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잘하는 교사는 루틴이 있다 - 교사 교육과정과 역량중심수업의 모든 것
유영식 지음 / 테크빌교육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사의 교육과정 중심의 수업을 돕는 책이지만 일선 학교 교감선생님들이 참고하고 읽어봐야 할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학교는 교육과정 중심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과거 행정 중심, 행사 중심으로 학교가 운영되었다면 미래 교육을 지향하는 시대에는 학생 개개인별로 역량을 키워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미래 사회를 살아갈 역량 있는 인재로 살아가기 위해서 학생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될 수업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수업 안에서 역량을 키워내야하기 때문이다. 수업은 교사의 몫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교사가 수업에 온전히 시간을 할애하고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단위학교의 교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사의 수업을 지원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방법은 없을까?

 

<수업 잘하는 교사는 루틴이 있다> 에서 이 비결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책 표제처럼 수업 잘하는 교사에게는 루틴이 있다고 말한다. 아니, 루틴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루틴은 일종의 수업을 전개하기 위한 교사만의 일정한 방식을 가리킨다. 즉 교사는 자신만의 특색 있는 수업 방식인 루틴을 지니고 있어야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을 전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교사 교육과정을 갖추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교사의 수업 철학이 확고하게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수업을 통해 우리 학급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내겠다는 목표 설정이다. 이때 교감의 역할이 필요하다. 교감은 교사의 수업 철학을 듣고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학급 마다 교사 마다 수업 철학이 다를 것이다. 그렇더라도 교감이 교육과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내서라도 교사와 함께 수업 철학을 나눌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행정적인 업무를 지원해 주는 것도 좋지만 교육과정에 무게 중심을 둔다면 반드시 수업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 수업 철학을 공유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새학기 전 교육과정만들기 협의회에 일정한 시간을 할애하여 [수업 철학 콘서트]를 개최해도 좋을 듯 싶다. 함께 참석한 구성원 모두가 수업에 방점을 두고 수업 철학을 공유한다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데 도움이 될 듯 싶다. 학기가 끝나는 시점에는 수업 철학에 기반을 둔 [수업 나눔 콘서트]를 열면 어떨까 싶다. 잘잘못을 따지는 시간이 아니라 수업자를 중심에 두고 고민을 나누고 기쁨을 공유하여 교사가 성장하고 보람을 통해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역량 중심의 교사 교육과정의 핵심에는 '성취기준'이 자리잡고 있다. 성취기준은 학생이 무엇을 알아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실행 지침이 담겨 있는 수업의 방향이자 평가의 기준이 된다. 성취기준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교사에게 있어야 한다. 수업은 차시 단위별로 이루어지는 것에 중심을 두기보다 성취 기준 단위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성취기준 단위의 수업을 통해 역량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 중심의 지식 전달 수업으로는 미래 사회에 갖춰야 할 역량을 제대로 기를 수 없다. 학생들의 실제 생활 요소를 적용하여 최대한 성취기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교사는 루틴을 설정해 두어야 한다. 이때 교감의 역할이 있다. 교감 또한 수업을 바라보는 관점을 길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단순히 한 차시 수업만으로 평가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교과별 특성에 맞는 성취기준이 과연 교사의 특성과 학생의 특성에 맞는 수업 방식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 길게 볼 수 있는 여유와 안목을 길러야 한다. 수업은 교감과 교사의 훌륭한 대화 소재가 될 수 있다. 다른 시시콜콜한 소재로는 일시적인 대화 그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다. 그러나 수업이라는 소재는 1년 내내 늘 교사에게 있어 고민의 대상이자 열정을 쏟는 시간이기에 무궁무진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교감이 수업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에 대한 관심 뿐만아니라 교육과정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올 2월에 교감이 되고 학교로 부임하면서 참 듣기 좋은 말이 있었다. 사람이 가기 전에 소문부터 간다고 하지 않나. 참 듣기 좋은 소문이 갔다고 한다. 어떤 소문이길래. 

