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집처럼 부스스한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후줄근한 면바지를 입은 사람을 보면 난 아직도 그 사람을 떠올린다. 

그 사람 덕에 난 노래를 들을 때 드럼을 신경써서 듣게 되었고, CCTV에 신경을 쓰며서 잘지내는 척 이쁜척을 하기도 했다. 뻔히 보이는 휴지 마술에 속는 척 입술을 의도하에 빼앗기기도 했고ㅡ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드럼 소리에 마음을 뺏기기도 했다. 

한달여의 짧았던 만남이 5년이 지난 지금, 손에 잡힐 듯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가 아무 이유 없이 연락을 끊었던 이유도 이유겠지만, 뭐랄까 아직도 긴 속눈썹을 내리깐 깊은 눈매와 허허 하고 웃는 모습은 지워내고 싶지가 않다. 

사랑이었을까.  

이틀 연속으로 닮은 사람을 봤다, 딱 이만큼 추운 날씨에 달달 떨며 우리 집 앞 공원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었지(우습게도 난 단칸방에서 시작하는 우리의 결혼생활(마음대로 상상)이 설레기도, 두렵기도 해서 부잣집 도련님이랑 사귀는 동생에게 나중에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었다,)  

뭐 이럴 때 이런 기억들 남겨두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났을 때 적어놔야지, 또 저 심연 속으로 빠뜨리면 언제 건져낼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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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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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책 한권을 한번에 다 읽었다. 

오랜만에 일요일에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지하철 대신 이불 위에 누워서 책을 읽었다는 거, 마침 그 책이 마르케스의 책이었다는 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 득템이다. 하하하 

한동안 진빠지는 책을 읽었던 게 사실이다. 요 몇 주동안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문체나 내용 등으로 사람 괴롭히는 책들만 어찌 그리 만났는지- 그런 내게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하나의 청량제- 나는 이런 음료 좋아하지 않으니,-가 아닌 뭐랄까.. 더운 여름날 에어컨 빵빵하고 사람 없는 좌석버스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미친 속도가 붙어서 중간중간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짜릿함을 느끼면서 책을 읽느라고, 사실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어질어질했다. 그래서 덮자마자 다시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1. 앙헬라 비꼬리오- 라니, 이름이 진짜 아름답지 않은가- 나 나중에 콜롬비아 가서 예명 앙헬라라고 지으면 혼날까? (Angel이란 뜻)

2. 도대체 명예가 뭐라고, 부자의 목숨보다 명예를 지키라고 다들 선동 혹은 관망했던 걸까, 게다가 이 두명의 살인자들은 3년밖에 형을 살지 않는다. 물론 덱스터나 이탈리안잡을 볼 때처럼 범죄자의 편에 서서 제발 잡히지 않길-, 혹은 별 고생 않고 빨리 풀려나길- 이런 요상한 생각들이 자꾸 들더라. 이게 요상한 생각인지 아닌지는 헷갈리지만.  

3. 게다가 쌍둥이 동생은 감옥에서 임질도 고쳐서 나온다. 

4. 우리의 가장 불쌍한 희생자 바야드로 산 로만이 들고온 앙헬라 비까리오가 보낸 수천통의 뜯지 않은 편지묶음. 

5. 다트로 찍혀버린 나비처럼 벽에 박힌 산띠아고 나사르의 이름. 

그의 작품의 읽을 때의 나는 파도에 휩쓸려서 두세바퀴 회전하고, 짠물이 입으로 코로 막 다 들어가서 정신이 없는 상태라고나 할까- 크크 그래서 파도에서 기어나와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들어가야 한다. 그치만 굳이 다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느낌만 기억하면 되니까 :) 

 

- 하이드님의 리뷰에서 그의 작품이 롤러코스터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 이책 읽고 낮잠 자다가 롤러코스터 타는 꿈꿨다. 어느 건장한 남자의 품에 안겨서 '-')* 그거 타다가 회사에서 짤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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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lei 2008-12-25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의 품에 안겨서 롤러코스터를 타다'
고풍스런 표현이군요.

