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신 - 당신이 구원받았음을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는가?
J. D. 그리어 지음, 장혜영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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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점 앞에서 흐지부지되는 믿음은 처음부터 결함이 있었다"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말하는 것은 부정확하지 않다. 다만 불충분할 뿐이다. 한번 구원받았다면 언제나 구원받을 것이라는 점과 구원받은 자들은 자신의 믿음 안에서 끝까지 인내할 것이라는 점은 모두 사실이다.


구원은 한순간에 일어나고 한번 구원 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는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믿음의 고백을 마지막까지 유지해야 한다. 구원을 위해 회개와 믿음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많은 것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신을 죽음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다. 자기 삶의 통제권을 죽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꿈을 죽이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내려 놓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구원의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하다.


종교는 행위를 바꾸라고 명령하지만 마음은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은 마음속을 깊숙이 침투해 뒤틀린 본성을 변화시킨다.


과거 어느 순간의 결정으로 지금 어떻게 살고 있든지 자신이 영원히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확실하게 '그럴 수 없다'라고 말해야 한다.


구원의 확신은 회개와 믿음이 전제되어 행동의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구원 받은 사람의 삶의 변화를 요구한다. 야고보서가 그렇듯이 구원의 한 순간 감정으로 확신을 얻는다는 것은 진실에서 벗어난 것이다. 입으로 시인하였다면 삶의 변화가 후속적으로 뒤따르는 것이 자연적 결과다. 구원의 확신의 결과는 성령의 열매로 나타난다. 구원 받은 사람이 끝까지 경주를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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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위의 아이 햇살그림책 (봄볕) 36
비베카 훼그렌 지음, 강수돌 옮김 / 봄볕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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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그냥 생활 방식일 뿐이야"


서로 다른 생활 방식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태도를 강조한 그림책입니다.  나와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혐오하거나 차별한다면 그 사회는 새로운 사람들이 정착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모두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할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곳곳에서는 '끼리끼리' 문화로 낯선 이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얀 눈이 보얗게 쌓인 어느 날 오후, 낯선 아이가 짐을 한 보따리 들고 우리 집에 왔다면?


그 아이의 이름은 '세삼' 입니다.

생활 방식이 다릅니다.

이상한 냄새도 납니다.

도통 말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천장 위에서' 살아갑니다.

방안에 있는 물건들도 죄다 천장 위로 올라 가지고 갑니다.

'세삼'과 같이 밖에 나들이를 가면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빤히 쳐다봅니다.


학교마다 생활 방식이 다른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다른' 사람과 서로 '존중'하며 함께 사는 것을 배우는 곳이 되어야 되겠죠.


생활 방식이 전혀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힘이 많이 듭니다.

눈에 거슬리는 행동들이 한 두가지가 아닐꺼예요.

귀를 막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닐꺼예요.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꺼예요.

왜 하필이면 우리 학급에... 라는 불평하는 마음이 생길꺼예요.

그러나

함께 맞춰가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면

어른이 되어서도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이 좀 더 쉽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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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그림들
위영 지음 / 휴앤스토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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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혼자 하는 여행이며 여행은 걸어다니면서 하는 독서라고 하듯이, 훌륭한 그림 명화 한 폭은 오래 세월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역사 여행이다. 순간적인 장면을 촬영하는 사진이나 연속적인 장면을 기록하는 동영상보다 거칠고 성긴 붓질로 그려진 그림 한 폭이 주는 울림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파일로 저장해 놓은 사진보다 손쉽게 열어볼 수 있는 인화된 사진 모음집인 앨범에 손이 더 자주 가는 것처럼 역사의 한 장면을 화폭에 담아 놓은 명화는 오래도록 생각할 거리를 만들고 가슴 속에 의미를 단단히 새겨 놓는다.


저자는 『속삭이는 그림들 』에서 그림 속 여행 가이드가 되어 독자들에게 친절한 도슨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림 한 장면 한 장면을 꼼꼼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일반인들이 알아볼 수 없는 깊이 있는 설명을 아끼지 않는다. 독서가 사람을 성숙시키고 인격을 고양하는 것은 독서가 지닌 고독의 시간 때문이며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열매 때문일게다. 마찬가지로 여행은 폭넓은 경험을 통해 세상 안목을 넓혀주고 여행이 지닌 고독 시간 또한 열매 맺기에 충분할 정도다. 그림 속 여행은 말할 필요가 없다. 화가의 삶을 이해해야 그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듯이 그림 자체가 화가의 인생이며 철학이다. 화가의 의도를 잘못 읽히게 되면 전혀 엉뚱한 그림 감상이 될 수 있다. 저자는 평범한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그림 속 장면을 맛깔나게 설명해 준다.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특히 저자가 좋아하는 화가인 렘브란트, 고흐, 뒤러에 대한 저자의 고유한 설명을 듣고 그림을 감상하면 정확한 독해력을 가지게 된다.