 

"이번에 오는 교감은 교육과정 전문가래"

"교감선생님, 이제는 교육과정은 교감이 알아서 다 결정해요"

"교감선생님, 교육과정 강의 좀 교사들에게 해 주세요"

 

학기가 시작 되기도 전에 듣게 되었다. 참 부담되는 말이면서도 교감으로서 자부심이 들었다. 다른 얘기보다 교육과정 전문가 소리를 들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정말 교육과정 전문가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오늘도 기회가 된다면 교육과정 관련 책을 읽으며 수업 장면을 그려본다. 내가 만약 이 수업을 한다면 이렇게 해야지말이다. 

 

교감, 교육과정을 읽어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주일의 학교 사계절 중학년문고 37
김혜진 지음, 윤지 그림 / 사계절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들에게 학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학교에게 아이들이 필요한 것"

 

맨날 학교가 똑같은 수업만 한다면 아이들에게는 어떨까? 생각만 하더라도 숨통이 막혀 온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아이들에게 뭐라고 할 게 아니다. 학생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일은 선생님의 몫이다. 출산율이 바닥을 치고 있다. 얼마 안 있으면 학교가 문 닫을 지경이다. 학생 수가 많이 줄어들어 있던 학교도 없어질 판이다. 아이들에게 학교가 필요한 시기가 있었다면 이제는 학교에게 아이들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이 귀하다는 얘기다. <일주일의 학교>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게 재미나다. 

 

고정 관념을 깰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맨날 한 학교만 다닐 필요가 있을까? 너무 위험한 생각인가? 하루는 이쪽 학교, 하루는 저쪽 학교. 학생들이 선택해서 다닌다면? 그렇다면 학교가 긴장할 게 뻔하다. 학생들을 찾아오게 하려면 그 학교만의 특징이 분명해야 되니까. <일주일의 학교>는 요일별로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가 다르다. 월요일은 비만 오는 학교, 화요일은 체육관처럼 생긴 학교, 수요일은 열쇠로 열어야 모든 활동을 할 수 있는 학교, 목요일은 밤에만 가는 학교, 금요일은 뭐든지 뚝딱뚝딱 만들어야 하는 학교. 그리고 저자는 숙제를 던진다. 그럼.. 내일의 학교는?

 

학교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나에게 이렇게 적용해 보게 된다. 

'교사에게 교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교감에게 교사들이 필요한 것' 

교사들이 없으면 교감은 필요없는 존재다. 물론 학교 자체가 없으면 교감은 더더욱 필요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교사에게 교감이 필요한 것을 넘어 교감에게 교사들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매일 매일 만나는 선생님들 한 분 한 분이 소중할 것이며 교감이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협치로, 협업으로 가려고 하지 않을까 싶다. 교감에게 교사들이 필요하다! 함께 걸어가는 동역자다!

 

<일주일의 학교>에서 학생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비가 와서 장화를 신어야 하고 추적추적 축축하게 지내야 하지만 비만 오는 학교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있기에 아이들의 표정이 살아 있다. 어른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바람에 비구름이 막히는 사태가 일어난다. 비만 오는 학교에 비가 오지 않자 모두가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 해결사는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생각해낸 작은 아이디어에서 막혔던 비가 다시 내리게 되었다. 어리다고 깔봐서는 안 되는 일이다. 화요일에 가는 학교는 힘들지만 교문부터 타 넘고 가야 하고 수학 문제도 구르기를 해야 하는 학교지만 몸을 신나게 움직일 수 있기에 매력 만점인 학교다. 수요일의 학교는 수수께끼 학교다.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열어야 점심도 먹을 수 있다. 뭐든 자기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는 학교다. 목요일의 학교는 하품이 나오지만 밤에 가야 하는 학교다. 어둠은 아이들의 흔적을 먹기 위해 찾아온다. 밤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학생들이 반기는 존재다. 금요일의 학교는 책상부터 교실까지 아이들이 생각한대로 만들어내야 하는 학교다. <일주일의 학교>도 당장은 신선해 보이고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자꾸 반복되어지면 식상해 진다. 내일의 학교를 제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로나로 인해 현장체험학습이 축소 운영되고 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용기내어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코너를 찾아가 실습하고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들이 활기차 보였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코를 드르렁 골 정도로 열심히 체험에 참여했다. 익숙한 장소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활동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설레임이자 새로운 기회였던것 같다. 속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잠들어버렸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내기 노동인 ㄱㄴㄷ - 일터에서 곧 마주칠 갑질, 슬기롭게 이겨가는 길 철수와 영희를 위한 사회 읽기 시리즈 8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에는 다양한 직종이 함께 근무한다. 교원, 행정직원, 공무직원, 계약직원들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한다면 교원과 행정직원은 정규직으로, 공무직원과 계약직원은 비정규직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다만 공무직원은 무기계약직원이다. 교감의 주로 업무는 인사와 복무를 다룬다. 인사는 교원 인사를 주로 다루지만 공무직원, 계약직원의 인사도 관여를 한다. 계약직원은 해마다 학교장과 계약을 통해 근로를 한다. <새내기 노동인 ㄱㄴㄷ>을 읽으며 학교 현장을 돌아보게 된다. 

