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도슨트 - 청소년을 위한 동양 미술 수업
장인용 지음 / 다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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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동양화가에는 누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김홍도, 신윤복, 정선, 김정희 이 정도다. 서양 화가도 손에 꼽힐 정도다. 빈 센트 반 고흐, 마네, 모네...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많이 외웠던 이름들이다. 기억에 남는 화가들은 아마도 알게 모르게 대표작들을 종종 책을 통해 봐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별히 미술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나에게 동양화는 더더욱 관심을 끌 만한 분야가 아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책장에 놓여진 『동양화 도슨트』 라는 책이 보이길래 하루 왠 종일 책장을 펼치며 한 권을 다 읽고야 말았다. 곳곳에 인쇄된 동양화들을 보며 제법 익숙한 그림도 보였지만 처음보는 그림도 많았다. 친절한 동양화 도슨트 저자의 설명을 따라 그림과 대조하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개념과 상반되는 내용도 있었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이 참 많았다. 

 

1. 동양화의 개념부터 살펴보자. 서양화의 반대가 동양화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양권에 있는 중동, 동남아시아의 작품들을 동양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예술 분야에서 동양화로 분류할 때에는 중국, 한국, 일본 이렇게 세 나라의 그림을 동양화라고 부른다. 저자는 중국미술사를 공부한 전문가다.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문화예술에 있어 독자적인 면을 갖춘 부분도 있지만 지대한 영향을 받은 부분도 없지 않아 많다. 동양화도 마찬가지다. 동양화 안에서도 학자들은 세부적으로 산수화, 인물화, 화조화, 문인화, 사군자, 풍속화, 민화 등으로 나눈다. 특히 민화는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나간 분야라고 본다. 

 

2. 동양화와 서양화의 차이점을 살펴보자. 서양화는 색감이 다양화다. 물감을 기름과 섞어 사용한 회화가 대부분이다. 반면 동양화의 그림 재료는 물감 대신에 먹을 사용했고 그리는 도구로 붓을 주로 사용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먹과 붓이 가지고 고유한 특성은 동양화를 서양화와 뚜렷하게 구분하는 기준점이 되었고 동양화는 역사적 흐름과 괘를 같이 하면서 동양화 그림 곳곳에 서양화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특징점들이 담겨 있다. 첫째 낙관이 찍혀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한 두개가 아니라 어떤 동양화에는 수십개가 찍혀 있다. 서양화도 화가의 이름이나 이니셜을 그려 넣거나 살짝 숨겨 놓는 기법들이 있는데 동양화는 노골적으로 화가의 이름을 도장으로 찍거나 그림을 소유하거나 소장한 사람들이 낙관을 군데 군데 찍었다. 둘째, 서양화는 그림이 대부분 화폭의 분량을 차지하는 반면에 동양화는 그림과 글이 균형잡게 놓여져 있고 심지어 여백을 강조하여 빈 부분이 화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림도 있다는 점이다. 동양화에 그림과 글이 함께 놓인 이유는 역사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몽골인은 50여 년 동안 전쟁한 끝에 비로소 송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습니다. 몽골인이 세운 원나라가 서로 다른 여러 민족을 통치한 방법은 쉽게 항복한 나라는 우대하고, 끝까지 버티고 싸운 나라는 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송나라 사람들은 몽골의 지배 아래 있는 여러 민족 가운데 가장 천대 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154쪽)

 

