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의 학교 사계절 중학년문고 37
김혜진 지음, 윤지 그림 / 사계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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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학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학교에게 아이들이 필요한 것"

 

맨날 학교가 똑같은 수업만 한다면 아이들에게는 어떨까? 생각만 하더라도 숨통이 막혀 온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아이들에게 뭐라고 할 게 아니다. 학생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일은 선생님의 몫이다. 출산율이 바닥을 치고 있다. 얼마 안 있으면 학교가 문 닫을 지경이다. 학생 수가 많이 줄어들어 있던 학교도 없어질 판이다. 아이들에게 학교가 필요한 시기가 있었다면 이제는 학교에게 아이들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이 귀하다는 얘기다. <일주일의 학교>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게 재미나다. 

 

고정 관념을 깰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맨날 한 학교만 다닐 필요가 있을까? 너무 위험한 생각인가? 하루는 이쪽 학교, 하루는 저쪽 학교. 학생들이 선택해서 다닌다면? 그렇다면 학교가 긴장할 게 뻔하다. 학생들을 찾아오게 하려면 그 학교만의 특징이 분명해야 되니까. <일주일의 학교>는 요일별로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가 다르다. 월요일은 비만 오는 학교, 화요일은 체육관처럼 생긴 학교, 수요일은 열쇠로 열어야 모든 활동을 할 수 있는 학교, 목요일은 밤에만 가는 학교, 금요일은 뭐든지 뚝딱뚝딱 만들어야 하는 학교. 그리고 저자는 숙제를 던진다. 그럼.. 내일의 학교는?

 

학교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나에게 이렇게 적용해 보게 된다. 

'교사에게 교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교감에게 교사들이 필요한 것' 

교사들이 없으면 교감은 필요없는 존재다. 물론 학교 자체가 없으면 교감은 더더욱 필요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교사에게 교감이 필요한 것을 넘어 교감에게 교사들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매일 매일 만나는 선생님들 한 분 한 분이 소중할 것이며 교감이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협치로, 협업으로 가려고 하지 않을까 싶다. 교감에게 교사들이 필요하다! 함께 걸어가는 동역자다!

 

<일주일의 학교>에서 학생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비가 와서 장화를 신어야 하고 추적추적 축축하게 지내야 하지만 비만 오는 학교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있기에 아이들의 표정이 살아 있다. 어른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바람에 비구름이 막히는 사태가 일어난다. 비만 오는 학교에 비가 오지 않자 모두가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 해결사는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생각해낸 작은 아이디어에서 막혔던 비가 다시 내리게 되었다. 어리다고 깔봐서는 안 되는 일이다. 화요일에 가는 학교는 힘들지만 교문부터 타 넘고 가야 하고 수학 문제도 구르기를 해야 하는 학교지만 몸을 신나게 움직일 수 있기에 매력 만점인 학교다. 수요일의 학교는 수수께끼 학교다.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열어야 점심도 먹을 수 있다. 뭐든 자기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는 학교다. 목요일의 학교는 하품이 나오지만 밤에 가야 하는 학교다. 어둠은 아이들의 흔적을 먹기 위해 찾아온다. 밤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학생들이 반기는 존재다. 금요일의 학교는 책상부터 교실까지 아이들이 생각한대로 만들어내야 하는 학교다. <일주일의 학교>도 당장은 신선해 보이고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자꾸 반복되어지면 식상해 진다. 내일의 학교를 제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로나로 인해 현장체험학습이 축소 운영되고 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용기내어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코너를 찾아가 실습하고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들이 활기차 보였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코를 드르렁 골 정도로 열심히 체험에 참여했다. 익숙한 장소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활동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설레임이자 새로운 기회였던것 같다. 속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잠들어버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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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별명은 똥손 저학년 책이 좋아 5
이나영 지음, 심보영 그림 / 개암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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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하기 시작하면 불행이다. 나는 나대로 잘하는 게 있는거지 남들과 비교하며 가지고 있지 않은 재주를 억지로탐해봤자 힘만 든다.  나도 똥손의 주인공 이지안처럼 친구를 엄청 시기한 적이 있다. 질투였다.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인기를 독차지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게 되자 어느 순간 내 마음 속 깊숙히 질투와 시기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기쁨이 사라지고 여유도 사라졌다. 괜히 그 친구가 눈앞에 나타나면 부담스러웠고 왠지 까닭없이 미워했다. 그때 그 시절을 돌아보면 웃음이 나온다. 왜 그런 미숙한 행동을 보였을까 생각해 보니 내가 자라온 환경도 크게 작용한 듯 싶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했고 그래야 살아 남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뭐든 열심히 해야 했고 그래야 친구들보다 인정을 받았으니까. 성인이 된 지금도 전혀 없어졌다고 할 수 없다. 가만히 내 자신을 보면 아직도 누군가로부터 인정 받아야지 마음이 개운한 그 무언가가 아직 남아 있다. 