Forgettable. 2008-12-25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풍스러운 꿈이었죠. 히히 매력적이지 않나요ㅡ 꿈속 그대로의 남자라면 진짜 황홀-
 
황야의 이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7
헤르만 헤세 지음, 김누리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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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세계명작전집에서 이 책을 접했던 적이 있다. 그 땐 닥치는대로 읽었기에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그냥 읽었다. [해저 2만리]를 책이 닳도록 읽었을 때였는데, [황야의 이리]는 엄청 재미 없어서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던 그런 책이었다.

헤르만헤세를 다시 알게되면서부터 다른 책은 푹 빠져서 다 읽어도 이 책만은 손이 가질 않았다. 사실은 최근까지도 헤르만헤세의 책인줄도 몰랐다.

황량한 술집에 황량한 사람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던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그래. 헤르만헤세에 공감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약간 실망하면서부터 마음이 멀어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공감하지 않을테다!'라며 눈을 부릅뜨고 책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하기도 했거니와, 이제 그와의 이별이 다가오길 예감 혹은 기대하며 책을 읽었기에 지금까지 헤세에게 열광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태도로 시작했다.

처음의 냉소적인 태도는 역시나 책장을 넘길수록 수그러들었고, 쇼팽의 피아노곡을 들으면서 술에 취해서 이 책을 읽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나는 절망에서 어떤 희열감을 느끼는 것인지, 불우한 천재의 아름다운 피아노곡과 인간이 만들어낸 넥타와 함께 끝도 없는 바닥으로 우리의 황야의 이리와 함께 침몰해가는 기분은 솔직히, 그 어떤 쾌락 만만치 않았다.

1. 헤르미네
읽는 내내, 나는 그녀- 헤르미네 였던가 -가 황야의 이리의 분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한 사람이 아니다.' 라고 분명하게 처음에 명시를 했기에 나 역시도 급 공감을 하면서

- 아 이에 대해서는 지금 읽고 있는 [다중인격의 심리학]에서 매우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고 있다. 크크 난 요새 내 행동을 다 다중인격으로 해석하면서 이 이론에 집착하고 있다. 취하면 술취한 나와 정상적인 나와 대화까지 시도 ㅇ리ㅏㅜㅠㅣ아ㅟㅏ나 미쳤고-

아주 당연하게 헤르미네를 그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헤르미네가 죽었을 때 난 드디어 그가 정신적으로 통합된 모습을 보이며 성장하는구나 라며 뿌듯해했는데, 왠걸 혼나고 깨지고, 심지어 끝에 비평에서는 그녀를 하나의 인간으로 못박아버리는.. '-'* (두둥)
그렇지만 뭐 책은 온전히 독자의 것이니 난 끝까지 그녀가 황야의 이리의 반대편에 있었던 따뜻한 인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2. 쓸쓸함
하루만에 책을 다 읽어버리는 습관은 어디론가 내팽개친 채, 책 한권을 갖고 며칠을 끌기도 하고, 심지어 다른 책을 동시에 읽기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여튼 그 땐 이 책에 한참 빠져서 읽던 중이었는데 시를 쓰는 후배를 만났었다. 그날따라 아파서 술을 못마시는 그의 모습이 얼마나 쓸쓸했던지, 난 황야의 이리를 읽으라고 한 5번 얘기했던 것 같다. 황야의 이리를 현실에서 만나는 것이 아마 그 마술극장을 만나는 것보다 더 신기한 일일 것이야.

3. 근 6개월동안 헤르만헤세의 작품들을 달려왔다. 마르케스와 소세키, 서머셋 몸에 이어서 4번째 작가였다. 황야의 이리를 끝으로 아마도 당분간 헤세와는 안녕이다. [유리알유희]는 아껴두고싶어. 다음 작가로 누굴 만나야 할지.. 지금 폴 오스터를 약간 건드려볼까 했는데 비슷한 느낌이지만 역시나 현대작가들은 건방진 지식인의 태도가 단어와 문체에서 배어나와서 빈정상한다.

끝엔, 상당히 지친 기분이다. 끝낸지 꽤 됐는데 아직도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어젠 오랜만에 스무살 정도에 쓴 일기들을 봤는데 그 땐 이 정도로 절망적이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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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12-20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르케스, 소세키, 서머셋 몸, 그리고 헤르만 헤세라. 다음에 달릴 작가로는 E.M.포스터나 카잔차키스 정도면 어떨까요? E.M. 포스터는 그 특유의 단정하고 로맨틱하며 옛스러움이 있구요, 그 분위기는 중독되는 분위기. 카잔차키스는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두 작가 다 전집으로 많이 번역되어 있으니, 맘 먹고 달리기에 좋습니다.

