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집처럼 부스스한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후줄근한 면바지를 입은 사람을 보면 난 아직도 그 사람을 떠올린다.
그 사람 덕에 난 노래를 들을 때 드럼을 신경써서 듣게 되었고, CCTV에 신경을 쓰며서 잘지내는 척 이쁜척을 하기도 했다. 뻔히 보이는 휴지 마술에 속는 척 입술을 의도하에 빼앗기기도 했고ㅡ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드럼 소리에 마음을 뺏기기도 했다.
한달여의 짧았던 만남이 5년이 지난 지금, 손에 잡힐 듯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가 아무 이유 없이 연락을 끊었던 이유도 이유겠지만, 뭐랄까 아직도 긴 속눈썹을 내리깐 깊은 눈매와 허허 하고 웃는 모습은 지워내고 싶지가 않다.
사랑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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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연속으로 닮은 사람을 봤다, 딱 이만큼 추운 날씨에 달달 떨며 우리 집 앞 공원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었지(우습게도 난 단칸방에서 시작하는 우리의 결혼생활(마음대로 상상)이 설레기도, 두렵기도 해서 부잣집 도련님이랑 사귀는 동생에게 나중에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었다,)
뭐 이럴 때 이런 기억들 남겨두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났을 때 적어놔야지, 또 저 심연 속으로 빠뜨리면 언제 건져낼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