즉 무슨 말인고 하니 송나라 사람들은 몽골의 지배하에 관료 생활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며 그림을 전문으로 하는 화가들도 관료 생활에서 쫓겨나야 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대신 관료에서 쫓겨난 이들이 산 속, 고향 곳곳으로 흩어져 글과 그림을 취미삼아 한 평생을 살아가야 했던 시대적 상황이 문인화로 자리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송나라처럼 도화원, 도화서라는 국가에서 인정해 주는 전문적인 화가 관료 집단이 있었지만 그 외에도 순수한 학자 출신이지만 그림에 뛰어난 기량을 가진 이들을 통해 문인화로 발전된 경우가 많았다. 김홍도의 스승이었던 강세황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낙향하여 고향 안산에 내려온 강세황이 어린 김홍도를 발굴해 냈던 시대적 정치적 상황이 있었다. 문인들은 그림도 중요했지만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학풍을 담아내야 했기에 그림 속에 시를 포함시켰고 문인화들의 고고한 자신의 사상을 담아내기 위한 대상인 사군자가 그림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3. 중국의 동양화를 앞선 우리만의 진경 산수화를 살펴 보자. 정치적 박해를 피해 고향으로 내려온 수 많은 문인들이 산천을 배경으로 많은 그림을 그려냈던 것이 중국의 산수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단, 그들이 그려낸 산수화는 머릿 속에 머물려 있던 상상의 산수화가 대부분이었던 반면에 우리나라로 건너온 산수화는 직접 두루 다니면서 관찰하고 느낀 점을 화폭에 담아낸 점이 중국의 동양화와 구별되는 점이다. 

 

"정선은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일을 즐겼습니다. 금강산, 관동팔경, 영남팔경, 단양팔경 등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곳을 두루 다녔다. 그 열성이 그림으로 나타나 진경산수화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91쪽)

 

4.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동양화의 진짜 화가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교과서나 책들을 통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풍속화 <씨름>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씨름>이 김홍도의 작품인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고개를 젓개 한다. 그 이유를 살펴볼까? 

 

"<씨름>을 자세히 보면 여러 곳에서 한 사람의 화가가 그린 게 맞나 싶은 의심도 듭니다. 단원풍속도첩이란 화첩은 좋은 그림이지만, 김호도가 그린 그림이 아닌 위작일 수 있다는 것이죠. 김홍도의 그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은 후대의 도화서 화가들이 김홍도의 그림을 비롯한 풍속화의 여러 소재를 이용해 다시 그린 그림이라고 봅니다. " (275쪽)

 

5. 마지막으로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민화'에 대한 정의다. 민화하면 주로 백성의 그림이라고 생각해 왔고 그린 사람도 일반 서민이며 그 그림을 즐겨 했던 이들도 서민이었을 것으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과연 일반 서민들이 일월오봉도, 책가도, 모란도, 호도와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냐하면 이것 또한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일월오봉도는 오직 왕을 위한 그림이었고 책가도는 책을 숭상했던 정조대왕이 즐겨 했던 그림이었다. 부귀 영화의 상징인 모란 꽃이 그려진 모란도, 호랑이를 익살스럽게 그린 그림도 살기가 빠뜨하게 힘든 서민들이 그린 또는 즐겼던 그림이 아니라 누가 생각해 보더라도 귀족층, 살만한 계층들 사이에서 거래되었던 그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따라서 민화를 정의할 때 이렇게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민화는 도화서의 화가들이 오랫동안 그려왔던 여러 상징적인 그림을 바탕으로 태어난 그림" (304쪽)

 

분량이 제법 되고 청소년을 위한 동양화 안내서라고 하지만 어른들도 읽어야 하는 교양서가 아닐까 싶다. 한 편의 동양화 강의를 진뜩하게 든 기분이다. 어렵지 않게 청소년들도 알아 듣기 쉽게 풀어낸 저자의 필력에는 아마도 미술사를 전공한 내공이 한 몫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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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그 영화를 다시 볼 수밖에 없다
주성철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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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영화전문기자의 첫 번재 영화평론집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영화라는 한 우물만 파 온 분이라 그가 평론하는 영화 이야기가 궁금했다. 모두가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왠지 전문 영화평론가의 눈은 더 깊고 예리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으로 책장을 펴게 되었다. 사실 최근 영화를 감상한 것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아내와 함께 극장에 가서 봤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영화다. 그때 참 인상깊게 봤던 기억이 난다. 그 후 기생충이 세계적 영화가 되리라 미쳐 알지 못했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영화상을 석권하고 한국의 영화 위상을 높이게 될 줄이야. 주성철 영화평론가의 깊고 깊은 영화의 뒷모습을 읽어가며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 보시라. 

