.,ㅡ!!

그나저나, 네꼬님. 정말 아름다운 시군요. ^^

네꼬 2007-06-05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신님 / 저 사진 정말 웃기죠? ^^ 네, 아름답고 질투 나는 시랄까요. : )

이리스 2007-06-05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엇, 구두.. 가 놔와서 후다닥 달려왔어요. ㅋㅋ
역시 구두.. 가 나오니까 참 좋은 시가 ^^;;

네꼬 2007-06-07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낡은구두님 / 이 페이퍼 제목 쓰면서, 저라고 왜 님 생각이 안 났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