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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아니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머리로만 그렇다고 하지, ‘나를 제외한’ 우리만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은이와 다른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죽음은 현실이 아니라 먼 미래, 다가오지 않을 것 같은 먼 미래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에게 지은이는 지금 이 책을 읽는 순간만이라도 “죽음을 몸으로 느껴보라고, 죽음을 현재로서 인정해보라”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리뷰를 쓰기 전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해서 여러 편의 리뷰를 찾아보았습니다. 암담한 죽음을 재미있게 이야기했다, 유명 인사들의 죽음에 대한 명언이 촌철살인으로 다가왔다,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삶에 대한 애정도 느껴진다, 몸에 대한 과학적 에세이로 데이빗 실즈의 가족사가 어우러져 독특하다 등등. 저도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의 리뷰에 “몸을 사랑해야지!”하는 원초적인 다짐을 덧붙이기로 했습니다.
제 아들 녀석은 최대 4만 회/초까지 높은 주파수의 소리를 잘 듣기 때문에, 2만 회/초까지만 감지하는 제가 알아채지 못하는 개 조련용 호각 소리에도 움찔합니다. 그래도 아들 녀석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털 세포들이 사라지기 시작해서 특정 주파수대를 듣는 능력이 떨어지겠지요. 나는 30대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높은 주파수의 소리를 듣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첫돌 된 아기는 13시간, 10대는 9시간, 40대는 7시간을 잡니다. 아들 녀석 산이는 6세인데 낮잠시간까지 합쳐서 9시간을 자니 잠이 없는 편인 것 같습니다. 밤 11시, 12시가 되어도 잘 생각도 안 하고 아내가 자라고 하면 더 놀아~! 하면서 우는데, 아내가 산이만할 때 밤이 없었으면 좋겠어, 밤이 없으면 안 자도 되잖아~! 했다는데 이런 것도 닮나봅니다. 나는 퇴근하고 바로 집에 들어오건 회식하고 늦게 들어오건 차를 밤 2시, 3시까지 마시기 때문에 평일에는 서너 시간밖에 안 자는데 휴일에 하루종일 잠만 잘 때도 있으니까 내게 필요한 수면시간이 몇 시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기는 생후 1년이 지나면 젖니가 나기 시작해서 학교에 입학할 때 젖니를 온전하게 갖추고 그 젖니는 12세가 되기 전에 죄다 빠지며 13세가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랑니를 제외한 영구치가 다 납니다. 산이는 첫니가 빨리 난 편인데 6개월에 났습니다. 그러면 6세쯤 젖니가 빠진다는데 올해에 빼게 될까 모르겠습니다. 이 아빠의 손으로 산이의 흔들리는 이에 실을 걸어 매고 탁~! 이마를 치며 빼주고 싶지만, 아기 때 밤중수유로 치아우식증에 걸려 앞니 네 개가 뿌리밖에 안 남아 있어서 아무래도 치과에 가서 빼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를 빼도 웃는 모양이 지금과 마찬가지라 별 감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는 하루에 한 번만 닦는 거야, 라는 나의 생활신조에 아내가 기겁을 했었는데 그런 아내보다 내 이가 더 튼튼한 걸 보니 역시 치아도 산이는 아내를 닮았나봅니다. 그래도 나도 나이가 들면 치태가 쌓이고, 잇몸이 줄어들고, 이빨이 마모되고, 충치와 치주 질환을 자주 겪게 될 것입니다.
35세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소나마 노화의 증상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머리가 세고, 주름이 지고, 힘이 떨어지고, 민첩성이 떨어지고, 대동맥 벽이 굳고, 심장혈관이 퇴화하고, 뇌로 가는 혈액 공급이 줄고, 혈압이 상승합니다. 나도, 아직 그 나이는 되지 않았지만, 가족만 느낄 수 있을 만큼 머리숱도 없어지고 백설공주 같다던(아내가 맨처음 나를 봤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피부도 칙칙해지고 뛰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걷기 시작한 역사가 5년밖에 안 된 산이가 마구 뛰다가 와장창 넘어지는 것과 좀 다른 모습이기는 합니다만.
내 몸도 사랑하고 아들 몸도 사랑하리라 다짐을 하다 보니 주절주절 길어졌습니다. 어쨌든. 현인들이 아무리 소리쳐도 어리석은 범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책을 읽고서 며칠 지나지도 않았건만 그새 죽음은 나와 별개로 또 멀리 가버렸습니다. 나는 죽어가고 있어 라고 아무리 생각해보려고 해도 안 되는 걸 어쩌겠습니까. 다만 죽어가고 있는 것이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다고 스스로 정의내리고 즐겁게 살아가렵니다. 그러면 나의 아들이 “우리 아버지는 잘 사셨다고 혹은 잘 돌아가셨다”고 인정해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