 

노동자냐 근로자냐에 대해 아직도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노동절로 바꾸자, 근로자의 날로 유지하자 등의 의견이 팽팽한 것으로 보아 아직 노동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측면이 많은 것 같다. 노동의 사전적 의미는 '몸을 움직여 일을 함' 또는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손, 발, 두뇌 등의 활동으로 이루는 일체의 목적을 가진 의식적 행위'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직장 안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노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근로자라는 말의 뜻은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근로자는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의 대가로 받는 소득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한국에서는 1957년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에 의해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하기로 결의했다가 1963년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지정했고, 이후 1994년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세계 노동자의 날에 맞춰 5월 1일로 날짜를 변경하고 ‘근로자의 날’ 명칭은 그대로 유지했다. 따라서, 노동절이냐 근로자의 날이냐 용어의 정의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저자가 이야기 한 것처럼 노동자가 법률에 근거된 근로기준대로 권리를 찾을 뿐만 아니라 헌법에 제시된 사회권을 보장받으면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갈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 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책 표제에서 제시한 'ㄱㄴㄷ'은 갑질, 노동, 대안을 의미한다. 유독히 대한민국의 재벌하면 갑질이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상공인들은 노동자들과 함께 절대왕정과 귀족에 대항해 시민권을 회복한 이들이었다. 봉건제도에서 근대사회로 발전하면서 가장 큰 공을 세운이들이 바로 상공인과 노동자들이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상공인은 기득권층으로 노동자들은 하위층으로 전락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자본의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과 사용자측은 최대한 저렴한 임금으로 노동력을 사용하고자 했으며 그 결과 기업은 흉칙한 괴물로 변질되어버렸다. 갑질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짓이다. 자본의 힘으로 노동자들을 노예처럼 취급하는 행태가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버젓히 자행되고 있다. 만약 우리의 자녀가 갑질을 당한다면 어떻겠는가?

 

국제표준화기구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ISO26000에 따르면 기업은 설명할 책임, 투명성, 윤리적 행동, 이해관계자 이해관계 존중, 법치 존중, 국제 행동 규범 존중, 인권 존중이라는 핵심 주제를 이행해야 한다. 88쪽~97쪽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설명할 책임이란 모든 조직은 자신이 사회, 경제 및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설명할 책임이 있다.

투명성이란 사회 및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자신의 의사 결정 및 활동에 투명해야 한다.

윤리적 행동이란 조직의 행동은 정직, 평등 및 성실의 가치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이해관계자 이해관계 존중이란 조직은 이해관계자의 이해관계를 존중하고, 고려하며 대응해야 한다.

법치 존중은 조직은 법치 존중이 의무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국제행동규범 존중은 조직은 법치 존중 원칙을 지키며 국제 행동 규범을 존중해야 한다.