 

최근 한국 영화에 겹경사가 일어났다. 2020년, 2021년 연이어 아카데미에서 봉준호 감독과 윤여정 배우가 한국 영화 역사상 기리 남을 자취를 남겼다. 영화는 시대의 상을 반영한다고 한다. 영화 감독은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기 위해 어찌보면 자신의 전 생애에 가치관을 만들어가고 자신의 영화를 뚝심을 가지고 만들어간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섭외 들어온다고 해서 무작정 덤벼 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화 가치관에 부합하는 작품들을 고르고 골라 촬영에 들어간다고 한다. 특히 70세가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조명을 받게 된 윤영정 배우는 그녀가 걸어왔던 영화 인생길을 돌아보면 어찌보면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연기의 관록이 이제서야 평가를 받게 되었을 뿐 상과 관계없이 윤여정 배우는 앞으로도 자신의 생각하는 배우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 영화의 뒷모습이 좋다』 는 4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감독, 배우, 장르, 단편. 영화광이 아니라면 처음 들어보는 감독, 배우도 있고 영화들도 보일 것이다. 심도 있는 영화평이라 전혀 접하지 않았던 영화라든지 감독이라면 차례대로 읽으려는 욕심대신에 자신이 눈여결 보고 싶은 분야 또는 인물부터 읽어보실 것을 권유한다. 나처럼 영화에 문외한이 사람은 눈과 귀에 익숙한 박찬욱, 봉준호, 윤여정, 전도연, 설경구, 영웅본색부터 살펴보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영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영화평론가가 이야기해 주는 결을 따라 영화를 다시 회상해 보면 무릎을 칠 만큼 영화의 뒷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에 깊이 들어가기 위한 관문으로 영화평론가들이 재미나게 풀어놓은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유명한 영화제에 수상한 작품들 대부분은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 영화들이다. 거부감이 들고 저항과 남다른 느낌이 다가오는 작품들이다. 처음에는 각광받지 못했던 영화들도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의 작품 세계가 드러나고 시대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유명세를 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책을 통해 어떤 이들은 영화를 통해. 나는 아직 영화는 멀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십대, 영화로 세상을 논하다>

http://blog.naver.com/bookwoods/222179739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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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 - 황혼이 깃든 예술가의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분투기
윌리엄 E. 월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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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 같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등 만능 엔터테이먼트의 대명사가 바로 미켈란젤로다. 한 분야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는 그야말로 팔망미인이라는 말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조예가 깊었던 것 같다. 더구나 전 생애를 걸쳐 한 우물을 파듯 신명을 다해 자신이 해온 과업들에 집중하며 생애를 마감한 이가 미켈란젤로말로 또 있을까 싶다. 90세 가까운 나이에 고요히 잠들기까지 그는 한시도 쉬지 않고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예술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은 미켈란젤로의 생애 후반기를 실재감있게 다룬 책이다. 허구의 이야기를 실제 있는 것처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실제 일어난 이야기들을 사실적 근거에 비추어 한 인물에 집중해서 쓴 역사서이기도 하다. 사실적으로 기록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미켈란젤로와 그의 조카 리오나르도와 주고 받았던 200여통의 편지가 이를 증명한다.

 

서로 간의 의사소통의 수단이 발달되지 않았던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서신만큼 확실한 도구가 또 있었을까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인물을 조명할 때 사용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서신이다. 유배지에 있던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유배 중에 다산의 생활 상을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다. 조선 후기 정조 임금이 신하들과 주고 받았던 편지 또한 당시 복잡 미묘한 정치 상황의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었던 단서가 되었다. 이처럼 편지에는 사람의 속내가 진솔하게 담겨 있기에 인물을 평가하고 시대적 상황을 진단하는데 약방에 감초같은 역할을 한다. <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에서도 미켈란젤로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는 그의 생애를 조명하는데 아주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다.