렘브란트는 평생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서 그림을 그린 사람이라고 한다. 고흐도 독서를 좋아했고 탐서가이자 애서가여서 책 읽는 사람을 그리거나 책을 소재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루터주의자답게 말씀을 생명의 곳간으로 여겼던 사람이다. 세 명다 공통점은 신앙심이 깊은 이들이었다. 그들이 남긴 그림을 보면 얼마나 신앙심이 깊었는지 증명이 될 정도다. 하지만 현대 미술은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신앙과 적대적 위치에 있다. 선악의 구분은 다양한 철학 사조에서 이원론으로 폄훼되어 사라져가고 순전한 믿음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 그림의 소재로 죽음을 제외시킬 수 없듯이 유럽 미술사의 가장 큰 축은 신과 사람의 만남이었다. 그것을 빼놓고는 제대로 그림을 감상할 수 없다.  


자신의 젊음을 당시 유배지와 다름이 없었던 '조선'을 위해 바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선교사들의 송별 예배 정경을 그린 그림 「출발 」(샤를 루이 드 프레디 쿠베르탱, 1868)을 보면 엄숙함을 너머 경외함이 느껴진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아득한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으로 복음을 들고 떠나는 선교사들의 나이가 25세~29세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영혼의 정복을 위해 결코 돌아올 수 없고 1년에 한 번 어둠을 틈타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유배지를 선택했다. 「출발 」은 프랑스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복음의 신세를 진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는 일이다. 죽음조차도 두려움의 대상이 안 될 수 없었다. 화가 쿠베르탱은 순간을 잘 표현했다.


저자의 그림 속 여행 이야기에서 설명한 그림 중 코로나19로 인해 전염병의 위험을 경험한 이 시점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그림은 푸생이 그린 「야슈도드에 번진 흑사병 」이다. 전쟁과 함께 전염병은 사람들을 쉽게 혼돈에 빠뜨렸다. 전염병이 주는 위협으로부터 좌절과 희망을 교차 표현한 푸생의 그림은 우리에게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명화를 설명해 주는 책은 언제나 기대가 된다. 직접 가까이 볼 수 없는 명화들을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손쉽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까막눈에 다를 바 없는 예술에 대한 낮은 안목으로는 전문가의 손길을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가 설명해 주지 않고서는 그림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유럽의 역사가 곧 기독교의 역사이다. 유럽의 역사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그림'을 보는 것이다.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당대의 화가들이 놓치지 않고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기에 후세대 사람들은 그 덕을 충분히 누리는 있는 셈이다. 그림에 대해 초보적인 수준을 지녔다할지라도 그림을 반복해서 보고, 설명을 읽어가다보면 뚝 뚝 떨어져 있던 구슬이 꿰어 맞춰지듯이 어느 새 화가의 의도를 알게 되고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게 된다.


책을 읽다가 막힐 쯤 되면 기분 전환 겸 한 번 쯤은 명화에 관한 책을 손에 쥐어보자. 『속삭이는 그림들 』은 충분히 시간이 아깝지 않게 여겨질 정도의 품격과 깊이가 있는 책이기에  자신감있게 추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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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어떻게 해야 할까? - 처음 신앙을 가진 초신자를 위한 아주 쉬운 기도서! How Book Series 1
이대희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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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를 위한 기도 입문서라고 하지만 기도의 본질을 정확히 말해 주는 기도 지침서라고 본다. 모든 종교에는 기도가 있다. 기독교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불교, 기타 여러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기도를 드린다. 우리 조상들은 정화수 한 그릇을 떠 놓고 자식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곤 했다. 지금도 깊은 산 속이나 마을 한 어귀에 우둑커니 서 있는 정자나무에는 기도를 드리기 위해 타다 만 초들이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사람들 마음 속에는 신을 향한 갈망이 있다. 아니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신이라고 하는 대상을 향해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소원을 성취해 주기를 바라는 이에게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린다.


하지만 기독교와 기타 종교의 기도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기도의 목적에 있다. 자신을 위하거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기타 종교인들이 드리는 기도라고 본다면 기독교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한 것이 기도다. 따라서, '내'가 중심이 되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나'를 버리는 기도가 기독교의 온전한 기도 목적이다. 내가 잘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가 그리스도인이 드리는 기도이다. 자칫 '기도' 가 아니라 '주문' 이되는 기도가 있다. 인격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우상'께 드리는 기도는 '주문'이 될 수밖에 없다. 우상은 결국 내가 만든 신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우상이 되고, 권력이 우상이 된다. 자식이 우상이 되고 외모가 우상이 된다. 돈과 권력과 자식과 외모를 추구하는 기도는 '주문' 불과한 것이 된다.


