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며칠 전, 배가 아픈 것이 심상치 않아서 용기를 내어 병원에 갔다. 전에 이런 걸 방치했다가 고생한 적이 있어서다. 회사에 전화해 병원에 들렀다 가겠다고 하고 채비를 하는데 혼자서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풀이 죽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고 화장도 예쁘게 하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와글와글 모여 있는 사람들 틈에 섞여 순서를 기다리는데 내내 울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의사로부터 몇 가지 검사를 받고 가라는 말을 듣고 나와 혈액 검사실 앞에 앉아 있는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무섭고 서러웠다. 회사에 다시 전화해 오늘 못 가겠다고 했다. 무뚝뚝한 팀장님 목소리를 듣고도 왈칵 울 뻔하였다.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할까. 그래도 이 나이에 병원에서 우는 것은 너무 창피한 일이기 때문에 꾹 참았다. 검사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죽을 사와서 먹는데 동거녀와 친구가 전화를 해서 걱정해준다. 나는 참지 못하고 울어버렸다.

속을 진정시키는 약이 아니라 수면제를 준 걸까? 며칠 내내 졸렸다. 양껏 먹지 못하고 커피도 못 마시고 해서 기운이 없었나 보다. 그 며칠 사이에 살 빠졌단 얘기와 얼굴 안 좋단 얘기를 몇 명한테 듣고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 말도 어쩐지 서럽고 속상하다.

 

갑자기 차고 단 음료수도 마시고 싶고, 끝이 까맣게 탄 지글지글 돼지갈비도 먹고 싶고, 두부 많이 넣은 된장찌개에 밥을 꼭 두 공기 먹고 싶고, 소시지 구이에 맥주도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지만, 에너지를 총 동원해 참았다.


다시 오라고 했기 때문에 오늘 병원에 또 갔다. 다행히(?) 스트레스성 위경련이라고 한다. 의사가 음식 조심하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당분간 무리하지 말라는,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싱거운 처방을 줘서 서운했다. 삼치를 세 마리 구워 먹으라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웃기는 영화를 다섯 편 이상 보라거나, 헤어진 남자를 데리고 오면 코를 때려주겠다거나 하는 처방이면 좋았을 텐데.

 

 

 

이런 내용의 페이퍼를 쓰려고 마음 먹고 왔더니, 세상에,

 

 

 

 

"고양이 성인 침공 대작전"

 

메피님의 저 갱장한 페이퍼를 좀 보라지!

 

바로 이게 내가 원했던 처방전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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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6-0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저녁 데이트를 하세요. 그리고 둘이 어깨를 닿은 채로 영화를 보세요. 아프의 처방전.

Mephistopheles 2007-06-0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호호 고등어기 떼로 나오는데도 말입니다....=3=3=3=3=3

향기로운 2007-06-01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도 향기로운 고등어래요~^^*

다락방 2007-06-0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트레스의 원인이 무엇이예요, 네꼬님?
네꼬님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그 인간을 제게 데려오세요. 그 인간의 입을 스태플러로 다다닥 박아버릴게요. 다시는 네꼬님께 한마디도 하지 못하도록. 다다닥 박고 나서 손을 탁탁털며 네꼬님께 말할게요.

"이제 다 처리됐어. 그러니 걱정말고 나랑 노가리나 먹으러 가자!"
라구요.
:)

비로그인 2007-06-0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다락님 나두나두~

홍수맘 2007-06-01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치를 세 마리 구워 먹으라거나" 난 이런 것만 눈에 띄어요. ㅋㅋㅋ
몸 조리 잘하세요. 메피님의 "고양이 성인 침공 대작전" 너무 멋지지 않아요? 거기에 나도 나와요. 아이 좋아라 *^ ^*

네꼬 2007-06-0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 처방전은 맘에 쏙 들지만, 약을 구할 수가 없어요. (털썩.)

메피님 / 악당이지만 거의 주연이잖아요. 아이 좋아. =3=3=3 (그런데 왜 쫓아가지?)

향기님 / 고등어 향기라니. 울컥. ㅠ_ㅠ

다락님 / 얏호오~ 기꺼이 님의 손을 잡고 맥주에 퐁당이어요. 러블리 ♡

체셔교주님 / 응? 그러면 같이 퐁당?

속삭님 / 오오올~ 멋진 처방전이에요! 어느 약국으로 가면 될까요? ㅋㅋ

홍수맘님 / 하하하. 저도 님네 생선가게 생각났어요. 그렇잖아도 어제, 집에 있는 옥돔 다 먹으면 그 가게 가자고 동거녀와 합의했어요. : )




마늘빵 2007-06-0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의 저 대사는 오프라인에서 들어야 제맛인데. 흉내도 못내겠어.

무스탕 2007-06-01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네꼬님의 주치의는 메피님이 하세요 ^^

치유 2007-06-01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너무 귀여운 페퍼에 큭큭 거리며 웃다가 ;;;
이제 확실한 처방전을 받으시고 다 좋아지셨지요??

네꼬 2007-06-0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 나, 거기 정말 한 표. 녹음해둘까봐요.

무스탕님 / 처방전에 고등어 그림이 그려져 있을 듯. -_-;;;; (내가 썼지만 웃긴다.)

배꽃님 / 나름 처절한 페이퍼였는데.... 히히. 하지만 님을 웃게 했다는 데 으쓱. 네, 만족할 처방전을 얻었으니까요. : )

2007-06-01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7-06-01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아아. 제가 갈게요, 님의 서재로요.

마노아 2007-06-0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하던 처방전을 얻었으니 추카해요^^ㅎㅎㅎ 속 잘 다스리구요. 스트레스 저 멀리 날려버리셔욧*(>_<)

Heⓔ 2007-06-01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지 마세요~
연약한 것도 너무 지나치면 매력이 감소돼요 :)

네꼬 2007-06-01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 감사합니다. 딴 건 몰라도 스트레스는 다락님의 원펀치로 슉- 날려버렸어욧 >_<

히-님 / 보셔서 아시겠지만 연약과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 나이가 부끄럽게 겁이 많을 뿐이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