 

"건축물의 각 부분은 인간 내부의 각 장기와 비슷합니다. 인간의 신체, 특히 해부학에 통달하지 못한 사람은 이러한 진리를 깨우치지 못할 것입니다" (320쪽)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 모형을 만들라고 촉구하는 로돌포 피오 다 카르피 추기경에게 미켈란젤로가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미켈란젤로의 건축가로써의 가지고 있는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대목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미켈란젤로가 주로 사용했던 건축의 재료는 돌이었다. 커다란 양질의 돌을 찾아내는 일, 설령 돌을 찾아냈더라도 그것을 작업 장소로 운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혼자서 하는 작업이 아니라 작업반장, 석공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몇 년 아니 몇 십년을 동고동락하며 건축해야 했던 대공사였기에 건축을 지휘하는 미켈란젤로의 입장에서는 중심을 잡아주는 '철학'을 놓치질 수 없었다.

 

최종적인 건축 지시는 교황에 의해 움직여졌지만 실제적으로 예산을 집행하고 건축가를 좌지우지 할 수 있었던 세력은 교황청 내의 파브리카라는 임원조직이었다. 그들에게 밋보였을 경우 여차하면 건축의 전 과정을 수정해야 하는 일도 있었기에 미켈란젤로는 정치적 감각도 늘 긴장감을 가지고 있어야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 같은 경우는 전임자가 이미 모형으로 건축의 전반적인 과정을 확정해 놓았던 것이라 더더욱 힘든 작업 중의 하나였다. 당시 건축 기술을 총동원하더라도 돔 형태의 웅장한 건축물을 도심지 한 가운데 세우는 일은 논란의 소지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켈란젤로는 그를 필요로 하고 오라고 하던 곳을 다 뿌리치고 소명의식 하나로 죽음의 직전까지 공사장을 둘러보며 애정을 놓지 않았다.

 

"조각은 기도의 한 형태요, 예술가를 하느님 가까이에 다가가게 하는 수단이었다. 그것은 창작을 통해 구원을 추구하는 행위였다" (384쪽)

 

미켈란젤로가 일하는 스타일은 파격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말로 이야기한다면 과감한 혁신을 추구했다. 설계와 시공의 모든 세부 사항을 직접 챙기는 실무적 건축가였을 뿐만 아니라 놀라운 것 중의 하나는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건축 중에도 계속해서 수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것을 고수해갔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는 부분이다. 임기응변 방식의 공사를 진행했으며 설계와 구조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그때그때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역시 건축재료인 '돌' 에 이유가 있었다. 돌덩어리를 깎아내는 작업은 작업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돌덩어리를 깍아들어가면서 흠집이 난 부분들이 발견될 경우 수정이 불가피하고 반대로 애초에 구상했지만 조각하면서 좀 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갈 수 있는 부분이 있기에 '임기응변' 이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아주 적절한 방법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즉 미켈란젤로가 건축한 건물들의 대부분이 곧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성장 과정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 연유된 까닭인 것 같다. 우리도 정체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과정이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꿈틀리는 유기체처럼 보여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임기응변식'의 현장 실무형 감각을 키워가는 일이 필요할 듯 싶다. 80대노구의 몸을 이끌고 60미터 높이의 당대의 최고의 건축물을 만들어갔던 미켈란젤로를 보더라도 우리는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다.

 