인권 존중은 조직은 인권을 존중하고 인권의 중요성 및 보편성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ISO26000에 근거하여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행하도록 조직을 통치에서 협치로 전환하는 조직 거버넌스를 구축하여 수직적이고 하향적인 의사 결정 구조에서 수평적이고 상향적인 의사 결정 구조로 바꾸는 조직 민주화를 핵심 주제로 정했고, 인권, 노동 관행, 환경, 공정 운영 관행, 소비자 이슈, 지역 사회 참여와 발전을 진단리스트로 삼고 있다. 즉 국제표준화기구에서 제시한 노동 규약만 잘 이행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갑질'은 상당히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노동의 권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유럽의 사례와 우리나라의 노동권 쟁취 역사를 톺아보여주고 있으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넘어 단 한 사람도 소외받는 세상이 없도록 하는 세상을 꿈꾸기 위한 새로운 대안을 그려볼 것을 독자들에게 제안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별명은 똥손 저학년 책이 좋아 5
이나영 지음, 심보영 그림 / 개암나무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교하기 시작하면 불행이다. 나는 나대로 잘하는 게 있는거지 남들과 비교하며 가지고 있지 않은 재주를 억지로탐해봤자 힘만 든다.  나도 똥손의 주인공 이지안처럼 친구를 엄청 시기한 적이 있다. 질투였다.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인기를 독차지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게 되자 어느 순간 내 마음 속 깊숙히 질투와 시기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기쁨이 사라지고 여유도 사라졌다. 괜히 그 친구가 눈앞에 나타나면 부담스러웠고 왠지 까닭없이 미워했다. 그때 그 시절을 돌아보면 웃음이 나온다. 왜 그런 미숙한 행동을 보였을까 생각해 보니 내가 자라온 환경도 크게 작용한 듯 싶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했고 그래야 살아 남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뭐든 열심히 해야 했고 그래야 친구들보다 인정을 받았으니까. 성인이 된 지금도 전혀 없어졌다고 할 수 없다. 가만히 내 자신을 보면 아직도 누군가로부터 인정 받아야지 마음이 개운한 그 무언가가 아직 남아 있다. 

 

<내 별명은 똥손>의 주인공 지안이도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다. 손도 야무지지 못하고 투박하게 생겼으니까. 거기다가 손톱까지 가지런히 예쁘게 자라 있는 것이 아니라 뭉툭하게 있다보니 자신감이 바닥을 쳤을 것 가다. 네일숍에 가서 예쁜 손톱을 갖는 방법을 일시적으로 배우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잠깐 뿐. 약발이 떨어지면 본 모습이 나오는 법. 자신을 숨기고 남들처럼 살려고 노력하다보면 순간 컴플렉스를 감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결국 약효는 떨어지게 되는 법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나다운 모습이라는 것을 해프닝이지만 자신과 닮은 지안 투가 전학오면서 깨닫게 된다. 

 

올해부터 교사에서 교감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은근히 신경 쓰이는 게 있다. 교직원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의식하지 않을려고 해도 신경이 간다. 자연스럽게 행동해도 되는데 '나는 교감이니까' 하면서 스스로 재갈을 물리듯 조심스럽게 행동하다보니 무척 피곤하다. '나 다운 모습이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내 별명은 똥손이어서 매사가 불만이었지만 결국 잠시 잠깐 금손처럼 보이면서 맛보았던 일시적인 만족감보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똥손이 더 낫다라는 저자의 자전적 고백처럼 나 또한 교감이지만 내 모습 있는 그대로 보이며 실수는 실수했다고 고백하고 책임지고 전달해야 할 부분은 권위적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솔직한 교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학교와 비교하는 것도 불행이다. 교감이다보니 다른 학교가 무엇 무엇을 했다라고 듣게 되면 선의의 경쟁을 넘어 비교의식이 싹튼다. 그때부터 불행이 시작된다. 이웃 학교가 이렇게 했으니 우리 학교는... 교직원들에게 요구하게 되고 기존에 가졌던 방향을 재수정하면서 혼란을 빠뜨릴 수 있다. 이런 경우도 있다. 이웃 학교 교감은 이렇대라고 들으면 경쟁심이 발동된다. 나는 더 잘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욕심이 생긴다. 내 손이 똥손인데 하루 아침에 금손이 될 수 있겠는가. 저런 교감이 있으면 이런 교감도 있고 그런데 말이다. 

