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빵은 엷게 썰은 두 장의 빵 사이에 고기, 계란, 생선, 야채, 과일 등 충전물을 끼워 넣는 것이다. 충전물의 종류만도 2천 수백 종류가 있다고 한다.

이런 샌드위치의 유래는 영국에서 비롯된다. 카드놀이를 무척 좋아했던 영국의 켄트주 샌드위치 백작집의 4대째의 존 몬타규(John Montagu)는 카드놀이에 너무 열중해 식사하는 시간마저 귀찮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쉬지 않고 계속 게임을 하려고 버터를 바른 두 장의 빵에 야채나 구운고기 등의 재료를 몇조각 넣어 먹으면서 놀이를 계속하였다고 한다. 이런 모습을 본 다른사람들은 신기해서 이것을 따라 먹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점차적으로 퍼저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샌드위치백작이 만들어 먹었다고 해서 이름을 '샌드위치'라고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샌드위치는 세계 각국에 전해져 프랑스형, 이태리형, 미국형의 것이 생기게 되었다.

샌드위치에 쓰이는 빵은 보통 풀만빵도 좋지만 샌드위치용으로 배합해서 만든 것이 효과적이다. 배합은 설탕의 양을 좀 많게 하고 소금양은 적게 그리고 유지의 양도 적게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빵의 절단면이 아름다워지고 입맛도 알맞게 된다. 즉 빵 맛이 속의 조리재료와 균형이 잡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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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의 탄생지는 미국 센트루이스이며 때는 1904년에 센트루이스에서 개최되었던 세계박람회가 계기가 되었다.
이 때에 박람회장 내의 식당에서 근무한 어느 조리사가 너무나 바빠서 일손이 적게 드는 간단한 요리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번즈(buns)라고 불리우는 둥근 빵에다가 햄버거 패티를 샌드한 간단한 것으로서, 즉 이것이 바로 행버거 빵의 등장이 되었다.

포크나 접시도 필요치 않고 듬뿍 담은 고기와 맛 좋은 빵을 뜨거울 때 같이 먹을 수 있는 편리함과 부피감이 그 인기를 불러일으켜 삽시간에 전 미국에 햄버거라는 이름이 붙게 되고 이 요리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옛날 프랑스 귀족은 접시 대신으로 얇게 썰은 빵 위에 요리를 올려 놓고 식사를 했었다. 그리고 요리를 다 먹은 후에는 마지막으로 접시 대신으로 사용하던 빵을 먹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식사법은 그다지 진귀한 것이 아니고 루이 14세기경까지 계속 되었다고 하므로 이는 원조 프랑스식 뚜껑 없는 햄버거라고 말할 수 있겠다.

햄버거의 이름을 붙이기는 미국에서였지만 그 이름의 진원지는 독일의 함부르크였다. 19세기 초에 독일인이 이민 갈 때 같이 미국에 건너간 스테이크가 햄버거로 불리우게 되었으며 지금의 햄버거가 가장 미국적이고 대중적인 음식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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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와상은 초생달 빵이라 할수 있으며 그의 기법은 데니쉬 프룬터와 그다지 다를 바없다. 그러므로 생지의 준비, 유지 싸넣기, 휴지 접어 포개기 등의 일관작업은 데니쉬 페스트리와 같다. 데니쉬 페스트리의 본고장인 덴마크에서는 비엔나 브로트로 불리우고 있음은 이의 접어 넣는 생지가 전하여진 경로가 오스트리아의 빈으로부터 덴마크에 전해졌음을 증명한다.

크로와상은 한편 빈으로부터 프랑스로 전해져 프랑스의 빵으로 발달되었던 것이다. 초생달 모양의 빵 그 자체는 대단히 역사가 길어 고대 문명국에서도 만들고 있었지만 현재의 크로와상이라 불리고 있는 초생달 모양빵의 발상지는 오스트리아의 빈이나 헝가리의 부타페스트라 하는 것이 유력하다.

한설에 의하면 1683년에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을 포위하였던 터키 군단의 침공정보를 깊숙한 밤에 탐지한 빵기술인이 이 사실을 제보함으로써 터키군을 물리쳤을 때 빈시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기념하여 터키 국기에 그려져 있는 초생달 모양의 빵을 만들었다는 것이 처음이라고 하며, 또 한 설은 빈을 포위한 터키군에게 곡괭이로 땅굴을 파고 있는 소리에 귀를 귀울였다고 하여 곡괭이 모양의 빵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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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웨딩 케익을 신부가 먹지만 항상 그래 왔던 것은 아니다. 웨딩 케익은 원래 신부에게 던져졌던 것으로, 결혼의식에서 없어서는 안 될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생겨난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풍요와 번성의 상징으로 통했던 밀은 일찍이 결혼식날 신부에게 뿌려지는 곡식이었다. 오늘날 신부 친구가 부케를 받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당시의 처녀들은 자신도 시집 갈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결혼식장에 뿌려진 곡식을 부지런히 주었다.

