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이는 그림들
위영 지음 / 휴앤스토리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는 혼자 하는 여행이며 여행은 걸어다니면서 하는 독서라고 하듯이, 훌륭한 그림 명화 한 폭은 오래 세월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역사 여행이다. 순간적인 장면을 촬영하는 사진이나 연속적인 장면을 기록하는 동영상보다 거칠고 성긴 붓질로 그려진 그림 한 폭이 주는 울림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파일로 저장해 놓은 사진보다 손쉽게 열어볼 수 있는 인화된 사진 모음집인 앨범에 손이 더 자주 가는 것처럼 역사의 한 장면을 화폭에 담아 놓은 명화는 오래도록 생각할 거리를 만들고 가슴 속에 의미를 단단히 새겨 놓는다.


저자는 『속삭이는 그림들 』에서 그림 속 여행 가이드가 되어 독자들에게 친절한 도슨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림 한 장면 한 장면을 꼼꼼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일반인들이 알아볼 수 없는 깊이 있는 설명을 아끼지 않는다. 독서가 사람을 성숙시키고 인격을 고양하는 것은 독서가 지닌 고독의 시간 때문이며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열매 때문일게다. 마찬가지로 여행은 폭넓은 경험을 통해 세상 안목을 넓혀주고 여행이 지닌 고독 시간 또한 열매 맺기에 충분할 정도다. 그림 속 여행은 말할 필요가 없다. 화가의 삶을 이해해야 그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듯이 그림 자체가 화가의 인생이며 철학이다. 화가의 의도를 잘못 읽히게 되면 전혀 엉뚱한 그림 감상이 될 수 있다. 저자는 평범한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그림 속 장면을 맛깔나게 설명해 준다.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특히 저자가 좋아하는 화가인 렘브란트, 고흐, 뒤러에 대한 저자의 고유한 설명을 듣고 그림을 감상하면 정확한 독해력을 가지게 된다.


렘브란트는 평생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서 그림을 그린 사람이라고 한다. 고흐도 독서를 좋아했고 탐서가이자 애서가여서 책 읽는 사람을 그리거나 책을 소재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루터주의자답게 말씀을 생명의 곳간으로 여겼던 사람이다. 세 명다 공통점은 신앙심이 깊은 이들이었다. 그들이 남긴 그림을 보면 얼마나 신앙심이 깊었는지 증명이 될 정도다. 하지만 현대 미술은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신앙과 적대적 위치에 있다. 선악의 구분은 다양한 철학 사조에서 이원론으로 폄훼되어 사라져가고 순전한 믿음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 그림의 소재로 죽음을 제외시킬 수 없듯이 유럽 미술사의 가장 큰 축은 신과 사람의 만남이었다. 그것을 빼놓고는 제대로 그림을 감상할 수 없다.  


자신의 젊음을 당시 유배지와 다름이 없었던 '조선'을 위해 바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선교사들의 송별 예배 정경을 그린 그림 「출발 」(샤를 루이 드 프레디 쿠베르탱, 1868)을 보면 엄숙함을 너머 경외함이 느껴진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아득한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으로 복음을 들고 떠나는 선교사들의 나이가 25세~29세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영혼의 정복을 위해 결코 돌아올 수 없고 1년에 한 번 어둠을 틈타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유배지를 선택했다. 「출발 」은 프랑스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복음의 신세를 진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는 일이다. 죽음조차도 두려움의 대상이 안 될 수 없었다. 화가 쿠베르탱은 순간을 잘 표현했다.


저자의 그림 속 여행 이야기에서 설명한 그림 중 코로나19로 인해 전염병의 위험을 경험한 이 시점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그림은 푸생이 그린 「야슈도드에 번진 흑사병 」이다. 전쟁과 함께 전염병은 사람들을 쉽게 혼돈에 빠뜨렸다. 전염병이 주는 위협으로부터 좌절과 희망을 교차 표현한 푸생의 그림은 우리에게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명화를 설명해 주는 책은 언제나 기대가 된다. 직접 가까이 볼 수 없는 명화들을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손쉽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까막눈에 다를 바 없는 예술에 대한 낮은 안목으로는 전문가의 손길을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가 설명해 주지 않고서는 그림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유럽의 역사가 곧 기독교의 역사이다. 유럽의 역사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그림'을 보는 것이다.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당대의 화가들이 놓치지 않고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기에 후세대 사람들은 그 덕을 충분히 누리는 있는 셈이다. 그림에 대해 초보적인 수준을 지녔다할지라도 그림을 반복해서 보고, 설명을 읽어가다보면 뚝 뚝 떨어져 있던 구슬이 꿰어 맞춰지듯이 어느 새 화가의 의도를 알게 되고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게 된다.


책을 읽다가 막힐 쯤 되면 기분 전환 겸 한 번 쯤은 명화에 관한 책을 손에 쥐어보자. 『속삭이는 그림들 』은 충분히 시간이 아깝지 않게 여겨질 정도의 품격과 깊이가 있는 책이기에  자신감있게 추천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