미켈란젤로의 후반기의 삶이 어찌보면 젊었을 때보다 더 조명을 받는 이유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에게 요청하는 작업량이 점점 많아졌다는 점이다. 80대의 노인에게 중요한 작업을 요청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점은 지금 생각해보더라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지혜롭게 그 많은 양의 작업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권위를 휘둘렸다는 점이다. 권위를 가지지 못했더라면 부족한 작업 시간을 메울 수 없었을 것이다. 권위는 그냥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미켈란젤로 본인이 스스로 교황과 교황청 임원들로부터 찾아낸 것이다. 권위는 일을 하기 위함이어야 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실무적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권위가 필요하다. 권위적인 모습은 지양해야하지만 실질적인 권위를 찾아오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상당히 많은 양의 일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권위는 선택사항이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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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의 한끗 쉬운 김치 장아찌
임성근 지음 / 팬앤펜(PAN n PEN)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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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김장 담그기 가장 좋은 날을 11월 24일이라고 했다. 김치냉장고를 만드는 모 회사에서는 자사의 상품 브랜드를 ~1124로 출시한 적도 있다. 매년 12월 어간 쯤 되면 집집마다 김장 담그느라 소금물을 만들거나 바닷물을 퍼와서 배추를 절이는 풍경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오늘날 아파트 문화로 변화되면서 직접 김장을 하는 풍경이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코로나19 전에는 몇 번 아파트 거실에서 한 해 먹을 김장을 담근 적이 있었다. 비닐로 된 커다란 용기를 인터넷에서 구매하여 거실에 쫙 펴 놓고 절인 배추를 사와서 김칫속을 바르고 넣었던 기억이 난다. 김장을 준비하는 일도 손이 많이 가지만 김장 후의 일도 만만치 않았다. 아파트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김장을 준비하다보니 뒷처리가 골머리였다. 김장철만 되면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종이가 떡~ 붙어 있곤 한다. 

 

'김장을 담근 뒤 배추 지꺼이를 하수구에 버리지 말아주세요. 막히는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아이들도 어리고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에게는 김장 담그는 철만 돌아오면 몇 주전부터 스트레스가 되었다. 장모님께도 부탁드려볼까라고 생각해 보지만 연세가 있으신 분들에게 부탁도 한 두번이지 그러다보면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훗날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때문에 기어코 아내는 힘은 들지만 스스로 김장을 담궈왔다. 그러다가 인근 지역에서 김장축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 번 시험삼아 도전해 본 적이 있다. 간단하다. 인터넷으로 절인 배추를 몇 박스를 할 지, 그리고 김치 양념은 몇 통을 할 지 사전 예약을 하고 사전 예약을 한 당일 날 김치통을 싣고 가면 된다. 그러면 김치를 버무르는 공동 작업장에 가서 머리부터 위생복을 입고 작업대 위에서 김치를 버무려 준비해 간 김치통에 담으면 끝이다. 두 번째 해에는 요령이 생겨 배추 사이에 넣을 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김치통에 담아 간 뒤 공동 작업대에 펼쳐 놓고 배추와 함께 버무려 김치통에 넣어왔었다. 코로나19 전의 우리 집 김장 풍경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19가 다가왔고 모든 지역 행사가 취소되었다. 김장 담그기 행사도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이 우리 집은 다시 원래대로 김장을 스스로 담궈야했다. 올해도 변함없이 고춧가루, 생강, 까나리액젓, 새우젓, 파, 무 등 각종 재료를 사와서 일일히 손질하고 좁은 거실에서 힘겹게 김장을 담궜다. 심지어 맛있는 김장 비법을 알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통해 누구누구가 알려주는 레시피를 차용해 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팬엔펜 출판사의 <임성근의 한끗 쉬운 김치 장아찌>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의 특징은 책 제목처럼 쉬운 김치 비법이 담겨 있다. 누구나 이 책에 나온 순서대로 차근차근 따라해보면 집에서 손쉽게 김치를 담글 수 있는 방법들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김치양만 늘리면 바로 김장이 되는 것이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한국의 김치가 2001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로부터 국제식품표준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2013년에는 한국의 김장문화가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점! 이제 자랑스러운 김치를 집에서 손수 만들어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건강도 가격도 믿을 수 있는 집 김치를 임성근 장인으로부터 한 번 배워보시라!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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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교육에 스며들다
이다정 지음 / 교육과실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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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을 잠시 떠나 있을 때 더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는 이다정 교사의 마음이 전해진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저자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 가면 좀 더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한 발자국도 집 밖에 나가지 못했던 때가 더 많았다고 한다. 특히 아시안에 대한 혐오가 폭력으로 번져나갈 때 쯤 공포와 두려움으로 지냈다고 한다. 힘든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던 것은 그림 한 장면이었다고 한다. 저자가 미술 교과로 아이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그림 한 장면을 통해 만나는 학생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학교에서 힘든 업무로 마음이 지쳐 있을 때에도 그림 한 장면을 통해 교직에 대한 새로운 사명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에게 있어 그림은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예술, 교육에 스며들다>는 미술 교사인 저자의 인생 스토리가 담겨 있다. 단순히 명화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명화를 통해 교육의 생기를 불어넣고 교사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 교직 일기이기도 하다. 그림을 포함한 예술은 사람의 본성 깊은 곳까지 내려가 큰 울림을 주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 중 하나가 예술감각이다. 인문학의 기초는 문, 사, 철 즉 문학, 역사, 철학이 주를 이루지만 이것들을 바탕으로 파생된 것이 예술, 건축, 과학, 교육 등이다. 결국 예술과 교육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전 생애를 걸고 명작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의 시선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편안하고 삶이 보장된 '궁정화가'의 자리를 바라보기 보다 당시 시대가 추구하는 화풍을 넘어 누구도 개척하지 않은 자신만의 시선을 화폭에 담아냈다. 수업하는 교사도 마찬가지다. 지식 뿐만 아니라 감성이 함께 어우러져 학생의 성장을 꾀하기 위해 종합예술가로 학생들 앞에 선다. 예술은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다영 교사가 그림을 통해 학생들의 상상력을 끌어내는 것처럼.

