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누구누구 민족이 정립해두었다는 12개월 365일 주기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닌데, 하물며 새해 첫날이 뭐가 중요하겠냐마는 그래도 나도 고정관념으로 가득찬 인간종족인지라, 새해 첫 날 읽을 책은 무엇이 좋을까, 하며 한참을 책장 앞에서 서성였다. 서성였다지만 책 몇권을 두고 무엇을 고를지 고심했다는 편이 더 맞겠다. 



[독서일기] 알베르토 망구엘 , 진행중 
 

 



[반지의 비밀] 앨리스 피터스 , 진행중
 

 




[세상을 보는 방법] 쇼펜하우어 , 진행중 

 



[전망 좋은방] E.M.포스터 , 읽지 않음 

 

  




[면도날] 서머싯 몸 , 읽지 않음 

 

 

읽던 책은 괜히 망설여지고 해서 자꾸 눈에 밟혔지만 또 손은 가지 않던 [면도날]을 과감히 꺼내어 들었는데 왜 이 책을 지금껏 읽지 않고 방치해두었던가 싶다. 나는 서머싯 몸을 좋아한다. 그의 작품은 작가 자신이 바로 정확하게 이야기 해주듯이 특별히 대단한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난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 자신에게는 당당하게 권할 수 있다. 독서권태기이신가요? 서머싯 몸의 책을 집어 드세요.  

나는 그들([면도날]의 등장인물들)이 완벽한 미국인이라고는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 그들은 영국인의 눈을 통해서 본 미국인이다. 나는 미국인들이 말하는 독특한 특성을 그대로 나타내려고 애쓰지 않았다. 영국 작가들이 그런 시도를 하면 미국작가들이 영국에서 사용하는 영어를 그대로 재현할 때 범하는 것과 똑같은 실수를 하게 된다. 특히 속어가 가장 위험한 함정이다. 헨리 제임스*는 영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빈번하게 속어를 사용했지만 영국인이 쓰는 것과 똑같이 표현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가 원했던 구어적 효과는 내지 못하고 영국 독자들에게 불편한 느낌만 안겨주었다.(p13)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서실을 나올 때도 래리는 여전히 윌리엄 제임스의 책에 몰두해 있었다. 나는 클럽 안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도서실이 조용했기 때문에 나는 식사 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면서 한두 시간쯤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놀랍게도 래리는 그때도 여전히 독서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그의 옆자리를 떠난 이후로 꼼짝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오후 4시쯤 내가 그곳을 나올 때도 그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그는 내가 도서실에 드나드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그날 오후에는 여러가지 볼일이 있어서, 블랙스톤 호텔로 돌아갔을 무렵에는 벌써 어느 초대 자리에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어야 할 시간이었다. 저녁 초대에 가는 도중에 나는 호기심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 다시 클럽에 들러 독서실에 가보았다.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신문 따위를 읽고 있었다. 래리는 아직도 같은 자리에서 독서에 집중하고 있었다. 정말 특이한 젊은이었다. (p60)


이 책은 아직 60페이지밖에 읽히지 않은 주제에 마구 컴퓨터로 달려와서 재미있는 구절을 기록해두고 싶게 만든다. 깊은 성찰으로부터 거둘 수 있는 가장 값진 수확물은 바로 유머가 아닐까. 기록하면서 또 알베르토 망구엘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우리는 작가가 쓴 게 아니라 우리가 읽고 싶은 것을 읽는다. [독서일기] 中


*덧- 
참고로 헨리 제임스는 서머싯 몸에게 비웃음(??)을 샀을지언정 두 아들에게 이런 멋진 편지를 쓴 작가란다. 

지적인 십대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삶이라는게 소극(笑劇)이 아니라는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심지어 점잖은 코미디조차 아니고, 그러기는 커녕 존재의 뿌리가 뻗어나간 본질적인 기근의 더없이 심오한 비극적 깊이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 말이다. 정신적인 삶을 구가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물려받게 되는 유산은 늑대가 울부짖고 음탕한 밤새들이 지저귀는, 정복되지 않은 숲이란다. [독서일기] 中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0-01-01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망 좋은 방]은 재작년인가 암튼 읽었더랬어요. 포게터블님 다 읽고 나면 어땠는지 얘기해주세요. 면도날 강추 넣어야겠네. 뽀게터블님 저한테 땡스투 받는거 즐기시는구나. 그쵸? ㅎㅎ