 

<내 별명은 똥손>의 주인공 지안이도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 같다. 손도 야무지지 못하고 투박하게 생겼으니까. 거기다가 손톱까지 가지런히 예쁘게 자라 있는 것이 아니라 뭉툭하게 있다보니 자신감이 바닥을 쳤을 것 가다. 네일숍에 가서 예쁜 손톱을 갖는 방법을 일시적으로 배우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잠깐 뿐. 약발이 떨어지면 본 모습이 나오는 법. 자신을 숨기고 남들처럼 살려고 노력하다보면 순간 컴플렉스를 감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결국 약효는 떨어지게 되는 법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나다운 모습이라는 것을 해프닝이지만 자신과 닮은 지안 투가 전학오면서 깨닫게 된다. 

 

올해부터 교사에서 교감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은근히 신경 쓰이는 게 있다. 교직원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의식하지 않을려고 해도 신경이 간다. 자연스럽게 행동해도 되는데 '나는 교감이니까' 하면서 스스로 재갈을 물리듯 조심스럽게 행동하다보니 무척 피곤하다. '나 다운 모습이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내 별명은 똥손이어서 매사가 불만이었지만 결국 잠시 잠깐 금손처럼 보이면서 맛보았던 일시적인 만족감보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똥손이 더 낫다라는 저자의 자전적 고백처럼 나 또한 교감이지만 내 모습 있는 그대로 보이며 실수는 실수했다고 고백하고 책임지고 전달해야 할 부분은 권위적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솔직한 교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학교와 비교하는 것도 불행이다. 교감이다보니 다른 학교가 무엇 무엇을 했다라고 듣게 되면 선의의 경쟁을 넘어 비교의식이 싹튼다. 그때부터 불행이 시작된다. 이웃 학교가 이렇게 했으니 우리 학교는... 교직원들에게 요구하게 되고 기존에 가졌던 방향을 재수정하면서 혼란을 빠뜨릴 수 있다. 이런 경우도 있다. 이웃 학교 교감은 이렇대라고 들으면 경쟁심이 발동된다. 나는 더 잘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욕심이 생긴다. 내 손이 똥손인데 하루 아침에 금손이 될 수 있겠는가. 저런 교감이 있으면 이런 교감도 있고 그런데 말이다. 

 

'내 별명은 똥손이야'라고 유쾌하게 이야기하는 지안이처럼 '제 능력은 여기밖에 안 되는 것 어떻게 하죠', '저도 잘 모르는데요'라고 있는 모습 말하자. 못하는 것을 억지로 감추고 마치 잘하는 것처럼, 알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지 말아야겠다. 숨겨봤자 결국 들통나게 된다. 솔직하게 살자. 저학년 동화책 <내 별명은 똥손>을 읽으며 나의 신규 교감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창수다운 방법으로 이창수식으로 섬기는 태도로 교감의 역할을.... 남들이 뭐라하든 신경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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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을 막아라! 시간 여행 - 한국어린이출판협의회 이 달의 어린이 책(2021년 2월) 튼튼한 나무 40
김경민 지음, 박선하 옮김 / 씨드북(주)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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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년 런던에 콜레라가 발병하여 334명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콜레라는 나쁜 공기때문에 생긴 것으로 생각했다. 빈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늘 악취가 심했다. 인구가 많은 대도시답지 않게 하수처리는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악취를 막기 위해 향수나 담배를 피워 콜레라를 치료하는 방법까지 성행했다. 모두가 콜레라의 오염원을 공기라고 여길 때 유일하게 혼자 아니라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존 스노 박사였다.