 

예술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미치면서 탄생한다. 그림이나 조작, 벽화 등 무엇이든 위대한 예술로 남은 작품들은 반드시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만약 예술가의 삶이 사회와 관련이 없다면 그것은 취미활동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반드시 오랫동안 음미할 수 있는 의미가 깃든 작품을 만든다. 미술이 곧 역사 공부이며 사회상을 분석하고 통찰할 수 있는 사회 공부가 될 수 있다. '예술이 교육에 스며들어야 하는 이유' 이기도 하다. 

 

필립스 엑시터에서 예술 과목은 음악, 미술, 연기의 세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과목은 일정한 커리큘럼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학생들은 졸업을 하기 위해 이 세 과목 중 적어도 두 과목에서 정해진 학점을 따야 한다. 예술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이수 학점을 채우고도 더 많은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예술 과목을 통해 인성을 기르고 정서적 균형을 만들어가고 있다. 학생들은 예술 수업을 통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차츰 변화되고 창의력과 대인관계가 발전한다. 우리가 잘 아는 중세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며 그 사상을 고대 그리스 로마의 학문과 예술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 르네상스(부활)였다. 결국 르네상스의 도래는 예술이 기폭제가 된 것이다.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사람들이 생활하는 터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장작을 쌓다보면 자기만의 쌓는 법을 예술의 차원으로 높일 수 있다. 노르웨이 사람들처럼. 그리고 조선 후기가 되면서 양반을 풍자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것한 것이 예술을 통해 이루어졌다.

 

<교실 속 자존감>의 저자 조세핀 김은 교육을 예술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평범한 교사는 가르치고, 좋은 교사는 설명하며, 훌륭한 교사는 직접 보여주고, 위대한 교사는 영감을 불어넣는다."( 교실 속 자존감, 조세핀 김, 비전과리더십, 221쪽)

 

<송샘의 아름다운 수업>의 저자 송형호 교사는 예술에 대해 이렇게 강조한다.

 

"교사는 교육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몸이 아프면 의사가 되어야 하고,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 상담가가 되기도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교사는 종합 예술가다"(송샘의 아름다운 수업, 송형호, 에듀니티, 83쪽)

 

수업과 교육을 예술을 통해 바라보며 얻은 통찰과 기쁨, 생각들을 모아 놓은 이다정 교사의 <예술, 교육에 스며들다>를 깊어가는 가을 꼭 일독해 보실 것을 추천한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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