Forgettable. 2010-01-02 11:16   좋아요 0 | URL
역시 벌써 읽으셨군요. 저도 궁금해요. 괜찮으면 E.M포스터 전집을 노려보려구요. 추천받은지 1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읽으려 하다니;;;

[면도날] 제가 써놓은 글귀가 다락방님께도 괜찮았나봐요?? 순전히 호기심에 다시 도서관에 들러서 청년이 아직도 책을 읽고 있는지 확인해보는 화자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요 전 ㅠ ㅋㅋㅋ

다락방님의 땡스투덕분에 제 삶이 풍요로워졌잖아요. ^^

2010-01-02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2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5 0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글을 쓰지도 않는데 고맙게도 방문해주시는 수많은(!) 방문자들을 위해, 차라도 대접하고 싶지만, 곧 백수가 될 예정인 주제에 카드빚 말고는 가진게 마땅찮아 아쉬운 마음을 시로 달래본다.  

다들 무언가 꽉 잡고 있는데
그걸 놓치면 조난당할까 두려워하는데
그는 인파에 몸을 맡기고 유영한다
몇 차례 큰 파도 지나가고
남극 같은 지하도 계단에
섬이 되어 앉아 있다.

W의 [어부생활사] 中

다행인지 당연인지, 내게는 시를 쓰는 후배가 있다. 연휴 중 흥청망청 술로 보내는 시간의 일부를 그와 함께 잠시 나누었는데, 일본으로 오랜 기간 떠나있을 그 친구가 내게 A4지 뭉텡이를 자랑스레 건넨 중의 일부이다. 친구는 그의 시를 읽고는 80년대 감성을 키보드에 두들기고 있냐며 비난했다지만, 난 그의 치열한 단어선택이 좋고, 나로서는 절대 알지 못할 본질적인 외로움이 두렵고, 그럼에도 시에 담긴 따스함을 발견하는 순간이 좋다.  

몇개의 시 중에는 자기고백이 담긴, 굳이 말하자면 증오하는 아버지에 대한 시가 하나 있었는데, 나는 왠지 그 시가 나에게 주는 편지같았다.  

이십팔일 후, 자살을 하려고 했는지 멍청하게도 항생제 몇 십 알을 처먹었다. 운 좋게도 나의 어머니는 그 사실을 자정에 알았다. 착한 그녀는 호들갑을 떨며 피곤한 일일구를 출동시켰다. 나는 모르는 척 잠을 잤고 망할 놈의 고대병원새끼들은 그를 또 치료해줬다. 그 착한 아들의 생각을 나는 도통 알 수가 없다. 뭐 그도 나를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웃긴 것은 착한 그녀의 생각도 도통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W의 [기시감, 착한 아들, 그리고 복선] 中

왤까, 이런 아픈 기억을 풀어서 꺼내보일 수 있다고, 그만큼 많이 자랐다고,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그만큼 사그라들었다고 웃으며 건네는 편지같았다.

핸드폰이 없던 베이비 펌의 귀여운 신입생, 나와 함께 서양 고전 철학, 미학개론 같은 가장 어려운 수업만 골라 듣던 후배, 치매에 걸린 나이많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아무도 오지 않을까 걱정하던 친구, 음악만 할거라고, 시만 쓸거라고 하다가도 금새 취업 걱정을 하던 친구, 마음먹자마자 JLPT 시험에 덜컥 붙은 친구, 긴 팔로 안아주며 '누나! 사랑해요!' 라고 애인보다도 더 크게 외쳐주는 나의 후배. 이 친구와 다시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괜히 눈물을 글썽거리며 하얀 A4지 종이 위의 글자들을 다독였다. 언젠가 우리 친구의 시가 떵떵거리며 우쭐대는 꼴을 한번 보고싶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09-12-28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에 대해 시를 쓸 수 있다는 건, 이미 내면에선 화해했기 때문이라 생각되네요.
자기 내면에서 화해하지 않았다면 어떤 글도 쓸 수 없을테니까요.