Forgettable. 2008-12-22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엄청 팬이고 ㅋㅋ 네, 안그래도 카잔차키스의 책을 읽어보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리스인조르바]였었나요, 보관함에는 담아두었었는데.. ㅎㅎ E.M.포스터는 처음 듣는 작가인데 단정함과 로맨틱과 옛스러움이라니 급땡기네요, 하하 한권씩 시도해보아야겠어요! 그리고 [다중인격의 심리학]은 아주 잘 보고 있습니다. 연말이 지나면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가만히 앉아 대화를 시도할 예정입니다. :)

2008-12-22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크크 닉네임을 바꾸고 싶다가 이 영화를 생각했다. 멋진영화야.

마약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게 된건, 바로 이 영화를 보고나서라면, 좀 또라이같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STONE 이 되고싶었달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헤롱거릴 때 뭔가 기적적인 행복을 거머쥐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목처럼, 눈 떴을때, 공포와 혐오로 가득찬 자기 자신과 더러운 방과 엄청난 계산서만을 발견했을 뿐이다.

가끔 눈을 뜨면 내 삶에도, 내 방에도 공포와 혐오가 가득차 있다. 그래서 나 역시 헤롱헤롱 마약을 복용한다.  

 

 

 

 <-놀랍게도 알라딘에 OST가 있다!

 

 



이 멋진 이미지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는 줄거리를 기억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느낌만 기억하면 된다.

- 사실 기억을 할 수가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같이 취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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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다가 깨는 기분은 참으로 신비하다. 통 속에 가득 찬 잠이 물빠지듯이, 혹은 누군가 갈고리로 마구잡이로 긁어내듯이 순식간에 좍 빠져나간다.

이러한 신비한 현상은, 서서 졸다가 다리에 힘이 풀렸을 땐, 잘 느끼지 못한다.

졸고 있는데,

1. 누군가 내 얘기를 하는게 얼핏 들렸다거나,

2. 혹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쳤다고 불현듯 느꼈을때,

3. 꿈을 꾸는데 악몽이 꿈이라는 것을 인식했을 때 의식적으로(!!!!꿈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읽은 적이 있다 하하하하히ㅏㅜ류/ㅣㅏㅜㄹ이) 꿈에서 깰때,

4. 또는 오전 7시에 이미 나갔어야 하는데 아빠가 '회사 안가냐'고 하시며 동시에 시계를 보니 7시 30분일때.

5. 이게 제일 재미 있는 경우인데, 내가 잠을 드는 순간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서 그 순간에 집중을 하다가 잠이 든다 싶어서 '아, 이게 잠이 든다는 거구나!'라고 느끼는 동시에 잠이 깬다. (이경우는 나쓰메 소세키님의 글에도_어떤 작품인지는 까먹었다_ 나왔는데 나랑 너무 똑같아서 싱긋싱긋 웃으면서 읽었다. 너무 좋아 ㅠㅠ)

등등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머리 속에 상처가 날 정도로 박박 긇히는 기분이랄까, 악몽에서 내 힘으로 깨어났을 땐 위안이 되지만..

잠이 너무 좋다. 게을러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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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8-12-05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세끼의 그후에 나오지 않나요? ^^

Forgettable. 2008-12-05 16:55   좋아요 0 | URL
헐 저도 [그후]였는지 [문]이었는지 둘 중 하나긴 했는데 둘이 거의 같은 시기에 읽어서 가물가물 했거든요 완전....대박 이 구절을 기억하고 계셨다는 말이에요? 아 진짜 신기하네요! 저 진짜 놀랐어요 지금,ㅜㅜ 이런 사소한 부분에 꽂힌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있다니 ㅋㅋ

무해한모리군 2008-12-08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그 소설 읽는 내내 누가 제 마음을 펼쳐 써놓은거 같았거든요. 나는 전후세대(?)도 아닌데 왜 이런 혼란스런 감성을 가졌는지 ^^ 저도 반가워서 쪽글 남겼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