 

'내 별명은 똥손이야'라고 유쾌하게 이야기하는 지안이처럼 '제 능력은 여기밖에 안 되는 것 어떻게 하죠', '저도 잘 모르는데요'라고 있는 모습 말하자. 못하는 것을 억지로 감추고 마치 잘하는 것처럼, 알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지 말아야겠다. 숨겨봤자 결국 들통나게 된다. 솔직하게 살자. 저학년 동화책 <내 별명은 똥손>을 읽으며 나의 신규 교감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창수다운 방법으로 이창수식으로 섬기는 태도로 교감의 역할을.... 남들이 뭐라하든 신경쓰지 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사 속 부의 대반전 - '부의 형성'을 둘러싼 21가지 핵심원리
장진현 지음 / 스마트북스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팬데믹이라는 불리우는 코로나19 감염병이 과연 세계 경제를 뒤흔들어 '부의 대반전'을 촉진시킬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가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세계사 속 부의 대반전>도 거시적인 흐름에 의해 반전이 이루어진 것도 있지만 작은 물살처럼 미시적인 흐름에 의해 서서히 진행된 것도 있다. 저자는 세계의 역사 속에서 경제의 반전이 이루어진 변곡점을 발견하여 서술하고 있다. 역사는 거울이라고 한다. 역사는 반복되어진다고 역사학자들은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경제에 미칠 영향은 어떨까?

 

우리가 잘 아는바와 같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은 기후변화와 도시 과밀이 초래한 질병이다. 항공 산업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물류 사업이 중단하거나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변이의 발견으로 완전 퇴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경제에 미치 영향, 경제에 흐름에 따른 '부의 대반전'은 과연 누구에 의해서 어떤 시점에서 이루어질까? <세계사 속 부의 대반전>을 연구한 저자의 역사적 변곡점을 읽어보시면서 독자들이 판단해 보면 어떨까 싶다.

 

저자는 두 꼭지로 크게 구분하여 부의 대반전 역사를 서술했다. 개인에게 일어난 대반전의 역사, 국가, 기업 단위에서 일어난 대반전의 역사 서술이다. 먼저 개인에게 일어난 부의 대반전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뽑아 보면 이렇다. 

 

91쪽 '핵심 재화를 둘러싼 좌절과 노림수' 라는 소제목이다. 핵심 재화라고 하면 흔히 과거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도 견고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석유'다. 미국과 중국의 미중전쟁을 보더라도 국가적으로 핵심 재화를 견고히 하고자 미묘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것을 보면 알다시피 핵심 재화가 어떻게 세계 질서를 움직이고 가격 형성을 좌지우지하는지를 보면 부의 움직임을 간파할 수 있다. 에너지 정책의 변곡점에서 가장 영향력을 미쳤던 나라라고 하면 미국과 영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영국은 이란과 석유 교역을 해오며 경제 질서를 양분하고 있었다. 하지만 변곡점에 이른 지역이 있었으니 중동 지역이었다. 영국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돕겠다며 현재 거주민의 권리를 무시하며 팔레스타인 분쟁을 촉발시켰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핵심 재화인 석유를 확보하기 위하여 유대인 자본과 미국을 활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영국의 수상 처칠 개인 한 사람의 판단은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로 변하게 했다고 역사학자들은 정리한다. 

 

국가과 기업 단위에서 일어난 부의 대반전은 아마도 이 가문(기업)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금융과 전쟁을 통해 돈을 번 로스차일드 가문(기업)이다. 중세 독일의 영주들은 라인강을 이용하여 터무니없는 통행세를 징수하고 있었다. 무역하는 상인들의 입장에서는 근거가 없는 세금이었다. 결국 한자동맹이라는 결맹체를 맺어 영주들에 대항했으며 상인들의 힘이 거대해지고 자본이 모이자 무역업과 용병사업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가문이 독일계 유대인 가문인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과도한 세금 징수가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절대왕정을 무너뜨렸듯이 '부(돈)'의 움직임은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코로나19도 과연 기존의 부를 쌓고 움직여왔던 기존의 시스템을 허물고 대반전의 변곡점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는 부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