Forgettable. 2009-12-29 00:4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유독 자기 시 평가 받기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이 글을 보여주고 싶은데 제가 생각한게 틀릴까봐 망설이고 있답니다. 근데 왠지 순오기님의 댓글이 힘이되네요^^

뷰리풀말미잘 2009-12-28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백수가 된다니 듣던중 반가운 소리네요. 그렇잖아도 어떻게 됐을랑가 궁금했는데 선뜻 물어보기가 어려웠어요. 어쨌거나. ^^ 웰컴 투 리얼월드!

2009-12-29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9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9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zydevil 2009-12-29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네요, 두루두루...

Forgettable. 2009-12-29 01:01   좋아요 0 | URL
정말요?? 데빌님도 좋으세요? 참 다행이에요^^ 전 이 친구 시가 모든사람에게 마구 다가가서 어떤 방식으로든 반향을 일으켰음 해요 ㅎㅎ 저 잘시간을 너무 지나버려서 큰일이에요ㅠㅠ 낼 아침이 무지 걱정되요 ㅠ

푸하 2009-12-29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시군요.
공감이 많이 되네요.

Forgettable. 2009-12-29 09:1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시를 잘 모르기도 하고, 딱히 시에 반응한 적은 없는데 지인의 시라서 좋은건줄 알았거든요.괜히 제가 기분좋네요 ^^
 





 - 2009.12.24. 에버랜드. 

오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을 들으니 어렸을 때 동생들이랑 카세트에 캐롤 테잎을 넣고 틀어두고는 막춤을 추고, 함께 케익을 먹던 기억이 났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신나는 이유는 지금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연인들을 위한 날이기 이전에 각자의 소중한 날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다들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요. ^^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뷰리풀말미잘 2009-12-25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크리스마스! ^^

Forgettable. 2009-12-26 12:33   좋아요 0 | URL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냈나요??
난 눈떠보니 벌써 토요일;; 아 정신없어라- (어머, 왠 바쁜척)

후애(厚愛) 2009-12-25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에요~
선물 많이 많이 받으세요.^^

Forgettable. 2009-12-26 12:38   좋아요 0 | URL
후애님!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은 받으셨나요?
저는 고흐책과 에버랜드 사막여우인형과 기린수면안대를 받았어요^^ 히히

다락방 2009-12-25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크리스마스, 뽀게터블님!! :)

Forgettable. 2009-12-26 12:3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잘 들고;;가셨어요?;;;
본의아니게 소소한 테러들을 저질러 버렸다능 ㅋㅋ

비로그인 2009-12-30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다 내려보기 전, 윗부분만 보고서는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 무대 디자인인 줄 알았어요. 호홋

Forgettable. 2010-01-01 00:00   좋아요 0 | URL
역시 아는만큼 보인다는게.. 많이 보고 많이 알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군요. ^^
 

 

 

 

 

 


서점에서 발견하고는 책을 쓰다듬고 이리저리 보며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책 만듦새에 비해 가격이 싸다, 했는데 오늘 찾아보니 12월 31일까지 무려 반값; 출판사는 뭐먹고 사나 싶다. 그리고 같은 책인데, 2가지 표지로 나왔다고 한다. 자작나무 표지 아래- 

 

 

 

 

 


이것도 탐난다. 두개 다 갖고 싶다. 자작나무 표지는 반값세일 안하는 중. 안해도 된다. 아, 사고싶다. 사고싶다 (ㄷㄷㄷ) 잠시 훑어본 바로는 테오에게 쓴 편지가 담겨있는 것 같다. 내가 고흐를 좋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아는 사람이 고흐 뿐이라거나, 상품화된 그의 그림에 혹했기 때문에 고흐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되기 싫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예전에 그의 그림인줄도 모르던 그림을 봤을 때 빨려들어갈 것처럼 오랜 시간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던 기억은 애써 지우고, '두둥'하고 떠오르는 그의 그림들, 데셍들을 애써 가라앉히고, 다음으로 좋아하는 작가를 생각해낸 후 '누군가'라고 대답한다. 달리가 될 때도 있고, 엘 그레코, 고갱, 고야가 될 때도 있다. 난 정말 차라리 고흐를 좋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09-12-23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표지가 너무 예뻐요. 전 처음 보는 책이고, 그림에 대해서는 아는것도 없는데 무작정 보관함에 넣었어요,
라고 말하다가 반값이 언제까지일까 생각하다보니,
당장 질러야겠다는 결론이 나오네요. 이를 어쩌나..

(이거 땡스투 들어오면 일단 저인줄 아세요!)

