잽싸게 썼어야 하는데, 후기. 다들 이렇게 신 나서들 후닥닥 올릴 줄 알았다. 내가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뭐라고 쓴담. 24시간도 안 되었는데 나 너무 게으름뱅이가 됐잖아.
인상적인 장면 다섯.
1. 엘신님이 전화로 "저는 청바지에 흰 옷 입고 있습니다." 라고 하는데 나는 "네, 저도 청바지에.......(내 입으로 꽃무늬 프린트 된 셔츠 입었어요, 소리를 차마 못 하겠다).... 파란 운동화 신었어요!" 라고 대답. 엘신님이 전화에 대고 큰소리로 웃음. "아니, 운동화를 보란 말씀입니까?" 하면서. -_- (차후의 엘신님과의 시간엔 인상적인 장면이 너무 많았다. 끊임없이 뭔가 나오던 선물 주머니도 그렇고. 고르기 어려우니 그냥 내가 부끄러웠던 이 장면으로...) 내 인생의 단 한 분의 외계인이십니다. 여러모로 고마워요. 정말.
2. 카드 게임에서 이긴 아프님이 손목 때리기를 하는데, 전판과 달리 갑자기 강도가 세졌다. 맞기 전부터 "아야 아야 아야" 소리를 내던 내가 "너무 아프잖아요!" 라고 했더니, 했더니, 했더니, (이 대목에서 아프님의 즐찾이 최소 세분 빠져나가리.) "아파요? 아프니까 아프죠." 이런 충격 발언을. -_- 그러나 이때 빼고는 지적이고 다정한 아프님, 보니까 좋았어요.
3. 굉장히 순진한 것만 같은 얼굴로 시종 우리(아프님, 엘신님, 네꼬)의 대화를 귀기울여 들으며 따라 웃느라 바빴던 히-님의 한 마디. "원카드." 정말 깜짝 놀랐다. 난, 나처럼 카드는 못하는 줄 알았는데! ^^ 비록 우릴 버리고 일찍 가버렸지만, 이 핑계로 다음에 또 만나자고 약속하였으니 우릴 잊지 말아요. : )
4. (주먹을 폈다 쥐었다 하며) "제 손에 타짜의 피가 흐르나 봅니다. 이거 20년 만인데 감각이 돌아오고 있어요!" 돌아오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첫판부터 아주 우리 정신을 쏙 빼놓았다. 마노아님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맞을까? 직업은 뭘까? 우리가 너무 보이는 대로 믿는 게 아닐까? 보이는 대로 믿고 싶어졌다. 마노아님은 웃는 것도 목소리도 환하고 다정하였다. 그건 마노아님의 서재에서 느꼈던 그대로였다.
5. 단비님은 내내 "내일 졸업사진 찍을 때 메이크업을 돈 주고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무척 걱정하였다. 아무래도 하루 땜에 돈 주고 그러긴 아깝다기에, 내 경험을 말해주며 그냥 직접 하고 가라고 독려해주었으나 "2살 어린 애들"과 찍어야 해서 걱정이라고 울상이다. 문득 생각해보니, 응? 단비님, 나머지 우리하곤 두 살 차이 더 나잖아요. 아니 우리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입디까?! (있는 그대로 찍어도 예쁘단 말씀.^^)
일산에서 과천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건 아무래도 안 된다는 주변의 만류에 따라 차를 갖고 갔다. 거긴 초행이라 약간 떨렸지만 그래도 이정표 보고 잘 찾아가는 내가 기특해 스스로 머리 쓰다듬기 2회를 실시하였다. 오가는 길에 이수역 근처에서 십 년 전의 나를 생각했다. 공원 나무 그늘 아래를 걸으면서 덥고 즐거웠다. 카드 게임에서 내리 지기만 해서 화딱지가 좀 났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엘신님과 아프님이 뭔가 짠 것만 같은 의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만든 유부초밥을 맛있게들 먹어줘서 고마웠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와인을 마시는데 그렇게 근사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어떤 책 제목이 생각났다.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