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비었다고나 할까. 

석모도에 가려고 계획을 세우고 7시에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그런데 허리가 아파서 민머루해수욕장까지 자전거는 커녕 메인디쉬인 보문사 등산도 못할 것 같은 죽을 것만 같은 고통에 그냥 계속 잤다. 나의 잠이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신통방통한 요술맷돌인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고통까지도 지어낼 줄이야.. 가만 보니 이것도 알고 있었다. 

눈을 떠서 아침을 먹고, 생각보다 안아프다는 걸 알고, 친구한테 저녁이나 먹을까, 습관처럼 연락을 해보고, 거절당하고, [멕베스]를 읽다가, 잠을 자다가, 다시 일어나서 김밥이 먹고 싶어서, 나가서 김밥을 사기 위해 30여분을 헤매고, 결국 문 연데가 없어서, 경단과 빵, 여타 간식거리들 만원(!!)어치를 사와서, 결국 집에 있는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간다] 중 '젤리빈'을 들썩이다가, [다중인격의 심리학] 중 '내 안의 가족만나기'를 들썩이다가, 테트리스를 하다가, '패밀리가 떴다'를 보다가, 옷정리를 하다가, 테트리스를 하다가, 서재 구경을 좀 하다가, 화장품 정리를 하다가, 다시 '젤리빈'을 보다가, 멍하게 누워있다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먹지도 않을 음식들을 거금을 들여 잡탕으로 이것 저것 사온 것이며, 집중도 안하고 단지 '읽기'에만 집착하는 모습, 정리하지만 전혀 정리되지 않은 내 방. 자꾸 들여다 보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핸드폰 따위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디에도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이 아닐까. 목적 없이 붕붕 떠 있는 이런 주말을 파라다이스 마냥 꿈꾸다가도 막상 이런 날을 보내면 뭔가를 '하는' 날을 다시 계획하고, 꿈꾼다.  

그렇게 그리워하는 타국에서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또 그 때도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왠지 일본 소설 문체인가;; ) 한국으로 먼저 돌아가버린 애인이었다던가, 좋아했던 친구들, 선생님, 앞으로 닥쳐올 파란만장한 취업전쟁-_- 어쩌구저쩌구  

항상 과거나, 혹은 미래에 얽매여서 행복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으로 나날이 거듭나고 있는 것 같아서. 

비어있다는 걸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걸까.  

그런데 따지고 보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이 뭐 그리 나쁜가! : 심지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도 만족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나는 게으름을 피우는 중이다, 나는 게을렀다, 나는 게으를 것이다, 이렇게 평생 일인칭 주어와 게으르다라는 동사를 연결하며 산 사람을 위한 동맹이었다.  
  [젤리빈] 中

뭐 정말 이런 젤리빈만도 못한 놈팽이인 것 같다. 

 

- 정말 구제불능인 것은 또 이런 구토같은 글을 쓰면서 한결 상쾌해지는 나 자신의 정신상태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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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씩, 아주 부잣집 딸래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면 엄청 돈 많이 버는 커리어우먼. 

그렇다고 부모님의 그늘 덕을 보지 않고 엄청 독립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요즘은 엄마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부모님은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시고, 내가 역시 '정원딸린 집' 에 사는 사람인줄 아는 친구들이 몇 있다. 자랑 같지만 뭐 알바로 번 돈의 대부분을 옷 욕심에 투자했던 결과물일뿐. 

어쨌든 평범한 가정환경을 갖고 있음에도 작가나 교수같은 직업(?)을 뒷바라지 해줘도 전혀 타격이 없을 부잣집 배경을 부러워하게 된 이유는 내가 작가나 교수가 되고싶다기보단, 요새 내가 교수들한테 너무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손이 없나, 머리가 없나.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모든 이들을 다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난 전임교수 중 50프로는 안하무인에 날 하인 취급한다. 거기에다 가식적으로 웃으며 네네 하는 나는 쓰레기고.  

 

가끔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부잣집 딸래미가 되고 싶은 망상은 그 자기비하감을 돈으로 극복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예전에 김선생님께서 돈을 대출해서라도 명품백을 들고 다녀야 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해서, 나 역시 그런 자존감 없는 사람들을 어이없어했다. (지금 보니 명품백과 수많은 옷가지들의 차이가 뭐냐) 꽃남같은 막장드라마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황당한 이유도 마찬가지겠지. 