Forgettable. 2009-12-23 15:06   좋아요 0 | URL
책이 양장본인데, 진짜 크기도 크고 예쁘고 종이질도 좋아요. 미술관에서 그림보고 있는것마냥 책에 빨려들어가는줄 알았어요. ㅋㅋ 31일까지니까 당장 질러야 하나요? ㅠㅠ 괜한 동질감에 멋모르고 같이 지르고 책받고 헤벌레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상상되요ㅡ 으흐흣 (이를 어쩌나..2)

다락방 2009-12-23 18:27   좋아요 0 | URL
방금 주문 넣었어요. 밑에 지마켓이 더 싸다는거 봤지만, 나는 뽀게터블님께 땡스투 드리겠다고 약속했으니까 그냥 알라딘에서 샀어요. 땡스투 들어오면 요긴하게 아껴서 잘 써야해요, 뽀게터블님!!

Forgettable. 2009-12-24 00:3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땡스투 들어오면 커피도 사고 다이어리도 사고 셜록홈즈 전집도 사고 카잔차스키 전집도 사고 에코 전집도 살거에요. 그래도 남겠네!!!! 쌩유 다락방님. 으흐흣

무해한모리군 2009-12-2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른사라고 추천 누르지만..
난 첫번째 표지의 일본풍이 짙게 풍기는 고흐는 별로라는..

Forgettable. 2009-12-23 15:08   좋아요 0 | URL
어머, 아몬드꽃 그림이 일본풍 느낌이에요? 일본 회화에서는 저런 푸른색이 나오지 않을텐데 ㅠㅠ 아닌가, 몰라요. 전 아몬드 꽃그림은 다좋아해서 저 표지 그림도 좋아요 ^^ 자작나무 표지도 너무 예쁘죠? 실물이 정말 대박이에요.. 댓글달며 사겠다고 새삼 다짐하나요 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12-24 08:23   좋아요 0 | URL
제 느낌이요..
도르륵 말아서 스카프나 실크블라우스로 만들어 입음 이쁘것다!

Forgettable. 2009-12-24 23:2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고이 아껴두고 싶은 스카프/블라우스일 것 같아요. ㅎㅎ

휘모리님, 곧 휴양하러 떠나시겠군요. 무지 부러워요. ^^ 조심해서 잘 놀다오세요!

순오기 2009-12-27 15:06   좋아요 0 | URL
고흐의 이 그림은 일본풍 맞는 듯. 일본인 히로시게의 그림을 모방한 작품도 있는데 이것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었던 거 같아요. 얼마 전에 읽은 최영미의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에 나왔거든요. 하하~ 바로 이런 게 책읽는 재미잖아요.^^

Forgettable. 2009-12-28 09:4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정보 감사합니다. ^^

머큐리 2009-12-23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책장에 후광이 날 것 같은 책이네... 으흐~~

Forgettable. 2009-12-23 15:09   좋아요 0 | URL
네 그렇죠! ㅎㅎ
서점에서 저 책 보느라고 발을 못떼서 친구한테 질질 끌려나오는데 저는 헤어지는 애인마냥자꾸 뒤돌아보고 ㅋㅋㅋㅋ

쥬베이 2009-12-23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orgettable.님~ G마켓 가보니 17900원에 팔더라고요.
알라딘보다 약간 싼거죠? 한번 가보세요~
http://gen.gmarket.co.kr/challenge/neo_goods/goods.asp?goodscode=154598591&sid=50000&special_form=TYPE27

Forgettable. 2009-12-23 17:09   좋아요 0 | URL
악 쥬베이님!
오랜만에 나타나셔서 이런 고급정보를 ^-^* 고맙습니다!!
카드할인 어쩌고 이런거 다 해도 G마켓이 싸네요, 호호호, 이렇게 사게 되겠군요. 털썩;;

자주 뵈요. ^^

다락방 2009-12-23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게터블님. 궁금한게 있는데요,

'김치갈비전골'은 소주 안주로 괜찮다고 생각합니까? (포게터블님의 개인적인 취향에 고려하여 말입니다.)