 

존 스노 박사는 1849년 콜레라의 전파 방식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콜레라를 소화 기관의 일부인 장과 관련된 질병으로 보았다. 통증과 구토, 설사와 탈수를 일으키는 원인이 장에 있다고 보았다. 존 스노박사는 서더크앤드 복스홀 수도회사가 공급하는 펌프에서 물을 길러 마신 사람들이 대거 죽었다는 사실을 직접 가가호호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구두가 닳을 정도로 많은 곳을 직접 찾아가 묻고 답한 내용을 정리해서 병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을 구두 전염병학이라고 말한다. 존 스노 박사의 행적에서 비롯되었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직접 돌아다니면서 정확한 통계로 설명해 주어도 사람들은 콜레라의 원인을 오염된 물이 아니라 나쁜 공기, 냄새나는 악취라고 고집부렸다. 당시 콜레라를 일으키는 병균은 비브리오 콜레라균이었다. 한쪽 끝에 꼬리가 달린 바나나처럼 생긴 비브리오 콜레라균은 사람 몸속의 장에 들어가 독소를 뿜어냈다. 세균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시기에 오염원이 물 속에 있는 세균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 없었다. 영어로는 박테리아로 불리는 작은 막대기모양처럼 생긴 세균은 현미경에 의해 발견되었고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가장 작은 미생물인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다른 생명체에 기생하며 많은 질병을 일으킨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세균과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안긴다. 손을 깨끗히 씻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질병을 막을 수 있는 것조차 알지 못했던 당시 런던은 오염된 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어야했다.

 

<전염병을 막아라! 시간여행>과 함께 읽어 볼 책으로 <감염도시>를 추천한다. 『감염도시』에는 콜레라 환자가 죽어가는 모습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19세기 영국 런던의 상하수도 시설의 상태와 도시 환경이 어땠는지 독자들에게 낱낱히 안내해주고 있다. 불과 150년 전 얘기다. 위대한 전투나 혁명 같은 세계사적인 사건만이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존 본능인 마시는 물과 관련된 콜레라 전염병이 어떻게 한 도시의 삶을 바꿔갔는지 친절하게 말해 주고 있다. 영국 런던은 흑사병(1664년~1665년), 대화재(1666년 9월), 콜레라(1854년)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자그마한 세균이 질병을 퍼뜨린다는 개념을 믿지 않았던 시대에 수 많은 사람들이 이유를 모르고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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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이 다른 세계사 - 3D 이미지로 완벽히 되살린 생생한 역사
DK 지식백과 편집위원회 지음, 강창훈 옮김, 필립 파커 자문 / 책과함께어린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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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사람들의 세계사 지식은 어떨까?

 

 

 

고리타분한 다른 나라 이야기를 즐겨 듣고자 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과거와 달리 긴 글로 이루어진 세계사를 접하려고 하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짤막한 토막글로 전체 맥락을 잡기란 쉽지 않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세계사에 입문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3D 이미지로 이해를 도우며 깨알같은 글씨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충분히 설명을 도울 자료가 곁들어 있는 책으로 시작하나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 기억으로는 나는 아마 세계사를 대학 입시를 위한 목적으로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입문하지 않았나 싶다. 키가 작은 세계사 선생님이 기억이 난다. 당시 <국사> 지금으로 말하자면 한국 역사다. 국사도 공부해야 할 분량이 많아 쩔쩔 맸었는데 세계사까지 공부하라고 하니 그야말로 시험을 위한 공부였던 것 같다. 외우기에 급급했지 세계사에 담긴 흥미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또 다시 세계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독서를 통해서. 다양한 분야를 손에 잡히든 대로 읽다보니 결국 세계사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당연히 부담이 되었다. 책의 분량 뿐만 아니라 방대한 범위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읽어야할지 깜깜했다. 무작정 읽어보자고 덤벼 들고 읽었던 것이 로마인의 이야기, 그리스 로마에 등장하는 영웅이야기 등 서양 유럽사가 대부분이었지만 전체의 윤곽을 잡아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종교에 얽힌 역사도 읽어내야 하고, 유럽이 아닌 다른 대륙의 이야기도 건너뛸 수 없다보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고민 하던 중 나만의 살아남기 전략이 있었으니 친숙한 주제로 세계사를 풀어낸 이야기를 읽다보면 언젠가는 퍼즐 조각 맞춰지듯 완성되지 않을까 싶어 호기심 닿는대로 접근해 봤던 적도 있다.