그런데 내가 그리도 저급으로 보는 대중들(아마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소수일지도 모르겠다만)과 할수만 있다면 돈으로 무너져가는 자존심을 지키려고 발악적인 망상을 하는 나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오늘 히스테리의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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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고양이 문신 (샵에 데려가주는 것 포함) 

8. 순두유 1병 or 살구농장 1병  

 

* 악플 100개 or 무관심 은 사양함.  

* 순서는 내가 원하는 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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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5 0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5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Forgettable. 2009-01-2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번 낙찰- 랄랄라
8번 대신 사과농장 낙찰- ㅋㅋ
6번도 낙찰-
7번은 생각할시간 필요... ㄷㄷㄷ

angela 2009-01-22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7번 나 홍콩가서 할껀데 8월에 휴가 잘맞춰서 언니도 홍콩으로 와 내가 해줄께ㅋㅋㅋㅋㅋ

Forgettable. 2009-01-22 15:18   좋아요 0 | URL
콜! ㅋㅋㅋ
치킨에 맥주 바리바리 싸서 갈게 내가 ㅋㅋㅋㅋ
 

 
     
    



 

다시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손이 달달 떨린다. 금단증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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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상품검색에서 바람의 그림자 1권을 선택하고 별 다섯개를 찍고, gorgeous 카테고리를 고른 후 한 5분을 앉아 있었는데도 독후감의 첫머리를 시작하기가 어렵다.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역시나 가장 먼저 보는 것은 표지이다. 그렇지만 비평가나 신문 기사의 칭찬으로 도배해 놓은 책은 대개 그저 그런 작품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몽테크리스토 백작 뒷면에 써 있는 마르케스의 한마디는 제외), 이 책의 뒷면을 뒤덮은 칭찬들은 [바람의 그림자]에 대한 나의 기대감을 꺾어버리기에 충분했다. -> 오히려 다행이야. 사실 기대감을 만족시키는 작품도 참 좋지만 예상치 않았던 충격의 작품이 더 좋지 아니한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난 좌절했었다. 

 1. 부잣집 딸래미인 나는 상금이 1억인 헌터들의 대회에서 마지막 과제물이었다. 시험을 통과한 100명의 헌터들이 나를 잡으러 길을 나선다. 나는 물을 만나면 물고기가 될 수 있는데, 헌터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긴장과 절박함이 어우러진 감동의 추격씬! 

 2. 난 친구들과 놀러 갔다. 그러다가 마녀의 집에 가서 밥을 얻어 먹었다. 그 댓가로 우린 그 마녀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그러다가 마녀의 살인 유희의 희생양이 되는데, 그 첫번째는 경사진 언덕에서 몸을 둥글게 말아서 굴려버리는 것이었다. 두번째는 맨홀 뚜껑을 열고 폭탄과 친구의 머리를 넣고 뚜껑을 닫는다. 폭탄이 터지고, 점점 나의 차례가 다가오는데......... 

 '이야기'라고 하면 무슨 잡탕같은 이따위 몽상만 하는 나로썬, 저자의 방대한 상상력과 수많은 이야기들의 그 결집력에 놀라고 또 좌절했다. '난 아니구나' (알고는 있었다 ㅋㅋ) 

 수많은 미사여구와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쓸만한 공감용 혹은 있어보이는 문장들도 매우 볼만했지만 무엇보다도 정말 너무너무너무 재미있고 숨막힌다. 게다가 하늘하늘 아름다운 여인네들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 나로썬, 클라라와 누리아, 페넬로피, 베아로 이어지는 욕망의 주체들에게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긴장감있는 굵은 스토리라인과, 수많은 잔가지 이야기들, 게다가 아름다운 여인들이 잔뜩 나오는데 누가 이 책을 욕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재미만 있는 것도 아니야. 난 [타인의 삶]을 울면서 보고 2권을 들었는데, 이 둘 사이엔 뭐랄까 매우 끈적한 끈으로 덕지덕지 이어 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와도.
  나와, 비즐러와, 훌리오와, '주인공(이름이 생각 안나네, 미안)'은 모두 타인의 삶을 통해 내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누가 안그렇겠냐마는, 특히나 도시의 한 건물 속에 틀어박혀서 있지도 않은 '신나는 일'에 집착하고 있는 난... " 지금 그 사람 신경 쓸 때가 아냐, 당신의 비참하고 고독한 삶부터 좀 어떻게 해봐!"라고 충고해 줄 수가 없었다. 

 사연이 많은 음울한 대저택과, 저주 받은 수녀원(혹은 감옥?), 쇠락해가는 모자가게, 부잣집 애들만 다닌다는 학교, 비가 오는 바르셀로나의 골목골목. 책을 덮고난 후 마음을 따라가느라 지쳐버린 눈이 얼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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