Forgettable. 2009-12-23 17:22   좋아요 0 | URL
제가 김치갈비전골은 한번도 안먹어봤어요^^ㅋㅋ 김치갈비전골의 주가 김치갈비이냐, 국물이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전 국물에 소주는 별로라서..;;
예를 들어 감자탕에 소주는 괜찮지만 해물탕/조개탕에 소주는 별로라는거죠. 어쩌면 국물보단 고기의 유무에 따라 선호도가 다른 것 아니냐고 하실 수 있겠는데, 회에 소주도 좋아하니 그 반박은 무효입니다. 전 소주를 먹을 땐 뭔가 씹을거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안주습관을 정리해보니 왠지 신기하네요 ㅋㅋ)

lazydevil 2009-12-24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구호요청 땡스투의 압박...ㅡ.ㅡ 또 주문 들어가야 하나요...?

Forgettable. 2009-12-24 23:12   좋아요 0 | URL
흐흐- 제가 책 실물봤는데, 괜찮아요 정말. 책 멋있어요!
지마켓이 싸니까 제게 땡스투 주지 않으셔도 되어요. 순수한 마음에서 지름신을 나눠드리는 거라능;;

데빌님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비로그인 2009-12-30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야겠어요. 바다가 반 고흐를 짝사랑하거든요. 흠모하거든요. 연모하거든요. 태어날 때 부터 좋아했거든요. 그리고 내일까지 반값이라는 말에!(난 왜 이런 걸 지금에야 아는 걸까요)

Forgettable. 2009-12-31 23:59   좋아요 0 | URL
그어머니에 그 아이라더니.. 사셨나요? ㅋㅋ 책 보면 끌어안고 자고싶으실걸요^^ 무거워서 팔이 배길테지만 아이를 한팔로 안으실 수 있다고 기억하는 것 같은데(아닌가) 이게 왠 횡설수설;;

암튼 쥬드님이 이곳까지 왕림해주시오니, 성은이 망극하오이다. ㅎㅎ
 



  

철도청에서 매년 여름 대학생을 위해 하는 이벤트로 '내일路'라는 것이 있다.  

24살, 만 22살의 나는 당시 부산사는 남자친구와의 이별에 힘겨워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주성치의 영화와 무한도전만 시청하다 자다가를 반복하며 피폐해져가고 있었고, 방학 내내 준비한 토익과 한자시험을 모두 망쳐버리고는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모두 이별의 대응하는 방법중에 하나였고, 성격상 그러고 집에 처박혀있을 수도 없어서 동생을 데리곤 5만얼마짜리 내일로 티켓을 끊어서 여행길에 올랐다.  

경상도는 당연히 제외되었고, 여수->남원->곡성->전주->대전->제천->도계(-_-)->동해->강릉->증산->봉평->원주->서울의 순서로 기차를 타고 칙칙폭폭 수많은 도시들을 지났다. 너무너무 소중한 기억들이라 언젠가는 꺼내어 놓으려 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너무 덥거나 추운 찜질방에서 한참을 잠못이루었던 건 낯선 곳이라는 불안감보다도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컸던 것 같다. 더운 날씨에 오동도와 돌산대교를 하루종일 오르내리며 지친 터라 찜질방의 얼음방에서 한시간 넘게 꽁꽁 얼었던 탓도 있겠고. 잠시 잠이들자마자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 향일암으로 가는 첫 버스에 올랐다. 괜히 알차게 여행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라 무척 들떠있었는데, 그 땐 향일암이 어떤 곳인지 몰라서 그랬다. 

버스에서 내리니 어수룩하게 새벽빛이 들기 시작했고 행여나 일출을 놓칠까봐 사람들을 따라 오르막길을 열심히 올랐다. 조금만 가면 저 위에 향일암이 있겠구나. 하는 얼척없는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오르면서 생각을 해보니 내가 갖고 있는 향일암에 대한 정보는    
1. 절이다. 
2. 일출이 멋있다.
3. 돌산대교 버스 정류장에서 xx번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이것 3개 뿐이었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평소 사전정보 없이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내 뒷통수를 치기 위해 존재하듯이 그곳은 너무나도 가파르고 높은 절벽 위에 있었다는것을 난 2/3가량은 오른 후에야 깨달아버렸다. 매일 있는 일출따위 보려고 내가 이렇게 올라야 하나 후회와 회한을 몇십번씩 반복했다. 헤어진 애인에 대한 생각은 흐르는 땀에 씻겨져 나갔고, 동생과 나는 물론 주위에 아무도 말하지 않고 다들 그저 오르기만 했다. 울 것같은 마음으로, 아니 벌써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아직도 생각난다. 정상에 도착하기 직전, 왜 모든 산에서는 정상에 다다르기 직전 마지막 오름이 가장 힘든걸까, 라고 무거운 배낭을 움켜쥐고 한발 내딛던 순간을.