"이방인들의 기도는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


저자는 기도의 필요성을 책 속에 담아냈다. 언제 어디서든지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걸어가든지 누워 있든지 말이다. 교회에서든 직장에서든 기도하라고 말한다. 기도하는 방법도 성경에 근거하여 조언한다. 성경 속 인물이 기도했던 것처럼 기도의 본을 따라 기도하면 어느새 자신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기도는 항상 말씀이 근거가 되어야 한다. 중언부언하는 기도, 형식적인 기도,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되지 않기 위해 말씀을 묵상한 뒤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 큰 소리로 부르짖든 잠잠히 읊조리든 손을 들고 기도하든 고개를 파묵고 기도하든 기도의 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려는 마음이 더 아름다운 것이다.


기도는 습관이다!


기도에 대해 아무리 지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더라도 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기도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꾸준히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습관이 필요하다. 자신과의 싸움이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결국 자기 힘으로 살아가겠다는 얘기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이다. 과연 기도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은 달콤한 잠과 싸워 이긴 사람이다. 전날 밤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먹고 싶은 욕구를 모두 이겨낸 사람이다.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자신의 삶의 초점을 새벽에 맞춘 사람이다. 하루 이틀 기도하다보면 어느새 습관이 자신을 기도자로 이끌 것이다.


기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성령께서 도우시는 것이다!


기도의 거장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기도는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하시는 거라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 필요하다. 내 생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지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을 얻으며 기도해야 한다. 생각지도 못한 기도를 하게 된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된다. 성령님께서 도우시는 증거다. 우리는 살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기도가 시들해졌을 때 기도에 동기를 부여하자. 『기도, 어떻게 해야 할까? 』로 다시 한번 기도의 끈을 단단히 묶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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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계시며 응답하시는 하나님
김남준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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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가장 큰 효용성은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192쪽)


성경에서는 질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질서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배우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질서를 찾을 수 없습니다. 말씀은 질서와 무척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점점 무질서해 지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것은 좋지만 권위 자체를 경시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집니다. 사람의 직위나 경력, 재산이나 힘에 의해 생기는 것이 권위가 아닙니다. 혹 '권위'를 자신이 노력한 결과의 대가로 생각해서 무소불위의 권위를 남용하는 사례가 종종 회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권위'는 겸손을 동반하고 자신에게 부여해 준 권위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목욕하는 물이 더럽다고 목욕물에 앉아 있는 아기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권위주의가 구시대의 산물이라고 '권위'마저도 버릴려고 한다면 우리 사회는 무질서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절대 권위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권위자는 하나님이며 우리는 다만 권위를 위임받은 것 뿐입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겸손하게 권위를 행사해야 합니다. 공동체를 위해, 다른 이들을 위해 섬기는 마음으로 권위를 사용해야 합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처분권을 쥐고 있는 주인입니다" (25쪽)


하나님은 주인입니다. 종은 주인의 처분을 그저 따를 따름입니다. 종이 이래랴 저래랴 할 수 없습니다. 순종해야할 의무가 종에게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처분권을 주고 있는 분이 하나님을 인정할 때 우리 인생의 질서를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려고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우리 모두가 경험해봐서 아는 일이지만 교만으로 이르게 됩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잠시 잠깐은 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생살이가 그렇게 순탄하지만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임을 고백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기도입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고 하나님의 뜻대로 내 욕망을 죽여가는 시도이며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럴수밖에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니까요.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 사람이 가진 비전, 능력, 장점보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지, 전적으로 즉각적인 순종을 하는지 관심있게 보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기도생활은 얕은 물에서 첨벙거리는 것 같습니다"(137)


바쁘다고 해서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하다면 그것은 삶의 우선순위가 바뀐 것입니다. 바빠서 기도할 수 없다면 차라리 바쁜 일을 손에서 정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의 위대한 대가들은 기도하는 일을 우선순위로 여겼습니다. 바쁘다고 해서 대충 기도하는 것을 중언부언한다고 표현합니다. 형식만 갖춘 기도 행위인거죠. 그러나 형식적인 기도에는 어떤 힘도 있을 수 없습니다. 자아만족일 뿐입니다. 기도는 깊은 물 속이 되어야 합니다. 얕은 물에서 첨벙거리는 일은 아이들 장난에 불과합니다. 깊은 물 속에서 생사를 걸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저부터 반성이 되는 대목입니다. 형식적인 기도, 위선적인 기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가 제 기도생활이었습니다. 이제 기도에 목숨을 걸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거기에 계셔서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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