그런데 건축업자의 재주를 능가하는 제과기술을 가지고 있던 고대 로마의 제과(본문:제빵)업자들은 이 풍습을 바꾸어 버렸다. 기원전 100년경부터 이들은 결혼 의식에 쓰는 밀로 작고 달콤한 케익을 굽기 시작했다. 던지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한 케익이었다. 그러나 신부에게 밀 던지는 재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하객들은 종종 케익을 던지기도 했다. [사물의 원리 De rerum natura]의 저자 이자 로마의 시인이며 철학자인 루크레티우스에 의하면. 밀 케익을 신부의 머리 위에서 으깨는 절충식의 새 의식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것은 "같이 먹는다"는 뜻의 콘파레아티오(confarreatio)라는 풍습이었는데 아이를 많이 나으라는 뜻에서 신랑신부는 케익(본문:빵)조각의 일부를 먹도록 되어 있었다. 케익이 떨어지고 나면 너트, 말린 과실, 꿀 바른 아몬드 등의 달콤한 과자류인 콘페토(confetto)를 하객들에게 대접했다. 웨딩 케익을 먹는 풍습은 서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영국에서는 케익(본문:빵)조각을 먹고 난 후 특별한 에일주를 마셨다. 이 술은 '신부의 에일(bryd ealu or bride's ale)'이라고 불렸는데, 신부의(bridal)'라는 말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이 결혼 풍습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중세초기에 와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익히지 않은 밀과 쌀이 다시 신부의 머리 위에 부어졌고, 장식용의 케익은 먹기 위한 간단한 비스킷이나 과자로 대치되었다. 그리고 하객들은 손수 비스킷을 구워서 결혼식에 참석하도록 권유받았다. 잔치에 사용하고 남은 음식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어려운 시절의 풍습은 시간이 가면서 또다시 변해갔다. 영국에서는 기부받은 과자, 비스킷, 그리고 다른 구운 제품들을 거대한 무더기로 쌓아놓는 것이 관례였고, 이것은 신혼부부의 번성을 상징했기 때문에 높을수록 좋았다. 신혼부부는 이 무더기 위로 몸을 숙여 키스를 나누었다. 찰스 2세가 통치하던 1660년대에 여국을 방문했던 한 프랑스 요리사는(불행하게도 이름은 역사에 잊혀졌지만) 케익을 쌓아놓는 의식을 구경하게 되었다.
그는 영국 사람들이 케익을 아무렇게나 쌓아놓거나 어떤 때는 떨어뜨리기도 하는 모습에 질려 버린 나머지 산더미같이 쌓인 비스킷을 설탕을 녹여 발라 굳힌(본문:발린) 여려 층의 케익으로 변형시킬 기발한 생각을 했다.

재치와 또 영국적인 것을 무조건 싫어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생각이 합쳐져서 가장 사치스러운 결혼 장식, 즉 여러 층의 웨딩 케익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인들의 낭비를 당시의 영국 신문은 통탄해 하고 있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세기가 끝나기 전에 영국 제과업자들도 똑같은 멋진 다층 케익을 모방해 만들어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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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600년 경 문명의 중심이 이집트로 옮겨간 후 우연히 부풀은 빵을 발견하게 되었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그대로 하루정도 나두면 저절로 반죽이 부풀어 오른다. 공기속의 이스트균에 의하여 발효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어느날 이 반죽을 구웠더니 향이 있고 부드러운 빵이 되었던 것이다. 발효된 반죽인 누룩을 첨가하여 빵반죽을 부풀게한 [발효빵]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4천년전에 우연히 발견하게 된것이다. 그 후 켈트족은 발효하는 맥주에서 나오는 거품을 사용해 밀가루반죽을 부풀려 빵을 구웠다.

이집트 피라밋 안에서 발견된 빵이나 벽화를 보면 둥글고 긴 모양, 새모양, 동물모양, 물고기모양 등 200여가지가 넘는 빵이 발견되었으며 수십가지의 향료와 약초를 사용하였다. 또한 감미료로 꿀이나 포도즙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바닥이 고정되고 위부분이 움직이는 돌을 이용하여 제분을 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올리브기름에 튀긴과자 즉, 도넛도 기원전 800년 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여러모양이나 충전물을 만들게 되었다.
이집트사람들은 이 빵을 대단히 즐겨 먹었으며 다른 민족에게는 만드는 제법을 알려주지 않아 주변국가 사람들은 이집트인들을 [빵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 불렀으며, 중국의 양자강 연안이나 스위스의 호수위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의 유적에서도 이시대의 발효빵에 가까운것이 발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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