실컷 봐두었으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고, 그 다짐은 2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해서 난 너무나 당당하게도 향일암을 베스트여행지로 추천은 하되 내가 갈일은 없을거라 호언장담했었다. 그런데 내가 하하호호 신나게 노는동안 그곳은 설계도가 남았다는 핑계를 대며 사라져버렸다. 향일암, 대형 화재, 대웅전, 소실 로 이어지는 내 사진에 남겨진 댓글을 보면서도 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건지 분명 텍스트를 읽었음에도 향일암이 없어졌단 걸 모르고 있었다.  

메인에 뜬 인터넷 뉴스를 읽으며 당황하고 어느새 젖은 목소리로, 옆에서 뜨개질을 하는 동생에게 '야.. 향일암...' 이라고 했더니 동생이 환히 웃으며 '아..!!!! 좋지, 향일암' 하며 꿈꾸는 표정을 짓는다. 지금이 일제 시대도 아니고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왜 모든것들이 사라져가느냐며 화내는 동생에게 나역시 '그러니까.'란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도 없는 우리에게 과거의 추억까지 빼앗아 버리는 것은 너무 잔혹하다.  

그래도 '조금 더 많은 사진을 남겨둘걸, 한 번 더 가볼걸, 일정은 신경 끄고 조금 더 오래 머물며 나무냄새와 돌향기에 좀 더 취해있을걸,' 이깟 후회는 치워두고 그 자리에 그리움만 채워두어야 한다는 걸 안다. 향일암이 내게 그 사람과의 사진이나 못다한 약속,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랑의 말들에 대한 집착과 후회의 공간은 낭비일 뿐이라며 그 자리를 비워내고 따뜻한 추억만을 채워주지 않았던가.


댓글(19) 먼댓글(2)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 흔적
    from 마지막 키스 2009-12-21 18:45 
    뽀게터블님.  추억에 관련된 시를 드릴까, 이별에 관련된 시는 너무 아프겠지, 하다가 골라낸 것이 '흔적' 이에요. 제 댓글은 이걸로.          흔적 &#
  2. 향일암을 추모함
    from 道를 아십니까 2009-12-21 19:53 
    할머니를 보내 드리느라 세상과 며칠 격리되어 있다 가까스로 다시 발을 들여놓은 어젯밤, '향일암 전소'라는 인터넷 기사 제목을 마주해 버렸다. 정황파악을 위해 기사를 클릭하기는 했지만 부러 꼼꼼히 읽지는 않았다. 내게는 낙산사 화재보다, 숭례문 전소보다 더 먹먹한 소식인지라 궁금한 게 많을 법도 하지만, 아마 오랫동안 기사를 정독하는 일은 없지 싶다.향일암 올라가는 길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험했었다. 변변한 계단도 없고 사람 하나 빠져 나가기가...
 
 
perky 2009-12-2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멋지고 글도 참 와닿아요. ^^
향일암에 화재났다는 거..이 글 읽고야 알게 됐어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Forgettable. 2009-12-21 14:10   좋아요 0 | URL
아침내내 우울해서 사진만 뒤지고 있네요. 왜이리 사진을 많이 찍어놓지 않았던건지 아쉬워요. 그래도 마음으로 기억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것 같아요 ^^

일출을 보며 감동한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었습니다. ㅎㅎ 진짜 마지막이었네요. 흑흑 ㅠㅠ

뷰리풀말미잘 2009-12-21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6년 전 쯤에 갔었는데 그때도 참 좋았어요. 절벽에 멋들어진 절간이 턱 걸터앉아 있고 먼 바다에서 해가 두둥- 하고 뜨니까 와 벌어진 턱이 다물어지지가 않더군요! 그때 찍은 사진은 하드가 소실되면서 사라졌구요 남은건 그녀가 찍었던 4*6사이즈 현상사진뿐이라 저는 자랑할 수도 없네요.

