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반짝 눈을 뜨고 조금 밍기적 거리다가 운전면허학원 시간에 꼭 늦어서는 마구 뛰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왼쪽 깜박이, 오른쪽 깜박이를 번갈아 켜다가, 내 운전 실력에 좌절도 했다가, 시속 50키로까지 밟고는 깜짝 놀라 40키로에 맞추다가, 내가 빨리 배우는 편이냐며 선생님께 괜스레 뻐겨도 보다가, 벚꽃이 만개한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학원으로 돌아와 하차카드를 찍고는 집으로 귀가한다.
오는 길 모퉁이에 있는 빵집에 들러서 빵을 사먹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는 빵중독에서 벗어나자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고 집으로 돌아온다.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곤 누워서 뒹굴거리며 가볍게 이 책, 저 책 헤집어 본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아직도 알라딘에서 이 책 안읽은 사람이 있냐는 주위 사람들의 말 때문에 보게 되었다.... 는 물론 아니고 선물 받아서 읽게 되었다. 후르륵 읽힌다. 에미와 레오의 너무나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훔쳐보는 기분에 괜스레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레오의 입장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에미의 입장이 뭔지 나는 안다.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때는 레오가 되었다가, 어느 때는 에미가 되었다가, 또 어느 때는 베른하르트씨가 되었다가 하면서 읽었다. 다 읽고 나서는 책에 대한 호불호와 관계 없이 [일곱번째 파도]가 무척 궁금했었다. 결말을 알게된 지금은 차라리 [일곱번째 파도] 따위는 없었던게 더 좋았을 거라고 작가를 원망한다.
그랬더라면 그녀의 산산조각난 마음은 어떻게든 다시 단단히 붙었을지도.
[음양사]
난 이 김소연이라는 번역가가 참 좋다. 손안의 책 출판사의 대부분의 일본 책은 이 사람이 번역한 것 같은데, 특유의 짧고 가벼운 문장, 그 안에 든 바람, 따스함. 그리고 중후함, 뭐 이런 것들이 좋다.
하얀 얼굴에 붉은 연지를 바른 것만 같은 입술. 어쩐지 이준기를 떠올리게 하는 세이메이와 히로마사의 대화가 너무 좋다. 이를테면 "상냥한 사람이로군. 히로마사 자네는." 이라고 말하는 부분 같은 거. 귀신을 퇴치(?)하는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이 둘이 앉아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 정말 매력적이다.
하이드님 말마따나 술 친구로는 세계 최고일 것이다.
이렇게 책을 조금 읽다 보면 어느덧 점심시간. 1시에서 2시 사이로, 보통 대중없지만 배가 고프지 않아도 웬만하면 먹어두려고 한다. 간단히 밥을 먹으며 IPTV로 지나간 오락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오늘은 신데렐라언니 5회를 보았다. 이 드라마는 어딘지 모르게 내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어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가슴을 쓸어내린다.
5회에서 8년만에 다시 한국에 돌아온 기훈이는 은조에게 "아는 얼굴이네." 라고 말한다. 왜 첫 인사가 그 따위어야 하는건지. 조금 더 다정할 순 없었던 건지.
푸르스름하게 독기가 마구 뿜어져 나오는 문근영에 새삼 감탄에 감탄을 마지않고, 이미숙과 김갑수의 매력적인 연기에 웃음지으며, 꼭 나타나주었으면 하는 때에, 꼭 그렇게 있어주었으면 하는 포즈로, 꼭 해줬으면 하는 말을 하는 천정명에게 반한다.
그는 비밀이 많고, 누구에게나 다정하며, 그러나 나에게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고, 선하고 까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귀여운 표정일 짓는다. 몸 태가 좋아서 어느 옷이나 잘어울리지만 특히 검은 정장이 아주 잘 맞고, 오전에 밀지 않아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수염이 남자답다. 은조는 기훈이 부르는 "은조야."에 주박이 걸려 아무리 싫다고 밉다고 발버둥쳐봤자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이 내게 있다는 건 정말이지 비극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로맨스 따위 다 집어치우고 방으로 돌아와 [소현]이나 읽으며 구국충정의 분위기에 젖어 경건한 마음을 다져야지.