 

 

 

세계의 역사는 통째로 머리속에 그려낼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 책이 오히려 개념을 잡고 이해를 그려나가는데 꽤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차원이 다른 세계사>가 그렇다. 백과사전을 보는 듯 하지만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다. 입체로 표현되어 있기에 한 눈에 쏙 들어오도록 편집되어 있고 내용 설명도 결코 가볍지 않다. 몇 번 잡지 넣기듯 훑어보며 전체의 흐름을 파악한 뒤 관심 가는 영역으로 집중해서 들어가보면 좋을 듯 싶다. 역사는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세계는 그물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세계 곳곳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이 결국 우리의 역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계 역사를 둘러보며 우리의 역사에 미친 사건들을 접하게 되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세계사는 통찰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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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춘기 사계절 동시집 19
박혜선 지음, 백두리 그림 / 사계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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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이 교사다 보니 학교 얘기가 나오면 귀가 쏠깃해진다. <바람의 사춘기>에도 학교 얘기가 나온다. 분교 얘기. 1998년 9월 군 제대 후 첫 발령을 받은 곳이 있다. 강원도 홍천군 내면 운두령 산자락에 위치한 '운두초등학교' 다. 이듬해 9월에 분교로 격하되었다. 본교일때나 분교일때나 달라진 것은 교장, 교감 선생님 두 분이 떠나신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3학급 초등학교에도 교장, 교감 선생님 두 분이 재직하셨었네. 1998년까지는. 근데 1999년 3월 1일부터 교감 선생님이 떠나고 교장 선생님만 계셨던 것 같다. 그리고 운두초등학교는 1999년 9월 1일자로 분교가 됐다. 첫 발령을 받았던 곳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그곳에서 만났던 아이들도 한 명 한 명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바람의 사춘기>에는 이런 동시가 담겨 있다.

 

78쪽이다. 

 

분천 분교

 

아이들과 선생님은 떠났지만

학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로 했다

책 읽는 소녀가 화단에 남아 여전히

책을 읽고 있었고

이순신 장군이 큰 칼을 차고

소녀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하 생략)

 

역사가 오래된 시골 학교에 가면 지금도 운동장 한 켠에 우뚝 서 있는 동상을 볼 수 있다. 반공 정신의 상징 '이승복 소년' 동상, 애국 정신의 상징 ' 이순신 장군' 동상, 또는 '거북선 동상', 한글 사랑의 정신이 깃든 '세종대왕 동상' 등 계기 교육의 일환으로 큼직막하게 세워진 동상들을 보게 된다. 그 뿐인가. '분천 분교' 동시에도 나와 있듯이 '책 읽는 소녀' 와 같은 다소곳한 동상도 심심치 않게 본다. 시대가 변화되었다고 해서 동상을 함부로 철거할 수 없는 것이 학교 시설의 원칙이다. 학교 재산이기 때문이다. 초임 발령을 받고 내가 맡았던 업무가 '서무' 즉 지금의 행정실 업무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런 동상들을 '파고다' 라고 정리했던 것 같다. 언제 설치하였으며 가격은 얼마이며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장부 '대장'에 기록하여 누가철을 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신설되는 학교에는 동상이 없다. 아마도 가치관의 변화도 있었을테고 특정한 '동상'을 세웠다가 여러 무수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차라리 세우지 않는 게 속편한 일이기에 동상을 세우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동상'을 보면 옛 초임 시절 때 교사 생활이 생각이 난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펼쳐지는 수업의 진풍경을 동시에 담아냈다.

 

1교시 수업이 시작된다

 

화면 속에 아이들이 보인다

(중략)

 

엑스트라로 등장한 아준이 엄마까지

줌 수업은 이 재미지

 

네모진 사각형 박스에 학급 아이들 모습이 채워져야 수업이 시작된다. 출석체크다. 화면을 까맣게 끄고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불러내야 하는 것이 줌 수업의 첫 단추다. 줌 수업이 되면서 매순간의 수업이 공개수업이다. 화면 밖에 유심히 체크하고 있는 학부모님들이 있기에. 1998년에 교직에 들어온 뒤로 거의 만 20년만에 새로운 수업 도구를 경험하게 되었다. 과학기술 발달의 힘이다. 집에서도 수업이 가능하다니...

 

동시가 내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으니 술술 읽힌다.

아이들만 읽는 시가 동시가 아닌 것 같다.

어른이 나도, 교사인 나도 재미나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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