하지만 뽀님 추억은 불태워지는게 아닙니다! 그렇잖아요! 불타기 전에 만든 추억은 영원히 불타지 않아요. 그러니까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 오히려 불타기 전에 갔었던 걸 감사하게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Forgettable. 2009-12-21 15:25   좋아요 0 | URL
6년 전이라.. 갑자기 미잘님의 나이에 대한 확신이 혼란스러워지는군요. -_- 뭐 어릴 때도 여행은 다닐 수 있는거지만, 그녀와의 여행이라니, 중얼중얼.. (이 중얼중얼 버릇 누구한테 옮은거지)

제 추억은 괜찮아요. 고스란히 남아있어요. 땀으로 얼룩져 번들거리고 벌개진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곤 흠칫 놀랬던 기억도 아직 생생한걸요. 그런데 그냥 미처 그곳을 보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현재와 미래의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심지어 우리 부모님도 아직 못가보셨는데 ㅠㅠ 여튼 그만 우울해해야지, 이거참 안그래도 예민한데;;

푸하 2009-12-21 16:54   좋아요 0 | URL
현상사진이라도 보고 싶군요. 안되면 스캔이라도...^^: 음 6년전이라... 두 분이 좋은 곳이라고(었다고) 하니 정말 아쉬워지는 군요.ㅠㅠ

푸하 2009-12-21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헤어지게 되면 2/3지점에서 힘듦을 깨달을 만하면서 목적지가 아름다운 곳으로 떠나야겠어요. 음... 근데 그런 곳은 미리 계획해서 가는 것이 불가능할 듯...ㅎㅎ~

Forgettable. 2009-12-22 09:2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미리 계획해서, 완전 열심히 올라가 보리라 결심하고 갔다면 그 광경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겠지요, 너무 힘들어서 힘든줄도 모르는 데다가 목적지에 무엇이 있는지도 몰랐던 터라 ㅎㅎ

다른 어느 문화재 소실보다도 더 마음이 안좋습니다.

머큐리 2009-12-2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스보고 그냥 무덤덤했었는데...뽀님이 안타까워하니 다시 한 번 보게 되더라능~~
그래도 해는 계속 떠오르겠지요...흠

Forgettable. 2009-12-22 09:24   좋아요 0 | URL
많이 더울 때였는데 따뜻한 이미지로 남아있어요.
해는 계속 떠오를테고 그곳에서 보는 일출도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라고 위안삼고 있습니다.

2009-12-21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2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2 1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3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Demian 2009-12-22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올 한 해는 불로 시작해 또 불로 끝나는군요. 도대체 무슨 아홉수(?!)가 이리 지독히도 끼었답니까. ㅠㅠ
개인적으로도 올 한 해는 정말 다사다난, 파란만장했답니다. 그래도 즐거운 성탄절, 따뜻한 연말보내시라고 인사하러 들어왔는데 주인 잃은 러브레터가 마음을 썰렁하게 하네요.ㅠㅠ

여튼 썽님~올 한 해 썽님과 썽님 블로그를 알게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했어요.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못 놀러왔지만, 내년에도 우리 자주 만나요^^ㅎㅎ

우울함 훌훌 털어버리고, 건강한 연말 보내시길 바래요. 메리크리스마스!!! +_+!!!!!!!!

Forgettable. 2009-12-22 09:39   좋아요 0 | URL
데미안님, 요즘 블로그 뜸하시던데 오랜만이라 반가워요! ^^
아홉수만 넘기면 정말 괜찮아질지 모르겠어요. ㅠㅠ 정말, 아홉수라 이런 한해였던거면 좋겠어요.

저도 데미안님과 인연을 맺을 수 있어서 무지 행복했습니다 ㅎㅎ
앞으로도 계속 친하게 지내요 ^^
크리스마스 신나게 보내세요!!

조선인 2009-12-22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겟터블님과 따우님 글을 읽으니 정말 가슴이 아파오네요.

Forgettable. 2009-12-22 09:40   좋아요 0 | URL
전 따우님 글 읽고 울뻔했지 뭡니까;;

순오기 2009-12-23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는 향일암을 못 가봤는데 영원히 가볼수 없는 곳이 됐군요.ㅜㅜ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도 없는 우리에게 과거의 추억까지 빼앗아 버리는 것은 너무 잔혹하다."
공감의 쓰나미에요.

Forgettable. 2009-12-24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주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더 아쉬움이 크실것 같아요. ㅠㅠ
재건축 한다해도 옛모습이 남지 않겠죠.

순오기님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